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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16화 (216/241)

00216  복귀  =========================================================================

안전을 기해야 했기에 하루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3일에 걸쳐 천천히 달려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당장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과연 몬스터 웨이브가 끝난 것인지, 광폭화가 풀린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 또한 중요했기에 일부러 천천히 온 경향도 있는 것이다.

“너희끼리 놀고 있어라.”

“불릿은 뭐하려고?”

“…그동안 너무 했잖느냐. 업무도 좀 봐야지.”

“빨리 와야 해? 기다리고 있을게에-.”

이런 대화를 나눈 뒤 그녀들을 따로 떼어놓은 불릿.

정력과는 별개로 여자에만 열중하면 그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것이다.

부부의 사이가 알콩달콩한 것도 보기엔 좋을지 모르나 지나치게 끈적해진 면도 없잖아 있기에 자제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게 모처럼 만의 가신회의가 열리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가신들도 이렇게 모인 것은 근 한 달만의 일이었기에 저마다 소식을 주고받으며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 자리가 이어있기도 했고,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죽은 자들도 있는지 공석인 자리 중에는 백장미나 튤립 등의 꽃들이 놓여있는 상태.

하지만 이들이 이러한 잡담을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니었다.

“불릿 폰 바포 백작각하께서 입실하십니다.”

덜걱.

드르륵-.

상하지위의 고하를 두지 않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커다란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위풍도 당당하게 불릿이 들어섰다.

뚜벅, 뚜벅.

정면만을 보며 들어선 불릿은 구둣굽 소리를 내며 뚜벅뚜벅 들어오고선 상석에 착석했다.

그런 후에야 주변을 둘러보더니 진중하게 말을 내뱉었다.

“착석.”

차차착.

그의 말과 동시에 가신들이 자리에 앉으니 마치 도미노가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갑작스런 사건에도 모두 대응을 잘 해주었다.”

“아닙니다, 각하.”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영주님의 은덕 덕분이 아닐런지요.”

흡사 아부와 비슷한 말이었지만 불릿과 흙덩이의 활약이 지대했다는 점에서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둘이 아니었더라면 하급 마물이 포함된 몬스터 군단이 바포 변경백 내부로 들이닥쳤을 것이고, 그렇게 됐다면 각지로 퍼져있는 병력으로 인해 각각의 영지가 각개격파를 당했을지 몰랐었다.

“모두가 잘 대응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여신의 품에 돌아간 이들 또한 적지 않다.”

불릿의 말대로 원탁의 가장자리엔 여러 꽃다발이 놓여 있었고, 중앙에도 수많은 꽃으로 수놓인 탑이 쌓인 상태.

그의 말에 따라 장내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모두 숙연해진 자세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렇게 잠시간 추모의 분위기를 띤 회장은 불릿의 목소리로 다시 전환을 띠게 되었다.

“자, 안타까운 일은 어쩔 수 없는 부분, 그들의 과업을 우리가 이어주는 것 또한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겠지.”

이렇게 말문을 연 불릿은 어디서 외워온 것인지 장문의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다들 서신을 받아서 알겠지만 바스톤에서의 비극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물경 4천에 이르는 몬스터 군단과 다섯 마리의 하급 마물, 몬스터 웨이브라 할지라도 하급 마물은 각기 따로 행동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전번보다 일찍 시작된 이번 몬스터 웨이브 또한 흑마법사의 소행이 분명하다.”

동물을 테이밍하는 마법이 일루젼학파에 있긴 했었으나 몬스터나 마물과 같이 사악한 생물에게도 통하는 마법은 오직 흑마법사만이 가능했다.

흑마법사 마법의 근본이 마기에 의존하고 있었고, 몬스터와 마물 또한 마기가 힘의 근원이었으니 서로 상통하는 부분이었기에.

마물이 다섯이나 뭉쳐서 성 하나만을 노린다는 것은 명명백백, 이 만큼 확실한 정확도 없었다.

증거가 없더라도 증인이 수천 명이면 그게 바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빈약하긴 하지만 마물의 사체도 일부 남아 있었으니 보여줄 만한 물품도 있다.

“감언이설로 자네들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은 없다. 그러나 죽은 자들 중에 자네들과 친한 자들도 있고, 그 슬픔을 감당해야하는 남은 자들의 삶도 생각해줬으면 싶군.”

친인의 죽음, 그것만큼 괴로운 것이 인간에게 있을지 불릿은 모르겠다.

부모가 죽었을 때, 그는 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지킨다는 생각에 실성하는 것을 면했다.

불릿처럼 확고한 목표가 없다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따라 죽음을 택하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올해는 내부를 다지는 데에 힘을 쓸 것이다.”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듯 하더니 선회하는 말에 한 가신이 입을 열었다.

“리안의 죽음을 외면하실 겁니까?”

리안이라는 자의 죽음에 격분했는지 불릿도, 수행원인 사무예드도 지목하지 않았음에도 몸을 부르르 떨며 외치는 그에게 불릿이 대꾸했다.

“내실을 안정시킨 후 내년에 투툰 후작과 구울 백작을 중심으로 연합을 구성하여 토벌할 것이다.”

웅성웅성-.

아까보다 더욱 심한 소란스러움. 투툰 후작의 얘기가 나온 것도 놀랍지만 구울 백작은 손을 잡을 여지도 없는 자였다.

그런데 이런 말이 나왔으니 놀라지 않고서야 바포 변경백의 가신이 아닐 것이다.

아직 자리에 앉지 않은 가신이 그들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왕국의 중심인 두 파벌을 끌어들인다면 다른 군벌도 자연히 토벌에 참여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러실 건지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아니면 논의를 통해 선정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랬다면 주제를 던져놓은 후 한발 물러나서 주제가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만 주었겠지.”

