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2 불모의 황무지 =========================================================================
제노시스를 비롯한 병력은 연락을 받자마자 하루 종일 달려와 카텐령에 도착하였다.
본래 중요한 일은 마탑지부의 마법을 이용하지 않는 법이었는데, 다행히 카텐령의 지부장인 자베르가 불릿과 은밀한 약속을 주고받은 사이였기에 중앙영지로 메시지에 비밀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이들은 먼지구덩이를 뒤집어쓰고서 거친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처, 천인장 제노시스 외 50인, 도착!”
푸르릉, 푸릉-, 푸릉-
얼마나 달려왔는지 말의 입과 코에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김이 서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러한 그들은 일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꼬옥.
“오셨…어요, 제노시스?”
그들을 반갑게 맞아준 것은 불릿을 비롯한 카텐령의 가신들이었는데, 크레파토스와 셰실리코프가 함께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말을 제일 먼저 마을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유실리아였다.
그녀는 기사출신이기도 하고 아직 기사의 직위를 버린 것이 아니었기에 불릿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제노시스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허억…. 안녕하시오, 유실리아.”
“반가워요, 불릿님을 지켜주실 여러분.”
그리고 안주인의 맞이가 끝나자 불릿도 입을 열었다.
“오느라 고생이 많군. 일단 목을 축이는 게 어떤가?”
“감사합니다, 각하. 크레파토스, 당신에게 지휘권을 넘기겠소.”
“호위병대는 나를 따르라!”
“옛!”
“옛!”
본래 제노시스는 호위병대에 끼어서든 군단의 인물, 외부인이라 할 수 있었기에 같은 주군을 모시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다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본래 호위병대의 대장을 맡고 있던 크레파토스가 받아든 것이고, 그들은 지친 몸을 풀기 위해 크레파토스를 따라 토벌대의 병사들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았다.
그 사이 말에서 제노시스는 말에서 내리면서 불릿에게 군인의 예를 올렸다.
탁.
발소리가 나면서 오른팔을 심장에 대는 절도 있는 군례.
“충성!”
말을 하면서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선 땀이 뻘뻘 흐르고 있었다.
역시 겨울에 질주하는 것보다 한여름의 뙤약볕에서 달리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직접 발로 뛰는 것이 아닌 말을 탔다고 해서 안 힘든 것도 아니었으니까.
“잘 왔다, 제노시스. 우리 아가도 병상에서 일어난 참이라 시기도 적절하군.”
“…? 그분이 누구신지요?”
“실수했군. 흙덩이를 말하는 것이라네. 그냥 애칭이라고 생각하도록.”
“…?? 알겠습니다.”
뜬금없는 애정표현에 적응되지 않는 제노시스였으나 이건 흙덩이가 아팠던 걸 몰랐던 제노시스였기에 그런 것이다.
불릿은 흙덩이가 병에 앓아누운 이후 더 이상 애정표현을 함에 있어 부끄러워할 생각을 버려버렸기에 이를 모르는 가신들이 보기엔 예전의 그와 대조돼 이상할 수도 있었다.
“삼광도 계셨군요. 반갑습니다.”
“오랜만일세, 제노시스군.”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던 셰실리코프가 제노시스와 손을 맞잡으며 인사하자 불릿도 입을 열었다.
“흙덩이가 정령술로 대지의 기억을 사용하면 경로추적이 가능할 테니 내일까지 몸을 추스를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그럼 저택으로 이동…, 유실리아. 손에서 땀이 난다.”
이에 유실리아는 살포시 웃으며 아예 양손을 포개왔다.
“저에게도 그 사랑을 나눠주세요.”
불릿이 더 이상 애정표현에 인색하지 않다는 것을 올리비아, 루나와 함께 목격한 그녀이기에 셋 중에서 가장 뒤늦게 불릿과 이어진 유실리아는 항상 사랑에 목말랐다.
짝사랑이 길어서 그런지 이 더운 날씨에도 쫓아 나와 불릿의 곁에 있던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너와는 접촉이 적은 편이군.”
그리고 이에 응해주는 불릿.
“츄르릅-, 츄릅 쪼옥.”
불릿은 유실리아의 반듯한 이를 닦아내듯 혀로 핥은 후 입술을 훔쳐냈는데,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러운 땀내음을 흘려주고 있었다.
