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1 불모의 황무지 =========================================================================
저녁쯤에는 소집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벙스 카텐은 다음날 점심이 되어서야 자신들을 불러들이는 불릿에게 큰 의문을 품었다.
“아직도 몸 상태가 안 좋으신가?”
불릿을 제외하고는 정령사가 없는 바포 변경백이었기에 정령력의 과소모로 인한 탈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몰랐기에 그들은 마법사의 리타이어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대개 마법사들은 마나를 한계치까지 끌어다 쓰면 심장의 마나써클에 금이 가거나 부서지기도 했는데, 만약 불릿이 그렇게 됐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 바포 변경백의 모든 사업은 불릿과 연계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전력의 삼분지 일 정도는 불릿이 가졌다 여겨도 되기 때문이다.
“그건 아니라네, 카텐 영주여.”
“크레파토스, 무언가 아는 바가 있소?”
회의실에 모여 있던 인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크레파토스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는 자신이 습득한 정보를 풀어놓았다.
“올리비아 마님의 전속하녀인 루나의 말로는 작은아씨와 신체적 접촉을 하실수록 정령력의 증진과 회복이 이루어진다더군.”
“오오오…, 한데 그것과 지금 기다리는 상황이 무슨 연관이?”
“…….”
독신인 벙스 카텐은 모르는 것 같았으나 이들과 달리 홀로 동떨어진 채 앉아있던 셰실리코프나, 기사인 세스터스나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는지 멋쩍어했다.
“…흠흠. 합방을 하시는 게 그 효율이 가장 좋고, 오히려 하면 하실수록 체력이 회복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세. 흠흠흠.”
“……그래서…설마 지금까지 쭈욱?”
“아마도…그런 것 같네.”
“…….”
“……….”
“………….”
긴 침묵이 회의실에 감돌자 크레파토스가 먼저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화제를 돌렸다.
“마탑의 마법사는 뭐라고 하던가?” 그의 물음에 응답한 것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안광을 내뿜는 셰실리코프였다.
“흑마법사들을 추적하기 위해 채비를 갖추고 있다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적극적이로군. 중립을 지켰던 이들일 텐데 말이야.”
마법사의 탑 영역이 대륙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진 데에는 각종 마법진으로 도배된 것과 마탑의 탑주들이 뭉쳐있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 스스로가 중립임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도 다툼에 끼어들지 않았는데, 만일 그들을 압박한다면 다른 진영으로 힘을 보태주어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기에 허튼수작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대응이었다.
그가 불릿에게 호감이 있다한들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이었고, 지부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자가 섣불리 움직일 리가 없었다.
이에 셰실리코프는 다시 한 번 그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각하께서 나서지 않으셨다면 자신도 죽을 뻔했다고, 그래서 목숨에 보은하고자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한다고 하더군요.”
“마법사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자칫 외부인사들이 본 영토를 침범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는군.”
어떻게 지켜낸 변경백인데, 전쟁에서 패배한 흑마법사의 잔당들 때문에 다른 군벌들의 발이 이곳을 더럽힐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들이 영토의 앞날과 흑마법사에 대해 토의하는 사이, 불릿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기침하셨습니까, 각하.”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길….”
“대영주님의 앞길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크레파토스, 세스터스와 벙스 카텐의 인사말을 받으며 입장하던 불릿은 자신의 앞에 넙죽 엎드리는 셰실리코프에게 깜짝 놀랐다.
“죽여주시옵소서, 각하!”
“무, 무슨 일인가?”
당황하는 불릿의 곁에는 흙덩이가 꼬옥 안겨있었는데, 어찌나 알콩달콩 핑크빛 분위기를 풍기는지 비통하게 외치는 셰실리코프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셰실리코프는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소신, 각하의 호위임무를 맡았거늘, 감히 자리를 비우고서 각하의 옥체를 위태롭게 하였나이다! 이 죄에 대해서….”
“그만, 그만!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더냐!”
“불릿…, 자기야? 나 저 사람 싫어. 맨날 무섭고, 소리쳐. 쳐다보는 것도 기분 나빠.
흙덩이는 불릿을 올려다보며 뜬금없는 폭언을 일삼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셰실리코프는 투툰 후작의 공녀, 션샤인 폰 투툰을 사랑하기 전에는 모든 여자들을 얕잡아 보았기에 그 눈길에 경멸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기억력이 비상한 흙덩이가 이를 놓칠 리가 없었기에 두고두고 기억하며 멀리했던 것이다.
