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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41화 (완결) (241/241)

00241  끝  =========================================================================

불릿의 질끈 감겼던 눈이 다시금 뜨였을 땐 아스타로트가 그 미모를 잃고 바닥에 처박혀 가슴이 짜부라지고 있었다.

“케에엑!”

팔다리를 퍼덕이며 매끈한 등을 꿰뚫은 빛의 창을 붙잡으려 했으나 그곳에 살이 닿을 때마다 살이 불탔다.

“키엑, 키야아악!!”

“이게 무슨….”

너무도 충격적인 광경이라 불릿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했으나 연륜과 경험이 있기에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주변을 훑어보니 정신을 잃었는지 옆으로 누운 채 긴 속눈썹을 드러낸 흙덩이와 돌로 된 제단에 등을 기댄 우락크가 시야에 들어왔다.

‘흙덩이는 이상 없구나.’

제일 먼저 그녀를 확인한 후에야 불릿은 우락크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불릿은 바닥에서 허우적대며 빛의 창에 타들어가는 아스타로트를 피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락크도 불릿의 움직임에 눈동자가 움직였으나 몸은 제단에 기댄 채 별다른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불릿은 자신이 그녀에게 맞춰주려고 한쪽 무릎을 꿇어서 조심스레 우락크를 품에 안아주었다.

스윽…

“괜찮소?”

“…하하, 내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다니, 남편에게 미안하군.”

“농담도 할 수 있으면서 왜 안 했던 것이오.”

“내 나이가 몇인데 한참이나 어린 연하에게 농지거리를 하겠나?”

이런 상황에서야 마음을 여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불릿은 울컥했다.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지 않느냐.”

“…당신이 어떻게든 했겠지.”

“가이아에게 모든 것을 들었구나.”

“…….”

꾸욱-.

입술을 깨물며 그녀를 더욱 껴안는 불릿의 손길에 우락크는 아틱 커맨더가 사랑했던 바람의 대리자의 차가운 인상이 아닌, 인간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의 표정을 지어주었다.

“무엇이 그리도 슬프더냐.”

“이리 될 줄 알았다면 맛있는 거라도 먹일걸 그랬소.”

“껄껄껄! 본좌가 돼지라도 되는 줄 아는가 보구나!”

기운이 없음에도 호탕하게 웃던 우락크는 이내 나긋하게 읊조리며 불릿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여신의 아이와 이곳을 빠져나가렴.”

“왜 이리 약한 모습을 보이고 그러시오.”

추억이 깃든 마을을 스스로 불태울 때조차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우락크가 불릿의 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왠지 너에겐 예뻤던 모습만 기억시켜주고 싶구나.”

“그럼 평소에 좀 많이 웃지 그랬소.”

“하하, 수천 년간 웃을 일이 없어서 그랬다.”

자식들이라고 해도 그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깍듯이 굴었다.

그들이 신격을 얻은 것도 영겁의 세월을 감당할 각오를 다짐하고서 행했던 일이니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대했었기에 그렇다.

그런 자식들에게 어머니라고 하여 무슨 자격이 있다고 함부로 대하겠는가?

그래서 그녀의 시간은 그때 이후로 정체되어 있었다.

그것이 죽음에 다다른 지금에서야 다시금 흘러갔다.

키아악!

불릿의 뒤편에서 바동거리는 아스타로트가 느껴지자 우락크는 웃음기를 지우고 불릿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아스타로트는 일시적으로 행동을 저지했을 뿐이다.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이곳에서 떠나주려무나.”

그리고 자신이 떠나면 그녀가 어찌될지 알고 있었기에 불릿은 쉬이 우락크의 등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가 망설이는 것이 눈에 보이자 우락크는 그녀답지 않은 연약한 힘으로 불릿을 밀쳤다.

툭.

모든 기운을 아스타로트를 봉쇄하고 있는 빛의 창에 쏟아 부었기에 우락크는 너무도 연약했지만 불릿은 그녀의 손길에 따라 순순히 손을 떼었다.

“가라, 가서 너의 삶을 살거라. 신에게 구애받지 않고, 악마에게도 고통받지 않는 평범한 삶을….”

자신이 살지 못했던, 끝이 보이는 열정적인 삶. 끝이 없는 삶은 너무도 지루하고 괴로웠다.

신끼리의 사랑은 금세 식어버리고, 필멸자와의 사랑은 언제나 자신이 불행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감수하고 오크와의 사랑을 강행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자식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면서 한곳에 갇혀 억지로 문지기의 역할을 이어가던 나날.

그녀에게 있어 수천, 수만 년간의 존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토록 바라던 평범함을 겪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상에 강림한 마왕과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내 여정의 끝이다. 제발 방해하지 말아다오.”