간단히 키스를 끝낸 두 사람은 더위도 잊고 저택으로 천천히 이동하였고, 이 장면을 제노시스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멍-.
“……지금, 무슨 일이…?”
그가 정신을 못 차리는 듯하자 셰실리코프가 그의 등을 툭 치며 불릿을 따라 걸어갔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이네.”
“예?”
의문을 드러내는 제노시스를 남겨두고서 이동하는 셰실리코프,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샤인에게도 해주면 좋아하려나.”
그는 불릿에게서 배운 것들을 5공녀에게 써먹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어두운 방, 그와 그녀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몸은 좀 어때?”
“……꺼져.”
“팔팔하네, 후훗.”
짙은 어둠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여성의 색기는 가려지질 않았는데,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돋는 듯했다.
그러나 응대하는 남성의 반응은 싸늘했으니.
“꺼지라고 말했다.”
“우후훗, 난 차가운 남자가 좋더라-.”
싸늘한 반응에도 상큼발랄한 어조의 여성이었으나 이어서 나오는 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차가운 남자는 말을 하지 못하니까 아쉬워, 썩어가기까지 하니까 아쉽다고?”
“더럽고 역겨운 년.”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 죽여버리고 싶어지잖아.”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폭언엔 그 어떤 호의감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그러나 대화의 주도권은 여성에게 있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네 동료가 다가오고 있어.”
움찔.
“……누구냐.”
“글쎄, 누굴까? 너라면 알 것도 같은데.”
남성의 중저음에 비해 여성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이 오래 이어질 리 만무.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질문을 한 남자였다.
“잉켈스?”
“땡! 틀렸어요!”
“빈스?”
“땡땡! 잘 좀 맞춰봐, 오빵♡”
“…바람의 대리자?”
“뿌뿌! 그 씨발년은 언급도 하지 말라구?”
어쩐지 격해진 대답이었으나 남성은 잠시 주저하는가 싶더니 말을 이어서 내뱉었다.
“……백작?”
“딩.동.댕. 정답! 아쉽지만 선물은 절.망.이랍니다♪”
문제를 맞춘 어린아이를 달래주듯 ‘우쭈쭈’라며 그의 턱을 간질여주는 여성.
이에 남성은 이를 있는 대로 갈아댔다.
빠드드득-.
“바포 백작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리 괴롭히는 거지?”
남성의 물음에 여성은 콧소리를 내었다.
“으으응- 왤까? 라고 하면.”
어둠을 가르며 남성의 귀로 추정되는 곳에 속삭이는 여성.
“거.짓.말.이겠지? 우훗.”
마치 남성을 놀리는 어투였으나 남성은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당시 폭심지에서 가장 멀었던 것은 바포 백작, 그렇다면 그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군.”
움찔.
이번에 몸을 멈칫한 것은 낮은 위치에 자리한 남성이 아닌 쭈그리고 앉아 남성을 조롱하던 여성이었다.
“…어머, 세뇌가 덜 먹혔던 걸까? 그리도 유혹했는데 아직도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네?”
“……통하긴 했겠지, 지금도 네년을 품에 안고 싶은 것을 보면.”
살짝 떨리는 남성의 음성에 어둠속에서 번들거리는 그녀의 눈엔 치솟은 남성의 하체가 보이고 있었다.
츄릅-.
“흐응, 그래도 영웅나리라서 그런지 자기주장은 똑부러지네? 난 그런 남자도 싫진 않더라.”
한층 강렬해진 색기 어린 음성에 줄곧 침착한 어조로 대화하던 남성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으윽….”
“에, 하고 싶어? 지금 여기서 한발 빼줄까?”
“크으…아…….”
필사적으로 참는 것이 눈에 훤한 여성이었으나 남성이 말을 꺼낼 처지가 아닌 것 같기에 그녀는 홀로 말을 이어갔다.
“호기심이 돋아, 어째서 그 아저씨만 살아남았는지, 젊어진 육체를 가진 것인지. 그리고 홀로 강한 정령을 부리는 것인지도.”
“그를…건드리지 마라….”
“호호호, 자꾸 그러면 안 놀아줄 거야?”
“그, 그건…크으윽.”
