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0 마지막 =========================================================================
쾅쾅쾅쾅쾅쾅쾅!
“$#%$#%%@^&!!”
“*$%^$%^? ^$%^…, ^%&!!!”
아스타로트는 불릿의 눈엔 보이지도 않는 검격을 동체시력으로 따라잡은 것인지 인형처럼 서서 남성기만 움찔거리는 아틱 커맨더를 옆으로 집어던지고서 자신도 마기를 폭발시켰다.
뭔지도 모를 언어, 아마도 신어가 아닐까 생각되는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흐릿한 잔상과 충돌에 의해 발생되는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후우웅-
“으윽….”
먼지바람이 휘날리자 불릿은 흙덩이를 감싸 안고서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틀었다.
그리고 자신만 실눈을 뜨고선 둘의 격전을 보기 위해 애를 썼다.
‘보이지도 않는군.’
왜 가이아 여신이 우락크가 필요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속도를 전혀 따라잡을 수가 없다. 흙덩이의 정령술이 위력적이라고 해도 이러한 지하에서 함부로 사용했다간 모두가 매몰될 것이고, 과연 잔상만 남기고 있는 아스타로트를 맞출 수나 있을까 의심이 되었다.
이는 불릿이 상급 마족이라곤 힘을 숭상하는 불의 마족, 탄타로스밖에 본 적이 없기에 그런 것이다.
악마의 심장은 중급 마족과 동등한 위험개체였지만 마족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으으, 으….”
“오빠! 우리 어떡해?”
공황상태에 빠졌던 흙덩이는 한쪽 구석에 처박힌 아틱 커맨더의 신음소리를 듣고 불릿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옛 동료를 만나보자꾸나.”
“친구야?”
“……그래, 친구다.”
예전엔 차마 친구라고 부르지 못한 동료를 향해 불릿은 언제든지 아스타로트에게 일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서 아틱 커맨더에게 다가갔다.
“으으, 으으으….”
“사령관, 정신이 드는가?”
“으으으….”
불릿이 물음에도 혼탁한 눈빛에선 생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깨를 흔들어 봐도, 뺨을 살짝 두들겨도 반응이 없자 불릿은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 아저씨는 왜 이래?”
카카카카캉!
푸화악!
“히익!”
둘의 격돌로 인해 다시금 파장이 주변으로 퍼지자 내부가 흔들렸고, 그로 인해 흙덩이는 목을 움츠리며 불릿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그러다 불릿은 그녀를 보고, 그리고 거친 격전으로 인해 가슴을 가린 본디지가 옆으로 비껴진 아스타로트에게서 급히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정신차려라.”
그는 흙덩이에게 하듯이 아틱 커맨더에게 정령력을 불어넣었다.
남의 신체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타인의 피를 억지로 섞으려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틱 커맨더는 벽에 부딪힌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욱 괴로워하며 침을 흘렸다.
“크어억…!”
“뭐, 뭐해? 엄청 아파하잖아?”
“…….”
흙덩이의 물음에 대꾸하지도 않던 불릿은 아틱 커맨더의 입에서 말문이 트이고서 멈추었다.
“그…만…!”
“정신이 좀 드는가?”
“너는 누구냐…쿨럭.”
기침을 뱉는 아틱 커맨더의 안색은 아까보다 더욱 안 좋아져 있었는데, 그럼에도 정신은 돌아온 듯해 상태가 나아진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본인을 보고 누구냐고 묻는다니, 장난도 짓궂군.”
“바포 백작? …아직도 날 괴롭히는 것인가, 아스타로트.”
“괴롭힘을 당한 것치곤 자네 아들은 상당히 기뻐했네만.”
아스타로트가 상징하는 것과 아까의 행위를 보면 평소에 즐거운 괴롭힘(?)을 당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불릿은 난생처음으로 아틱 커맨더가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백작도 봤겠지만 아스타로트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다. 나도 대항하려 했지만, 그저 버티는 수준이더군.”
아틱 커맨더는 흑마법사와의 전쟁에서 6영웅으로 불리던 인물 중 하나였다.
당연히 의지가 약한 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아무리 강하다 해도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런 대단한 인물도 결국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쿨룩쿨룩!”
“자네 괜찮나?”
