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0 상처 입은 올리비아의 마음 =========================================================================
흑마법사의 지하공동에 다녀오고 나니 불릿은 얼마간의 여유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아직 토벌령이 내려진 것도 아니었고, 불릿이 이전보다 더욱 건강해지면서 변경백의 경제도 원활히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중앙영지로 돌아온 상태였기에 당분간은 카텐령으로 향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여름이라서 그런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실내에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아 나름 쾌적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삐걱, 삐걱.
“오, 올리비아! 밤에, 밤에 하자고!”
“싫어! 지금 해!”
“하다못해 침실로라도!”
“못 기다려! 벗어!(?)”
그러나 예상외의 복병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올리비아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불릿을 덮쳐왔는데, 그동안의 불안감 때문에 그를 도통 놓아주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자에 앉은 상태인 불릿의 바지를 벗기려 다짜고짜 벨트를 풀어가고 있었다.
“그만! 그만하라고!”
“아기 만들자며! 빨리 세워!(??)”
“아일렌! 루나! 와서 올리비아를 말려라!”
그녀가 지나칠 정도로 이성을 잃자 불릿은 그녀의 전속하녀인 루나와 호위기사인 아일렌을 불렀고, 예상대로 복도에서 대기 중이었는지 그녀들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올리비아를 불릿에게서 떼어놓았다.
“이거 놔! 나를 불릿에게서 떼어놓지 마! 불릿! 불릿!”
처절할 정도로 애원하기 시작하자 아일렌과 루나는 어쩌면 좋을지를 몰라 불릿에게 눈빛으로 구원요청을 보냈다.
“각하, 어찌합니까?”
“이러시면 안돼요, 마님!”
“놓으라고! 불릿! 안아줘, 불릿!”
드레스를 입은 것도 잊었는지 그녀가 격하게 발버둥을 치자 그것이 안쓰러웠는지 불릿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후우, 아일렌, 루나. 그녀를 놓아주거라.”
“예, 각하.”
“마님, 대영주님께 무례하게 구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네?”
루나의 조언에도 올리비아는 이를 듣지 못했는지 단번에 불릿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불릿!”
풀썩!
의자에 앉아있던 그의 품에 그녀는 날아들 듯 다가왔고, 주저앉은 자세로 그의 허벅지에 볼을 비볐다.
“나 사랑하지, 그렇지?”
“진정해, 올리비아. 나는 건강하고 너도 회복되었다. 아무도 죽지 않아.”
“불릿, 불릿….”
‘증상이 조금 심하군.’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올리비아에게 불릿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엔 자신이 몸을 함부로 굴리다 죽음을 직면했었기에 그럴 것이다.
사실 가이아 여신이 아니었더라면 불릿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기정사실 말고.(?)
자신을 애타게 찾던 올리비아가 어느새 벨트를 풀어내서 저 멀리 던져놓자 불릿은 그녀의 손을 덥썩 잡고서 입을 맞추었다.
“불…흡!”
“쪽, 츄릅-.”
아예 말도 못하게 혀를 엉켜놓은 후 강하게 끌어안자 바동대던 그녀는 이내 축 늘어지며 불릿의 손길에 따라 몸을 맡겼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소드익스퍼트의 힘으로 불릿을 제압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사랑이 듬뿍 담긴 혀놀림(?)을 받으면 아무리 여장부인 올리비아라도 당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아일렌과 루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긴 입맞춤을 끝낸 불릿이 말문을 열었다.
“나는 바포 변경백의 대영주인 불릿 폰 바포 백작이다. 무엇이 두려워 그리 행동하는 것이지?”
“하지만, 하지만 무섭단 말이야….”
“무엇이?”
불릿이 재차 물어오자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울상을 지으며 대꾸를 해왔다.
“요즘엔 오빠가…흙덩이만 찾고 나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고, 유실리아까지 네 곁을 지키니까 나는,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다 이내 볼을 적시자 불릿은 한숨을 쉬며 그녀를 자신의 왼쪽무릎에 걸쳐놓았다.
터억.
“지금 흙덩이는 누구와 있지?”
“셋째부인님과 마실을 나가셨습니다.”
불릿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올리비아가 아닌 하녀 루나였다.
