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5 마지막을 향해 =========================================================================
자신이 마법사란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미러링에게 흙덩이는 일침을 가했다.
“변태들이잖아?”
띠잉-.
“뭐, 뭐라고?”
어이가 없어 뒷목을 잡으며 묻는 미러링에게 흙덩이는 재차 말을 뱉었다.
“내 몸도 막 만지구, 그래놓고는 또 만지고 싶다하고, 변태들이잖아. 게다가 이상해, 냄새도 나구.”
마법사라면 연구를 많이 하는 것은 당연했는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기겁할 재료들도 많이 사용했다.
몬스터나 동물의 눈알은 기본이고 내장기관이나 때론 대변도 이용했으니 몸에 냄새가 날 법도 했다.
그들은 익숙해졌기에 깨닫지 못하겠으나 그들을 처음 대면하는 자들이라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었다.
“그건 좀 불쾌하긴 했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뭐어…그렇긴 한….”
“오빠는 내가 다른 남자의 손길을 받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흙덩이가 말하는 것치곤 상당히 장문의 말이었기에 불릿도 마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 너는 정령이었으니까 그 마법사도 모르고 그랬겠지.”
“그때 나는 흙덩이 아니야? 흙덩이는 오빠가 만져주는 게 제일 좋은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으음.”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그저 어루만져주는 것. 이젠 머리를 쓰다듬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응응(?)을 할 순 없으니 키스로 대신해주었다.
“츄우웁….”
그녀의 복숭앗빛 혀를 강하게 빨아들이는 불릿. 그는 보다 빨리 끝내기 위해 부드러움 대신 보다 자극적인 강함으로 흙덩이의 침을 모조리 빨아먹었다.
“뽀오오옥!”
뻥!
“후, 아, 흐, 엑….”
불릿의 거친 행동에 후들후들해진 흙덩이, 그녀를 껴안고서야 불릿은 이미 침착해진 미러링을 바라보았다.
그는 썩은 미소, 즉 썩소를 짓고 있었는데 차마 백작이자 이번 토벌군의 총사령관인 불릿을 쏘아붙일 수 없어 억지 미소를 지은 상태였다.
“하.하.하…이게 아니지, 애는 나중에 만들고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하오!”
“애를 만들다니 무슨….”
“아, 글쎄 물고 빨건, 박건 박히건 간에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흐에에?”
갑작스런 미러링의 외침에 주변의 회위대도 그들을 쳐다보았고, 혼이 나갔던 흙덩이도 제정신을 차렸다.
“벼, 변태!”
마법사에게 안 좋은 추억이 있던 흙덩이는 가슴을 가리며 불릿의 뒤로 몸을 숨겼는데, 그 때문에 호위병들이 창칼을 빼들고 다가오려 했다.
다가닥다가닥!
“괜찮으십니까, 각하!”
미러링이 불릿에게 위해를 가한 줄 알고 크레파토스가 말을 타고 달려오려 하자 급히 외치는 불릿.
“괜찮다! 흙덩이 일이니까 오지 마!”
우뚝!
“히이-히히힝!”
“워, 워!”
급히 고삐를 당기자 앞발을 들며 울음을 터뜨리는 말을 진정시키는 크레파토스.
그래도 기사로서의 연륜이 깊기에 금방 말을 안정시키는 그였다.
이는 타고 있는 말이 전쟁수행을 위한 전마라서 금방 가라앉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어찌됐든 간에 크레파토스는 흙덩이라는 말에 뭔지를 깨달았는지 금세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그겁니까?”
그가 말하는 것은 뭘 뜻하는 것일까?
그런데 불릿도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하다.
“뭐어….”
“에휴…….”
“응? 방금 한숨을 쉰 것인가?”
“아닙니다. …그래도 적당히 하시길.”
원래 크레파토스는 이런 말을 불릿에게 하지 않았지만 불릿이 아무데서나 응응(?)을 해대니 주의를 주었다.
