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194화 (194/241)

00194  몬스터 웨이브  =========================================================================

‘동선은 원을 그리듯 이동해야겠군.’

중앙영지에서 아래로 이동한 후 조금씩 위로 올라가면 마수의 숲을 지나 주인 없는 땅이 되어버린 1, 2구역에 도달할 것이다.

그 후 불모의 황무지와 인접한 카텐령과 카질런 남작령, 베니스 남작령의 인근 마을을 순회하면 몬스터 웨이브가 끝나리라.

‘그때까지 끝나길 바라야겠지.’

어느새 잠이라도 든 것인지 눈을 감고 나무에 기댄채 새액새액 숨을 내쉬는 흙덩이.

그녀를 보면 불릿은 언제나 미안한 마음밖에 없었다.

“불꽃놀이에 데려가주지도 못했군.”

땀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가 볼을 타고 흐르자 그것을 손등으로 닦아주니 부르르 떤다.

“추어….”

“녀석.”

덥다고 하더니 금세 춥다면서 몸을 웅크리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이런 흙덩이에게 살육을 강요해야하는 자신이 못났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꾸벅, 꾸벅.

“나까지 졸리는군.”

흐릿해진 시선을 바로잡기 위해 눈을 비볐으나 이미 몰려들기 시작한 수마를 이기기란 어려웠다.

근 하루를 걷기만 했으니 그럴 만도 했는데, 불릿은 흙덩이의 옆에 살짝 자리를 잡고서 홀로 중얼거렸다.

“잠깐 눈만 붙이자.”

잠은 제대로 된 곳에서 자야했기에 흐릿해진 시야를 회복하려고 잠깐 눈만 감으려면 불릿은 어느새 흙덩이와 같이 고른 호흡을 보이며 잠에 빠져들었다

투두두둑.

투둑, 후두둑-.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리며 땅을 적셔가고 있었다.

부스럭.

흠칫.

불릿은 얕은 잠에 빠져있던 상태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슬쩍 눈을 반개해 주변을 둘러봤으나 소리의 근원지는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인가?’

그렇다곤 해도 이런 장소에서 함부로 잠에 빠진 것은 실책이었기에 천천히 등에서 창대를 빼내 창날을 연결시켰다.

철…컥….

혹시나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느릿한 움직임으로 창날을 끼워 넣은 후 흙덩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흙덩아, 일어나.”

“우웅…나 아직 졸려….”

“쉿, 조용히.”

“응? 읍.”

잠에서 덜 깬 흙덩이의 목소리가 크자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후 주변을 살피는 불릿.

그렇게 1분, 5분, 10분이 지나서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자 그녀의 입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푸햐! 불릿 손에 침 묻었어.”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겠다. 가자.”

흙덩이의 말에 불릿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옷에 슥슥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흙덩이도 그를 따라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크왕!”

갑작스레 나타난 몬스터로 인해 흙덩이의 몸이 경직되자 불릿은 명령을 내릴 틈도 없이 창을 내질렀다.

“하!”

푹!

“깨갱깽!”

불릿이 기합과 함께 내지른 창엔 늑대가 걸려들었다. 다만 평범한 늑대와 다른 점은 그 크기가 족히 2배는 되었다는 것이다.

늑대에겐 불행이었는지 하필 입을 벌린 순간 불릿의 창이 내질러졌기에 그대로 내부 깊숙한 곳을 관통 당했고,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쿵-.

“크윽.”

덩치가 산만했기에 그대로 창에 딸려나가던 불릿은 지레 겁을 먹은 흙덩이에게 소리쳤다.

“흙덩아! 주변! 경계! 공격수단 지옥송곳!”

“으, 응! 알았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흙덩이는 정령력을 개방해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부, 불릿! 엄청 많아!”

“얼마나!”

푸슉.

간신히 창을 빼낸 불릿이 물음을 던지자 흙덩이는 도리질을 치며 울상이 됐다.

“몰라! 많아! 악, 온다!”

울창한 수풀림에 둘러싸인 탓인지 그녀는 불모의 황무지에서처럼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인간이 되고서는 처음으로 마주한 상황이라 그런지 혼란스러워했다.

이럴 때 움직여야하는 것은 경험이 풍부한 불릿일 것이다.

“우리를 기준으로 돌벽 5개 사방으로 펼쳐!”

“돌벽!”

드드드득-

퍽! 퍼버벅!

“깨갱!”

“컹.”