이에 불릿도 그녀가 받아드는 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올리비아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럼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은 누구지?”
“첫째부인이신 올리비아 마님이십니다.”
이번에 그의 물음에 응답한 것은 올리비아를 지키는 여기사 아일렌이었다.
불릿은 아일렌이 물음을 받는 게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이번엔 올리비아를 노리고선 물음을 던졌다.
“내 처음을 가져간 것은 누구지?”
“……나….”
방금 전까지 성교를 하자고 조르던 것은 어디가고 수줍어하는 요조숙녀가 불릿의 무릎에 앉혀져 있었는데, 그는 올리비아의 등허리를 감싸면서 가슴을 살짝 건드렸다.
톡.
화아악-
“옆, 옆가슴에 닿았는데….”
올리비아가 부끄러워하자 불릿은 등허리를 감싼 왼손 대신, 오른손으로 그녀의 입술을 매만지며 속삭였다.
“아이를 가지더라도 네가 처음이길 바랬다. 그래서 원하는 때에 아이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에 너희보고 피임을 하라고 한 것이고.”
“모, 몰라, 이 바보야.”
응큼한 불릿의 속삭임에 올리비아가 밀치듯 그의 가슴을 두드렸으나, 전혀 힘이 실려 있지 않아 애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올리비아,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아이? 우리가 나이를 먹어 더 이상 낳을 수 없게 될 때까지도 가능하지. 네가 원한다면.”
퍼엉.
잘 익은 토마토가 되어버린 올리비아의 얼굴. 그녀는 아까의 성난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여전히 요조숙녀 모드였다.
“그, 그건 너무 많아…요….”
“왜? 나는 그러고 싶은데. 네 아이라면 몇이라도 상관없다.”
퍼엉!
“너, 너무 그, 그러지 마아! 애들이 보고 있잖아.”
“루나, 아일렌, 너희도 올리비아의 아이가 보고 싶지 않나?”
불릿이 올리비아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물음을 던지자 아일렌과 루나가 신이 나서 대답을 하였다.
“저희는 언제나 준비되었답니다? 숨풍숨풍 아이를 낳아주셔요!”
철컥.
“도련님이든 아가씨든 언제나 모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아일렌이 허리춤에 달린 칼집을 움켜쥐며 외치자 밖에서부터 말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진입하겠습니다!”
“삼광! 아니다, 오지 마!”
“……실례했습니다, 재미보시기를.”
“크흠.”
삼광(三光) 셰실리코프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지 않고 불릿을 호위하고 있었는데, 션샤인 폰 투툰과 혼인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불릿이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것에 책임감도 느끼고 있어 이처럼 그가 있는 곳 어디서든 호위를 서고 있었는데, 안에는 여자들만 있다 보니 응응(?)을 한다고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봤지? 다들 너와 나의 사랑의 결실을 기다리고 있다. 불안해하지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아.”
“정말? 그때처럼 위험한 짓 하지 않을 거지?”
“그래. 군주답게, 대영주답게, 그리고.”
“흡!”
“쪽.”
그녀의 옆가슴을 건드리며 등허리를 감쌌던 왼손을 스치듯 빼낸 불릿은 입맞춤을 해준 후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남편답게. 아직은 너희와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아이가 갖고 싶다면 언제든 피임을 풀어라. 흙덩이는 어려서 안 되지만, 너는 상관없다. 오직 너만, 올리비아.”
“흐에에….”
달콤한 속삭임에 올리비아가 흐느적거리자 그녀를 조물조물 만져주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도록 안심시켜주던 불릿은 루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밴이 본인에게 전해주라던 말은 없던가?”
“어떻게 아셨어요? 마님과의…므훗, 끝내고 나시면 알려드리려 했는데 말이에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가리던 루나의 반응에 아일렌이 그녀의 옆구리를 콕 찌르자 화들짝 놀라는 루나.
“히약! 옆구리는 약하단 말야!”
“…쉿, 각하의 앞이시다. 하녀장님께 혼나고 싶어?”
“알았다구.”
아무리 루나가 불릿과 허물이 없더라도 신분의 격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안나야 워낙 오랫동안 불릿을 봐왔으니 어느 정도 봐줄 수 있었지만.
“어, 그래서 말이에요? 총집사님이 기사단 문제는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으셨어요.”
