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1 마수의 숲으로 =========================================================================
호위병대에서 그의 기척을 알아차린 사람은 흙덩이 단 한사람뿐이었다.
그가 병대에 섞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엔 놀라지 않은 이가 없었던 것.
스르릉-.
철컥!
“둘러싸라!”
“놈에게서 물러서!”
“소대 경계! 십인장급 이상은 검을 뽑아라!”
이중에서 아무도 그가 접근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기에 위험도를 최상위로 끌어올렸다.
온몸을 나뭇잎으로 둘러싼 그는 피부하나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았는데, 숲속에 있다면 몰라도 병대에 뒤섞인 이 이질적인 존재는 너무도 눈에 띄눈 존재가 되었다.
십인장과 백인장이 놈을 압박하며 둘러쌌고, 그들의 선두에는 천인장 벤젼스와 셰실리코프가 있었다.
크레파토스는 불릿과 흙덩이를 보호하며 놈을 노려보고 있자니 그에게서 생각보다 맑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곳엔 무슨 일인가, 자애의 여신이여.”
“너는 누구냐!”
“밝히지 않는다면 베어버리겠다!”
“그냥 베어 멍청아! 츳!”
벤젼스가 위협부터 가하자 그게 답답했는지 셰실리코프는 다짜고짜 자신의 검을 날렸다.
셰실리코프가 기사들의 기본검술에 자신의 가문에 내려오는 정령술인 바람의 특성을 더한 독자적으로 개발, 발전시킨 기술!
“삼! 광! 참!”
셰실리코프의 검술은 빠르기가 특징이라 기술의 이름 같은 걸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수의 숲에서 소드익스퍼트 상급인 자신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접근한 적을 처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은 상태였다.
절로 입이 벌어지며 생각이 말로 내뱉어지는 상태,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선 자신이 날릴 수 있는 최고의 베기를 날려갔다.
덥썩!
그러나 엄청난 빠르기를 자랑하는 삼광(三光) 셰실리코프의 공격은 너무도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검이 잡혀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자 벤젼스에게 외쳤다.
“벤젼스!”
“하앗!”
“그만! 모두 물러서라!”
푸욱!
벤젼스는 불릿의 외침을 듣고 쓸어가던 검의 경로를 바닥으로 돌렸고, 검이 자신의 신형을 단 한 끗 차이로 스쳐지나가는 데도 의문의 존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셰실리코프는 검을 놓고 물러서고선 다른 검을 빼들며 빈틈없이 그자를 둘러쌌다.
이 대담한 자를 모두가 경계하고 흙덩이조차 저자를 적대하며 정령술을 펼치기 직전,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불릿은 자신이 들었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소리쳤다.
“방금 그건 무슨 의미인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자여!”
이런 숲속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않는 방문자를 공격하는 것은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보니 여행자는 피해자이기도하며 피의자이기도 했다.
습격을 받았던 자가 되려 습격을 하기도 했으니 믿을 수 있는 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접근할 때에는 방문 목적과 공격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밝혀야 했다.
“……너는 그녀의 냄새가 나는군. 그녀의 대리자인가?”
확신하질 못하는 것인지 의문의 방문자는 그 스스로도 물음표를 띄우고서 물어왔으니 불릿도 이 상황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름을 밝혀라. 설마 이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이름을 밝히리라 생각한 것인가?”
“침입자들이 우스운 소릴 하는군,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맞는 것 같지만….’
불릿은 그가 우락크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가 먼저 우락크냐고 물어서 상대가 맞다고 해봤자 의심을 떨치긴 힘들었다.
의문의 방문자가 먼저 이름을 밝혀야 확신을 할 수 있었으니 계속해서 스스로 밝힘을 유도한 것이다.
불릿과 저자의 대화가 이상하자 호위병대는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걸까?”
셰실리코프가 묻자 벤젼스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입만 중얼거렸다.
“우리에게도 알려주실 수 없는 이유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긴장을 늦추지 말라.”
병대를 책임지는 높은 위치의 두 사람이 잡담을 하니 연륜 지긋한 크레파토스가 주의를 주었고, 두 사람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불릿과 방문자의 대화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오크는 더럽고 추잡하고 멍청하기 그지없지. 그렇지 않나?”
인간치고 오크를 경멸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아니, 몬스터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있어 적 아니면 돈벌이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당연한 소릴 하는 불릿을 호위대원들은 뭔 소릴 하나 바라봤으나 수상한 방문자는 한기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사아악…
“지금 뭐라고 지껄였느냐.”
그에게서 강렬한 살기가 흘러나오자 이중에서 최고실력자인 셰실리코프를 비롯, 모두가 그 살기에 짓눌렸다.
“크으윽!”
“커, 어억….”
차원이 다른 농도의 살기에 전투에 익숙한 병사들이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숨통이 막히는 살기, 상급의 경지인 벤젼스와 셰실리코프를 압박하려면 최상급 이상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최상급이라면 그들이 접근하는 것을 모를 리도 없었고, 셰실리코프의 검격을 맨손으로 잡아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스터! 크윽!”
셰실리코프가 허파의 숨을 쥐어짜내며 외치자 불릿이 상황타개에 나섰다.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문지기여!”
움찔.
어떤 구절에서 반응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전신을 가린 나뭇잎의 사이로 눈동자만 빛내던 살벌한 방문자는 점차 그 기세가 누그러들고 있었다.
스스스…
그의 기세가 누그러들자 숨통이 막혀서 목을 부여잡던 병사들은 간신히 빈사상태에서 돌아왔다.
“커어억! 후읍, 후읍!”
“씨, 씨발, 죽는 줄 알았군.”
목을 쓰다듬으며 일어서는 병사들의 눈엔 공포가 어려 있었고, 그것은 십인장이나 백인장이라 하여 다르지 않았다.
