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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67화 (167/241)

00167  불모의 황무지  =========================================================================

너무 흙덩이에게 끌려간다고 생각한 불릿은 진지하게 임하기 위해 그녀의 팔뚝을 단단히 붙잡았다.

꽈악.

“불릿?”

“흙덩아, 이번 토벌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내가 쥐새끼를 얼마나 싫어하는 잘 알지?”

“응! 나쁜 사람들이 우릴 괴롭혔잖아. 불릿이 그렇다고 했었어.”

흙덩이는 인간사회에 대해 잘 몰랐기에 누가 나쁘고 착한지 구분할 수 없었으나, 불릿이 하는 말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불릿이 쥐새끼라고 언급하는 자들이 흑마법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돌아가면 뭐든 해줄 테니까 일단 저놈들부터 잡자. 알았지?”

흙덩이가 예전처럼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정령이 아니었기에 불릿은 아예 아이를 대하듯 행동하기로 했다.

이런다고 해서 흙덩이가 아닌 것도 아니었고, 소중하게 대한다는 면에선 다를 게 없었으니까.

그런 그의 마음이 통한 것인지 흙덩이는 해맑게 웃었다.

“많이 싸줘!”

“…자, 정령력.”

“이것도 좋구, 헤헤.”

우우웅-

그에게서 가득 전해 받은 정령력으로 한결 더 편해진 표정을 짓는 흙덩이.

그녀에게 정령력의 전달이 끝나자 불릿은 작년 직스 자작령에 들어설 때 소지했던 5골드를 주고 산 창을 꺼내들었다.

철컥.

“본대는 흙덩이를 둘러싸고 호위병대는 주변을 경계하다 바위군락지에서 튀어나오는 키메라를 격퇴한다.”

“본대 호위대상, 최고사령관각하 외 작은아씨!”

“호위병대는 산개하라!”

불릿의 명을 받든 세스터스와 크레파토스가 외치자 각기 병력은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흩어지고 뭉쳤다.

우르르르-

두두두두-

척, 척, 척-

본대, 즉 토벌대는 흙덩이를 둘러싼 채 그녀의 발걸음에 따라 움직였는데,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아이스 터치의 효과가 사라져가자 점점 땀으로 질척이는 남정네들로 인해 그 중심지는 더욱 후끈해지고 있었다.

“기분 나빠, 더러워, 불쾌해.”

그리고 흙덩이는 자신을 둘러싼 병력들에게서 땀냄새와 열기, 그리고 헉헉대는 숨소리가 들려오자 불릿의 곁임에도 불구하고 콧잔등이 찡그려졌다.

불릿도 기분은 나빴지만 열심히 일하는 병사들에게 뭐라 할 처지는 아니어서 조용히 그녀의 손만 잡아주고 있었다.

불릿의 손길이 닿자 언제 찡그려졌다는 양 활짝 펴지며 웃음을 보여주는 흙덩이.

“헤헤, 불릿은 기분 좋아.”

그라고 해서 땀이 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흙덩이는 그저 좋다고 땀도 나지 않는 자신의 보들보들한 살을 찰싹 밀착시켰다.

삐질.

‘음, 덥군.’

이윽고 코앞까지 도달한 바위군락지에는 녹갈색, 어떤 놈은 붉은색까지 감도는 알록달록한 키메라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 쿠후, 쿠후후!

- 끼갸각!

그리고 놈들의 모습을 본 불릿은 고개를 갸웃했다.

“키메라의 질이 너무 낮군. 미끼인가?”

“무슨 말이야, 불릿?”

불릿의 독백에 반응한 올리비아가 물음을 건네오자 그는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키메라는 엄연히 살아있는 생명체다. 각 몬스터의 장점만 추려서 더욱 강한 놈을 탄생시키는 금단의 기술인데, 저것들은 간신히 누더기 골렘만 면한 정도로 형편없어.”

흑마법사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엔 그야말로 키메라 박물관이라 부를 정도로 많은 종류의 키메라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이랄 수 있는 키메라는 오우거의 힘줄, 트롤의 재생력, 그리고 인간의 지성을 지닌 놈들이었는데, 어떤 실험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발견된 것들은 하나같이 미쳐있었다.

아마 인간의 몸에 악질적인 실험을 했던 것 같았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인간이 그러한 실험을 버텨낼 리 없었다.

그래도 그 인간형키메라에게 많은 피해를 입었던 건 사실이었기에 발견하는 족족 척살 1순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래서 누더기 골렘은 뭔데?”

그러나 그러한 키메라는 직접적인 전투를 겪지 않은 인물들은 몰랐는데, 아무리 형편없는 키메라라도 완성된 자체가 귀했기에 그렇다.

