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150화 (150/241)

00150  불모의 황무지  =========================================================================

불릿이 중앙영지로 복귀하고 3일, 그는 가신들을 소집하여 이번 여정에 대한 결과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흙덩이와 함께 주변 토지를 둘러보았던 것은 모두가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각하.”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나이다.”

“하루라도 빨리 작은아씨가 회임(?)을 하셨으면 좋겠군요.”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거 아니겠습니까?”

“음음, 이런 속도라면 내년에 있을 혼인식 때까지는 아이를 배실 수 있을 거라 보오.”

어째 메인메뉴인 토질확인보다 사이드메뉴에 관심이 많은 가신들이었기에 불릿은 살짝 붉어진 얼굴을 털며 기침을 뱉었다.

“어흠.”

그의 기침소리에 이우우스 1급 행정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유실리아라는 여기사가 첩의 자리에 들어섰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푸우웁!”

당연히 회의를 진행할 거라 예상했던 불릿은 이우우스의 발언에 침이 뿜어져 나왔다.

“콜록, 콜록! 수, 수행원! 그게 아니잖은가!”

“조금 더 힘내주시면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실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후계를 보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마음입니다.”

이우우스 행정관의 단호한 태도에 원탁을 둘러싼 가신들의 얼굴은 이에 동의하는 듯한 표정이었고,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불릿의 즐거움(?)을 촉구했다.

“…자네들은 흙덩이가 괜찮은가?”

자신이 공표해놓고도 아무런 반발이 없다는 사실에 찜찜함을 느꼈던 불릿이 슬그머니 묻자 한쪽에서 번쩍 손이 들렸다.

“발언을 허한다, 실라이온 남작.”

“감사합니다.”

불릿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실라이온 남작.

그는 불릿과 함께 중앙영지로 입성한 삼광(三光) 셰실리코프였던 것이다.

아직 그가 왜 남작이라 불리는지 대부분의 가신들은 모르고 있었으나, 그동안 불릿이 보인 행보가 워낙 파격적이었기에 이젠 이런 것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있었다.

“외람되오나 각하,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샤인과의 만남은 언제쯤에야….”

“이 사람이 급해도 너무 급하군. 뭔가 결과라도 내고 나서야 대외적으로 자네가 남작이 됐음을 공표하고 혼인을 추진해볼 게 아닌가?”

“대영주님,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들이 모인 이유는 불모의 황무지를 개간하려고 논의하려던 것이었기에 잡담이 길어지는 듯해 이우우스 행정관은 적당히 잡아낸 분위기 속에서 일을 진행시키고 싶어 했다.

불릿도 너무 딱딱한 분위기보단 살짝 화기애애한 것이 좋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전령은 보내놓았으니 내년까지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네는 이번 영토확장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그래, 그럼 삼광은 됐고…, 본인이 부인들을 고르는 데에 있어 자네들은 불만이 없는가?”

대영주의 자리에 있는 자가 마음대로 혼인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이상할 것이다.

모름지기 힘이나 권력엔 책임이 따르는 법인지라 정치적인 이유나 재산, 또는 어떠한 이해득실에 의해서 부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귀족들은 본부인 외에 애첩이라는 자를 두어 사랑을 퍼부었는데, 이 때문에 집안이 파탄 나거나 피가 흐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에 천인장들 중 대표로 입석한(또는 전령으로 입선한) 최연소 천인장 제노시스가 손을 들었다.

“각하, 본 천인장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경험이 미진한 제노시스가 이곳에 참석할 수 있던 이유는 천인장들이 업무로 바빠 그가 대신 내용을 전달할 의무를 띤 것과, 불모의 황무지의 개간은 군대를 동원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제노시스의 발언에 불릿은 직접 손을 가리켜 발언권을 주었다.

“저는 혼인이란 것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겠사오나, 가장 고귀한 혈통인 각하의 피를 잇는다면 그 누구라 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력도, 힘도 없는 자들인데도?”

“그건…….”

제노시스가 말을 흐리자 이어서 동쪽의 지배자인 카질런 남작이 바턴을 받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저희의 딸이나 손녀들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오나, 저희도 이젠 거기까지 바라진 않습니다.”

“…혼인의 대상이 흙덩이라도 말인가?”

정령이었던 흙덩이와 혼인하는 것은 구설수에 오르기 충분한, 아니 그보다 술안주로 좋은 얘깃거리도 없었기에 불릿은 오늘 이 자리에서 확실히 알고 싶었다.

가신들이 자신을, 그리고 그와 관계를 맺은 그녀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이다.

여태까지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카질런 남작. 가장 사심이 적게 들어가면서도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불릿은 내심 그에게서 원하는 말을 듣기 바랐다.

그리고 그는 불릿의 바람대로 원하는 답을 내놓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각하께서 계시지 않는 바포 변경백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카질런 남작, 그는 주변을 훑어보고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가신들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반역을 일으켰던 자들이 줄줄이 숙청당하는 것을 보고도 권력에 욕심을 가지는 인물이 있다면, 그자는 어리석다 못해 어깨위의 장식품을 치워야 할 것입니다.”

