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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58화 (158/241)

00158  불모의 황무지  =========================================================================

불모의 황무지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는데 그쪽 방향에서 인간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은 달리 생각할 바가 없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아니고서야 그곳을 지나쳐왔을 몬스터로부터 안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결 사태가 심각해지자 자베르의 안색은 굳은 상태였다.

“본령에 연락을 넣어 지원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도록.”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흑마법사와의 전쟁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와 슬픔을 남겼다.

그래서 대륙의 모든 나라는 흑마법사라면 치를 떨었는데, 마법사의 탑 또한 자신들의 치부라 여겨지는 흑마법사들에 대해서 철저한 대응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중립을 지키는 마탑이 딱 하나 적극 나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흑마법사 척결일 것이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불릿이 숨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자 그에게 호감이 있던 자베르라 할지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우리가 불모의 황무지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서 물으면 대체 뭐라고 대답할 겐가?”

“…분쟁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주인 없는 땅이라지만 분명 말이 나올 것이야. 적어도 기반은 갖추고 나야 외부에 알릴 수 있네.”

불모의 황무지는 그동안 활용할 방법이 없어 루드밀라는 물론이고 란푸스에서도 버림받은 비운의 대지였다.

그러나 이번에 흙덩이가 대오각성(?)하면서 능력이 크게 늘었기에 작물을 기를 수 있을 만큼 대지의 축복이 제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을 루드밀라의 군벌들과 란푸스 왕국에서 알게 된다면 이곳은 단번에 피튀기는 지옥이 될 것이다.

“비록 우리 학파의 규율 때문에 백작님의 속하로 들어갈 수는 없으나, 저 또한 바포 백작님의 영토에서 살아가는 백성 중 하나로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알리지 않겠단 말인가?”

“물론입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을 시엔 저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가 최대로 배려해줄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그럼 그 문제는 넘어가기로 하고, 상대가 패잔병으로 예상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말일세.”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지 불릿이 뜸을 들였는데, 이런저런 말을 하던 불릿은 곧이어 본론을 토해놓았다.

“자네가 도와줘야겠어. 흙덩이가 아파서 말이지, 본인의 힘으론 놈들의 수작으로부터 병력을 지켜낼 여력이 없네.”

몬스터와 하급 마물까지야 토벌대의 병사들이 정예병이기도 하고, 기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어떻게든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종 소환, 저주, 정신, 원소마법을 퍼붓는 흑마법사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흑마법사를 상대하려면 육체파인 익스퍼트로는 무리였고, 마법사나 정령사가 필수였었기에 그렇다.

아마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이 다섯 명 정도가 포진되어 있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그건 대륙 전역을 둘러봐도 한 지역에 그 정도의 실력자가 뭉쳐있는 곳은 없었다.

소드마스터는 손꼽힐 정도로 적었으니 언급은 불필요했다.

“백작님께서는 결사대의 일원이셨지요? 그곳에서는 어떠셨습니까?”

“결사대에서는….”

흑마법사로부터 전쟁을 끝낸 것이 바로 결사대의 업적이었기에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사대라는 말에 불릿은 이젠 흐릿해져가는 추억을 회상하며 그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 *

결사대에서도 근접전투인원은 당연히 있었다. 아무리 주전력이 마법사와 정령사라고 하지만, 체력적으로는 기사계급이 월등했기에 그들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랄프라는 기사는 근접전투인원을 통솔하던 우두머리였는데, 그의 실력은 무려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이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어느 나라에 가서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으며, 잘만 하면 출신성분이 천하더라도 기사단장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빈딕스라는 기사가 데스나이트가 되며 그의 이성은 산산이 부서져버렸고, 결국 망자의 폭발이라는 영혼이 찢겨나가는 사악한 흑마술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

“으흐흑, 흐으으으…….”

높은 고음의 울음소리가 진영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불릿은 서러움과 원통함으로 점철된 나타 레인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다.

망자의 폭발로 인해 살점 하나까지 송두리째 터져나간 랄프, 그의 유품인 약혼반지를 연신 매만지며 나타는 나날이 야위어갔으니….

자신의 만류로 랄프가 죽었다고 생각한 불릿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불릿이 서류에서 손을 놓고 나타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자 그와 친한 아틱 커맨더가 다가왔다.

“백작.”

“…….”

“백작, 바포 백작.”

“…사령관이로군. 무슨 일인가?”

겉으로 보기엔 불릿은 무덤덤해 보였으나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불릿처럼 감정을 잘 숨길 줄 아는 아틱 커맨더는 그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백작의 탓이 아니다.”

“그때 본인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랄프는 살았을지 모른다.”

“만약이라는 말처럼 불확실한 것도 없지.”

“……그만하게,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

별칭을 포함한 풀 네임까지 부르며 중지하기를 바라는 불릿.

그러나 아틱 커맨더가 괜히 사령관이라 불리는 것이 아닌 듯,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을 꿋꿋이 추진하였다.

“어차피 랄프는 백작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지? 설사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억지로 끌고 갔으면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을 거다!”