가신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것도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었기에 웬만해선 얼굴 붉히지 않는 불릿도 얼굴을 붉히게 되었다.
“별일 아니다! 각하께선 무사하시니 모두 제자리로!”
크레파토스의 외침에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오던 호위대원들은 다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사위로 흩어졌다.
“이제 좀 말해도 되겠소? 급한 사항인데.”
“…흠, 근데 자네는 뭔데 나에게 말을 놓는 것이지?”
불릿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미러링의 이상함을 깨닫고서 물음을 건넸다.
그러자 미러링은 한숨을 푹 내쉬고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난 일루젼학파의 탑주이자 7서클 마스터 미러링 일루젼 세븐스타요.”
“탑주? 그런데 왜 우리에겐 말하지 않았소?”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란 말이 있…후, 그냥 여러모로 이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랬소. 전쟁 때에도 탑주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잔당을 처리하는데 움직인다는 소식이 퍼진다면 어떨 것 같소이까?”
탑주는 마탑의 기둥이다. 대륙에 7서클 마스터는 알려지기론 그들밖에 없었기에 사람들의 믿음은 지대했다.
흑마법사와의 전쟁이 한창일 때에도 그들은 마법사의 탑을 굳건히 지키며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대비하고 있었다.
대륙 최전력이라 알려진 결사대가 전멸하는 것이 인류의 위기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위기란 것일까?
“그 점은 이해해주도록하지. 그럼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는 무엇이오?”
“아차!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어서 병력을 물리시오! 적어도 불모의 황무지에서 벗어나야 하외다!”
“그러니까 말을 하시오, 위험하다고만 하지 말고.”
답답한 것은 미러링뿐만이 아니라 불릿도 느끼는 중이었다.
급해 죽겠는데 서로 쓸데없는 짓으로 말을 빙빙 돌리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여기 바닥! 바닥에 구멍이 있지 않소?”
그가 힘차게 발을 구르고 있는 곳엔 엄지손가락 하나만큼의 구멍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냥 봐서는 불모의 황무지에 나있는 평범한 균열처럼 보였지만 끝없이 이어진 것은 분명 수상해 보였다.
“이건 신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한 고대의 의식, 대 마법진 붉은 비를 방대한 규모로 펼쳐놓은 것이오!”
“붉은 비? 어디서 봤던 것 같긴 한데….”
마법사들에게나 유명한 것이지 붉은 비는 일반인들이 기억할 만한 종류는 아니었다.
불릿이 일반인은 아니었지만 위험하다고 해서 역사상 딱 한번 등장했던 마법진을 고서에서 스쳐지나가듯 보았다고 생각나진 않았던 것이다.
그가 머리위에 물음표를 띄우자 미러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바포 백작께서 발견하신 지하공동이 주변의 생기를 빨아들여 중앙의 유적으로 보냈다고 알려드린 바가 있을 것이오.”
그때 그 사건은 불릿의 목숨이 위태롭기도 했고, 흑마법사의 음모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모두가 박수쳐주는 일이었다.
아마 마탑에서도 그때의 일 덕분에 전면에 나서고 싶지 않았음에도 탑주까지 파견하게 됐다고 여겨진다.
“그 지하공동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72곳으로 나뉘어 있어 장기간에 걸쳐 이곳의 대지를 황무지로 만들었소. 하지만 붉은 비는 설치하는 데에 고생할 뿐이지 발동하는 것 자체는 피할 틈도 없이 순식간.”
으스스함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추위를 느낀 것인지 미러링은 오른손을 매만지며 다시금 두려움을 드러내었다.
“이게 언제부터 설치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만은 분명하오.”
“그렇게 위험한 마법진을 왜 지금에야 발견한 것인가!”
명색이 마탑의 마법사라는 작자들이, 그것도 마탑주까지 포함되었으면서 범위에 들어서고서도 며칠이 지나도록 몰랐을까?