“허억, 허억…, 괜찮소.”
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커맨더는 아스타로트의 권능에 넘어가 꼭두각시가 되었었는데 불릿의 정령력으로 인해 힘이 상충, 그 충격으로 매혹이 풀리며 심신에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흙덩아, 치료를 해주렴.”
“알았어!”
우우웅-!
흙덩이의 치유능력이 발동됐음에도 커맨더의 상태가 나아지질 않자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힝, 낫질 않아.”
“그만 두시게, 허억, 덕분에 난 순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가.”
불릿은 커맨더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흑마법사와의 전쟁에선 죽었던 동료가 죽음을 거부하고 되살아나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
그리고 자신이 죽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 자들은 거짓된 생명을 이어가며 평소엔 원래대로 삶을 살다가 중요한 순간에 흑마법사에게 조종당하기 일쑤였다.
아마 커맨더의 상태가 그러했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치료도 통하질 않고, 스스로가 저리 말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불릿은 커맨더 또한 소멸되어가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자네까지 떠나가게 생겼군.”
“아쉬워할, 허억, 필요는 없지. 그녀에게서 백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커맨더는 흙덩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 백작의, 소중한 사람이겠지.”
아틱 커맨더는 사대 정령 모두에게 사랑을 받던 자, 그 때문에 대륙에 이상현상이 찾아왔지만 아직도 정령의 기운은 그의 몸에 머물고 있었다.
이에 흙덩이는 아틱 커맨더에게 친근함을 느끼고선 눈물을 글썽였다.
“아저씨, 죽는 거야? 방금 만났는데?”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를 보고 누가 한때 정령이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커맨더는 그런 그녀에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애써 웃어주었다.
“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점점 목소리가 낮아지는 아틱 커맨더에게 불릿은 짧은 작별인사를 건네주었다.
“꽤나 잡혀 살 것 같은데?”
“그 또한 나쁘…지 않지….”
“그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지니.”
“나…허억, 돌아갈지니….”
“대지의 여신이여.”
“대지의…….”
“가이아의 품으로.”
“……그녀의…품으로….”
정령사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때 읊는 마지막 문구에서 커맨더는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이중적인 말을 중얼거리며 잠이 들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
더 이상 그의 가슴팍이 올라오질 않자 그렁그렁했던 눈물을 떨구는 흙덩이, 그리고 불릿도 자신의 허리춤에서 코를 훌쩍이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이들과는 달리 우락크와 아스타로트의 전투는 그야말로 신화속으로 치닫고 있었다.
콰과과과곽!
“호호호! 역시 옛날 같지 않네, 무식하게 힘만 센년아?”
“더러운 창년이!”
“닥쳐!”
촤아악!
창년이란 말에 발끈한 아스타로트가 가로로 길게 쭈욱 무언가를 뽑아내서 날렸다.
그것은 마기 그 자체, 인간들이 자연의 기운인 마나를 모아 마나소드(오러소드), 오러블레이드를 만들어낸다면 마족은 선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것이 있었다.
이것엔 붙여진 이름이 없다. 이유?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굳이 붙이자면 마력(魔力)이 아닐까?
“돌벽!”
드드드득-
흙덩이가 소환한 돌벽이 아스타로트의 횡베기 공격을 수월하게 막아냈다.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마법사의 마력과 마족의 마기를 똑같이 부르냐고, 흙덩이가 어째서 그걸 막아낼 수 있었냐고.
그 이유는 애초에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을 전수해준 것이 악마이기 때문이다.
악마와의 거래조건으로 최초의 마법사는 그들의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악마와의 거래는 항상 끝이 나빴기에 후대엔 그러한 것을 물려주기 싫어서 각고의 노력 끝에 거래를 어기고 독자적으로 개발, 변경하여 제자에게 가르쳤다.
최초의 마법사는 계약을 어긴 대가로 아직도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다 전해지지만 인간들은 아무도 전설을 확인하지 못했다.
어찌됐든 간에, 이러한 이유로 마법사들은 마족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고, 정령력은 신력의 일종이기에 아스타로트가 가장 경계했던 것이다.
“저것들이 있었지.”
“어딜 한눈파는 것이냐!”
“호호, 넌 잠시 빠져있어.”
