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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27화 (227/241)

00227  마지막을 향해  =========================================================================

“…도 바니슐레프 가의 돌격기마병 100기까지, 총 1만 1천여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연합군은 반나절을 더 걸어간 끝에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숙영을 할 수 있었다.

주요수뇌부가 모여서 결과를 보고하는데 안색들이 싹 난 감자라도 먹은 것처럼 일그러진 상태, 표정만으로도 어떤 자들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 알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병력이 죽었는데도 수뇌부는 모두 살아있다니, 신기한 일이로군.”

불릿의 냉담한 반응에 보고를 읊던 투툰령에서 온 지휘관 카미스도 동의했다.

“원래 멍청한 놈들이 겁도 많은 법이잖습니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카미스는 불릿처럼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불릿에겐 종일 존대만 해주고 있었다.

불릿도 당연하다는 듯 하대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들의 대화에 다른 자들도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 만약 그들 간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지금처럼 반박하는 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하신 거 아니십니까? 저희가 당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잖습니까?”

“맞소, 맞소!”

“우리도 최선을 다했단 말입니다!”

한명이 불만을 드러내자 나머지 인원들도 물타기를 시전해 이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

이러한 와중에도 구울 백작은 침묵을 지키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투툰과 불릿이 구울 백작을 보고 멍청하고 탐욕스런 자라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왕국에서 두세 번째를 다투는 강자였기에 소규모 군벌들이 어찌 될지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끝났군.’

날카로운 눈꼬리와 창백한 피부, 가느다란 팔목은 히스테릭을 부리는 병자와도 같은 모습처럼 보였다.

구울 백작은 불릿의 바포 변경백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그렇다고 앞뒤 구분도 않고서 움직이는 인물도 아니었다.

지금은 흑마법사라는 재앙을 노려야할 때,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건 흑마법사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다.

그의 예상이 들어맞았는지 불릿의 눈에서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내면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것들이 잘도 입을 놀리는군.”

“뭐, 뭐요? 지금 뭐라고 했소이까?”

“흠, 전시상황에서 군권을 쥐고 있는 최고사령관에게 항명하는 것인가….”

여전히 수염은 나질 않았기에 맨들맨들한 턱을 매만지며 불릿은 씨익 미소를 지어보았다.

“목을 베면 조용해지려나?”

“히익!”

살벌한 소리에 불릿을 쏘아대던 기세는 어딜 가고 목을 잔뜩 움츠리는 귀족에게 불릿은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잘한 것도 없으면서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본인의 군권은 투툰 후작과 구울 백작이 공인한 자리이니 불만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어디 한 번 말해보시던가.”

그 누가 투툰 후작에게 불만을 가지겠는가? 루드밀라의 진정한 왕은 투툰 후작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었으며 구울 백작의 잔인함은 그의 도발에도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 것밖에 못할 정도로 사나운 인물.

이 둘이 인정했다면 왕이 반대를 하더라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영향력을 지녔다.

그 귀족은 오른편에선 투툰 후작의 심복 카미스 백작이 기세를 뿜어대고 왼편에선 구울 백작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헉, 저는 아무 불만도 없습니다!”

다른 이는 몰라도 구울 백작은 당장이라도 움직일 만한 인물이었기에 냉큼 입을 다문다.

자신의 영지로 복귀했을 때 폐허가 된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장내가 조용해지자 불릿은 자신이 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많이 실망했다. 루드밀라의 군사력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야.”

자신만만하게 출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첫 습격에서 이렇게 큰 피해를 입었다는 데에 불릿은 어이가 없었다.

그 예로 정예병들의 사상자는 십여 명을 넘지 않았는데, 대부분이 어중이떠중이 급의 군소군벌들의 병력의 실수로 인해 그리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원래는 피해가 전무하다고 봐야했다.

아군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병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냐면, 화살받이나 미끼로는 쓸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누군진 모르겠는데 아군에게 공격명령을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자도 있더군, 지금 이 시간부로 흑마법사를 토벌할 때까지 자네들의 지휘권을 박탈하겠다.”