또 다시 흙덩이가 아니었다면 눈치도 못 채고서 그대로 당할 뻔했다.
정말이지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는 일이었으며 마법사들의 무능에 부들부들 떨리는 불릿.
“지금 우리에겐 2가지 선택지가 있소.”
“책임을 회피하려는가?”
“내 얘기를 들으란 말이다! 당장 선택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마법사는 언제나 조리 있게 말을 한다. 그것은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뽐내려는 이유도 있고, 상대방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그것만큼 짜증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화라는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마음의 여유를 두지 못할 정도로 구석에 몰렸음을 뜻했다.
“이건 미친 마법이야! 아니, 마법이라고 분류하는 것도 주술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비웃기 때문이지. 엄밀히 말하면 제물, 그래!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단!!!”
“뭐, 뭐야?”
광기가 물든 듯 손바닥을 그러쥐며 버럭 소리치는 미러링, 그는 침까지 튀기며 자신의 명예도 내버린 채 공포에 질려있었다.
안색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위치를 마지막 이성이 붙잡고 있었기에 도망치는 것은 간신히 면했다.
대마법사의 칭호를 획득한 마탑주 미러링 일루젼 세븐스타가 겁에 질려하는 마법.
불릿도 그걸 겪어보고 싶진 않았기에 상황에 대처하려 다시 되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떡해야 하오?”
“텔레포트는 이런 규모의 병력을 수송할 수 없소. 그래도 범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보병은 버려야 할 것이오.”
“보병을 버리라고?”
“느리니까, 다 죽을 수는 없지 않겠소.”
잔인한 말이었지만 현실이 그랬다. 최악의 순간이 오면 인간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찾아 헤맸고, 군주는 잔인하더라도 그러한 선택을 택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불릿은 이번에도 희생이란 단어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선택지가 있다했지, 그렇다면 본인은 그걸 택하겠소.”
“그게 무엇인지 알고?”
“이유는 선택지처럼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 첫째, 난 한 번도 나의 것을 버린 적이 없네. 둘째, 그만한 규모의 병력을 잃는다면 어차피 왕국은 무너질 것이네.”
가슴 아프게 후퇴해도 왕국민의 원망만 살뿐 그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당장은 살 수 있겠지만 결국 나중엔 모두가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럼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대체 무엇이겠는가?
의미 없는 삶을 살 바에야 의미 있는 죽음 택하는 것이 귀족이리라.
‘그렇다고 죽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불릿이 미쳤다고 부인들까지 위험한 선택을 하겠는가?
아직 남은 선택지가 남아있기에 이런 최악의 선택은 하지 않겠다고 한 것뿐이다.
그리고 보통 선택지를 2개 줄 때에는 첫 번째는 나쁜 것을 그리고 두 번째는 좋은 선택지를 준다.
왜냐고? 그래야 두 번째 선택지가 더욱 부각되어 보이니까.
“자, 두 번째 선택지는 무엇인가? 난 당신이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불릿은 실로 심장이 쫄깃했다. 아스타로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서 자신들을 전멸시킬 계략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도 불릿을 구원해준 것은 흙덩이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지, 지하공동을 발견하고 붉은 비라는 대 마법진을 찾을 수 있었을지, 여신의 도움을 받고 강해져서 마수의 숲으로 우락크를 찾으러 갈 수 있었을지 몰랐을 것이다.
“이틀, 빠르면 하루. 그 거리 안에 놈들의 본거지가 있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로선 찾는 것이 불가능하니 바포 부인의 도움이 절실하오.”
“마법진이 발동되기 전에 원인을 제거하자는 소리로군.”
“…정령에서 인간이 됐다거나, 그런 건 더 이상 묻지 않겠소. 마기를 찾는 그 비상한 능력, 그것이 필요하오.”
불릿은 흙덩이가 마기를 감지하거나 정화할 수 있는 것을 가이아 여신의 능력을 물려받은 것으로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