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5 그곳에 정령은 없었다 =========================================================================
불릿은 기분이 좋았다.
“아하하하! 빨리 가자, 자기얌!”
“그, 그래….”
뭔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듯했으나 흙덩이와의 밤샌 응응(….)을 통해 정령력과 체력 모두를 회복했기에 육체적으론 이상이 없다.
그가 피곤을 느끼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이었는데, 너무 오래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렇다.
‘정령력이 차오르는 속도가 장난 아니게 빨라졌다.’
덧붙여 말하자면 지금 앞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흙덩이의 치유능력도 한층 강해져 잠시도 불릿을 쉬게 만들지 않았다.
“끄응.”
그래도 흙덩이가 저토록 기분 좋아서 뛰어다니는 것을 보자면 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정신적 피로쯤이야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니니 금방 날려버릴 수 있으리라.
스윽.
“불릿, 피곤해? 힘들어? 어디 아파?”
흙덩이는 옷을 갈아입는 불릿에게 고개를 빼꼼 들이댔다.
둘은 방금 막(?) 마친 상태였기에 다른 곳으로 향하려면 옷을 입어야 했고, 흙덩이는 원피스와 속옷을 제외하면 옷가지가 없기에 오히려 불릿이 입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르륵-
“아니, 괜찮다. 기분 좋았어?”
불릿은 그녀의 물음에 옷을 걸쳐 입은 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는데, 흙덩이는 파닥파닥 거리며 굉장히 행복해했다.
“응! 너무 좋아! 또 안에 싸줘!”
“…아니, 다음엔 밖에다 하는 것으로 하지.”
“?? 어째서?”
‘네가 너무 어리니까 그렇지.’
가이아 여신에게서 흙덩이가 몇 살인지를 듣고 화들짝 놀랐던 불릿이기에 웬만하면 당분간은 조심하면서 할 생각이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헤헤, 불릿이 사랑해줘서 다 나았어.”
“그래, 그러면….”
스윽-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후 흙덩이의 구겨진 원피스를 펴준 후 꼭 끌어안았다.
토닥, 토닥.
“불릿?”
“잠시만 이러고 있자.”
“응…….”
토닥, 토닥, 토닥.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흙덩이는 불릿에게 안기자 조용히 그의 체온을 느꼈고, 냄새를 맡으며 그가 살아있음을 상기할 수 있었다.
“히이-. 좋다.”
물컹.
그녀는 자신도 팔을 벌려 불릿을 끌어안았는데, 그 탓에 불릿은 그녀의 거대한 골짜기에 얼굴이 파묻혔다.
‘…신체 일부만큼은 올리비아보다 성숙한 것 같군.’
잠시 흙덩이의 가슴을 통해 심장박동을 듣던 불릿은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흙덩아.”
“왜 불러, 불릿?”
“넌 부모님이 그립지 않니?”
“엄마나 아빠?”
생각보다 저렴한 표현이었으나 흙덩이의 본래 나이를 생각하면 이게 적절한 것이리라.
“그래, 그분들.”
“몰라, 관심 없어.”
행복해하던 분위기에서 뾰루퉁한 기색을 보이는 흙덩이였기에 불릿은 내심 가이아 여신이 불쌍했다.
‘가이아 여신이 서운해 하겠군. 이러면 말도 꺼내기 부담스러운데….’
그래도 금세 해맑은 웃음을 보이는 흙덩이.
“내가 엄마, 불릿이 아빠. 헤헤.”
“흙덩이는 엄마가 되고 싶니?”
내년이면 혼인식도 올릴 예정이니 나이완 상관없이 아내가 될 그녀의 의사를 묻자 흙덩이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유실리아가 그랬어. 아기는 불릿과의 사랑의 결실이라고. 나도 많이많이 낳아서 불릿의 사랑을 받고 싶어.”
“나는 지금도 널 사랑하는데?”
“더 많이많이! 히히히.”
“아기를 낳는다는 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고서 하는 말이니?”
“응? 안나가 그냥 섹스 많이 하면 된다고 하던데?”
“안나는 진짜 주의 좀 줘야겠군.”
“불릿, 불릿. 나 봐봐.”
“아, 그래. 무슨 일….”
“쪼오오옥-.”
불릿이 다짐을 하는 사이 흙덩이는 그를 불러보았고, 불릿이 고개를 돌리자 여태까지 못 다한 키스를 몰아서 하려는지 잠시도 그의 혀를 놓지 않는 흙덩이.