올리비아가 묻자 불릿이 재차 대꾸했다.

“키메라를 만들고 남은 살점을 그러모아 만든 괴물이지. 그건 생물도, 뭣도 아니야. 그냥 걸어 다니는 시체조각이다.”

“우웩, 미친놈들이네.”

그 말을 들은 올리비아는 시선을 돌려 바위틈으로 고개를 내민 키메라를 쳐다보았는데,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엄청 못생겼네. 머리는 개머리인데 몸은 고블린? 그럼 오히려 더 약해진 거 아니야?”

“그래서 누더기 골렘을 간신히 면했다는 거다. 저건 강해진 게 아니라 퇴보한 거니까.”

그녀가 개머리라고 부른 부위는 놀이라는 몬스터의 것으로, 모여봤자 10마리가 한계라고 불리는 말 그대로 개대가리의 몬스터였다.

자기들만의 문명도 없어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의 떠돌이 개들.

근력은 그럭저럭 쓸 만했으나 개대가리에 연약한 고블린의 육체라면 지능이 더 낮아졌기 때문에 그냥 고블린보다도 약할 것이다.

한동안 이리저리 둘러보던 불릿은 고개를 끄덕인 후 세스터스를 불렀다.

“백인장, 이리로.”

“옛, 각하!”

그가 부르니 한달음에 달려온 세스터스에게 불릿은 입을 열었다.

“진입로를 열어줄 테니 그대들이 처리해보도록.”

“저희들만으로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약하다 한들 키메라의 악명은 루드밀라의 백성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세스터스가 걱정을 한 것인데, 이에 불릿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먼발치에서나 보았겠지만 본인은 놈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해보며 어떤 놈이 강하고 약한지를 확인했네. 저놈들은 용병으로 치자면 C나 D급이야.”

“그렇습니까?”

“하지만 방심은 금물일세. 놈들이 약하다고 한들 죽이려고 달려들 테니까.”

“걱정 마십쇼, 저희가 처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러난 세스터스가 크레파토스와 셰실리코프에게도 의사를 전달하자 준비가 완료되었다.

“흙덩아, 저기 앞에 바위들 보이지?”

불릿이 가리키는 곳엔 바위군락지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있는 돌덩이들이 보이고 있었다.

“다 죽여?”

“어허, 여자애는 말씨를 곱게 써야하는 법이야.”

“헤헷, 알았어.”

“커흠. 그래서 저 앞의 바위들을 부숴버리는 거야. 예전에 성벽 무너트릴 때 기억나지?”

“알았어! 그때처럼 할게!”

“좋아, 시작하자.”

불릿의 명령을 입력받은 흙덩이가 정령력을 흘려보내자 100미터쯤 앞에 놓인 바위들에 금이 쩍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쿵, 쿵.

- 끼까각!

- 크아, 크아아!

숨어있던 키메라들은 괴음을 내며 날뛰었는데, 이에 아랑곳 않고 정령력을 흘려보내니 곧이어 바위들이 가루가 되어버렸다.

파스스스-

길만 열리라 생각했던 불릿은 아예 놈들이 숨어버릴 만한 바위를 모조리 가루로 내버리자 놀란 눈으로 흙덩이를 쳐다보았고, 흙덩이는 그런 불릿의 시선이 기분 좋았는지 가슴을 앞으로 강조하며 콧대를 세웠다.

“엣헴. 나 잘했어?”

불릿도 남자인지라 흔들리는 흙덩이의 가슴에 절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소모된 정령력을 채우려는 것이다.’

괜히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며 흙덩이를 끌어안자 그녀는 웃음을 띠고서 불릿의 손길에 몸을 맡겼고, 약간이나마 욕망이 충족된 그는 병대를 향해 소리쳤다.

“키메라를 처리하라!”

푸슉!

- 꼬까까…

“죽어, 더러운 마물!”

십인장 하나가 살기를 뿌리며 마지막 남은 키메라의 모가지에 검을 틀어박자 잠시 저항하던 놈의 하나밖에 없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그래도 의심스러웠던지 십인장은 아예 모가지를 쳐냈는데, 옆으로 날아가던 키메라의 머리는 통통 굴러가더니 셰실리코프의 발치에 멈춰 섰다.

데구르르르…

툭.

셰실리코프는 그런 키메라의 머리를 손으로 들더니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 코카트리스의 머리를 다른 몬스터의 몸에 박아? 무슨 생각으로 이런 쓰레기를 만든 것이지?”

코카트리스는 석화를 거는 몬스터로, 육체는 파충류의 형태를 띠었다.

