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6화
그리고 직계들 중에서 유일하게 후계자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다.
대대로 무기고의 수호자는 후계자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다른 무엇보다 오로지 검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다양한 검들을 수집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검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직계들 중에서 가장 괴짜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5성 절정 검사로, 가문 내에서 손꼽히는 강자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거기다 무기고와 관련된 일이라면 가주인 신성일조차 한 수 접어줄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성격이 까다로우니.’
노멀 등급인 일반 무기라면 아무 문제없었다.
다만, 매직 이상의 무기는 아무에게나 주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가 인정한 인물에게만 넘겨주었다.
문제는 다크 소울 블레이즈를 버틸 장검이라면 최소 매직이나 레어 등급은 되어야 한다는 것.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력 개방을 하지 못한 신유현에게 호락호락 매직 등급 이상의 무기를 넘겨주진 않을 터.
설령 지금 기력 개방을 하고 2성 초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지만…….
“최소 레어급으로 뜯어내 볼까?”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 * *
다음 날 아침.
신유현은 둘째 누나인 신지아를 만나기 위해 현무전을 나섰다.
수행 인원은 없었다.
아직 현무전 검사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아니, 인정은커녕 오히려 불만이 많을 테지.
신유현이 전주로 있는 동안 다른 검전들에게 무시를 받거나 인재를 빼앗기고 가문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바꿔 주마.’
그렇게 다짐한 신유현은 마지막으로 현무전 건물을 올려다본 후, 파천검가의 무기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무기고는 파천검가의 중심인 가주전을 기준으로 남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가문 내에서 보안 레벨이 높은 창고형 단층 건물이었다.
그리고 여러 겹의 강철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한 시간마다 신지아의 부하 무사들이 순찰을 돌았다.
‘여기도 그대로구나.’
무기고 앞에 도착한 신유현은 감회에 찬 표정을 지었다.
“멈추십시오.”
신유현이 무기고를 향해 다가오자 정문을 경비하는 무사 두 명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신유현은 그들을 향해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둘째 누나를 만나러 왔는데.”
“신유현 님이셨군요.”
신유현의 얼굴을 확인한 경비 무사들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신유현의 얼굴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신유현을 무시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둘째 누나인 신지아 덕분이었다.
신지아는 가문에서 신유현을 챙겨 주는 몇 안 되는 인물들 중 한 명이었다.
“이쪽으로.”
경비 무사들은 정문 옆에 있는 지문 단말기로 신유현을 안내했다.
지이잉, 지이잉.
신유현이 지문 단말기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자 스캔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무기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쿠구구궁.
이윽고 무기고의 육중한 강철 정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럼 나중에.”
“예. 좋은 시간 되십시오.”
경비 무사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신유현은 두꺼운 강철 정문을 지나 무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무기고에 들어서자 무쇠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원하게 뚫려 있는 탁 트인 공간과 높은 천장.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검들이 벽면에 걸려 있거나 중앙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이 바로 첫 번째 무기 창고였다.
‘노멀 등급의 장검들뿐이지만.’
신유현은 검들을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무기고 안에는 진열된 검들을 관리하는 신지아의 부하들이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은행 금고처럼 생긴, 최소 직경 2미터 정도 되는 문이 보였다.
이 금고문 너머에 매직 등급의 장검이나 장비들을 보관하고 있는 두 번째 무기 창고가 존재한다.
그리고 금고문 앞, 고급스러운 원목 책상 위에 다양한 장검들을 펼쳐 놓고 살펴보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목 뒤까지 내려오는 단아한 느낌의 단발 머리카락과 동그란 붉은 테 안경.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표정까지.
책상 위에 있는 검들만 없었다면 문학 소녀라는 이미지와 어울리는 여성.
그녀가 바로 무기고의 책임자이자 신유현의 둘째 누나인 신지아였다.
“누나.”
“유현이 왔구나.”
조금 전까지 나른한 표정으로 장검들을 살펴보던 신지아는 고개를 들어 신유현을 바라봤다.
그 순간 신유현은 깨달았다.
‘둘째 누나는 나를 이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구나.’
동정심과 측은함이 깃든 눈빛.
스무 살이 되는 날까지 기력 개방도 하지 못한 자신을 둘째 누나는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었을 테지.
이전 삶에서는 알지 못했다.
그때는 당장 눈앞의 일에만 급급했고, 가문에서 쫓겨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아마도 과거의 혹독했던 경험과 기억, 그리고 100포인트의 정신력 덕분이겠지.
“그래, 무슨 일이니?”
신지아는 상냥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이전 삶에서 자신을 걱정해 주고 챙겨 주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마 가문에서 어머니를 제외하고 상냥하게 대해 준 사람은 신지아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67번째 게티아, 가시공 암두시아스의 손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꼬챙이에 찔린 채 천천히 고통스럽게.