타이밍도 좋게 돌벽이 올라오는 순간 몸을 숨기고 있던 늑대들이 거기에 부딪혔는데,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어디서 습격하는지 몰랐으니 경지가 어떻고 간에 그대로 당할 팔자였다.

사방을 꽉꽉 채운 돌벽 덕분에 불릿과 흙덩이는 마치 바위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 컹! 컹컹!

- 으르르…컹컹컹!

늑대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카가가각 긁히는 돌벽. 이에 흙덩이는 어두컴컴한 돌벽 속에서 벌벌 떨었다.

“무서워, 싫어!”

“진정해, 흙덩아!”

“우리 돌아가자, 응? 돌아가자 불릿!”

정신체 시절(정령)과는 다르게 육체의 영향을 그대로 받자 흙덩이는 겁에 질릴 대로 질려있었다.

인간이 된 뒤로 펼쳤던 정령술들은 하나같이 멀리서 펼쳤기에 자신이 무얼 죽였다는 실감이 나질 않았었는데, 돌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대한 늑대들이 울부짖으니 10살이라는 나이 대에서 이를 감당키엔 역부족이었다.

‘내 실책이다, 이런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니.’

불릿은 그저 자신과 흙덩이가 상급 정령사와 정령으로서의 역할수행이 잘 이루어질까, 몬스터의 수준과 그 수가 얼마나 될지 만을 생각했었다.

그는 저번에 보인 올리비아, 유실리아, 그리고 흙덩이의 반응을 보고서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에 넣었어야 했다.

감정의 폭이 훨씬 넓어진 흙덩이가 기쁨이나 슬픔만이 아니라 공포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는가?

지금 밖에서 짖어대는 늑대들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불릿 자신이 문제였던 것이다.

“흙덩아.”

“무서워, 무서워.”

- 컹컹!

“흐이익!”

꽈과광!

무슨 날이라도 겹친 모양인지 때마침 천둥번개까지 몰아치자 돌벽으로 둘러싸인 실금의 틈새로 빛이 번쩍했다.

마치 누군가가 불릿을 탓하는 듯했는데, 그는 흙덩이를 품속에 가둬둔 채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가이아 여신이 날 꾸짖는 것인가?’

대지의 최고위 신인 그녀라면 어떤 수를 써서 번개도 내려칠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니 자신이 얼마나 못나게 행동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되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꽈아악-.

“흙덩아.”

“오, 오빠, 무서워!”

덜덜덜.

그녀의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나 그는 주변의 환경에 아랑곳 않고 나지막이 말을 읊조렸다.

“저놈들은 다이어 울프, 예전에 봤었나?”

“몰라몰라, 돌아가자!”

“놈들은 짐승이다. 너에게 발끝하나 못대.”

“…정말?”

“그럼, 언제 오빠가 거짓말하는 거 봤니?”

“응.”

“…….”

“거짓말쟁이, 짐승, 바보.”

“크흠.”

예전의 패턴으로 돌아가려하자 불릿은 기침을 뱉으며 분위기를 다시 잡았다.

“지금도 우리 흙덩이가 정령술 하나만 일으켜도 저놈들은 금세 죽을걸?”

“죽는 거 싫어, 무섭고 외로운 거야. 그래서 이제 더는 죽이기 싫어.”

“…음?”

예상외의 말이었다. 단순히 겁에 질린 줄 알았는데 어떤 이유가 있는 듯해서 불릿은 어둠속에서 윤곽만 드러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음을 건넸다.

“왜 무섭고 외로운 거니?”

“불릿이 쓰러졌을 때, 화나서 흑마법사 죽였어. 그런데 불릿이 일어나질 않으니까 나도 막 아파서, 옆에 올리비아랑 유실리아 있어도 나 혼자라고 느꼈어.”

“…….”

“그래서 죽는 건 무섭고 외로운 거야. 내가 죽으면 옆에 불릿이 있어도 나는 알 수가 없어, 느낄 수가 없어. 사랑할 수가 없어….”

꼬옥.

어느새 그녀의 떨림은 멈췄으나 축축이 적셔가는 옷으로 흙덩이의 슬픔이 전해져왔다.

그녀가 이런 고민을 안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불릿은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스윽스윽.

“우리 흙덩이,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킁, 어른? 나 이미 어른인데?”

- 컹컹컹! 으르릉…

밖에선 여전히 벽을 박박 긁으며 틈새 사이로 둘을 노려보는 거대 늑대, 다이어 울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자 불릿도, 흙덩이도 자연스레 긴장이 풀리는 와중이다.

“그런 고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어른이 되간다는 거야. 어른은 원래 고민이 많거든.”

