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207화 (207/241)

00207  몬스터 웨이브  =========================================================================

성으로 들어온 불릿은 자신이 딱히 할 일이 없자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몬스터는 출몰하고 있었지만,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거나 아니면 불릿이 아니어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반적인 소형 몬스터라면 돈이 들더라도 용병을 고용해 처리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흐음….”

그가 내는 신음에 디저트를 먹던 셰실리코프가 흠칫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시는 점이라도?”

“음? 아닐세.”

“그렇습니까….”

“냠냠냠.”

온종일 낮잠을 즐기던 흙덩이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방에서 기어 나왔는데, 그럼에도 미모가 상하질 않았으니 올리비아나 유실리아처럼 인간출신(?)의 여자들과는 차이가 났다.

“과연 여신의 딸….”

“웅?”

오물오물 디저트를 먹던 흙덩이가 그를 쳐다보자 실언을 했다는 생각에 불릿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여신의 딸 같은 미모를 지녔다고. 예쁘다, 우리 흙덩이.”

“헤헤, 이거 먹을래?”

케이크 조각을 포크로 찍어서 내미는 그녀의 손길에 불릿은 사양하지 않고 입에 물고서 셰실리코프를 쳐다보았다.

“음음, 그래서 말인데, 꿀꺽!…실례했군.”

“괜찮습니다. 전시상황인데 여기서까지 예의를 지킬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서, 음. 이곳은 더 이상 우리가 둘러볼 필요가 없는 것 같으니 내일이라도 떠날 생각일세.”

불릿의 말에 디저트를 먹던 흙덩이의 포크가 멈췄다.

멈칫.

“우리 안 쉬어? 흙덩이 피곤하고 힘든데?”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에는 언제나 흔들리는 불릿의 마음.

하지만 이전에 있었던 부인들의 간청을 저버리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쉬운 난관이었다.

“빨리 끝내야 빨리 쉬지. 우리 흙덩이, 수확제는 꼭 해보고 싶다했었지?”

“응! 수확제 할래! 저번에 암 것도 못하고, 노는 거 아무것도 못했어.”

아이를 달래는 데엔 먹는 것과 노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비단 흙덩이뿐만 아니라 올리비아도 이곳에 와서 딱히 축제를 즐긴 적이 없었으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수확제를 벌이려면 몬스터 웨이브를 빨리 끝낼수록 좋단다. 그래야 밭도 가꿀 수 있고, 음식도 만들 수 있지.”

“하지만 힘든데, 히잉….”

수확제로 유혹하더라도 당장 힘들고 지친 심신이 발목을 잡았다.

적어도 두 달은 더 남은 수확제보단 당장 따뜻하고 안락한 침대가 그리운 상태였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주면 가겠니?”

그녀의 의견도 받아들여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며 달래주려 하니, 흙덩이가 포크를 든 손을 꼼지락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면서 해주면 좋을 것…같아….”

“…각하?”

설마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인지 되묻는 삼광의 물음에 불릿은 재빨리 흙덩이의 소망에 대꾸했다.

“정령력도 충분하고 다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니. 나중에, 나중에 하자. 올리비아랑 유실리아 보고 싶지?”

“올리비아랑 유실리아랑 같이 놀면 재밌긴 한데 기분 좋진 않아. 막, 불릿이 에- 해주는 것보단 재미없어.”

혀를 내민 후 오므리며 그가 빨아주던 것을 따라하는 흙덩이에게 불릿은 셰실리코프의 눈치를 보며 당황했다.

당장 시중을 드는 하녀들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들은 눈치인지라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뭔 말만 하면….”

“나 싫어? 흙덩이 싫어?”

그걸 들었는지 눈물이 또옥 떨어지자 거세게 부정하는 불릿.

“절대 아니지! …오늘 밤에 대신 하는 걸로…흠흠, 알았지?”

“응! 알았어! 나 잠 많이 잤으니까 밤에 안 자도 돼!”

“나는 잠이 필요하다만….”

“헤헤, 기대된다!”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오늘 불릿은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엄청 많이.