언제나 잔잔한 어조로 말을 내뱉던 불릿이 격앙된 음성으로 말을 내뱉는다.

“나타가 저리 슬퍼하는 것을 보고 내 어찌,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자네도 알지 않은가? 정령사가 가지는 부작용을!”

“흠, 부작용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군.”

정령에게 사랑받는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는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정령사라면 시도 때도 없이 교감을 시도해야하는 고충을 가지고 있었다.

정령과의 교감이 깊을수록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그런 것인데, 그러다보니 부작용으로 감정의 폭이 비정상적으로 좁거나 넓어지기도 했고, 때론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정신병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지금 나타 레인을 보면 땅의 중급 정령사이면서도 자신의 정령을 소환하지도 않으며 억지로 밀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계약을 위반한 정령사를 상대로 정령이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정령사라고 해서 언제나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한번 교감이 무너진 정령사는 또 다시 정령을 소환하고, 계약을 맺는 과정을 성공시키기 힘들었다.

지금 그녀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 슬픔을 이겨내게 할까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네.”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라 생각했기에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때 당시만 해도 불릿은 연인을 상실한 기분을 예상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자의 자리를 대신할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사령관?”

설마 이 무뚝뚝한 남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에 불릿이 놀란 표정을 짓자 아틱 커맨더는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고, 슬픔은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은 알맞지 않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삭막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거야말로 지금 상황을 알려주는 말이었기에 불릿은 이에 동의했다.

“그렇군, 본인의 생각이 짧았네.”

“알면 됐다.”

“…자네 설마, 그걸 농담이라고 한 건가?”

“힘내라, 백작.”

아틱 커맨더는 특유의 무뚝뚝한 말로 불릿을 위로했는데, 오히려 이런 말투가 그의 가슴에 더 와 닿았다.

그렇다곤 해도 여전히 진영에 울려 퍼지는 나타 레인의 흐느낌은 사그라지질 않는다.

“후우, 본인을 위로할 게 아니라 그녀에게 해줬어야하지 않았나, 사령관?”

“방금도 말했지만 연인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새로운 사랑이라도?”

“그런다고 죽은 자를 잊고 그 슬픔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 나는 안 든다.”

당장 현실을 외면하더라도 언젠간 그 슬픔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라 마음을 잠식할 것이다.

지금이야 그녀가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나타 레인 스스로가 이를 극복해낸다면 그녀는 더욱 성장할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백작도 영 눈치가 없다.”

“본인이 말인가?”

눈치가 없다면 군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결사대 내외의 분쟁을 처리하는 것은 대부분 불릿이었기에 눈치가 없다는 말은 쉬이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아틱 커맨더의 말에는 불릿이라 할지라도 별로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는 법이다. 그 또한 감정의 공유이며 나누는 형태다.”

“4대 정령에게 사랑받는 비결이 바로 그것인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정령들이 왜 나를 좋아하는지를.”

“…이런 정령계의 카사노바 같으니라고.”

“내가 한 것도 없는데 어째서?”

“됐네, 됐어. 쯧.”

“그러한 질투는 정령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싫어한다.”

“…….”

갑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물의 중급 정령 엘레노아와 하급 정령 운디네가 떠오르자 인상이 팍 찌푸려지는 불릿.

“지금도 소환해놓은 상태인데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는군.”

“정령에게 이상한 짓이라도 했는가?”

정령이 계약자를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혐오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였기에 물은 것인데, 이에 대해선 불릿도 할 말이 많았다.

“그저 감상(?)만 했을 뿐인데 그런 눈으로 본인을 바라보다니, 괘씸한 것들이로고.”

“잘 모르겠군. 어쨌든 그렇다는 거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 바로 넘어가버리는 아틱 커맨더.

불릿도 이 주제로는 더 이상 얘기하고픈 마음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본인이 그녀의 곁에 있어주면 되는가?”

“모르겠다.”

“……?”

“나는 바람의 대리자를 떠올리며 ‘이렇게 하면 괜찮을 거다’라고 상황별로 생각해본 것뿐이다.”

“미친….”

어이가 없는 대답이었기에 불릿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는데, 이를 아틱 커맨더가 지적했다.

“백작도 의외로 입이 걸군.”

“…어쨌든 본인은 나타에게 가보겠네.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겠어.”

불릿이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아틱 커맨더가 말을 걸었다.

“백작.”

멈칫.

이제 막 앞으로 나아가려던 불릿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랄프는 좋은 남자였다.”

그의 말에 불릿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중얼거렸다.

“당연한 말을 하는군.”

* * *

거기까지 떠올린 불릿은 낮게 읊조렸다.

“…절대, 흑마법사를 상대로 기사와 병사들만 내세워선 안 되네.”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경험을 통해 우러나는 불릿의 대답에 카텐령 마탑지부장 라르벨로 자베르는 그가 원하는 답변을 꺼내었다.

“놈들의 숨통을 끊어놓읍시다, 바포 백작님.”

============================ 작품 후기 ============================

오늘은 저녁 6시에 2편, 밤 12시 10분에 1편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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