그녀가 자신의 혀를 얽어오자 올리비아가 있는 자신의 침실로 향하려던 그는 잠시 눈알을 굴리며 고민하다가 흙덩이의 바람에 응하며 다시 침대를 뒹굴었다.
“츄웁, 츄루룹 츄릅-.”
올리비아에게 향하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달칵.
불릿이 문을 열고 흙덩이의 침실에서 나오자 이제 막 들어오려던 참인데 루나가 문에 코를 부딪혔다.
콩.
“아코, 아파라….”
“루나 아파? 흙덩이가 치료해줄게.”
루나가 빨개진 코를 문지르며 옆으로 비켜서있자 손잡이를 잡고 있던 불릿의 뒤에서 흙덩이가 튀어나와 그녀의 코에 손바닥을 댔다.
우우웅!
“헉?”
손을 대자마자 강렬한 빛과 함께 순식간에 끝난 치료.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른 치유능력에 루나는 놀란 음성을 내뱉었는데, 흙덩이에게 힘을 전해주는 당사자인 불릿도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흙덩아, 이거 왜 이렇게 빨라?”
불릿의 물음에 흙덩이는 루나의 코를 잠시 쓰다듬어주다가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응? 흙덩이가 그걸 어떻게 알아?”
“?”
“?”
“네?”
서로가 물음표를 던지는 가운데 복도에서 시끄럽게 굴어서 그런지 올리비아의 방문이 열렸다.
달칵.
“무슨 일인가요… 헛, 불릿님!”
유실리아는 아침부터 불릿을 발견했기 때문인지 매우 밝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와 가슴에 안겨왔다.
포옥-.
“…어젯밤의 일이 꿈인 줄 알았어요…….”
“올리비아와 함께 있었나?”
“네…, 좀체 잠드시지 못하셔서 말상대를 해드렸어요.”
“설마 밤을 지새운 건 아니겠지?”
“그게…….”
말을 못 잇는 유실리아의 반응을 보던 불릿은 그녀의 턱을 들어보았다.
“아.”
짧은 탄성을 터트린 유실리아의 눈은 약간 충혈된 상태로 물기가 서려있었다.
그것을 보고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한 불릿은 흙덩이를 불렀다.
“흙덩아, 유실리아를 치유해줘.”
“나아라 나아라, 아픈 거 싹 날아가라-.”
흙덩이는 방실방실 웃으며 유실리아의 손을 잡아주었는데, 순간 번쩍! 하는 빛이 뿜어지더니 그녀의 안색이 한결 좋아졌다.
우우웅-!
“어머, 이게 무슨…?”
“역시 빨라, 그리고 효과도 강해.”
불릿은 이번에도 순식간에 치유가 이루어지는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난 10일간은 거의 죽기 직전이었던 관계로 흙덩이와 응응(?)도 하지 않았었는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폭발적인 능력향상이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
‘아니, 잠깐만.’
불릿은 생각을 하다말고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인물에 기가 차는 듯했다.
‘가이아 여신이 개입했겠지. 그 외엔 이유도, 원인도 없다.’
불릿의 몸속에 있던 마기를 모조리 제거한 것은 물론, 피폐해졌던 육체까지 건강하게 되돌려 놓았다.
물론 회복됐을 당시 불릿의 정령력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으니, 아마 흙덩이를 통해 무언가를 전해줬으리라.
‘그럼 또 그걸 지켜봤단 소린가?’
슬쩍 붉어지는 불릿의 얼굴. 밤새도록 이어지던 흙덩이와의 격렬한 사랑을 고스란히 지켜봤을 가이아 여신에게 괜히 부끄럼이 생기는 불릿이었다.
“헤헤, 이제 안 아프지?”
“저야 피곤하기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어쩐 이유로 이렇게 효과가 좋아지셨어요?”
유실리아는 살짝 윤기까지 흐르는 자신의 볼을 매만지며 묻다가 흙덩이의 발언에 얼굴이 굳었다.
“불릿이 많이많이 사랑해줬어!”
멈칫.
“그, 그러셨어요? 좋, 좋으시겠어요….”
“유실리아랑 올리비아랑도 같이 하고 싶었는데 흙덩이가 아파서, 그래서 불릿이 뽀뽀도 해주고 박아주….”
“흙덩아?”
“응?”
“츄웁-, 츄르릅!… 할짝, 츄읍-.”
그녀의 말을 막기 위해 불릿은 흙덩이의 입술을 탐했다.
