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7 불모의 황무지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복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바포 백작님, 마탑지부에서 나왔습니다.”
“들어오시오.”
달칵-.
문이 열리며 마법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들어섰는데, 그들의 틈에는 하녀 루나도 끼어있었다.
“의사도 데려왔군. 잘했다, 루나.”
“작은아씨가 걱정돼서요, 대영주님.”
그녀 또한 흙덩이가 걱정되었는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잘도 해내었다.
흙덩이의 존재는 주변을 밝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누구에게 사랑받고 있었는데, 이렇게 아파서 몸져누웠다는 소식에 도움이 되고자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저희도 왔습니다, 각하.”
“작은아씨는 괜찮습니까?”
한창 일과로 바빠야 할 크레파토스와 세스터스까지 들어서자 넓은 편이었던 방은 금세 비좁아졌다.
“자네들은 뭣하러 왔는가? 도움도 되지 않거늘.”
흙덩이가 아프기 때문일까? 불릿은 퉁명한 말투로 그들에게 말을 던졌는데, 나이 지긋한 크레파토스는 그저 허허로운 웃음을 지어보였고 세스터스는 자기 짬밥에 뭐라 말할 수도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
“자기야, 그래도 우리 예쁜이를 생각해줘서 문병 온 건데 너무 타박하진 말아줘.”
“끙…. 알았다.”
올리비아의 부탁에 불릿도 더 이상 야박하게 굴 수는 없었기에 화제를 돌렸다.
“자네는 이름이 뭐라고 했던가?”
“구 직스 자작령으로 발령되었던 마법사의 탑 카텐령 지부장, 라르벨로 자베르라 합니다.”
불릿은 웬만하면 주변에 자주 보이는 인물들을 외우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몇 번 보지도 않은 자를, 그것도 자신의 가신도 아닌 자를 외우기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얼굴을 아는 것은 흙덩이의 각성장면을 목격했던 그를 영입하고자 했기에 그런 것이다.
자베르도 침대에 누워서 끙끙대는 흙덩이를 발견하고선 불릿의 옆에 놓인 의자에 착석했다.
“흐음…, 혹시 커스계열 마법에라도 걸리신 겁니까?”
그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마법사를 부르는 이유가 마법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대체 부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을 한 것인데, 불릿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그녀는 마법에 걸린 것이야.”
“예? 그러니까 어떤 마법인지 알려주셔야….”
조금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자베르에게 배려심 깊은 유실리아가 귓가에 속닥였다.
그녀의 속삭임에 자베르는 ‘아….’라고 작은 탄식을 터트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 그…날인 것 같긴 한데, 그 외의 요인도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렇다네. 그러니까 어서 진료를 해주시게.”
“진정하시지요, 백작님. 옆에 의사도 있으니 그에게 먼저 부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베르의 발언에 가방을 들고서 멀찍이 서있던 의사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송구하오나 작은아씨의 옥체에 제가 손을 대도 괜찮겠습니까?”
“어서 진료를 하라니까 그러네!”
“으힉?! 예, 옛! 알겠습니다!”
흙덩이가 아파서 끙끙 앓는 와중에 자꾸 조잘대기만 하는 이들에게 열이 뻗친 불릿이 고함을 지르자 의사는 재빨리 몸을 움직였고, 덩달아 분위기는 낮게 가라앉았다.
“하앙, 하앙….”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흙덩이의 상태를 진료하던 의사는 청진기를 비롯한 기구를 그녀의 몸에서 떼어내고선 불릿을 바라보았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생리가 겹쳐 약해진 면역력을 틈타 병균이 침투한 것 같습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라.”
뭔가 전문가 티를 팍팍 내면서 설명하자 못 알아들은 불릿이 인상을 구기니 의사는 잽싸게 뒷말을 이었다.
“빈혈을 비롯한 몸살감기십니다.”
“…?”
“아, 빈혈….”
“여름인데 웬 감기?”
