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7화
알고 싶으면 레어 등급 검을 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레어 등급은 힘을 증명하지 않으면 줄 수 없어.”
신지아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레어는 4성 검사들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등급이었다.
그런 물건을 이제 2성 최하급이 된 신유현에게 쉽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이래도 말이야?”
신유현은 조금 전까지 신지아가 살펴보고 있던 장검들 중 하나를 들었다.
노멀 등급의 일반 장검이었지만, 나름 튼튼해 보였고 검날이 날카로웠다.
매직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상등품이었다.
그 장검에 신유현은 천천히 마나를 주입했다.
우웅.
그러자 장검이 살짝 진동하더니 검은 오러가 줄기줄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기력 개방을 했구나.”
그 모습을 본 신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차크라 개방을 한 것이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직 끝이 아니야.”
[고유 특성 불사왕의 가호, 퍼스트 스킬 다크 소울 블레이즈를 발동합니다.]
화르륵!
순간 신유현이 들고 있는 장검에서 흑염이 솟구쳐 올랐다.
“……!”
신지아는 말없이 눈을 치켜떴다.
장검을 휘감으며 타오르고 있는 검은 화염.
그 상태에서 신유현은 잠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검광이 번득이면서 검은 화염이 허공에 수놓아졌다.
“벌써 속성을 사용할 수 있다고? 어제 기력 개방을 했다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어떻게 3성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을…….”
신지아는 놀란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초인들에게 있어서 등급은 목숨과도 같았다. 강함의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2성일 때와 3성일 때의 능력 차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기력 개방을 하고 2성이 되면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며,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강체술과 검에서 오러를 구현해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3성이 되면 오러의 속성을 개방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2성이 된 신유현이 오러 속성까지 사용하는 게 아닌가?
“나도 재능이 있었나 보지.”
신유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재능이라는 말로 납득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신지아만 해도, 2성이 되었을 때 상대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구나.”
그 때문에 신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재능이란 워낙 다양하였기에.
‘엄밀히 말하면 오러 속성은 아니지만.’
다크 소울 블레이즈는 불사왕의 가호에 붙어 있는 귀속 스킬.
하지만 불사왕에 대한 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크 소울 블레이즈를 오러 속성인 것처럼 연출하며 재능이라고 둘러댔다.
‘3성이 되면 어떤 오러 속성이 나올지 기대되는군.’
이전 삶에서는 기가 막히게도 무속성이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불사왕의 권능을 계승받았기에 어떤 오러 속성이 발현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신유현은 신지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문제는 내 속성 능력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거지.”
그리고 더욱더 마나를 주입하며 흑염을 거세게 불태웠다.
화르륵!
그러자 검날 전체를 집어삼키며 커지는 검은 화염.
파슷! 파스슷!
이윽고 결국 흑염을 버티지 못한 장검이 불타오르며 재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노멀 등급의 장검은 못 버티더라고.”
“그래서 레어급을…….”
신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현이 가지고 온 장검이 가루가 된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까.
“가능하면 흑염을 버틸 수 있는 검이면 좋겠어.”
“레어 등급이면 네 힘을 버틸 수 있는 검들이 있겠지. 그중에 하나 고르면 되지 않을까?”
“그럼 내가 원하는 검을 줄 수 있어?”
“레어 등급의 검이라면 무엇이든지.”
이미 신지아는 흑염의 오러를 본 순간 신유현의 실력과 재능을 인정했다.
그래서 레어 등급의 검을 선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레어 등급까지라면 그녀의 재량 안에서 어떤 검이라도 선물로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마검, 이그니스.”
“뭐? 이그니스라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신유현의 말에 신지아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파천검가에는 다양한 검들이 존재한다.
인류가 마도공학 기술로 만들어 낸 검들과, 던전에서 얻은 검들까지.
그 외에도 신검, 성검, 마검, 유물검, 전설의 검 등등.
그중에서 마검은 위험했다.
성능만큼은 확실하지만 주인을 까다롭게 가리는 데다가 사용자의 목숨을 갉아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 봉인되어 있으며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마검, 이그니스도 마찬가지.
화염 포식자라고 불리는 이그니스는 주작전의 전주이자 가문의 차남인 신철진조차 포기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검이었다.
“아, 안 돼. 그 검만큼은 위험해서 절대 안 돼.”
신지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거부했다.
하지만 신유현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야말로 이그니스가 아니면 안 돼. 레어 중에서도 흑염을 버틸 수 있는 검은 많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유니크를 받을 수는 없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신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어까지라면 그녀가 마음대로 융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니크는 아니다.
유니크 등급의 검을 받으려면 그녀가 실력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가문에 실적을 쌓은 인물이어야 했다.
그것만큼은 가문의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기에 실적이 없는 신유현은 유니크 장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럼 최소한 기회는 줘. 대면식을 해 보면 알 수 있겠지.”
대면식.
레어급 이상의 검들과 오러를 공명하는 의식이다.
그때 서로 상성이 좋은지 나쁜지 파악한다.
그렇기에 대면식을 하면 마검 이그니스가 자신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대면식을? 철진이도 인정받지 못했는데 네가 하겠다고?”