그의 분노를 불릿도 이해하지만 지나치게 나서는 듯해 사무예드를 통해 그를 자리에 앉혔다.

그런 다음 불릿은 생각을 정리한 후 준비했던 말들을 꺼내놓았다.

“먼저 투툰 후작에게 연합을 제의할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선 선봉에 삼광(三光) 셰실리코프가 설 것이다. 다들 그의 연애관에 대해선 들어서 알고 있겠지?”

셰실리코프가 5공녀를 덮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가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흑마법사만 아니었더라면 근래의 가장 큰 화두는 언제 투툰 후작의 분노가 바포 변경백을 휩쓸 것이냐는 것이었다.

불릿이 상급 정령사라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수확제가 끝나고 나면 5공녀를 집중 공략, 흠. 공략이라기보다는 둘의 사랑을 이어준다고 해야겠군. 셰실리코프도 남작에 올랐으니 일단 최소한의 격은 맞췄다.”

그 다음은 불릿이 나서서 중매를 서준다는 것인데, 당사자인 셰실리코프와 5공녀 션샤인보다는 불릿과 투툰 후작이 어떤 식으로 교섭에 성공하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우리가 투툰 후작의 힘을 노리고 접근 한 것은 아니지만, 둘이 이어진다면 그로 인해 파생될 영향 또한 적지 않다.”

영토, 명예, 군사, 금력 등 부족한 것이 없는 투툰 후작.

루드밀라는 물론 란푸스 왕국 또한 허수아비가 된 왕실보다는 일개 후작일 뿐인 투툰가를 더욱 경계했다.

그만큼 대단한 진(眞)의 이름을 잇는 자, 서로가 진의 이름을 잇고 있으니 그걸 가지고 교섭을 시도해볼 불릿.

“투툰 후작과의 연계가 성공하면 구울 백작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알 라스 폰 구울 백작은 야심은 대단하지만 투툰 후작과 불릿에 억눌려 제대로 날뛰지 못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불릿이 군벌과 연합체의 농간으로 결사대에 참전하느라 영토에서 자리를 비우는 사이 침묵을 지키는 투툰 후작을 잊었는지 맘대로 날뛰고 있었다.

결국엔 중립지역으로 유명한 왕실의 중립지역까지 넘보고 있으니 중립지역의 무도회장을 자주 찾는 5공녀로선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상태.

이 점을 빌미로 서로간의 대화와 타협을 볼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얕보여선 안 되는 문제였기에 내실을 다지자는 소리였다. 이제 이해가 가는가?”

이 말을 내뱉기 위해 불릿이 장황하게 설명을 했던 것이고, 그의 말을 듣던 가신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화를 내던 가신도 얼굴을 붉힌 채 자신의 경솔함을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죄하는 것으로 잘못을 뉘우쳤다.

“각지의 영주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이니 이후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계획은 이렇다는 것이니 다들 새겨듣기만 하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예, 대영주님.”

군단장인 레너드 자작도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를 정상범주로 돌려놓은 후 수확제가 되어서야 중앙영지로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사무예드, 이우우스가 건네줬던 자료를 가신들에게 나눠주고 우리의 영토가 어떤 상황인지 비교분석하며 적절한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일을 진행하게.”

“그리하겠습니다, 대영주님.”

“그럼 본인은 먼저 가보도록하지.”

불릿이 자리를 비운다하여 회의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릿이 사라져야 진짜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그가 사라져 주는 것이 원활한 회의의 진행을 위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문지기들이 문을 열어주었고, 사무예드가 예전 불릿의 수행원인 이우우스가 했던 데로 따라하였다.

“대영주님께 대하여, 충성!”

* * *

몬스터 웨이브라는 큰 고난을 겪었으나 이것을 이겨내고 난 뒤의 바포 변경백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다른 지역의 피해가 워낙 극심해 수확제를 그냥 넘길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대륙 전역에서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인 수확제를 치루지 못한다는 것은 상황이 엄청 나쁘다는 소리였다.

그러한 와중에 불릿의 영토는 그래도 먹을 걱정은 없다는 점에서 가장 큰 점수를 부여해줄 수 있었다.

‘맛은 없지만.’

먹을 수 있다는 거지 맛은 최악, 음식점에서 차마 팔 수 없는 맛의 곡물들이었다.

그래도 올해만 넘기면 내년부턴 제대로 된 작물을 기를 수 있으니 난민들의 입장에선 집도 주고 식량도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인 것이다.

기존의 사람들이 많이 죽어 자리가 비어 일거리도 많으니 열심히만 하면 걱정 뚝, 행복 시작? 이면 좋겠다.

“흠, 불모의 황무지에선 여전히 반응 없음이라….”

마탑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무언가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적막이 흐를 정도로 잠잠하단다.

흙덩이에게도 부탁해 저번에 발견했었던 검은 실이 이어져 있는지 확인했지만 이젠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했다.

대지의 기억을 읽어도 알 수 있는 사항이 없으니 미루고 미루었던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불릿.

“마수의 숲으로 가야겠지.”

마수의 숲, 그곳엔 가이아 여신이 언급했던 현세에 강림한 마의 화신, 72군주의 서열 1위 아스타로트를 죽일 수 있는 자가 불릿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은 우락크, 대륙에 오크를 퍼뜨린 장본인이며 한때 신이었던 마스터의 경지를 지닌 자였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검은 귀 부족의 족장이기도 했으니 그를 만나러 가는 것만도 단단히 준비를 해야만 했다.

깊은 심처에서 살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러나 몬스터 웨이브로 기존의 몬스터들의 개체수가 급감했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러 향하지 않으면 또 다시 불어난 놈들로 인해 그곳까지 향하는 길은 험난해질 것이다.

마수의 숲으로의 여정, 그것은 수확제가 끝난 직후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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