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4화
“숙부님이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철진이와 내기를 했다고?”
“네. 그걸 물어보러 오신 겁니까?”
“네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해서 와 봤다.”
“오랜만에 검술 수련 좀 하고 있었습니다.”
신유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자 신성현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듣자 하니 혼자서 2성 보스를 잡겠다고 했다던데?”
“네.”
“정말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기를 걸었다는 말이냐?”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죠.”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신성현을 향해 신유현은 웃어 보였다.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신성현은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알고 있는 조카는 지금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항상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남의 눈치나 살피던 아이였다.
그래서 신철진과 내기를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재능도, 실력도 없는 조카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가문에서 나갈 명분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군.”
“네?”
“아무것도 아니다.”
신유현의 반문에 신성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신유현이 신철진과 불가능한 내기를 하고 가문을 나갈 생각인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외 연무장에서 땀을 흘리며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신유현을 보고 나니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이전처럼 남의 눈치나 보며 주눅 들어 있는 눈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네가 2성 보스를 잡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생각해 둔 방법이 있느냐?”
“죄송하지만 그건 말해 드릴 수 없죠.”
“생각해 둔 수가 있기는 있나 보구나.”
“…….”
신성현의 말에 신유현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사무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도, 불사왕에 대한 것도 말해 줄 수 없지.’
지금 당장 신유현이 손에 쥐고 있는 무기는 두 가지였다.
바로 미래에 대한 정보와 불사왕의 권능.
덕분에 신유현은 이번에 공략해야 할 2성 던전에서 어떤 마수가 등장하는지,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알겠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군. 이번 일에서 내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보거라.”
“절 도와줄 생각이십니까?”
“조카가 도와 달라고 하면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
신성현은 한없이 호의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신유현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삼촌이 조카를 귀엽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미쳤나? 도움을 받게.’
파천검가의 인간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움을 준다고?
그것도 가주의 오른팔이자 파천검가를 수호하는 대호법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무(武)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파천검가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당장 파천검가의 가훈만 해도 ‘강자독존(强者獨存)’이었으니까.
이 세계에서 홀로 서는 자가 강하다는 의미였다.
그 때문에 대부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걸 미덕으로 삼고 있으며, 도움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혼자서도 충분하니까요.”
신유현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전 삶의 자신이었다면 좋다고 신성현에게 도움을 받았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가문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신성현의 도움이 독주(毒酒)라는 사실을.
“크하하핫!”
순간 신성현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우리 가문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역시나.’
그 말에 신유현은 안도와 함께 소름이 돋았다.
방금 전, 신성현이 자신을 시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런 약조도 없이 신성현의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후에 불합리한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이번 일은 가주가 직접 내린 지명 의뢰인 데다가 신성현은 파천검가의 대호법이자 검왕의 오른팔이었으니까.
“그 대신.”
신유현은 도전적인 눈빛으로 신성현을 바라봤다.
“도움이 아니라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이라고?”
신성현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도움을 거절하고 어떤 부탁을 하려는 것일까?
“제가 혼자서 2성 보스를 잡는다면 숙부님이 제 뒤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뭐라?”
신성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뒤를 봐 달라는 신유현의 말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대가 없이 도움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선을 넘는 일이었다.
지금 신유현은 신성현에게 자신의 후견인이 되어 달라 말하는 것이니까.
그것도 파천검가 후계자 쟁탈전의.
“오만하구나. 감히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의를 보이던 신성현에게서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신유현은 당당했다.
“숙부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차피 전 2성 보스를 잡지 못한다면 가문에서 호적이 파입니다. 그 정도면 대가로써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랬다.
신유현은 2성 보스를 잡지 못하면 가문에서 제명당한다.
그래서 질러 본 것이다.
성공하면 신철진에게 파천신단을 뜯어내고, 가문의 대호법에게 후견도 받고 일석이조였으니까.
물론 실패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크하하하핫!”
신유현의 거침없는 말에 신성현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신성현 또한 철혈 같은 파천검가의 핏줄을 잇는 인물.
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는 데다가 성격도 유약한 신유현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자신에게 후견인이 되어 달라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범의 자식은 범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니.’
설마 저 유약해 보이고 가문의 쓰레기라고 불리던 신유현이 파천검가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있었을 줄이야.
그 사실이 신성현은 더없이 유쾌했다.
신유현의 행동은 스스로 파천검가의 핏줄임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좋다. 네가 정말 2성 보스를 아무 도움 없이 잡는다면 뒤를 못 봐줄 것도 없지. 생각해 보마.”