웅성웅성.

지휘권을 박탈당한다면 공을 세우려고 기껏 데려온 병력이 불릿의 입맛에 따라 이용당하는 소리였으니 잠재웠던 불만이 수면 위로 뽈록 솟아났다.

“아니, 그러시면 저흰 어떡하란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지휘권만은….”

“혹시 다른 마음이 있으신 건 아닌지 모르겠소만.”

불쾌함과 걱정이 뒤섞인 그들의 불만에 불릿은 한숨을 내쉬며 이에 대꾸했다.

“후우, 병사들 밥이나 제대로 먹이고서 그런 말을 하시오. 기사들은 몇 되지도 않는데 어째서 기사들에게만 풍족한 식사와 물자를 제공하는 것인지, 하아. 그럼 전투라도 제대로 참여하던가!”

기사라는 자들이 몬스터와 마물에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그러고선 장비도 빈약한 병사들을 앞으로 밀어재끼니 어쩔 수 없이 사지로 향하는 자들.

그나마 추위는 마법사들이 막아주었지만 그들은 밤 스티드처럼 위험천만한 마물이 아니고선 잘 나서지 않았다.

흑마법사와의 결전을 대비해야했기에 마나를 허투루 사용할 수 없었다.

그의 호통에 다시금 적막해진 천막.

“크크크, 다들 겁을 집어먹었군.”

“구울 백작, 하시고 싶은 말이라도 있소?”

“한마디 하고 싶어서, 크크크.”

“해보시오, 본인은 답답해서 이만할 터이니.”

불릿이 한발 물러서서 양보를 해주니 구울 백작은 자리에서 스윽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 그에게 시달렸던 귀족들은 시선을 회피했고 이야기로만 그를 들었던 자들은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움찔했다.

구울 백작의 눈매는 째진 듯이 옆으로 주욱 늘어졌지만 눈동자만큼은 맑고 깨끗해서 속내를 들킬 것만 같았기에.

“야, 이 어리석은 것들아. 아직도 바포 백작이 군대를 대신 다스려주겠다는 뜻을 모르겠는 것이더냐?”

마치 아랫것들을 대하듯 하대를 하는 구울 백작이었지만 이미 주눅이 든 관중들에게선 별다른 반발이 일어서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구울 백작은 자신이 할 말을 이어갔다.

“흑마법사를 토벌할 때까지만 이라는 조건을 달아도 말이 많고…, 음. 그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적어도 이번 토벌이 끝날 때까지는 군사를 너희의 바보 같은 짓거리로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단 뜻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불릿과 구울 백작을 번갈아 바라봤지만 불릿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결국 해답은 구울 백작에게 있었으니 그에게로 시선이 온통 쏠린 상태였다.

“너희 병사들의 특징이 뭔지 아느냐? 그것은 하나같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상태이고, 장비도 무슨 징집된 농노처럼 형편없다는 것이지.”

화아악-.

자신들의 치부나 마찬가지인 얘기였기에 조그마한 투덜거림이 새어나왔다.

“우리도 멋진 군대를 갖고 싶긴 하지만 돈이 없는데….”

그리고 적막한 가운데에 그러한 중얼거림은 그 무엇보다 크게 들렸다.

그 말을 들은 구울 백작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던 자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을 내뱉는다.

“네놈의 배때기에서 지방을 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옷은 뭘 그렇게 치렁치렁하게 입은 건지, 돼지가 따로 없군.”

“으윽….”

자기는 나름 차려입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전장의 한복판에서 갑옷도 아닌 의복을, 그것도 장식이 치렁치렁한 졸부스타일의 옷은 영 아니었다.

거기에 살까지 디룩디룩 쪘으니 불에 구우면 맛있을 것 같았다.(?)

“바포 백작이 네놈들의 가난한 병사들을 밥 먹여 준다니까 닥치고 받아들여라, 아님 네놈들이 처먹는 고기를 병사들에게 먹이던가.”