입술을 막고, 그곳에 자신의 혀를 넣거나 흙덩이의 혀를 빨아들이는 등, 복도엔 지나가는 하녀와 하인들도 있었으나 그것보단 흙덩이의 발언이 오히려 더 부끄러웠다.
“흐으읏!”
그것도 잠시, 흙덩이의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조짐이 보이자 올리비아도 회복시켜줘야 했기에 키스는 그만두고 그녀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뽀옹…
“헥, 헤엑, 부, 불릿…, 부끄러….”
웬일로 부끄럽다며 두 손을 자신의 엉덩이 쪽에 가져가며 몸을 비트는 흙덩이.
그녀는 아직 뭐가 더 부끄럽고 아닌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듯했다.
“대영주님, 너무 대담하세요!”
“…흙덩아, 남들 앞에선 박…거나 박힌다고 말하면 안 된단다.”
루나의 말을 무시한 불릿은 흙덩이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는 몸만 커진 어린아이(?)였으니까.
불릿의 설명에 흙덩이는 발갛게 달아오른 홍조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우리끼리만 있을 때, 맞지?”
해맑게 웃는 흙덩이의 대답에 불릿은 그녀의 새하얀 치아를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스윽스윽.
“올리비아의 상태는 좀 어떤가?”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리는 흙덩이를 제쳐두고 묻는 말에 유실리아가 부럽다는 시선을 보이다가 흠칫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제정신을 되찾으셔서 다행이시긴 한데, 불릿님이 살으셨다는 사실 때문인지 긴장감이 풀리셔서 상태는 더 악화되셨어요.”
“으음….”
올리비아가 보였던 전날 상태에서 더욱 악화되었다면 간당간당하다는 뜻, 아무리 익스퍼터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하급의 경지에 불과했기에 생명이 위험했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계세요. 하녀장님이 곁에 계시기는 하지만, 거의 30분 간격으로 깨시고 있거든요.”
루나의 말에 흥분했었던 불릿의 얼굴도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얼마나 자신을 갈구했으면 그토록 건강하던 올리비아가 몸져누워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망가졌겠는가?
흙덩이가 그러하듯 올리비아 또한 불릿이 아니면 더 이상 이 세상에 믿고 의지할 이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치료해줄게!”
“앗.”
도도도돗!
흙덩이는 올리비아가 아프단 말에 미처 잡을 새도 없이 그녀의 방을 향해 달려갔는데, 얼마나 급하게 달려갔는지 옷이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투둑.
꽈당!
“으앙!”
“헉, 흙덩아!”
“작은아씨?!”
그녀가 바닥에 넘어지자 불릿은 쏜살같이 달려가 흙덩이를 부축했는데, 한쪽 무릎을 꿇은 불릿의 품에서 흙덩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힝, 아파…. 불릿 호해줘, 호.”
“그래 호, 호오, 호…오….”
불릿을 잃었다 되찾은 때문일까, 흙덩이의 어리광은 한층 심해진 경향이 있었다.
다 자신의 탓이었고, 그도 흙덩이의 애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약간 체면이 손상되더라도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었는데, 순간 말이 막혔다.
“왜 그래?”
“…….”
“작은아씨, 괜찮으세….”
“무슨 일인데 루…….”
“? ? 다들 왜 그래?”
불릿, 루나, 유실리아 셋은 불릿의 품에 안겨있는 흙덩이를 보며 할 말을 잃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루나, 흙덩이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건가?”
어렵사리 입을 연 불릿의 물음에 루나가 연속해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영주님! 그동안은 저희가 계속 옆에서 모셨기 때문에 연습할 기회가 없으셔서….”
“그래도 저번엔 잘 입으셨는데….”
루나의 변명에 힘을 거들어주는 유실리아의 말에 불릿은 한숨을 내쉬며 흙덩이를 바라보았다.
“우웅?”
이미 아픈 것은 사라졌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흙덩이.
그녀의 옷차림은 후크가 풀려 배꼽까지 내려온 브라와 발목에 걸쳐진 팬티가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던 것이고, F라는 크기의 거대한 가슴이 흔들리며 얇은 원피스를 사이에 두고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크흠.”
스륵, 스르륵.
불릿이 헛기침을 하며 발목에 걸렸던 팬티를 위로 올리며 입혀주자 흙덩이의 눈빛이 반짝했다.
“여기서 하게? 힘 많이많이 줄 거야?”
“아니야!”
“안돼욧!”
“하다못해 마님이랑 같이!(?)”
루나가 좋아하는 ‘혼돈의 카오스’였다.
========== 작품 후기 ==========
내일도 12시 정각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