이쯤 되자 바닥에 부복해있던 셰실리코프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것이…, 소신이 자리를 비워 각하의 옥체에….”
“후우, 본인이 명령을 내려 자리를 비웠던 것인데 그걸 가지고 벌을 내린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헉, 송구하나이다, 각하!”
“그만하지, 우리 아가가 놀라잖느냐.”
“…아기…말씀이십니까?”
“헤헤, 그게 말이야아, 불릿이, 응. 우리 자기가, 나보고 아기래,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히힛!”
“크흠.”
이젠 공식석상에서도 대놓고 애정행각을 벌이니 솔로인 벙스 카텐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크읏, 나도 어서 성공해야지….’
그러기 위해선 이 일을 성공리에 끝마쳐 영지를 부흥해 남작위를 받아야할 것이다.
불릿이 흙덩이를 대동하며 상석에 착석했는데, 그의 무릎엔 불릿의 널따란 가슴에 등을 기대고 있는 흙덩이가 있었다.
“헤헤, 여긴 흙덩이의 자리야!”
뭔가 회의실에 안 어울리는 인물이었으나 불릿이 개의치 않아하니 나머지 네 명도 침묵을 지켰다.
“크흠, 우선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군.”
“아닙니다, 각하!”
“부상을 입을 것도 상관 않으시고 희생하신 점, 군주 중의 군주라 생각됩니다!”
각자 찬양을 하는 가운데, 불릿도 말을 내뱉었다.
“정령력이 생각보다 잘 차오르질 않아 오래 걸렸다.”
“합방 말씀이십니까?”
“…….”
“…눈치 없는 작자 같으니.”
“쯧.”
크레파토스가 쓴소리를 뱉고 셰실리코프가 혀를 차자 무안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는 벙스 카텐.
그러나 이어지는 불릿의 말에 얼굴이 살짝 밝아진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일도 이상하니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 방금 전까지 그러다 왔네만, 그게 다 모두를 위해서라네.”
정령력도 회복되고 체력도 회복되면서 흙덩이도 몸이 낫고, 응응을 하니 진짜로 아기가 태어날지도 몰랐고(응?), 일석 삼조, 아니, 일석 사조? 그냥 좋다고 해두자.
이처럼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기에 불릿은 당당하게 나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합방…을 하시면 정령력의 회복과 증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사실이십니까?”
“또 루나가 알려주었던가?”
“…그렇습니다, 대영주님.”
벙스 카텐의 물음에 불릿은 ‘또’라는 말을 섞었는데 평소 루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그래도 이러한 대화 속에서 물음에 대한 답도 들어있었으니 벙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것이다.
“흙덩이와만 가능한 일이니 혹여 다른 여식들과 본인을 엮으려는 수작은 생각도 말도록.”
오직 흙덩이와만의 성교를 통해 정령력의 증진과 체력의 회복이 가능했던 것이니 다른 여자를 붙여봤자 불릿만 좋은(?) 일이었다.
가벼운 토크를 통해 셰실리코프의 갑작스런 부복으로 가라앉을 뻔한 분위기가 되살아나자 불릿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흠, 다들 알다시피 본인은 어제 불모의 황무지에서 밤 스티드의….”
“자기야, 나 쪽, 쪼옥-.”
“…츕, 츄릅, 츄-.”
“으으응…, 흐에에-.”
말을 하던 도중 흙덩이가 보채자 어제와 오늘까지 이어진 달콤한 사랑놀음으로 한층 더 강해진 애정에 불릿은 그대로 정열적인 진공키스를 해주었다.
그러자 흙덩이는 잔잔히 떨리는 속눈썹을 드러내며 그의 얼굴을 올려보았는데, 불릿이 등을 감싸며 끌어안자 숨 막힐 듯한 포옹을 나눴다.
뽀옹…
조심스레, 그러면서 부드럽게 흙덩이를 놓아준 불릿의 입에선 진공이 풀리면서 공기소리가 났는데, 길게 늘어지는 점성의 액체가 흙덩이와 그의 입을 이어주고 있었다.
흙덩이는 이 기다란 침줄기를 혓바닥으로 핥아먹으며 수줍게 웃었다.
“헤헤헤, 기분 좋아, 사랑해.”
“나도 사랑한다.”
이들의 폭풍 같은 애정행각을 생생하게 지켜보던 네 사람은 침을 삼켰다.
“꿀꺽.”
나이가 지긋한 크레파토스까지 뚫어져라 쳐다보며 집중할 정도로 정열적이며 자극적인, 그러나 부드러운 진공키스.