“…….”

“크흠.”

“험험….”

이렇게 욕을 먹고도 그럴 생각은 없었는지 헛기침만 하는 군소군벌의 군주들.

시원하게 할 말을 했다는 듯 구울 백작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불릿을 바라보았다.

“이제 할 말 없소, 크큭.”

“한마디 치고는 꽤나 긴 한마디였구려.”

“마디를 끊지 않으면 그게 한마디가 되는 것이지 무얼, 크크큭!”

“그것도 말이 되긴 하는군.”

문법상으론 이상한 말이었지만 어차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불릿은 구울 백작이 자리에 착석하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이처럼 본인은 그대들의 군사를 사사로운 데에 쓰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잘 살리려고,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지휘권을 한데 모은 것이오. 막말로 불만이 있으면 뭐라도 좀 내놓고서 하질 그렇소? 군량도 적은데 말이지.”

요새 불릿의 영토엔 식량이 넘치다 못해 썩어날 지경이었다.

난민의 유입으로 부족했던 생산성이 점프를 해 맛은 없어도(….) 배는 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부르자 난민들도 안 먹어서 남아도는 식량(맛이 없어서 안 팔림)을 군량으로 가져왔던 것.

그것을 굶주린 병사들에게 먹이면 사기가 증진할 것이고, 추위도 이겨내어 보다 잘 싸울 수 있으리라.

아무리 몬스터가 강하더라도 이렇게 병력이 많은데 1만이 넘게 죽었다는 것은 좀 심한 편이었다.

인간은 뭉칠수록 강한 종족이었으니까.

“알았으면 이만 해산토록 하고, 부상자들은 의사가 몇 없으니 중상자들만 마법사에게 치료를 받도록 하게.”

“…알겠소이다.”

“알겠습니다.”

“예에…….”

불만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병사들을 위한 물품은 거의 챙겨 오질 않았으므로 불릿, 투툰 후작, 구울 백작과 나머지 5천을 이루는 정예군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모든 병력을 만족스럽게 정비할 수 없더라도 자업자득인지라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해산, 해산! 아침 6시에 기상 후 7시에 출발할 것이니 휴식을 취하도록.”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투툰 후작령에서 온 카미스 백작의 말에 나머지 귀족들도 따라서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 * *

펄럭-.

불릿이 개인막사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흙덩이가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와다닥!

“너무 늦었어! 졸렸단 말이야!”

허리춤을 잡고서 얼굴을 마구 부벼대는 것을 보니 엄청 기다렸나보다.

하기야 지금은 보름달이 하늘 꼭대기에 걸린 상태였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회의를 진행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영주님 오셨습니까.”

“흐음, 본인이 좀 늦었지?”

“세숫물을 준비하였으니 세안과 족욕을 마치신 후 주무시지요.”

“그래, 부탁한다.”

불릿은 침상에 앉아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루나의 손길을 받았다.

촤악-, 촤악-.

찰방찰방 물을 적시며 불릿의 얼굴을 닦아주던 루나는 흙먼지가 수건에 묻자 그런 다음에 신발을 벗겨 발도 씻겨주었다.

정성스레 그의 몸을 닦아가던 루나는 약간 탁해진 물을 들고서 허리를 숙이며 막사에서 물러나려고 했다.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허리를 수그리며 뒷걸음질을 치며 루나가 물러나니 막사엔 불릿과 흙덩이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둘만 남게 되자 흙덩이가 애처로운 눈으로 불릿을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그냥 잠을 자려고 마음먹었다.

“이만 자자.”

불릿은 막사 곳곳에 피워놓은 촛불을 후 불어서 끄더니 어두컴컴해진 간이침대로 올라가 흙덩이를 껴안으며 이불을 덮었다.

“잘 자….”

“흙덩이도 잘 자, 쪽.”

성교는 안 해도 흙덩이의 분홍빛 혀는 야식처럼 빨아먹고서야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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