그녀뿐만이 아니라 신유현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문의 사람들까지도.
아버지를 비롯한 가문의 주력이 집을 비운 사이, 가시공 암두시아스의 기습에 허무하게 당한 것이다.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 않는다.’
신유현은 눈앞에서 웃고 있는 신지아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이제 자신이 저 미소를 지키겠다고.
“누나한테 볼일이 좀 있어서.”
“나한테?”
신유현의 말에 신지아는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렸다.
“검을 하나 줬으면 해.”
“검…… 말이니?”
순간 신유현의 말에 신지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검을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이 인정한 초인에게만 검을 넘겨주거나 선물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신유현에게 검을 주지 않았다.
“유현아, 누나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신지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이전 삶에서는 저런 말을 하는 신지아의 마음을 몰랐다. 다른 직계들처럼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자신이 걱정되어 한 말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신유현이 위험한 검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안전하고 평화로운 길을 가길 바랐던 것이다.
“누나가 걱정해 주는 건 나도 이제 알아. 하지만 나도 물러날 수 없어.”
신유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게티아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검의 길을 걸어야 하니 말이다.
“너…….”
그런 신유현의 단호한 모습에 신지아는 동생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 또한 숙부인 신성현과 마찬가지로 항상 주눅이 들어 있는 신유현의 모습을 보아 왔다.
그런데 지금 신유현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어떻게 보면 남자다워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
“그리고 검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말이야.”
신유현은 자신의 검을 꺼내 신지아에게 보여 주었다.
“뭐가 문제니?”
신지아는 검을 받아 들며 손잡이를 빼냈다.
그 순간.
파스스슥.
신지아는 흠칫 놀란 고양이 같은 눈으로 신유현의 검을 바라봤다.
검집 안에서 산산조각이 난 검날이 가루와 함께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신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검날이 이렇게 부서진단 말인가?
“알고 싶어?”
신유현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신지아를 바라봤다.
“너, 설마?”
신유현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본 신지아는 문득 깨달았다.
신유현이 기력 개방을 했다는 사실을.
그 생각에 쐐기를 박듯이 신유현은 차크라에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우웅.
이윽고 신유현의 몸에서 마나가 강렬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대체 언제 기력 개방을…….”
“어제 했어.”
“어제 했다고?”
신유현의 대답에 신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신유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검술에는 재능이 있지만 마나에는 재능이 없는 불쌍한 동생.
그래서 기력 개방을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먼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거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어제 기력 개방을 했다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유현에게서 느껴지는 마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일반 2성 초인들과 비교해서 더 방대하게 느껴졌으니까.
“대체 어떻게 마나를 숨기고 있었던 거니?”
신지아는 궁금한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어느 정도라면 마나를 갈무리해서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2성 검사가 기력 개방을 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마나를 숨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더 높은 등급의 초인 앞에서는 더더욱.
“미안하지만 비밀이야. 아무리 둘째 누나라고 해도 말해 줄 수 없지.”
신유현이 웃으며 답했다.
신지아에게서 마나를 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차크라 연공법과 마리아에게 배운 마나 제어법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초인들이 어느 정도 힘을 숨기고 다니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힘의 원천이 드러남으로써 약점도 함께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새로 얻은 힘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변명거리가 되어 주었다.
“너도 역시 우리 가문의 인간이구나”
신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형제자매들도 자신들이 가진 힘의 비밀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건 신지아 자신도 마찬가지.
또한, 파천검가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천부적인 재능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동생이 그 재능을 꽃피운 것일 터.
“아무튼 2성 초인이 된 걸 축하해.”
이유야 어찌 되었든 신유현은 기력 개방을 하고 2성 초인이 되었다.
신지아는 지금까지 신유현이 얼마나 기력 개방을 하고 싶어 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축하해 주었다.
검의 길을 걷기로 한 신유현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고마워. 그럼 축하 선물로 검을 하나 줬으면 좋겠는데.”
“좋아. 매직 등급까지 누나가 힘써 볼게.”
매직 등급?
신지아의 대답에 신유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검뿐만이 아니라 매직 등급의 장비는 보통 2성이나 3성 초인들이 주력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신유현이 노리는 등급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왕이면 레어 등급이 좋은데.”
“이제 2성 초인이 된 지 하루밖에 안 됐으면서 레어 등급을 받고 싶다고? 우리 유현이가 꿈이 크구나.”
신지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신유현에게 상냥하다고 해도 검에 관해서라면 양보할 수 없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물며 이제 막 기력 개방을 하고 2성 초인이 된 신유현에게는 매직 등급을 주는 것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레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신유현은 자신의 예전 장검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신지아가 궁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박살이 났니?”
지금까지 수많은 검들을 봐 왔지만 이렇게 망가진 검은 처음이었다.
산산조각이 난 칼날 중 일부는 마치 푸석푸석한 잿가루 같았다.
신유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신지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궁금하면……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