불릿은 이전까지 부끄러워했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양 당당하게 굴었다.
“본인은 이처럼 흙덩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보금자리인 영토를 지키는 데에 책임감을 갖고 있지. 자네들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각하.”
셰실리코프는 적극 찬성한다는 말을 꺼냈는데, 그가 이곳에 온 이유도 공을 세워 5공녀 션샤인 폰 투툰에게 고백하고자함이 아니겠는가?
이미 자녀가 여럿인 크레파토스도, 기사들 대부분이 출산율이 높에 따라 세스터스도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불릿과 흙덩이의 애정행각에 더욱 불타올랐다.
다만, 솔로인 벙스 카텐은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분위기에 휩쓸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밤 스티드는 많은 마기를 주입해야하는 마물, 따라서 본인을 습격한 흑마법사들은 당분간 전력이라 할 만한 역할을 못할 것이다.”
밤 스티드는 체내의 마기를 육체가 터지면서 외부로 방출시킨다.
그것을 50미터에 걸쳐 흩뿌릴 수 있으려면, 그것도 사람을 마기에 오염시켜 미치거나 죽게 만들려면 엄청나게 많은 마기가 필요했다.
그러니 밤 스티드란 존재는 아주 비싸고 강력한 일회용 폭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를 떠올리면 주변의 정찰에서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그러니 우리를 미리 기다리고서 인근에 소환했다고 밖에 볼 수 없겠지.”
그러한 기습만 아니었다면 토벌대는 꽤나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습격 자체는 불운한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놈들의 본거지가 한층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릿은 흙덩이를 품에 안고선 그녀의 배를 매만지고 있었는데, 얇은 원피스 너머로 느껴지는 불릿의 손길에 흙덩이의 볼에 홍조가 올라온다.
“각하, 오늘 중으로 제노시스가 도착할 예정입니다만, 진정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제노시스는 불릿의 마정석 물량공세로 소드익스퍼트 하급에 올라선 상태였다.
따라서 이젠 소드익스퍼트 상급과 붙어도 쉽게 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는데, 그와 더불어 호위병대도 함께 출발하고 있으니 부족한 토벌대에 병력의 충당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곤 하지만 상대는 흑마법사, 주변 군벌이나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보단 모자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흑마법사를 상대함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것은 마법사와 정령사였으니까.
그러나 크레파토스의 발언에 불릿은 다시 한 번 강조를 하였다.
“우리는 불모의 황무지를 개간하던 도중이었네. 만약 누군가의 도움을 빌리더라도 우리 아가의 힘으로 만들어낸 기름진 토지를 보고서 욕심을 내지 않을 것 같나?”
“나 아가야? 불릿의 아가?”
“쪽. 그래, 사랑스런 아가.”
“헤헷!”
방실방실 웃으며 다리를 세차게 흔드는 흙덩이. 둘과는 별개로 네 명의 얼굴은 딱딱히 굳었다.
바포 변경백이 그동안 침범을 당하지 않은 이유엔 토질이 나쁘다는 것도 한몫 했었는데, 이곳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불모의 황무지는 말 그대로 무주공산이다.
불릿이 개간하여 자신의 영토라 선포하더라도 아직 주변엔 건물한 채 없는 상태이니 억지를 부린다면 그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온전하게 영토로 편입시키기 전까지는 비밀로 치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다.
“걱정들 하지 말도록. 본인이 용병생활을 했을 적 별명이 아이언가드였네.”
불릿은 말을 하면서도 흙덩이의 온 몸을 쓰다듬으며 간질여주었는데, 이 사랑스러 못 견디겠다는 표현이 그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흙덩이와 본인이 함께하면 지키지 못할 것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쪽! 하고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해주니 혀를 얽어매오는 흙덩이.
불릿도 이를 피하지 않고 혀를 섞어주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작은아씨에 대한 가드는 너무 무방비하신 것 같습니다만….”
누군가의 중얼거림에도 불릿과 흙덩이는 서로를 탐하는데 열중인 상태였다.
========== 작품 후기 ==========
내일부로 연재수에 대해서 3연재로 제한이 될 것입니다.
이유로는 4연재 이상이 될 경우 제가 버티질 못해서..
제가 내건 공약이 추천, 선작이 100단위가 될 때마다 1편씩 추가한다고 했었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네요.
그래도 성실연재를 노력하고 있으니 ..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내일도 낮 12시, 저녁6시, 밤 12시 10분에 뵈어요.
저는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