“나 아기도 낳을 수 있잖아?”

“아니, 그건…육체적으로 말고, 정신적 측면에서도 성장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훌쩍, 이상해. 그래도 흙덩이 사람 됐으니까 열심히 배울게.”

원래부터 사람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흙덩이의 대꾸에 불릿은 틈새 사이로 얼굴을 디미는 다이어 울프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흙덩아, 보이지 않더라도 지옥송곳은 가능하지?”

“훌쩍. 밖에 늑대들 89마리 있어. 훌쩍.”

“…? 아, 그렇구나.”

겁을 집어먹은 줄 알았더니 그 사이에 늑대들이 몇 마리나 되는지 세기까지 한 흙덩이.

역시 10살(….)이란 것을 감안하면 기특하다 못해 영특하다.

그녀의 대답에 불릿은 그녀를 품에 꼭 안고서 정령력을 흘려보냈다.

“피나는 건 싫으니까, 돌벽에서 주먹 쾅을 한번 쏴볼래?”

“될 것 같긴 한데, 괜찮아? 힘 엄청 많이 쓰는데.”

이젠 사용하지 못하는 주먹 쾅은 타격기이기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돌벽에서 튀어나가게 만들려면 추진력도 필요했기에 단순히 지옥송곳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더욱 많은 정령력이 소모된다.

굳이 쉽고 간편한 송곳형태를 놔두고 단순히 미관상의 이유로 그런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흙덩이는 그의 바람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정령력 쓰고 나면 그거…할 거야?”

기술을 발동하기 직전 흙덩이가 수줍게 물어오자, 불릿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뽀뽀까지만.”

“헤헤, 알았어!”

우우웅!

그녀가 정령력을 끌어올리자 어두웠던 돌벽의 안쪽에선 빛이 뿜어졌고, 드디어 흙덩이가 외쳤다.

“주먹 쾅!”

콰과과광-!!

투콰아아앙-!!

거센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주변이 흔들리자 불릿은 돌벽을 짚으며 간신히 신형을 세웠다.

“…?!? 뭐, 뭐야 이거! 너무 강하잖아!”

“힉, 이, 이거 모야??”

자기가 펼쳐놓고도 깜짝 놀랐는지 혀 짧은 소리를 내는 흙덩이.

그런 그녀를 내버려두고 불릿은 돌벽의 틈새로 귀를 기울였다.

우르릉…

쿠구구구-, 쾅!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와 돌이 쩍 갈라지는 소리, 그러나 그 안에 다이어 울프의 울음소리는 없었다.

“흙덩아, 놈들은?”

“0마리, 없어.”

“돌벽 해제.”

“해제! 흐익….”

드드드득-

돌벽이 바닥으로 녹아내리듯 사라지자 그들의 시야엔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천재지벽이라도 벌어진 듯 땅거죽은 뒤집혀 있었고, 곳곳에 붉은 핏물과 함께 살점과 내장조각이 보여 역겨운 광경을 일으키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지 않았다면 역한 냄새를 맡고 가녀린 흙덩이가 토악질을 했을지도 모를 상황, 하지만 흙덩이가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그녀의 눈을 가리지는 않은 불릿이었다.

“…장난 아니군. 흙덩아, 대체 정령력을 얼마나 사용한 거니?”

“흐이이, 이게 뭐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해서 놀라지 않을 수는 없다. 흙덩이는 자신이 만든 처참한 광경에 놀라서 신음만 흘리는 중이었다.

그녀의 심신이 불안정해 보이자 불릿은 그녀의 얼굴을 잡고 혀를 빨아 당겼다.

뽀옹…

“헉.”

“진정하고, 내게 가져갔던 정령력에서 얼마나 쓴 거야?”

불릿은 체감상 절반정도의 정령력을 흙덩이에게 넣어주었는데,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죽음의 대지가 불릿의 총 정령력으로 2번에서 3번 정도 시전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흙덩이는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무언가를 세다가 크게 외쳤다.

“불릿이 넣어준 거에서 1개 썼어!”

“그렇게 말하면 내가 모르잖니.”

“10개에서 1개!”

“…?? 방금 뭐라고 했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빗물이 흐르는 얼굴을 문지른 불릿이 다시 묻자 흙덩이는 후드를 뒤집어쓰며 다시 외쳤다.

“10개 준거에서 1개 썼어!”

“??? 미친, 장모님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아마 지금 이 순간도 흙덩이를 통해 내려다보고 있는 가이아 여신은 불릿의 독백에 이렇게 답할 것이다.

‘줘도 지랄.’이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