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불모의 황무지 =========================================================================
“디텍티브(detective).”
자베르의 영창에 의해 탐지마법이 펼쳐지며 주변으로 넓게 파장이 흘러나갔다.
어떤 기운이나 탐지를 하는 마법은 점성학파가 전문이었기에 게이트웨이학파임과 동시에 프로텍트계열 마법에도 소질이 있는 자베르는 일반적인 마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몬스터나 마물의 파장은 여타 다른 생물들과는 확연히 달랐기에 쉬이 발견할 수 있었다.
무더위 속에서도 약간 차가운 기운이 감돌던 자베르는 곧이어 마법을 거두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불릿에게 말을 걸었다.
“반경 1km 안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흠, 그러한가.”
아쉬움인지, 다행이라는지 모를 불릿의 반응에 자베르는 낮은 중저음으로 마법을 영창했다.
“아이스.(Ice)”
피킹.
그의 손바닥 위에서 주먹만 한 얼음이 생겨나자 그는 한줄기 땀을 흘리던 세스터스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다.
“고맙소, 자베르.”
“별 것 아닙니다.”
세스터스는 ‘앗 차가.’라고 하면서도 마법으로 응결된 조그마한 얼음덩이를 발갛게 달아오르는 몸 이곳저곳에 대보고 있었다.
이 장면을 바라보던 불릿이 그에게 물었다.
“역시 이런 기후에선 마법사만큼 좋은 직업도 없는 것 같구려?”
어쩐 일인지 불릿은 저번에 그토록 더워하던 것과는 다르게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였는데,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땀이 비오듯 쏟아져도 모자를 판에 한줄기 땀방울만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에 마법사 라르벨로 자베르는 약간 콧대가 높아졌다.
“정령술이 대단하기는 하나 마법만큼 다양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든 활로를 열 수 있는 학문도 없는 법이지요.”
“확실히, 정령술로는 몸의 상태조절이나 상황에 따라 대처하긴 힘들지.”
따지고 보면 정령술이나 마법이나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비슷하긴 했지만 마법이 좀 더 다양한, 그러면서도 일상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편리함을 갖췄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쳐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령술이 마법에 비해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전장에서 정령사를 마주치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요. 죽음이란 걸 모르는 정령이 무시무시한 기술을 쉴 새 없이 펼치며 다가온다 생각하면 몸이 절로 떨립니다.”
팔로 몸을 감싸며 덜덜 떨던 자베르는 ‘음, 체온을 너무 낮췄나.’라고 중얼거리며 팔을 비벼댔다.
지금 이들이 불모의 황무지 중앙으로 이동하면서도 탈진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자베르의 ‘아이스 터치’ 덕분이었다.
접촉한 상대의 생기를 흡수하는 뱀파이어릭 터치와 비슷한 원리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토벌대의 인원들은 땀이 찔끔 나올 뿐 상태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체온을 더 낮출 순 없는가?”
불릿의 물음에 팔을 비비던 자베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된다면 외부와의 온도차 때문에 체내의 장기가 제 기능을 못할 것이고, 설사를 비롯한 복통, 오한, 두통 등의 증상과 심하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습니다.”
바깥은 여전히 쨍쨍한 햇살이 내리비추고 있는데, 아무리 덥다고 한들 시원함만 찾다간 병이 들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여름에 배를 내놓고 잔다거나 찬물을 많이 마셨을 경우가 있습니다.”
“흙덩이가 정령력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도 관련이 있는가?”
흑마법사가 어디에 숨었는지 수색을 진행하면서도 불릿의 머리엔 온통 앓아누운 흙덩이 생각뿐이었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찾던 흙덩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에 자나 깨나 그는 흙덩이만 떠올렸던 것이다.
“몸을 따듯하게 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만, 몸살감기에 걸리신 것을 보면 관계가 없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면 덥더라도 적응하랄 수밖에 없겠군….”
문득 흙덩이가 땀에 젖어 새하얀 원피스가 그녀의 굴곡을 드러내는 장면이 떠오른 불릿은 황급히 머릿속에서 그것을 지웠다.
