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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25화 (225/241)

00225  마지막을 향해  =========================================================================

둥-둥-둥-둥-

1월, 겨울이라는 계절에서도 가장 추운 시기 중 하나였다.

준비를 완벽하게 갖췄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흑마법사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루드밀라가 대륙의 구석에 있었기에 전쟁의 전화에서 살짝 빗겨갔다지만 흑마법사에게 시간을 주면 어떤 악몽이 도래하는지를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불릿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출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펄럭-.

각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나부끼는 가운데, 불모의 황무지 초입에 모여든 병력을 바라보면서 불릿의 입이 열렸다.

“오합지졸이 따로 없군.”

그의 말대로 일부 병력은 이제 갓 창칼을 잡은 볼품없는 병사들이 많았다.

근 10만에 이르는 대군중에서 절반이 그러한 상태였으니 눈에 띄어도 너무 띄었다.

그나마 정예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의 소속은 5천이 바포 변경백의 군단.

군단의 병사들은 전원 무장의 질이 좋았고 불릿이 작년에 마련했던 방한용품을 착용해 추위에도 거뜬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지휘관인 기사들은 전원이 진홍색 케이프를 어깨에 두른 상태였는데, 십인장은 흰색 줄이 하나, 백인장은 두 줄, 천인장은 세 줄에 그들을 통솔하는 군단장 레너드 자작은 다리까지 닿는 기다란 망토를 휘날렸다.

“자리를 지켜라, 최고사령관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대대, 중대, 소대 순으로 질서정연하게 서있으면서도 레너드 자작의 호통에 힘차게 외쳤다.

“예! 알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한 투툰 후작령의 군대.

물경 3만에 달하는, 이것도 일부만을 파견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투툰 후작령은 그야말로 하나의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군대와 기사단을 따로 구분해놓았지만 역시나 훈련은 잘 되어 있는 듯 흐트러짐이 없었고, 무엇보다 기사의 질과 양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구울 백작의 병력도 1만이나 파견되어 있어 그 자태를 뽐냈으나 어쩐지 병사들의 기색은 우중충했다.

분명 체격도 다부지고 엄격한 군율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힘이 없어 보이는 모습.

5만의 정예 중에서 나머지 5천은 소수의 깨어있는 귀족들이 보낸 정예병이었다.

이쯤 되면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는 투툰 후작이 총사령관이 되어야 했으나 투툰 후작은 왕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고,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유능한 수하들이 병력을 다스리고 있었으니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된 것이 직접적인 피해와 발견을 했고, 결사대의 일원이었으며 상급 정령사라고 알려진 불릿이 맡게 된 것이다.

“불릿 오빠, 나도 나가면 안 돼?”

마차에 탑승한 상태인 흙덩이가 창문 틈새로 빼꼼 얼굴을 내밀며 묻자 불릿은 그녀의 볼을 쓰다듬어주며 대답해주었다.

“우리 아가가 너무 예뻐서 지금 나오면 남자들이 어흥, 하고 짐승처럼 나올 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줄래?”

불릿이 총사령관이라곤 하지만 10만이나 되는 대군에서 분쟁을 완전히 없앨 순 없었다.

어디까지나 토벌군은 연합으로 뭉친 자들이었기에 불릿의 통제에 완벽히 따른다는 보장도 없었고, 그래서 불릿은 하녀들조차 밖에 내보이지 않고서 마차에 박아둔 것이다.

전쟁터에선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성욕이 한층 강해지는 면이 있어 목을 벤다 하더라도 강간하는 놈들이 발생하기 때문.

그래서 올리비아와 유실리아를 비롯한 여기사들은 아예 데려오지도 않았다.

딱 필요한 인원구성, 되도록 빨리 끝내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위해!(?)

“각하, 출정할 시간입니다.”

“또 연설을 해야 하는가?”

그가 새하얀 입김과 함께 투덜거리자 불릿을 데리러 온 셰실리코프가 입을 열었다.

“투툰 후작께서 자신의 군대를 믿고 맡기셨으니 그 정도는 해주셔야할 것 같습니다.”

투툰 후작이 불릿을 밀어주는 데엔 사위인 셰실리코프가 공을 세웠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서였다.