머리가 수탉의 형태를 띠었기에 얕보일 수도 있으나 놈들의 석화브레스는 웬만한 마법저항력으론 버틸 수가 없었기에 매우 강력한 몬스터로 손꼽히곤 했다.

그러나 놈들의 힘의 근원지는 어디까지나 폐에 있었으므로 머리만 가지고는 그냥 닭대가리일 뿐이었다.

그나마도 눈알 하나는 썩어 문드러진 것으로 보아 이 역시 전투시작 전에 보았던 놀의 머리와 고블린의 육체를 결합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실패작인 듯했다.

“삼광이시여, 전투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렇군.”

십인장의 보고에 주변을 둘러보던 셰실리코프는 세스터스, 그리고 크레파토스가 수습을 하는 사이 불릿에게로 다가갔다.

“각하, 이상할 정도로 약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불릿은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자네도 그리 생각하는군.”

“예, 각…하.”

슬쩍 보이는 시선엔 허둥지둥 흙덩이의 흐트러진 복장을 수습하는 유실리아가 있었으나 그는 못 본 척 했다.

봐도 못 본 척, 못 봐도 본 척. 그게 사회생활의 미덕이기에.(?)

“불릿, 여기 땅에 뭐 있어.”

“그게 무슨 소린지 자세히 설명해주겠나?”

흐트러진 복장이 수습된 흙덩이가 그녀를 가리고 있던 올리비아를 헤치고 앞으로 나섰는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새하얀 원피스는 구겨짐이 있었다.

“여기 바닥에, 안 보이는 곳에 방이 있는 것 같아. 내려가 볼래?”

“…숨겨진 아지트인가?”

“몰라. 근데 밑에 누가 있는 것 같아.”

“흠.”

명색이 땅의 정령이었던 흙덩이의 말이었기에 불릿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버렸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키메라군단은 눈길을 돌리기 위한 미끼가 맞다는 소린데, 대체 뭘 하는 곳이길래 이런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한복판에 그런 곳을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는 어딘가로 뻗어나가기에 입지가 좋지 못한 지리를 갖추고 있으니 전쟁을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닐 텐데…, 단순히 숨을 만한 은거지가 필요했던 것인가?”

“정리가 끝났습니다, 각하.”

“무슨 일이신지요, 백작님.”

때마침 크레파토스와 자베르가 다가오가 불릿이 그들에게 손짓을 하며 불러들였다.

“자베르, 탐지마법을 사용해보게.”

“왜 그러신지…, 알겠습니다.”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기에 이유를 물으려던 자베르는 곧장 마법을 시전했다.

“디텍티브(detective).”

넓게 퍼져나가는 마나의 파장을 느끼던 자베르는 그로부터 얼마간 마법을 유지했으나 마법을 거두고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적어도 주변에서 감지되는 생물은 저희밖에 없습니다.”

“크레파토스, 세스터스와 함께 바위들을 조사해보게. 어딘가로 향하는 출입구가 있는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각하.”

이어지는 불릿의 명령에 크레파토스는 바위무더기의 중심지로 다가가 크게 외쳤다.

“각하의 명이시다! 지금부터 비밀통로로 향하는 출입구가 있는지 수색을 실시한다!”

이제 막 전투의 수습이 끝난 마당에 또 다른 명령이 이어지자 비지땀을 흘리던 병사와 십인장들의 얼굴에 짙은 피로감이 서리고 있었다.

“후우, 더워죽겠군.”

“꿀꺽, 꿀꺽!”

“사무엘, 물 적당히 마셔라, 그러다 퍼진다.”

토벌대가 더위에 지쳐가자 불릿은 자베르에게 부탁을 했다.

“병사들에게 다시 한 번 마법을 걸어주게나.”

“알겠습니다. 일단 여러분부터.”

우우웅-

자베르는 병사들에게 다가가기 전 불릿을 비롯한 여자들에게 아이스 터치를 시전했는데, 신체에 손이 닿아야 했기에 불릿의 부인들과 살결이 맞닿았다.

“음? 작은아씨께선 복장이 왜….”

흙덩이의 차례가 되자 신체접촉을 하려던 자베르는 뭔가 일을 치르다 만 것처럼 원피스가 구겨져있는 흙덩이를 보며 중얼거렸는데, 그녀는 밝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불릿의 정령력을 채워줬어! 헤헤!”

“? 그렇습니까?”

자베르는 어떤 원리로 불릿의 정령력이 채워지는지 몰랐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으나 어쩐지 불릿도 그렇고, 올리비아나 유실리아의 얼굴은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그것은 비단 따가운 햇살 때문은 아닐 것이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주말이라 3연재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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