불릿과 흙덩이에게 눈길을 돌리는 아스타로트에게 우락크가 달려들었으나 마기로 흉측한 손톱을 만들어내어 내질러진 그녀의 공격에 우락크는 뒤로 크게 밀려났다.
쿠웅-!
“끄윽….”
인간의 한계라는 마스터를 넘어섰으나 상대는 천계로 따지면 신.
방금의 공격도 불릿의 눈엔 1번으로 보였지만 미세한 손톱의 움직임으로 590번을 베고 찔렀기에 우락크로서는 뒤로 물러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후 아스타로트는 번개처럼 쏘아져 돌벽을 앞세우고 공격을 명하려던 찰나, 자신의 귓가에 속삭여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잘 가, 오빠.”
‘빠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과 흙덩이를 덮쳐오는 마기의 손톱.
이번만큼은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흙덩이라도 살리고자 무의식중으로 정령력을 몸통에 두르며 그녀의 앞을 막아서갔다.
- 여신의 이름으로 명합니다, 멈추세요.
* * *
“다!….”
파밧!
팔을 벌리고 막아서는 동작을 했으나 불릿의 앞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그의 눈엔 새하얀 백색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잘 계셨나요?”
“……마지막이라더니 벌써 세 번째인 건 아십니까?”
“어머나, 제가 그랬었나요?”
모르는 척 내숭을 떠는 그녀에게 불릿은 할 말이 없었다.
흙덩이를 쏙 빼닮은, 아니. 흙덩이를 ‘낳은’ 어머니인 가이아 여신에게 욕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흙덩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역시 우리 아이가 먼저시네요?”
“설명 좀 해주시지요, 왜 저를 불러들이셨고 바깥의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마기의 칼날이 목 끝까지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시간이 멈추더라도 바깥에 나가자마자 죽을 수도 있으니 불릿으로선 급했던 것.
가이아 여신도 그걸 알기에 본론부터 꺼내놓았다.
“약간의 편법을 사용했어요. 사위님을 저의 사도로 임명했지요.”
“사도 말입니까…?”
사도는 신의 대리자, 우락크의 말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로 신의 대리자가 되어버렸던 불릿이었다.
“이유도 없이 강해지실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당신께 힘을 드리면 그걸 하는…호호, 우리 아이와 응응(?)을 하시면 힘이 흘러들어가도록 살짝 손을 보았지요.”
노골적인 언사는 그녀도 부끄러웠는지 말을 돌려서 표현했다.
“다른 부인들은 변화가 없었는데….”
“저도 제 아이가 가장 소중하지 않겠어요? 나머지 아이들까진 제 입장도 있어서…미안해요.”
“아닙니다, 음.”
“자, 이제 모든 조건은 충족되셨어요.”
“음?”
뜬금없이 조건이 충족됐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가이아 여신은 분명 아름답고 자애로운,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지계열을 대표하는 신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불릿은 만날 때마다 나이만 많은 흙덩이를 보는 것 같아 난감했다.
“우락크와는 많은 대화를 나누셨나요?”
“으음….”
또 뜬금없는 소리, 그러나 대답은 해줘야 했다.
“생각보다 순진한 사…엘프더군요. 많은 대화는 그다지 나누진 못했습니다. 자는 척을 많이 하더군요.”
“안타깝네요, 마지막 여정이었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대가 없는 보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누군가가 이익을 보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하지요.”
‘베니스 남작이 했던 말이군.’
그녀의 말은 상인이나 내뱉을 만한 구절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것에 통용되는 말이었기에 불릿의 고개도 끄덕여졌다.
“다시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까?”
분명 우락크는 다시 숲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 스스로가 마을을 불태웠었고, 봉인지까지 허물어뜨려서 흔적을 지웠으니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고 봐야겠다.
“그녀는, 우락크는 아스타로트와 함께 문지기의 역할을 끝마칠 것입니다.”
“그럼 자유가 되는 겁니까?”
불길한 말에 불릿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길 바라며 가이아 여신을 바라봤고, 그녀 또한 그게 아니길 바랐었다는 듯 탄식을 하며 조그마한 입술을 열었다.
“모든 신들이 가장 갈구하며 바라마지 않는 그것, 바로 안식입니다.”
가이아는 우락크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