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3화
“뭐야?”
그 말에 신철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신유현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의뢰 완수 기간은 일주일 뒤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신유현의 말에 신철진은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말대로 지명 의뢰 완수 기간은 일주일 뒤까지였다.
하지만 이전 삶에서 그걸 몰랐던 신유현은 다그치듯 소리치는 신철진의 엄포에 그날 바로 던전에 갔었다.
“……좋아. 그럼 일주일 시간을 주마.”
결국 신철진은 생색내듯이 말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속으로 웃었다.
‘일주일이면 충분해.’
아직 현재의 몸에 적응이 덜 되어 있는 상황.
회귀 전의 육체와 비교하면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지금의 몸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건 알고 있겠지? 던전 공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가문에서 쫓겨날 거다.”
신철진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신유현 또한 마주 웃어 보였다.
확실히 이전 삶에서는 마지막 기회를 잡지 못하고 실패했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다르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이 있으니까.
“흥, 1성 따위가 허세는. 내가 네놈 나이 때는 이미 4성 검사였다. 2성 던전 따위는 나 혼자서 쓸고 다녔지. 그런데 넌 뭐냐?”
신철진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내려다봤다.
그 말에 신유현은 속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자신이 신철진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바르바토스를 상대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뭐, 이제는 상관없지. 재능보다 더 좋은 걸 얻었으니.’
무려 과거로 돌아와 두 번째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라 불사왕의 힘을 계승받기까지 했다.
재능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유현은 슬슬 신철진을 뜯어먹기 위한 밑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럼 나랑 내기 하나 하든가.”
“내기?”
“만약 내가 내기에서 지면 가문을 나갈게.”
“뭐? 가문을 나가겠다고?”
신철진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무슨 속셈이지?’
조금 전 가문에서 쫓겨날 거라는 말은 단지 겁을 주기 위한 협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설마 자기 발로 가문을 나가겠다고 할 줄이야.
“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말하는 거냐?”
“어.”
가문을 나가겠다는 말은 파천검가와 완전히 연을 끊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내가 가진 지분을 형한테 넘길게.”
“후계자 지분을?”
신철진은 놀란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파천검가의 직계들은 각자 자신이 지닌 지분을 활용해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었다.
가문에서 무시받는 신유현이지만, 그 또한 엄연히 직계이기에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내 지분을 형이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봐.”
“흠.”
신철진은 생각에 잠겼다.
신유현의 지분을 자신이 가지게 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후계자 경쟁에서 상당히 유리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었다.
“그럼 네놈이 원하는 건?”
“파천신단.”
“…….”
이어진 신유현의 말에 신철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파천신단.
마나와 기력을 대폭 늘려 주는 내단으로, 가문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만 하사받을 수 있는 보물이었다.
만약 신유현이 파천신단을 얻게 되면 차크라를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터.
다만, 파천신단은 엄청난 효능만큼이나 희소했고, 가주에게 인정받을 만한 공로를 세운 이들에게만 제공됐다.
신철진 또한 몇 년간 쌓아 올린 공을 인정받아 최근에서야 파천신단 하나를 겨우 하사받았을 뿐이었다.
신유현은 지금 그 귀중한 파천신단을 뜯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식이 진짜 미쳤나! 지금 나보고 파천신단을 내기로 걸라고?”
신철진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신유현을 노려봤다.
하지만 신유현은 당당했다.
“왜? 나는 던전 공략에 실패하면 가문을 나가야 하잖아? 형도 그 정도 패는 걸어야 수지 타산이 맞지. 쫄리면 뒈지시든가.”
“지금 어디서 약을 팔아? 던전 공략을 네놈 혼자서 하냐?”
‘역시 안 걸리나.’
아픈 곳을 찔러 오는 신철진의 말에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일부러 ‘던전 공략에 실패하면’이라는 말로 도발을 걸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파천검가의 직계답게 쉽사리 걸려들진 않았다.
“당연히 아니지.”
하지만 신유현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신철진의 말대로 던전 공략은 가문의 사람들이 함께 나서서 한다.
이전 삶에서 2성 던전을 공략한 것도 신유현과 함께 간 2성 검사들이었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4성 검사가 교관으로 붙어 가기 때문이다.
하급 검사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파천검가에서 던전을 공략하지 못했다는 불명예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내기는 나 혼자 2성 던전 보스를 잡는 걸로 할게.”
“뭐?”
그 말에 신철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얼굴이 풀렸다.
“진짜냐? 정말 너 혼자 2성 던전 보스를 잡는 걸 조건으로 걸겠다고?”
“어. 못 믿겠으면 계약서를 써도 돼.”
신유현의 대답에 신철진은 희희낙락했다. 2성 던전 보스는 최소 2성급 검사가 세 명은 붙어야 잡을 수 있으니까.
그에 반해 신유현은 아직 기력 개방도 하지 못한 무능한 쓰레기였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혼자서 2성 던전 보스를 잡는단 말인가?