‘나도 참 주책이로군.’
수색만 사흘째 하는지라 그녀들과의 접촉이 없어 응응(?)을 하지 못했기에 젊어진 육체가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와중에 저 멀리 앞장서 걷던 10여명으로부터 신호가 왔다.
“중대 전투준비!”
타다닷, 처처처척!
“전투준비!”
“방패 앞으로! 활은 대기!”
“방패 앞으로!”
“대기!”
“대기!”
앞서 걷던 이들은 정찰분대였는데, 본대가 습격으로 인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따로 그들을 운용했던 것이다.
세스터스의 명령에 십인장들이 중대를 다독이자 순식간에 대형이 갖춰졌고, 그는 불릿에게 군인의 예를 올리며 보고했다.
“최고사령관각하! 거대한 말 20여 마리가 두 갈래로 나뉘어 빠르게 접근중이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몬스터라니요?”
방금 전에 자신이 확인한 마법엔 탐지되지 않던 적이 나타났단 사실에 자베르는 민망함과 당황함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
저번에 나타났던 하급 마물도 찾아낸 것이 자신이었는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란 말인가?
“거리는 어떻게 되지?”
그렇다고 마냥 당황만 할 수는 없었기에 불릿이 묻자 세스터스는 자신도 전투준비를 하며 대답하였다.
“바로 200미터가량 됩니다!”
거리가 있기에 수신호에 의지한 정보여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이정도만으로도 그들은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이에 불릿이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그곳엔 약간 둔덕진 곳을 달려오며 본대로 합류하려는 분대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본대로 합류하는 순간, 둔덕진 곳에서 적들이 출현했다.
두두두두두-
- 이히히힝!
“미친, 밤 스티드! 전군, 화살 장저언!!”
경악한 불릿이 고함을 지르자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십인장들까지 착검하고서 손에 활을 들었다.
“장전!”
“장전!”
끼리릭-
끼릭, 끼릭끼릭-
방패를 들었던 인원까지 그것을 발치에 비스듬히 세워두고선 등에서 활을 꺼내 시위에 내걸었다.
밤 스티드의 본래 명칭은 지옥마, 마계에서 소환한 전마(戰馬)들인지라 잘 죽지도 않고 성향도 매우 난폭했는데, 인간이 탈만한 놈들이 아니었기에 단순히 성질 더러운 놈들로 알려졌던 것을 흑마법사들은 다르게 이용했다.
바로 지옥마의 몸에 마기를 압축해서 불어넣어 살아있는 생체폭탄으로 만든 것이다.
밤 스티드는 폭발하면서 체내에 있던 마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 반경 50미터에 존재하는 생명체에 영향을 끼치기에 전쟁 당시에도 이놈들에게 희생당한 기사와 용병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서 흑마법사를 상대로는 더 이상 나서려고 하는 용병들이 생겨나질 않았고, 기사들은 뒷전이 된 것이다.
“자베르!”
“느려져라, 슬로우! 얽어매라, 바인드!”
불릿의 황급한 음성이 이어졌으나 자베르는 이미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당연히 마탑의 지부장인 자베르도 놈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더 이상 놈들이 다가오기 전에 가장 빠르면서 효과적인 마법으로 밤 스티드를 멈춰 세웠다.
끼기긱…
- 히히히힝!
- 푸르르르!
몸이 움직이질 않자 밤 스티드들은 코에서 거뭇한 색깔의 콧김을 내뿜으며 몸부림쳤고, 순식간에 포박에서 풀려나려하자 세스터스가 소리쳤다.
“닥치는 대로 쏴라! 무조건 죽여!”
“발사!”
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슈슈슈--
거리가 100미터도 채 안 되었기에 직사로 쏘아진 화살들이 밤 스티드의 몸에 틀어박혔다.
투두두두둑!
- 히히힝, 크퓽!
놈들은 과연 마계의 생물답게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고, 쉴 새 없이 쏘아지는 화살에도 죽은 놈들은 별로 없었다.
“업화의 기운에 타오를지니! 플레임 스트라이크!”