“응. 밑져 봐야 본전이잖아. 한번 시도해 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대면식 자체는 위험하지 않았다.
서로 상성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만 거치면 되니까.
“알았어. 그럼 대면식을 해 보자.”
“고마워.”
신지아의 허락에 신유현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신유현은 신지아를 따라 삼엄한 보안 체계를 갖춘 무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보안과 감시가 심했다. 천장에는 드론들이 날아다니며 감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신지아의 안내를 받으며 신유현은 마검 이그니스가 봉인되어 있는 레어 등급 무기 금고에 도착했다.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네.’
크기는 일반 무기고보다 조금 더 작았고 무기들의 종류도 적었다.
하지만 레어 등급의 무기들이 내뿜는 기세만큼은 격이 달랐다. 피부로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여기야.”
어느덧 신유현은 신지아를 따라 마검들이 봉인되어 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봉인되어 있는 마검들은, 최신 장비들로 엄중하게 감시받고 있는 작은 방 안에 각각 따로따로 격리되어 보관되고 있었다.
‘엄중하네.’
마검들이 봉인되어 있는 두터운 강철 문을 열기 위해서는 지문 인식은 물론 홍채 인식까지 마쳐야 했다.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철컹! 쿠구구궁.
신지아가 지문과 홍채를 인식시키자 육중한 강철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 붉은 검신을 가진 마검, 이그니스가 강철 제단에 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천장 좌우 끝에서 흘러나온 쇠사슬 두 개가 대각선으로 교차하며 이그니스를 휘감은 후 바닥 양 끝에 박혀 있었다.
우우웅! 화르륵!
신유현과 신지아가 방 안에 들어서자 쇠사슬에 묶여 있는 붉은색 도신의 이그니스가 진동하며 적염을 흘려 댔다.
하지만 현철로 제작된 검은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그니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니?”
인정?
방으로 들어서며 입을 연 신지아의 한마디에 신유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대면식이란 보통 검이 주인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알아보는 의식.
하지만 신유현은 걱정하지 않았다.
불사왕의 힘을 물려받았으니까.
“내가 인정받을 필요는 없지. 복종시키면 되니까.”
“이그니스를 복종시킨다고?”
신지아는 놀란 얼굴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이그니스의 인정을 받는 것도 힘든 일인데 복종을 시키겠다니?
화르륵!
하지만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신지아를 뒤로하고 손에서 흑염, 다크 소울 블레이즈를 일으키며 이그니스를 향해 다가갔다.
다크 소울 블레이즈는 SSS급 고유 특성 불사왕의 가호에 붙어 있는 S급 귀속 스킬.
과연 레어 등급의 마검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화르륵!
이윽고 흑염이 이그니스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이그니스는 환희에 찬 듯 검신을 떨면서 흑염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검 이그니스의 또 다른 이름은 화염 포식자.
탐욕스럽게 화염을 흡수하기에 유래된 이명(二名)이었다.
이그니스는 검날을 진동시키며 끊임없이 흑염을 받아들였다.
‘생각보다 잘 먹네?’
신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레어 등급이라 양질의 흑염을 얼마 먹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잘 받아먹었다.
하지만.
그르르르륵!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그니스의 검신이 부르르 떨려 오기 시작했다.
‘한계로군.’
아직 자신은 여유가 있었지만 이그니스는 한계인 모양인지 더 이상 흑염을 흡수하지 못하고 흘려 내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아니, 오히려 역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듯, 적염을 피워 올리며 흑염에 저항을 하는 게 아닌가?
“해보겠다는 거냐?”
신유현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렸다.
화르륵!
그 순간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흑염.
이그니스 또한 적염을 더욱 피워 올리며 대항했다.
서로 꼬리를 물며 이그니스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흑염과 적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적염의 기세는 줄어 갔다.
그렇게 얼마 뒤.
즈즈즈증!
마검 이그니스의 붉은 검신에 흑염이 문양처럼 새겨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그니스가 백기를 든 것이다.
“이그니스가 인정했다고?”
그 모습에 신지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없는 붉은 검신에 새겨진 흑염의 문양은 이그니스가 신유현을 인정했다는 증거였으니까.
실제로는 이그니스가 인정을 했다기보다 신유현이 흑염으로 찍어 눌렀다는 표현이 더 맞았지만.
어쨌든 신유현이 신철진도 해내지 못한 일을 성공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누나. 이제 괜찮으니까 풀어 줘.”
“아, 알았어.”
이그니스의 봉인을 풀어 달라는 신유현의 부탁에 신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그니스가 신유현에게 굽히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철컹! 스르륵!
잠시 후, 이그니스를 속박하던 쇠사슬이 풀리더니 천장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건 강철 제단에 꽂혀 있는 마검 이그니스뿐.
스르릉.
신유현은 가뿐하게 이그니스를 뽑아 들었다.
기본적으로 이그니스는 날렵하게 잘 빠진 검이었다. 거기다 도신에 검은 화염의 문양이 새겨져 이전보다 한층 더 세련미가 더해졌다.
우우웅!
신유현의 손길이 닿자 이그니스는 검신을 떨었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마검 이그니스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마검 이그니스가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신유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