셰실리코프와 벤젼스를 포함해 모든 인원이 단순한 살기에 짓눌려 죽음의 위기까지 겪었었는데 아무렇지 않으면 인간도 아닐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멀쩡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불릿과 그의 어린 아내 흙덩이였다.
흙덩이는 병사들의 반응에 강한 경계심을 갖추고 있었지만 불릿이 멀쩡했기에 아직까진 명령에 따라 태세는 갖추고 있었다.
불릿은 병사들의 반응을 살펴보고선 살기를 내뿜은 방문자에게 말을 걸었다.
“한심하군. 한때 신이었던 자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살기나 흩뿌리고, 오크를 사랑하면 자신의 과잉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봤어야하지 않았나?”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여신의 대리자여.”
따지고 보면 불릿도 감정에 휘둘리긴 마찬가지였으나 적어도 그는 남에게 지탄을 받을 일은 한 적이 없었다.
남을 괴롭게 하면서까지 자신의 바람을 이루는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였다.
“당신의 입으로 존재를 고하라.”
아직까지도 방문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추궁하자 결국 스스로 밝히는 방문자.
“본좌는…#$^&$%%^ 우락크, 현재 마계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를 맡고 있다.”
“신격을 박탈당한 죄인? 불릿 오빠, 이게 무슨 소리야?”
인간의 언어도, 정령어도 아닌 알 수 없는 말이었으나 이를 흙덩이가 알아듣자 나뭇잎으로 둘러싸여 눈동자만 드러난 녹색방문자, 우락크의 눈이 커다랗게 확장됐다.
“저 모습, 이 냄새, 이 향! 가이아 여신?!”
뒤늦게 수레에 가려져 있던 흙덩이를 발견한 우락크가 경악한 모습을 보이자 불릿이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조용할 것을 종용했다.
“쉿, 우락크여, 여기서 할 말이 아니다.”
“으음….”
병사들은 물론이고 기사들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자 그들끼리만 대화할 수 있는 은밀한 장소가 필요했다.
우락크도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등을 빙글 돌려서 앞장섰다.
“따라와라, 안내해주지.”
이번엔 발소리가 나도록 흙을 짓밟으며 걷는 우락크를 바라보며 크레파토스가 불릿의 명을 기다리니 그는 짙은 경계심을 보이던 흙덩이를 번쩍 안아들고선 수레에 앉았다.
“앙, 간지러!”
“따라가라, 그리고 창칼을 겨누지도 말고.”
불릿의 명에 크레파토스는 쉬이 대답할 수 없었으나 그가 잠잠해진 상태로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결국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출발하라!”
“신들의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이지?”
셰실리코프는 바람의 정령사의 피를 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가신들보다도 정령과 신들의 이야기에 보다 심도 깊은 내용을 알고 있었고, 어렴풋이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 추측하는 중이었다.
‘이상해, 분명 오러의 배합은 문제없었다.’
오러소드는 맨손으로 잡아낼 만한 게 아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의 인간이라면 소드마스터라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셰실리코프의 검술실력이라면 최상급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는데, 마스터라고 해서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
그는 불릿과 우락크라 불리는 자에 대해서 자문자답을 거듭하며 고뇌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우락크가 안내한 곳은 분명 마을이었다. 인간의 마을과도 흡사한 그곳은 한때 여러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도 고요했다.
단 하나의 인기척도 없는 상태였기에 수상한 장소임을 일행 모두가 감지했으나 잎사귀로 생김새를 가린 우락크는 자연스럽게 마을로 들어섰다.
“…‘검은 장벽’에 온 것을 환영한다.”
“검은 장벽?”
“…….”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그도 들었겠지만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불릿과 흙덩이에게 말을 걸었다.
“빈집은 많으니 나머진 알아서 쉬어라. 그녀의 대리자와 그녀의…….”
우락크는 흙덩이를 바라보면서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바닥을 한번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아이야, 너도 함께 따라오너라.”
“??? 뭐라고 했어?”
“…….”
흙덩이는 자신을 보고 아이라 부르는 우락크에게 다시 되물었으나 그는 아까처럼 침묵을 지키더니 몸을 돌려 다른 집과는 달리 마을 정중앙에 위치한 거무튀튀한 색의 불길한 분위기의 건물로 들어섰다.
불릿은 크레파토스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흙덩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껴 넣은 후 바닥에 내려놓았다.
끈적-.
“음?”
“힉, 만지지 맛.”
무언가 흙덩이의 겨드랑이로부터 액체가 묻어나자 불릿이 의문을 드러내니 흙덩이가 재빨리 팔을 몸에 밀착시키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불릿은 그게 땀이라는 것을 깨닫고서 검지와 엄지로 비벼서 확인해보다가 다른 생각에 빠졌다.
‘힘든 일을 하지도 않았고 여긴 서늘한 편, 나조차 땀이 나질 않는데 같이 수레에 타고 이동하던 흙덩이가 이렇게 흥건한 땀을 흘리다니….’
그녀가 땀을 흘릴 일이라곤 완전 탈진할 정도로 정령력을 소모하거나 불릿과의 격렬한 섹스를 제외하면 언제나 뽀송뽀송한 피부를 자랑했다.
‘아니, 그게 땀이었던가?’
워낙 정신없이 하느라 확인한 적은 없었기에 헷갈리기 시작한 불릿.
그게 자신이나 올리비아, 아니면 유실리아의 땀이었는지, 아니면 불릿의 침 또는 정액이나 흙덩이의 애액일지는 지금으로썬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걸 확인하자고 빈집에 들어가서 응응(?)을 할 수는 없잖은가?
그렇게 불릿은 흙덩이가 왜 땀을 흘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로 검은 집으로 뒤따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