토벌대가 흠칫흠칫하며 움직이려는 밤 스티드를 저지하는 사이, 자베르는 큰 마법을 하나 준비하는 가 싶더니 밤 스티드가 뭉쳐든 한쪽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쿠아아아아-!
- 히히힝…!
퍼퍼펑!
퍼엉!
밤 스티드들은 미칠 듯이 치솟는 거대한 불기둥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나갔는데, 놈들이 죽으면서 내뿜는 마기도 불길에 휩쓸려 불타올랐다.
쿠아아아아…
삽시간에 솟아난 불기둥은 놈들이 죽자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아직도 땅에선 이글이글 열기가 아지랑이를 일으키는 중이었다.
- 푸르르, 푸르르! 히히힝!
그러나 아직 반대편에 10마리 남짓이 남아 있었으니, 온 몸에 화살을 꽂고도 포박마법을 풀고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안 돼! 어서 죽여라!”
놈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아는 불릿이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으나 병사들의 화살은 잘 통하지 않았고, 가장 필요한 마법을 사용할 마법사는 딜레이에 빠진 상태였다.
이윽고 50미터 안으로 접근한 놈들이 자폭을 시전했다.
- 히히힝!
퍼버버버버벙!
“젠장!!”
까드득!
병사들이 마기에 노출되려하자 불릿은 이를 악물며 자신의 정령력을 사방에 풀어놓았다.
우우웅-
“크으으….”
중급 정령사로 올라서면서 불릿은 이전처럼 정령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정령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운을 외부로 방출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라그나로크라 불리는 단계가 되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면 모든 기운을 소모하고 폐인이 된다.
불릿이 신음을 흘리며 마기에 침식되는 주변을 장악하려하자 정신을 차린 자베르도 이에 합세했다.
“윈드! 윈드! 윈드!”
윈드는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 마기의 사이사이에는 200여명의 2개 중대가 있었기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마법을 배제하니 남는 것이 이것이었던 것이다.
윈드가 가장 기초적인 마법 중 하나라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마나로 일으킨 인위적인 방법이었기에 마기라고 하는 기운을 밀어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수십 차례에 걸쳐 윈드를 시전하자 드디어 중대는 마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순식간에 사망할 수 있는 짙은 마기에서 벗어난 병사들은 간신히 숨을 토해내었다.
“푸핫!”
“허어억, 허어억…, 사, 살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어….”
병사들이 아무리 종기사로 내정된 정예병이라 하지만 밤 스티드의 마기는 흑마법사의 소환술에 의해 마계에서 직접 주입한 기운, 경지가 미천한 병사들로는 버티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반대로 십인장, 기사들은 그들대로 충격이었다.
“이럴 수가, 마나로 대응조차 할 수 없다니?”
“억누르는 게 고작이었다…제기랄.”
꼼짝없이 당할 뻔했던 것을 자베르와 불릿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마기에 침식되어 죽거나 아군을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몸을 추스르는 사이, 불릿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커헉….”
“각하! 괜찮으십니까?!”
탈진한 불릿이 대꾸도 못한 채 숨을 거칠게 내쉬자 세스터스는 자베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베르! 어떻게 좀 해보시오!”
“과도한 정령력의 소모로 인한 탈진증상입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힐링은 육체의 상처를 치료하고 리커버리는 상태이상을 치료한다.
큐어 포이즌과 같은 해독마법도 있었지만, 불릿의 비어버린 정령력은 생명력과 더불어 근본이랄 수 있는 기운이었기에 그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때마침 아이스 터치의 효과가 끝난 것인지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불릿의 몸에서도 땀이 홍수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중대, 장비를 챙긴다! 서둘러 영지로 복귀!”
혼미한 상태의 불릿을 대신해 세스터스가 명을 내리자 병사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이끌었고, 그들을 대신해 기사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카텐령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크흐, 크흐…꼬르륵….”
결국 버티다 못한 불릿은 탈진하여 실신했고, 병사들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엔 밀어내었던 마기가 스멀스멀 모이며 어떤 형상을 이루다 이내 흩어져버렸다.
휘이이잉-
불모의 황무지의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엔 불길함이 서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