* * *

쏴아아…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어느새 장맛비로 변해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소나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면 이런 거구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름의 장맛비가 아니겠는가?

누군가 빗소리는 어머니의 심장 고동과 비슷하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밤에 내리는 비는 사람을 한층 더 감상적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후우.”

테라스의 난간에 팔을 대고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불릿.

그는 시원하게 내리는 비와는 별개로 온통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간신히 흙덩이를 연속으로 절정에 다다르게 만든 후 치유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끔 숨이 막히는 진공키스로 정신을 혼미하게 해 실신하듯 잠재웠다.

“다른 건 다 양보하면서 이것만은 탐욕스럽기 그지없군.”

그녀의 치유능력을 받지 못했기에 모든 걸 발산한 불릿은 자신도 흙덩이의 품에서 잠들고 싶었으나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생각이 많았다.

“왜 서신에 답을 보내지 않는 걸까….”

벌써 3주에 접어드는 시점에도 그녀들에게서 서신에 대한 답장이 오질 않았다.

그것은 불릿이 계속해서 이동하는 것도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면 미리 도착할 지역에 보내면 되는 것이었기에 이유라고 보기엔 빈약했다.

불릿의 정보통인 총집사 밴에게도 서신을 보냈으나 형식적인 안부와 다른 영지들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외하면 역시 알만한 대답은 없었다.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것인가.”

역시 답장을 안 하는 이유라면 그것밖에 없었다. 처절하게 그를 잡았으나 그녀들을 뿌리친 후 자신의 손을 잡고서 성을 떠나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던 흙덩이를 데리고 성을 나온 일.

불릿이 처음으로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건이었기에 잊을 수가 없었다.

힐긋 뒤를 돌아보니 만족스런 미소를 띤 채 깊은 잠에 빠져든 흙덩이의 나신이 보이고 있었다.

흙덩이를 보자니 올리비아와 유실리아의 나신도 자연스레 떠오르자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애써 생각을 지웠다.

‘빨리 끝내는 게 최선이겠지.’

이미 시작한 일, 중도에 끝낸다면 그녀들에게 또 다른 실망을 안겨줄 뿐이었다.

차라리 확실하게 일을 끝마친 후 불모의 황무지로 진격, 흑마법사를 소탕하고 나면 그때부턴 행복한 신혼행활(?)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우웅, 부리이….”

부스럭거리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잠꼬대에 고민에 잠기면서도 슬쩍 미소가 어리게 된다.

“다음에 할 땐 삼일밤낮으로 도전해볼까.”

농담이긴 하지만 이미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응응(?)만 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불가능하진 않았다.

다만, 올리비아와 유실리아가 그걸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지만.

다시 그녀들을 떠올리니 금세 우울해지기 시작한 불릿.

기분이 가라앉으니 생각도 그에 걸맞은 부분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우락크라….”

가이아 여신이 알려준 현세에 강림한 72악마군주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의 도움을 받아야만 서열 1위가 되어버린 아스타로트를 없앨 수 있다하였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선 모순 또한 존재했으니.

‘그때 소환됐었던 마족은 뭐지?’

결사대 전원이 죽음과 맞바꾸어 처치한 이름 모를 마족.

불릿이 생각하기에 그 정도 인원이면 72악마군주라 할지라도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 생각했다.

그런데도 최후의 수로 남겨두었던 희생술, 라그나로크를 발동해서야 간신히 잠재웠던 존재.

솔직히 72악마군주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그때 그 마족이 살아남아서 일을 꾸민 건 아니었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놈은 남성체, 아스타로트는 여신으로 일컬어지니 맞지 않았다.

“우락크는 어째서 마물을 그대로 보내준 것이지?”

마스터의 경지라는 우락크. 그는 대륙을 떠도는 오크들의 창조자격인 자였으니 한때 신이었던 자로서 그 힘이 막강할 것이다.

신격을 잃었다한들 흙덩이만 하더라도 다른 정령들과 얼마나 차이 나는 수준이던가?

그게 아니더라도 마스터라 하면 하급 마물쯤이야 쉬이 없앨 수 있을 것이고, 마계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였으니 마물이 나타났다하면 이를 막아서는 것이 마땅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우락크 또한 별로 썩 믿음직해보이지 않았다.