소문대로 가문의 쓰레기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자신을 숨기고 있었던 건지.
신유현이 혼자서 2성 보스를 잡느냐, 못 잡느냐로 판가름이 날 터였다.
“감사합니다.”
신유현은 고개를 숙이며 아무도 모르게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파천검가의 2인자인 신성현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했고, 그는 받아 주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숙부님이 뒤를 봐준다면 가문 내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지.’
그렇게 된다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형들이라고 해도 섣불리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신성현은 가문의 2인자이니까.
남은 건 2성 보스를 혼자서 잡는 것뿐.
* * *
숙부인 신성현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도 신유현은 검술 초식 훈련을 계속해 나갔다.
‘무영검법은 정말 오랜만에 훈련하는군.’
파천검가의 검법은 다양하다.
문하생들이 처음 배우는 기본 검법인 무영검법.
사대수호검전에 들어가면 배울 수 있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검법.
거기에 가문의 직계들만이 배울 수 있는 파천검법까지.
그 외에도 아류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검법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검술의 신동이라 불린 신유현은 파천검가에 존재하는 다양한 검법들을 배우고 연구했다.
단지, 마나의 재능이 없어서 기력 개방을 하지 못했을 뿐.
‘감을 되찾으려면 역시 직접 움직여야지.’
현무전의 야외 연무장에서 신유현은 파천검가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무영검법을 천천히 펼쳤다.
베고, 막고, 휘두르고, 찌르고.
간단한 초식밖에 없지만 기본에 충실한 검술의 묘리를 배울 수 있는 검법이었다.
덕분에 사대수호검법이나 그에 준하는 상승검법을 배우는 데 밑바탕이 된다.
하지만 지금 무영검법의 초식을 하나하나 펼치는 신유현의 움직임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역시 위화감이 좀 있네.’
자신의 생각대로 몸이 잘 따라오지 않았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동작보다 무영검법의 초식을 펼쳐 보니 괴리감이 훨씬 더 잘 느껴졌다.
비록 그 차이가 크진 않았지만 전투에서는 0.1초 차이로 승패가 갈릴 수도 있기에, 별거 아닌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 때문에 신유현은 천천히 무영검법의 초식을 펼치며 괴리감을 조금씩 줄여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야외 연무장에는 어둠이 짙게 내리고 하늘에는 하얀 달이 걸렸다.
야외 연무장에서 훈련을 하던 현무전 검사들조차 없었다.
“허억허억.”
하지만 신유현은 하얀 달빛 아래에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서 훈련에 매진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신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어느덧 쉬지 않고 무영검법의 초식을 펼친 지도 999번.
중간에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뱀처럼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게티아 놈들에 대한 복수심과 100포인트나 되는 정신력 덕분에.
그리고 지금 이 정도 훈련을 하지 못한다면 일주일 뒤에 2성 던전 보스를 혼자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지금 신유현이 펼치고 있는 무영검법의 초식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처음 초식을 펼쳤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
그렇게 1000번째 초식을 펼쳤을 때.
[강인한 정신력은 육체를 지배합니다. 당신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한계를 넘어서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한계를 넘는 훈련으로 근력이 1 증가합니다.]
[한계를 넘는 훈련으로 민첩이 1 증가합니다.]
[한계를 넘는 훈련으로 체력이 1 증가합니다.]
‘어?’
예상치 못한 시스템 메시지에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이어 짜릿한 느낌이 등을 타고 흘렀다.
능력치가 상승했을 때의 감각이었다.
‘능력치가 올랐다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신유현은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큰 수확이었다.
오늘 하루 훈련을 빡세게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감각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능력치가 오를 줄이야.
‘대박이네.’
능력치를 올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같은 훈련을 며칠은 해야 겨우 능력치 포인트 하나를 올릴 수 있을까 말까였다.
그리고 능력치를 1포인트 상승시킬 때마다 대략 20퍼센트씩 강해진다.
그런데 하루 만에 능력치가 3개나 오른 것이다.
‘정신력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네.’
지금의 몸으로 이렇게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최대치에 달하는 정신력 스탯 덕분이었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해내진 못했을 터였다.
‘덕분에 좀 더 빨리 강해질 수 있겠군.’
그 사실에 신유현은 하얀 달빛 아래에서 눈을 빛냈다.
* * *
어느덧 훈련을 시작하고 사흘째가 되던 날.
[차크라 수치가 41이 되었습니다. 1문 차크라 물라다라를 개방합니다!]
[불사왕의 가호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불사왕의 가호(SSS)가 발동합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