불릿은 순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질 못했고, 유실리아는 납득하는 듯했으며 올리비아는 몸살감기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의사는 뒤이어 말을 덧붙였다.
“에, 작은아씨께선 아직 세상에 익숙하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각종 병균, 세균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어 있질 않아 조금만 피로해도 쉬이 아플 수 있습니다.”
“…이보게, 자베르. 자네는 이게 무슨 소린지 이해하는가?”
불릿이 공부도 많이 하고 정령에 정통한 정령사이긴 했으나 의사가 계속해서 내뱉는 말은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만물박사라 알려진 마법사인 자베르에게 바턴을 넘겼다.
이에 자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불릿의 바람에 응답했다.
“제가 게이트웨이학파이긴 하지만 프로텍트계열의 마법에도 일부 소질이 있기에 알고 있습니다.”
자베르는 텔레포트를 시전 할 수 있는 게이트웨이학파였는데, 각 지역에 파견된 지부장들은 기본적으로 게이트웨이학파에서 꿰차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자주 사용되진 않더라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서인데, 텔레포트 마법은 극비로 취급되는지라 외부로 파견되어서도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을 만한 인물들만 내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자베르는 게이트웨이학파의 잔인한 형벌 때문에 불릿의 영입제의를 거절했던 것이리라.
“아시다시피 프로텍트계열은 보호에 특화되었기에 각종 보조마법에도 능통해야 하는데, 저는 제 2전공으로 그것을 익혔기에 인간의 몸에 영향을 끼치는 각종 요소에 대해서….”
“그래서 우리 아가를 어찌 치료하겠다는 것인가?”
“……아가?”
“아가…, 말씀이십니까?”
“지금 흙덩이보고 아가라고 한 건가?”
“어지간히도 아끼시는구만….”
불릿의 애틋한 흙덩이 사랑에 올리비아를 비롯한 가신들이 고개를 저었는데, 이미 불릿의 눈에는 그런 것 따위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은 옆에 있는 의사가 말해줄 것입니다.”
“에, 작은아씨는 충분한 휴식과 영양가 있는 음식, 그 중에서도 빈혈에 좋은 고기, 치즈, 계란, 녹색채소, 우유를 섭취하셔야합니다.”
그러면서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알려준다.
“나으실 때까지는 녹차, 커피, 홍차와 같은 음료는 절대 복용하셔선 아니 되고, 밀가루 음식 또한 피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은 해선 안 될 행동.
“그리고 이건…, 대영주님, 잠시 귀를 빌려도 되겠습니까?”
무언가 남들에게 알려선 안 되는 듯, 불릿에게만 알려주려는 의사의 행동에 불릿은 바짝 귀를 가까이 대었다.
‘생리 중에는 회임이 잘 되기 때문에 아이를 갖고 싶으시다면 하셔도 상관은 없으나, 지금은 작은아씨의 상태가 나쁘시니 나중에 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불릿은 의사에게서 천천히 떨어지더니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불릿이 말도 않고선 얼굴을 붉히고 있자 그가 분노하고 있다 여긴 주변인들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자기야? 의사가 뭐라고 했는데?”
“흠, 뭐라고 하셨길래 백작님이 화를 내십니까?”
“네 이놈! 작은아씨를 희롱하기라도 했더냐!”
“크레파토스님, 끌고 갈까요?”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의사가 극구 부정하는 가운데, 불릿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어흠, …올리비아?”
“어, 응. 불렀어?”
“유실리아와 루나를 데리고 의사의 조언에 따라 흙덩이를 보살펴주길 바래.”
“의사가 뭐라고 했어?”
올리비아의 말대로 주변의 모두가 궁금해하는 사항이 그것이었기에 시선이 집중되었는데, 불릿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만 내뱉을 뿐이었다.
“커험, 커허험!”
이런 그의 반응에 올리비아를 비롯한 사람들은 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야한 거네.”
“야한 거네요.”