참기가 힘들었는지 어두운 실내에서도 번뜩이는 붉은 안광이 나타나자 여성이 좋아라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 광포함! 살기! 욕정! 영웅은 얼어 죽을, 그냥 잘 죽이고 많이 죽이면 그게 영웅이지! 안 그래?!”
광기어린 여성의 비소에도 남성은 대꾸조차 못했고, 오직 실내엔 그녀의 음성만이 한가득했다.
“하아, 기껏 대륙의 수준을 낮춰놨는데 살아남았으면 발정난 개처럼 거시기나 휘두를 것이지, 대체 왜 나대는 거람?”
“윽, 으윽…, 그, 그는 다르, 다!”
“어머, 오빠앙? 한번만 더 토 달면 양물을 짖이겨버릴꼬얌?”
“크으으….”
강렬히 폭사하는 색기 어린 음성에 남성이 몸을 웅크리자 여성이 비웃음을 머금고 혼잣말을 이어갔다.
“참 바보들이란 말이야, 인간들은.”
또각, 또각.
그녀는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는데, 어두워서 자세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어쩐지 그녀의 하체와 등에 무언가 달랑거리는 듯했다.
“대체 마족이 죽는다는 발상은 누가 한 걸까? 신을 부르짖는 광신도들? 발정난 주제에 고귀하다고 꼴값 떠는 귀족들? 그도 아니면….”
스윽-
“너 같은 정령사나 마법사들? 키득키득.”
“크으으.”
가느다란 손가락에 따라 숙여졌던 고개가 들려지니 남성의 입에선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그에게서 더 이상 이성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자 그녀도 흥미가 식었는지 몸을 휙 하고 돌려버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기 전 남자에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색기의 결정을 방안에 흩뿌리며 떠났다.
“그도 아니면 나, 아스타로트(Astaroth)겠지. 깔깔깔!”
끼이이-
콰아아앙!!
여성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놀라운 괴력을 보여주었는데, 강철로 된 문이 부서질 정도로 세차게 닫히며 어두운 실내 이곳저곳에서 부스스 흘러내리는 돌가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는 홀로 남은 남성, 그는 탁해진 눈동자로 어둠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결국 살지 못했나….”
그것은 욕정에 젖었다기보다 슬픔이 담긴 안타까움이었다.
“바람의 대리자…….”
* * *
올리비아는 유실리아와 함께 제노시스를 마중나간 불릿 대신 흙덩이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스윽-, 스윽-.
“우리 예쁜이, 이렇게 긴데 갈라진데 없이 부드럽고, 마치 비단결 같은걸?”
화장대 앞의 의자에 앉은 채 올리비아의 손길을 음미하던 흙덩이는 다리를 붕붕 흔들며 손으로 의자를 짚었다.
“헤헤, 불릿이 자주 쓰다듬어줘서 그래.”
“그게 비결이니?”
“우웅, 몰라.”
“얘는, 실없게.”
“헤헤헤.”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들답지 않게 그녀들은 사이가 좋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서로에 대한 허물도 없었다.
“어제 말이야, 불릿이 쪽 해줬다?”
“응? 그거야 뭐…, 맨날 해주잖아?”
그야 매일같이 번갈아가며 잠자리를 하니까 그럴 수밖에.
그러나 흙덩이가 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불릿이 말이야, 사람들 앞에서 나보고 아기라면서 쪽쪽 해줬어. 막 혀도 빨아주고.”
화아악-.
“그, 그래? 대, 대담하네, 우리 자기도 참.”
“헤헤, 이젠 참지 않아도 돼서 좋아. 불릿이 먹어주면(?)…기분이 좋거든.”
흙덩이는 붉어진 자신의 볼을 감싸며 헤실헤실 웃었다.
“올리비아도 해. 자기야가 사람들 앞에서 해도 된대.”
“…그럴까?”
“응. 어젯밤엔 유실리아한테도 말해줬는걸?”
“어? 왜 나만 몰랐어?”
그야 당연하다는 듯 흙덩이가 허리에 척하니 손을 얹고서 당당하게 말했다.
“셋이서 했으니까!”
“얘는!…다음엔 나랑도 같이해.”
“히힛?”
흙덩이의 치유능력을 이용해 정력적인 불릿을 맛보는(?) 그녀들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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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귀환정령사는 성교장면을 철저히 검수하여 등장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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