‘포기했나 보군.’
신철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 신유현에게 내기 조건은 불리했고 리스크도 컸다.
내기에 실패하면 후계자 지분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가문에서 쫓겨나니까.
하지만.
‘지금 이 정도도 하지 못하면 5년 뒤 게티아들에게는 손도 못 쓸 테니.’
확실히 신철진의 생각대로 지금 신유현의 몸 상태로는 2성 보스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신유현에게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일주일 안에 2성 보스를 잡을 수 없다면, 5년 뒤에 나타날 게티아들에게는 손도 쓰지 못할 것이다.
이전 삶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들을 다시 경험하게 될 테지.
그렇기에 신유현은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악착같이 훈련해서 강해질 생각이었다. 2성 보스 따위는 씹어 먹을 정도로.
“오냐, 내기를 받아 주마.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라.”
“형이야말로.”
신철진과 신유현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서로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은 채.
* * *
신철진과 내기 계약서까지 쓴 신유현은 중앙 본가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중앙 본가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대지 면적이 150평 정도 되는 별관이었다.
‘다시 어머니를 볼 수 있다니.’
별관으로 가는 내내 신유현은 가슴이 뛰었다.
마음 같아서는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어머니를 보러 가고 싶었지만, 가문의 지명 의뢰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지명 의뢰는 파천검가의 절대자인 아버지의 명령이니까.
딩동!
어느덧 대문 앞에 도착한 신유현은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인터폰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가문 내에서 항상 자신의 편을 들어 주었던 어머니, 게티아 놈들에게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처참히 살해당했던 어머니…….
꼬챙이에 꿰뚫려 죽어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게티아 놈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제 두 번 다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줄이야.
신유현은 애써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저예요.”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며 중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어머니였다.
“아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어머니는 활짝 밝은 미소를 지으며 신유현을 향해 다가왔다.
“어머니 보러 왔죠.”
신유현은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과거의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오른쪽 어깨 앞으로 긴 머리카락을 땋아 내리고, 온화한 표정으로 웃고 계시는 어머니.
4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3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이었다.
“무슨 일이니?”
어머니는 가늘게 뜬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별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오랜만에 점심이나 같이 먹으려고 왔어요.”
적당히 말을 둘러댄 신유현은 대문을 열어 주며 자신을 맞이해 준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상큼한 꽃향기와 따스한 품속.
그제야 신유현은 실감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이번에는 반드시 지킨다.’
이전 삶에서는 어머니를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다.
미래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불사왕의 능력을 계승받았으니까.
그렇기에 다시 한번 다짐했다.
게티아 놈들에게 당한 만큼 반드시 돌려주겠노라고.
그래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테니.
“아니, 얘가 오늘 왜 이래?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말은 그렇게 해도 미소를 지으며 신유현의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였다.
그렇게 신유현은 수년 만에 다시 만난 어머니와 함께 점심시간을 보냈다.
* * *
어머니와 시간을 보낸 후, 신유현은 현무전으로 돌아왔다.
현무전은 현재 신유현이 소속되어 있는 사방 수호 검대였다.
사방 수호 검대는 직계들이 이끌고 있었고 신유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신유현은 기력 개방도 하지 못한 무능한 존재였기에 현무전의 검사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다.
그 때문에 현무전의 모든 업무는 부전주를 비롯한 간부들이 담당했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줄이야.’
신유현은 현무전 건물 앞 야외 연무장에서 감회에 찬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현무전에는 신유현이 거주하는 개인 방이 있으며, 수련장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야외 연무장은 실내 수련장보다 몇 배는 더 넓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둘러보는데 연무장에서 현무대 검사들과 문하생들이 검술 수련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과거와 같구나.’
신유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야외 연무장에 있는 현무대 검사들 중에서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형들이었으면 수련을 하다 말고 당장 인사를 하러 왔을 테지.
‘천천히 바꾸면 돼.’
신유현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2성 던전 보스를 혼자서 잡는다면 그들의 시선은 달라질 테니까.
실력과 실적을 보이면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우선 파천신단부터 뜯는다.’
그러기 위해 신철진을 상대로 내기를 걸었다.
파천신단을 얻어 낼 수 있다면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드넓은 야외 연무장 한쪽 끝에서 신유현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과거로 돌아온 후,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의 감각이 맞지 않았다.
‘일단 감부터 찾자.’
현재 신유현의 신체 능력은 고작해야 1성 수준.
회귀 전과 비교하면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장 오늘부터 신체 감각을 되찾고 2성 보스를 잡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신유현이 초식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넌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신유현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유성검(流星劍), 신성현.
헌터 협회 공인의 A급 헌터이자, 가문에서 손꼽히는 6성급 초절정 검사.
그리고 신유현의 숙부였다.
‘이 양반이 왜 여기에?’
신유현은 놀란 표정으로 숙부를 바라봤다. 이전 삶에서는 지금 이 시기에 숙부인 신성현이 자신을 찾아온 적이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