그가 왕국에서 좀 더 큰 자리를 차지해야 자신의 딸도 체면이 서질 않겠는가?

영주라곤 해도 단순히 남작이기만 해선 그의 성에 차질 않았다.

“그냥 장인어른이라고 말하던가, 쯧. 알았다, 가도록하지.”

셰실리코프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불릿은 흙덩이의 따뜻한 볼에서 손을 떼고선 입을 맞춰주었다.

“쪽, 다녀오마.”

“이따가 봐!”

“루나, 창문 닫고 흙덩이 조용히 시켜, 시선이 몰린다.”

“알겠습니다, 대영주님. 작은아씨, 저희랑 재밌게 노실까요?”

밴이 어떤 의도로 올리비아의 전담하녀인 루나를 왜 붙여준 것인지 아무런 의구심도 들지 않은 불릿.

그는 연합군이 모여 있는 개간된 황무지 초입으로 향했다.

“흑마법사가 또 다시….”

“언제쯤 제대로 살 수 있을지 모르겠군.”

“싸우기 싫다아….”

“나도, 집에 가서 자고 싶어.”

10만 중에서 5만은 제대로 훈련도 안 된 오합지졸이라서 대화의 질도 참으로 낮았다.

그렇다곤 해도 정예병들이라고 해서 누워서 자고 싶고 놀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넓은 대지에 도착하자 불릿은 정령력을 사용해 이들의 대화를 엿듣고서 빨리 연설을 시작해야함을 깨달았다.

“모두 집중하라! 총사령관 불릿 폰 바포 백작께서 도착하셨으니!”

레너드 자작의 외침에 저마다 지루함과 추위에 떨던 연합군이 단상에 선 불릿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휘이잉-

차가운 북풍의 바람을 맞으며 단상에 올라선 불릿은 사위를 둘러보며 저마다의 특색을 드러내는 그들을 쳐다보았다.

여러 가지의 깃발이 흑마법사 토벌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모여 있자 오합지졸이 섞여있긴 했어도 마음만은 든든했다.

“본인은 이번에 새로이 결성된 연합군의 사령관 불릿 폰 바포 백작이라 한다.”

본래 이들의 소속은 연합군이 아니라 루드밀라 왕국군이라 불러야 옳았다.

그러나 왕실이 유명무실해진 이때에 서로 반목하며 잡아먹을 생각만 하니 연합이라는 형식이 아니라면 흑마법사와의 전쟁이라 할지라도 뭉치기 어려웠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가 흑마법사의 수작이라는 것은 마탑을 통해 모두 전달받았을 것이다.”

“맞소!”

“흑마법사 빌어먹을 놈들!”

“죽이자! 죽여!”

“죽여! 죽여! 죽여!”

5만의 정예병들은 강추위 속에서도 꼿꼿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나머지 5만은 오합지졸이 맞는 듯 기사들까지 합세해 저마다 목청 높여 욕을 내뱉었다.

그들 중에는 남작, 자작, 심지어 백작도 섞여 있어 루드밀라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러니 변경에 있음에도 불릿이 강력한 군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잔인한 구울 백작 같은 인물이 이름을 떨치는 것이리라.

반응이 저렴하긴 했으나 이런 추위 속에선 화를 내는 것만큼 체온을 높이는 것도 없었기에 불릿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오합지졸인 병사들은 누비옷 하나만 입은 경우가 많았으니까.

“대체 언제까지 당할 것인가! 우리의 친구며 연인, 부모형제, 그리고 우리 자신까지! 더 이상 겁쟁이처럼 피하기만 해선 놈들의 사악한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와아아-!

불릿이 카텐령의 마탑지부장 자베르의 도움을 빌어 마법으로 목소리를 크게 만드니 밀알처럼 보일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자들까지 함성을 질렀다.

“흑마법사는 사람의 길을 버렸다! 놈들의 손에 죽은 사람의 수만 해도 피가 강을 만들어 흐를 정도! 우리는 이 빌어먹을 쥐새끼들을 퇴치해 자식들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다!”

“쥐새끼를 없애자!”

“와아아아!!”