“라체나 말이로군.”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으니까요.”
신생 라체나를 결성하려는 시기에 종기사로 내정됐던 100여명의 인원이 사망해버렸다.
그것도 마수의 숲에서 몬스터사냥으로 단련된 정예병력이었기에 불릿은 안타까움과 그 자리를 메꿔야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그에 대해선 라체나의 구성원들이 모이면 알려줄 것이다.”
“그럼 총집사님께는 그리 전해드릴게요.”
공손히 대답하는 루나, 그리고선 이어서 말을 하는 것도 루나였다.
“그리고 작은아씨에 대한 것도 있는데요.”
“…? 흙덩이의 아이는 나중에 갖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흙덩이의 진실 된 나이를 알게 되자 세상물정도 모르는 그녀를 엄마가 되게 할 순 없었기에 뒤로 미루는 불릿.
“나는 지금 갖고 싶은데….”
“? 그러면 피임을 하지 말라니까.”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사랑하고 싶기도 하고, 임신하면 몸매가 망가진다고도 하던데….”
“급한 문제도 아니니까 깊게 고민하지마라. 하다보면 생기는 것이고(?), 올리비아야 워낙 몸매가 완벽하니 그 정도는 티도 나지 않을걸?”
“으, 응….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얘기를 듣던 올리비아가 중얼거리자 바로 대답해주는 불릿.
설마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던지 올리비아는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루나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작은아씨의 교육문제에 대해서예요.”
“뭐가 문제지? 아니, 누가 그걸 언급한 건가?”
흙덩이에 대한 문제라면 불릿은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그녀를 얼마나 소중히 대하는지를 잘 아는 루나였기에 냉큼 대꾸하였다.
“하녀장님이 말씀하신 거예요! 제가 아니라구요?”
“…말해보도록.”
“사실 우리 작은아씨는 너-무 순진하셔서 거짓말도 곧잘 믿을 만큼 아는 게 적으시잖아요?”
“그렇기야하지.”
잘못 들으면 ‘무식한 년’이라고 오해할 만한 부분이었으나 이 문제에 대해선 불릿도 인정하는 바였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흙덩이가 실제로 세상을 배운 기간은 2년도 채 안 됐으니까 말이다.
그런 불릿의 반응에 루나도 안심하고서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하.녀.장.님이 말씀하시길, 공부시간을 따로 갖는 게 좋겠다고 건의하셨습니다!”
“아카데미라도 보내자는 건가?”
웬만큼 세력이 유지되는 곳에는 저마다 교육기간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런 곳들을 통해 행정관이나 직업군인등(주로 기사)을 양성할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대부분이 하위귀족이나 평민층이 대다수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많은 인원을 배출하는 만큼 교육방식에 있어선 안정감을 지녔다는 평이 있었다.
불릿의 영토에도 그런 아카데미가 하나 있었는데, 중앙영지에 위치해 있어 저택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았다.
“에이, 작은아씨가 거길 가셔서 뭘 하시겠어요? 놈팡이들이 우리 귀엽고 사랑스런 작은아씨께 이상한 거라도 가르치면 큰일나잖아요?”
“그런 놈들이 있으면 삼족을 멸한다.”
“헉…, 죄, 죄송해요.”
“자기야, 화났어?”
“잘못했습니다, 벌하여 주시옵소서, 각하!”
“…아니다, 화난 게 아니니 계속하도록.”
순간 화가 불길처럼 치솟아 내뱉은 말이었으나 그걸 듣는 이들은 몸이 떨릴 만큼 무서운 말이었기에 스스로를 다독이는 불릿이었다.
‘그냥 이 육체는 내 말을 안 듣는군.’
아마 가이아 여신이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는 몸. 모든 면에서 다 마음에 들었으나 딱 하나, 감정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게 불만이었다.
“정말 화 안 나셨죠?”
“아카데미에 보낼 것도 아닌데 상관없겠지. 그래서 하려는 말은?”
“…그래서 하녀장님이 건의했던 사항은요….”
불릿의 무서운 발언에 잠시 심호흡을 하며 애써 두려움을 물리치던 루나는 나긋하게 말을 내뱉었다.
“가정교사를 두는 게 어떨까, 하고 여쭤보라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