“우리 대영주님이 좋아하시는 거-♪”
“각하께서 저러시는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지.”
“그거로군요.”
“남녀의 성교를 말하는 겁니까?”
다들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는데 이 눈치 없는 마법사가 직구를 던지자 불릿은 고개를 아예 돌려버렸다.
“크흐흠!”
그러다 신음을 내뱉으며 땀을 흘리는 흙덩이가 눈에 띄자 슬쩍 자베르에게 말을 건넨다.
“…흙덩이의 상태를 호전시킬 만한 마법이 있는가?”
그래도 마법사를 불렀으니 흙덩이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으나 그것마저 불릿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치유가 가능한 질병에 마법을 낭비하면 면역체가 약해져 더욱 쉬이 병에 걸리는 체질이 되실 겁니다.”
이는 약에 비유를 할 수 있었는데, 약이란 것이 복용을 거듭할수록 몸이 그것에 적응해 점점 더 많은 투여량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약을 처음 접했을 때와 시간이 흘러 나중에 흡입하는 양을 비교했을 때 같은 효과를 얻으려고 몇 배나 되는 양을 복용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내분에 대한 것은 의사에게 맡기도록 하시고, 저와 상담하실 이야기가 있지 않으십니까?”
마탑지부에는 아직 흑마법사에 대한 얘기는 오고가지 않았으나, 이미 저번의 마물토벌만으로도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자신이 먼저 대화를 걸어왔다.
이에 불릿은 감정을 조절하며 이에 응대했다.
“크레파토스, 세스터스는 본인을 따라오도록 하고, 유실리아?”
“네, 불릿님.”
“루나하고 올리비아가 폭주하지 않도록 부탁한다.”
루나는 안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짓궂은 면이 있었는데, 올리비아는 그런 루나에게 자주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불릿은 그나마 이 중에서 가장 믿음직한 유실리아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어머. 대영주님, 루나를 못 믿으세요?”
“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끄으응…, 흐응, 하아앙….”
주위가 시끄러워지자 머리가 울렸는지 흙덩이의 신음이 심해지자 불릿이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쉬잇, 이런 면이 불안하다는 거다. 자베르, 나가보도록 하지.”
“예, 백작님. 자네도 고생하게.”
“살펴 가십쇼.”
자베르는 홀로 흙덩이를 보살피던 의사에게 인사를 건네고서 불릿을 따라 자리를 떴고, 연이어 크레파토스와 세스터스가 사라지자 침실에는 숨을 헐떡이는 흙덩이와 여자 삼인방, 그리고 홀로 고독을 씹는 의사만이 남게 되었다.
‘크긴 엄청 크구만.’
의사는 가녀린 체구의 흙덩이를 보면서 가쁜 호흡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는 큰 것(?)에 눈길이 갔는데, 그래서 그런지 같은 남성으로서 불릿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 * *
털썩-.
“후우우…, 자네들도 앉지.”
먼저 의자에 앉은 불릿이 권유하자 자베르도 앉았고, 크레파토스와 세스터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누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앉을 수 있었다.
“자베르, 자네는 이미 예상 했으리라 생각하는데, 맞는가?”
불릿은 자베르가 먼저 상담 운운을 했기에 이미 무얼 주제로 말할 것인지 짐작이 갔으나, 그래도 확실시하기 위해선 그가 생각한 바를 먼저 알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알려주지 않아도 될 정보가 흘러나갈 수도 있으니까.
불릿의 물음에 자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대꾸했다.
“확실한 정보를 취하셨습니까?”
“몬스터의 습격 후 불모의 황무지에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살아있었군요.”
심각한 주제이기에 장난기 싹, 농담 싹 뺀 대화에 크레파토스는 물론이고 세스터스도 군기가 바짝 든 상태로 둘의 대화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흑마법사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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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도 마찬가지로 4연재가 ...
추천, 선작에 비해 쓰는 속도가 따라가질 못합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