지루한 연설이 아닌, 자극적인 표현을 빌어 심금을 뒤흔드는 불릿의 외침에 귀족출신이 대부분인 기사들보다도 병사들에게서 열렬한 호응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불릿도 그들의 호응에 피가 뜨거워졌는지 연설이 귀찮다는 행동은 어디가고 팔까지 들어 올리며 힘차게 외쳤다.

“출지인!!”

그리고 그의 옆에선 음성증폭마법을 펼치던 자베르가 작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원래 이런 분이 아니셨던 것 같은데….”

근엄하면서 지적인, 냉철한 판단을 내리던 불릿이 그리웠던지 홀로 추억에 빠진 자베르였다.

* * *

불모의 황무지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름에는 복사열 때문에 대지로부터 더욱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고, 겨울에는 허허벌판에 얼어붙기까지 하는 땅 때문에 불과 얼음의 대지로도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웬만큼 지위가 있는 자들은 마차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는 상태였고 나머지 인원들만 강추위 속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덜덜덜덜-.

“으으, 더럽게 춥다.”

“훌쩍! 으아, 콧물 먹다가 배부르겠네!”

이러한 반응은 방한용품으로 무장한 정예병들보다는 오합지졸이라 불리는 군소군벌들로부터 터져 나왔는데, 그래도 이들이 얼어 죽거나 낙오되는 인물이 없는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으으으, 마법사! 마법 좀 펼쳐줘!”

살을 에는 칼바람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병사가 외치자 말을 타고 이동하던 로브의 사내는 혀를 차면서 바닥에 내려섰다.

“쯧쯧쯧, 남자가 돼서 이런 추위도 참지 못합니까?”

“젠장, 마나가 없어서 못하겠네요 이 사람아!”

“사람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욕을 해대기는….”

“당신에게 욕하는 건 아니야. 으으, 우리가 누굴 욕할 입장이나 된다고 생각해? 우리끼리 지랄하면 모를까.”

반말일절이었으나 마법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에게 다가왔다.

“병사님들! 마법 쓸거니까 뭉쳐요, 뭉쳐!”

마법사가 손을 모아 외치자 삼삼오오 모여서 이동하던 병사들이 우루루 몰렸다.

“악, 냄새나게! 내 몸에 손대지 말고 줄 좀 서란 말입니다!”

꿍시렁거리던 마법사는 손을 모아서 영창을 시작했다.

“히트 프로텍트!”

그가 마법을 펼치자 다른 진영의 곳곳에서도 비슷한 마나의 파장이 퍼지고 있었다.

히트 프로텍트는 체온을 보온하기 위한 마법으로, 1서클 마법 중에서 대규모로 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법 중 하나였다.

그렇다곤 하나 마법의 효과라곤 옷이랑 비슷한 효과밖에 없었는데, 대상의 체온이 낮다고 해서 따뜻함을 느낄 정도로 체온을 올려줄 순 없었다.

어디까지나 마법을 받는 대상자의 체온을 보온해주는 효과일 뿐이었기에 굳이 비교를 하자면 보온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이런 강추위 속에선 이것만으로도 얼어 죽는 사태를 피할 순 있었다.

“으어…, 이제야 좀 살겠네.”

“엄청 신기하단 말이지, 어떻게 숨을 쉬면서도 바람은 막아주는 걸까?”

“몰라 이놈아, 너 꿍쳐둔 건량 있지? 내놔봐.”

“아, 으응….”

오합지졸이 괜히 오합지졸이 아니다. 병사들끼리도 위아래가 있어야 기강이 잡히는 법인데 이건 당나라군대(?)도 아니고 그저 힘센 놈이 최고였기에 이런 부조리가 매우 심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당하는 입장에선 흑마법사보다 저런 놈들을 더 죽이고 싶지 않을까 예상도 해본다.

잠시 창문의 틈으로 놈들을 쳐다보던 불릿은 이내 문을 닫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소, 우락크.”

루나를 포함한 하녀 다섯과 흙덩이를 제하고도 여성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번 전쟁의 핵심인물인 우락크였다.

그녀만이 아스타로트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다 했으니 그녀만큼 중요한 인물은 여기에서 또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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