“이럴 거면 대체 무엇하러 결사대에 참전했던 것인지 모르겠군.”

모든 걸 내던지며 자신을 희생한 결사대가 바보였던 것처럼 느껴지는 불릿.

그가 생각하기에 우락크 또한 이리저리 재보며 행동하는 속물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강대한 마물들을 숲 밖으로 내보낼 생각을 했겠는가?

그것도 명색이 마계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말이다.

불릿도 근래 들어서 가끔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모든 걸 내던지고 부인들만 데리고서 어디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까, 하는 그런 생각.

적당한 후계를 선정한 후 건드리지만 않으면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하거나 아니면 대영주답게 큰일만 처리하며 오순도순 살거나 말이다.

‘용병생활도 나쁘진 않았지.’

방이 부족해 셋이서 한방생활을 하던 그때, 지금처럼 아기만들기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풋풋한 분위기를 풍겨서 더욱 좋았던 때도 있었다.

동료로서, 그리고 호감이 가는 이성으로서 서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생활.

흙덩이가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을 보며 기특해하던 때를 말이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감시당하지 않고, 자신과 올리비아, 흙덩이만 챙기면 되는 단출한 생활이 너무도 편했었다.

‘…그만둘까.’

육체가 젊어졌기에 41이라는 나이가 아니라 신체에 걸맞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늙은이라거나 도둑놈소리를 듣지 않고 부부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부작용이랄까, 그만큼 성급하고 짧은 판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이 있기에 일을 그르치는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위험한 상황은 꾸준히 이어지는 상태였다.

그래서 올리비아의 서신을 받지 못하고 흙덩이의 보챔에 여정에 대한 회의감이 들고 있었다.

“제길.”

결국 입 밖으로 욕설이 삐져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아무리 대영주로서의 책임감에 움직여도 결국 사람인지라 개인으로 보자면 약한 마음이 없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

“내일 1, 2구역으로 향하고, 상황을 점검한 후 중앙으로 복귀할지 말지 결정하자.”

결국 일정을 변경하는 그였지만 딱히 그를 욕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세상 그 어느 곳의 대영주가 부인과 단 둘이 정체를 숨기며 백성들을 구하러 다니겠는가?

게다가 가정불화(?)까지 감당하면서 말이다.

목숨의 위협도 질릴 만치 겪었기에 불릿은 이미 할 만큼 했다.

바스톤에서 큰일도 하나 해치웠으니 이 이상 그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면 사람들도 염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결정한 불릿은 잠시간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쏴아아아-

몬스터의 침입을 막아주던 성벽에 부딪히는 차가운 빗방울의 소리.

그것에 귀를 기울이면 세상의 고민은 점점 작아져가며 졸음이 쏟아지는 듯했다.

“…졸립군.”

한바탕 땀을 흘린 후에 옷을 걸쳐 입은 상태로 테라스에 장시간 서있었더니 으슬으슬 추위가 몸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뒤에서 뒤척이던 흙덩이가 떠올라 혹여 감기라도 걸릴까봐 상념은 이쯤하기로 결정한 불릿은 테라스의 창문을 닫고서 흙덩이의 매혹적인 나신이 드러나 있는 침대로 등을 뉘였다.

“우응….”

부스럭.

침대가 살짝 가라앉자 옆으로 누워있던 그녀는 봉긋한 가슴이 솟게 몸을 바로 했다.

그런 그녀를 보자 살짝 욕구가 동한 불릿이었지만 내일을 위해 참기로 하고, 누워있어도 그 크기가 남다른 F나 되는 흙덩이의 가슴을 주무르며 잠자리에 들었다.

주물주물-.

“히읏….”

잠들었으면서도 애무와 가까운 손길에 홍조가 올라오며 비음을 흘리는 흙덩이를 보며 불릿도 눈을 감았다.

‘껴안는 것 정돈 되겠지.’

그녀의 허벅지에 닿은 불릿의 아들(?)을 보면 쉬이 잠들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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