“다른 방법은 없소?”

“가이아의 아이와 행복한 삶을 살거라. 이 몸에게 있어 그 이상의 여한은 없다.”

“정말…….”

“키악! 끼아아아악!”

쿠구구구-

결박된 아스타로트 때문에 지하 곳곳에서 흔들림이 느껴지자 우락크는 더 이상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자 불릿은 경건한 마음으로 물음에 대꾸했고, 그녀는 피식 웃으며 무릎 꿇은 불릿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라, 아, 루이우 랴샤 탈라스.(남자와 여자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처음으로 알아들은 신족의 언어, 이것은 우락크가 자신의 애검에 숨겨왔던 마지막 신력으로 불릿에게 의미를 전달한 것이다.

그 검이 어디 있냐고 한다면 아스타로트의 등에 꽂혀서 형형한 빛을 뿌리는 빛의 창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빨리 빠져나가라, 저 아이와 이곳에 묻히고 싶지 않으면.”

“…….”

흙덩이를 언급하자 불릿도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문 채로 굽혔던 다리를 세웠다.

그런 후에 두 팔로 번쩍 흙덩이를 들어서 공주님안기로 단단히 껴안고선 앞으로 걸어나갔다.

탁, 탁, 탁-

탁.

달리다말고 멈춰선 불릿.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힘없이 손짓을 하며 어서 나가보라는 우락크를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담고서 이를 악물고 달려나갔다.

“행복하겠습니다!”

쿠궁-

쿠궁-

그가 사라지자 아스타로트를 중심으로 지하 전역의 떨림이 심해졌고, 우락크는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해함을 떠올리고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비틀-, 비틀-.

전성기 때의 신력을 해방시킨 부작용으로 그녀의 내부는 갈가리 찢겨있었다.

혹여 불릿이 걱정하며 떠나지 못할까봐 애써 참았으나 그가 떠나자 삼켜왔던 피와 장기들이 입을 통해 모조리 쏟아졌다.

“우웨엑! 쿠엑, 컥!”

촤아악-!

“키아악! 이 썅년이! 죽여버리겠어어어!!!”

짙은 피의 향에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고대의 제물의식, 붉은 비가 반응하자 아스타로트도 고통으로부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우락크는 기어코 아스타로트를 바닥에 고정시킨 빛의 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후후, 본좌 덕분에 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히 여기거라.”

“싫어! 싫다고! 죽으려면 네년이나 죽어어어!!”

신들에 비해 마족들, 그 중에서도 72악마군주는 서열의 변동은 있어도 이름이 잊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빛의 창이 등에서 빠지는 속도는 너무도 느렸고, 빛의 창에 힘을 봉쇄당하고 있는 상황에선 곧 쓰러질 것 같은 우락크조차 이기지 못했다.

“강림하려면 좀 더 일찍 나오지 그럴걸 그랬어?”

“캬아악!”

드드드드득-

후두둑…

대 마법진 붉은 비의 발동이 가까워졌는지 떨림이 더욱 심해지자 우락크는 찬란히 빛나는 창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왜 그런 착한 아이들을 만나게 해서 나를 이토록 힘들게 만들어….”

셰실리코프는 자신을 경계했으나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주군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나중엔 그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벤젼스는 겉으론 위엄을 보이려 했으나 은근히 허당끼가 있었고, 크레파토스가 병대를 지휘하는 모습과 주름과 덥수룩한 수염은 옛 남편인 오크족의 대전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인간답지 않게 귀엽고 착한 아이들은 많았고, 오크를 죽이면서도 자신의 눈치를 보는 불릿이 참으로 기특해 보였다.

아까 전에도 떠나기 어려워하는 것을 가이아 여신의 아이를 들볶으며 억지로 등을 떠밀고서야 지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루나…….”

그 아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챘기에 우락크는 생기를 폭파시키는 짓을 못하게 하려고 이번 여정에 따라오지 못하도록 불릿을 설득했다.

루나가 건네주었던 커피의 향이 지금 이 순간도 그녀는 콧속에 맴도는 것 같았다.

“키악! 키아악! 빠지란 말이다, 빌어 처먹을!”

기괴한 각도로 꺾이는 팔로 빛의 창을 붙잡아도 들려오는 것은 창이 빠지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손이 신력에 불타는 소음뿐이었다.

치이익-

“이제 끝이다.”

덥석.

우락크가 빛의 창을 양손으로 붙잡자 심한 공명음을 내더니 애검의 형상이 언뜻 드러났다.

그녀의 눈은 스르륵 감기고 있었으나 입가엔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나도 곧 갈게.’

한때 신이었던, 신격을 잃은 후엔 영원을 살며 문지기의 역할을 떠맡았던 오크의 조상이자 어머니, 우락크가 자신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번쩍!

* * *

대앵-

대앵-, 대앵-

바람도 시원하고 햇살도 따스한 5월의 어느 날, 불릿은 평소에도 안 하던 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갑옷보다는 편할 터인 턱시도가 왜 이리도 목을 죄는지, 분명 날씨는 선선한데 땀은 왜 흐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자신을 축하해고자 모인 사람들도 부담스러울 따름이었으니, 이게 진정 바포 변경백을 22년간이나 다스리고 있는 대영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후우, 넥타이를 떼어버리고 싶군.”

남성의 복장은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스타일이 적었지만, 불릿은 검정색과 흰색의 사이에서 심각히 고민하다가 결국 흰색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흰색은 너무 촌스러운 것은 아닐까, 신부보다 더 눈에 띄면 어쩌나 다시금 고민이 되어 아예 갈아입을까 뒤돌아섰다.

“그러시면 안 돼요, 도련님.”

“…안나, 아직도 도련님이라 부르는 건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는 여전히 도련님은 도련님이랍니다?”

안나는 불릿의 의복은 자신이 직접 손보고 싶다하여 다른 하녀들은 모조리 물린 채 그의 복장을 점검해주고 있었다.

지금도 짓궂은 말을 건네고 있지만 눈빛만은 신중하게 흠이 없는지를 연신 둘러보는 상태.

“음, 완벽해! 역시 우리 도련님은 너무 멋지세요, 아잉-.”

“…못 말리겠군.”

“자, 자. 어서 가자구요? 신부를 기다리게 하는 신랑이라니, 정말 우리 도련님은.”

괜히 콧바람을 내뱉으며 우쭐한 기색을 보이니 불릿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저기 오시네요.”

“어휴, 늦어늦어!”

“불릿! 여기야, 여기!”

미녀삼총사가 식장에서 불릿을 기다리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흙덩이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것도 잊었는지 폴짝폴짝 뛰며 가까워지는 불릿을 반겼다.

그녀는 짧은 스커트 타입의 웨딩드레스를 입어서 마찬가지로 백색팬티가 보여졌기에 올리비아가 이를 급히 말렸다.

“이 바보가! 꼭 이런 날까지 그래야겠어?!”

“피, 올리비아는 바보.”

“쉿, 애가 놀라겠어요.”

“아차.”

“흙덩이 안 시끄러워, 흡.”

유실리아가 배를 문지르며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자 올리비아와 흙덩이는 손바닥으로 입을 막으며 조용히 했다.

문득 유실리아의 아래로 시선이 내려가니 살짝 볼록해진 그녀의 복부를 볼 수 있었다.

다른 곳은 다 날씬하고, 기사이기까지 한 유실리아가 비만일 리는 없었으니 아마 이것은….

“미안하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군.”

“아기가 힘들다고 아빠를 혼내겠어요, 떼찌떼찌.”

“하하, 미안하다!”

“미안하면 됐어요.”

유실리아는 불릿의 품에 안기며 그의 귓가에 작게 소곤거렸다.

“여보.”

쪽.

그 말과 동시에 볼에다 키스를 하자 불릿도 그녀의 볼에 키스를 해주었다.

이런 둘의 애정행각에 올리비아와 흙덩이는 안달이 났다.

“아앗, 나도 해줘!”

“나도 유실리아랑(?) 할래!”

“헉, 자, 작은아씨, 여자끼리는 하는 거 아니에요!”

어느덧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예식장을 보며 투툰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젊어졌더니 체면도 버렸군.”

“그래도 보기 좋지 않습니까?”

“저희도 어서 아기가 생겨야할 텐데요. 아버님도 손주가 보고 싶으시죠?”

“크흠! 난 모른다!”

손을 잡은 상태로 후작의 독백에 대꾸하는 셰실리코프와 5공녀 션샤인 폰 투툰.

의자에 착석한 상태인 그들을 비롯해 주변엔 온통 하객들로 가득해 백작부부의 탄생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끝까지 못 말리신다니까, 도련님은.”

“아아, 저도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네요.”

“욘석아, 너 좋다는 남자들 다 뿌리치면서 뭐라는 거야?”

“헤헷.”

루나와 안나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잡담을 나누다가 안나의 중얼거림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제 도련님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겠네.”

불릿 폰 바포 백작 진(眞), 오늘이 바로 드디어 그의 바포 변경백이 후계문제로 골머리를 쌓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휘우웅-

한줄기 바람이 예식장을 빙 돌며 가이아 여신상과 나무그늘 아래에 놓인 우락크의 초상화를 스쳐지나갔다.

========== 작품 후기 ==========

지금까지 귀환정령사를 구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차기작으로 현재 '헌팅정령사'가 연재 중이오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일하는 핫산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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