가신들을 대표하는 격인 카질런 남작의 발언은 귀환한 이래 불릿이 보였던 행동에 대한 결과였다.

온건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전의 행보와는 달리, 젊어진 불릿은 언제나 파격적이라 부를 만한 일처리와 다소 냉혹할 수 있는 반역자에 대한 숙청을 행했다.

그러면서도 영토를 빠르게 수복, 안정화시키면서 몇 개월 사이에 끝장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바포 변경백을 금세 이전의 명성에 근접한 상태로 되돌렸다.

지금 이 자리도, 잠시 얘기가 새긴 했으나 금전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불모의 황무지에 대한 개간을 토론하는 자리였으니 그의 거침없는 카리스마에 가신들은 매료되었던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비록 그녀들의, 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직 혼인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므로.”

사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카질런 남작. 이에 불릿도 그가 무얼 말하려는지 눈치 채고서 알겠다는 제스쳐를 취해주었다.

양해를 구한 카질런 남작은 이어서 말을 잇는다.

“그녀들은 비록 출신성분이 부족할 수 있으나, 그걸 상회하는 능력과 더불어 미모가 빼어나니 각하와의 합방을 통해 태어나는 후손이 기대되는 바입니다.”

결국 예뻐서 통과라는 의미였기에 불릿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이 아름답긴 하다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아닙니다, 각하. 귀족에게 있어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음?”

이상한 말이었으나 카질런 남작은 불릿이 이해할 만한 내용을 내놓았다.

“귀족에게 있어 저택은 자신의 얼굴을 대변하는 부분, 그러나 애초에 외모가 아름답고, 빼어나다면 굳이 그런 사물에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척, 하니 올라간 손가락이 카질런 남작의 발언에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

“보석이 값진 이유는 아름다워서입니다. 이 이상 긴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간단명료한 이유. 아름답기에 가치가 있다.

음식으로 비유를 해도 때깔도 고운 것이 맛도 좋다는 것처럼, 인간은 시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외모를 가꾸기 위해 수백, 수천 골드를 들여서, 또는 미신에 의존해서라도 아름다워지려는 여성들을 보면 올리비아와 흙덩이, 그리고 유실리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불릿과 어울리는 배필일 것이다.

흙덩이야 교양이 부족하지만 능력이야 출중했고, 올리비아는 몰락귀족출신이면서 용병일도 했기에 교양과 검술실력도 좋았다.

현직 기사인 유실리아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기사가 되려면 이것저것 배워야하는 것이 매우 많았으니까.

이처럼 불릿은 그녀들의 출신성분이 걱정되어 전전긍긍했지, 그녀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를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각하께서도 젊어지신 이후로 더욱 남성미를 풍기시니 그 인기가 사뭇 두려울 정도입니다.”

카질런 남작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 착석했는데, 불릿은 이러한 말들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이놈의 외모지상주의….’

잘생겼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서러워서 어쩔 뻔했는가?

본래 가진 자는 자신이 무얼 가졌는지 깨닫지 못하는 법이었다.

이렇게 불릿의 고민이 해결되면서 회장은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의 주군이신 불릿 폰 바포 대영주님의 고민이 또 하나 해결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주제로 돌아가서 불모의 황무지에 대해 토론해보도록 하지요.”

이우우스 1급 행정관이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나서자 모두가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수행원의 존재는 분위기를 쇄신하거나 모두를 하나로 끌어 모으는 등, 중요한 위치에 있던 것이다.

“대영주님께서 손수 옥체를 움직이시며 마수의 숲과 인접한 영토들을 둘러보셨는데, 그곳에서 작은아씨의 대지의 축복으로 마기가 정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웅성웅성.

가신들은 저마다 작게 속닥이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마기의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마기라는 것은 마나의 한 종류로 분류되지만 인간에게 이롭지 못한 기운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마정석을 통해서만 마기를 다룰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일부분만 다룰 수 있었다.

마기의 정화는 대신관급은 되어야 할 수 있었는데, 대신관이란 존재가 막 수백, 수천 명이나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대신관이라 하더라도 넓고 광활한 대지를 정화하기란 무리였다.

“바스톤과 바람이 머무는 곳에서 확인한 결과, 대영주님이 정령력의 소모로 탈진하지 않으시면서도 그곳을 모두 정화하셨습니다.”

“이우우스 행정관, 본인의 정령력이야 그렇다 치고, 흙덩이의 체력도 생각하도록. 이젠 더 이상 정령이 아닐세.”

“네, 수정하겠습니다. 그래서 정령력의 수급엔 무리가 없으나, 대영주님의 정령력을 받아들여야하는 작은아씨의 체력이 이를 못 따라가기에 시간이 걸렸던 부분이 있습니다.”

흙덩이는 더 이상 정신체인 정령이 아니다.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온전한 인간의 육체를 갖고 있어 피로도 느끼고, 응응(?)도 느낀다.

정령력이 받쳐준다고 함부로 날뛰었다간 아직 가녀린 소녀인 흙덩이가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리고 최근 하급 마물의 토벌 이후 몬스터가 간간히 출현한다고 하니 불모의 황무지의 개간은 일부지역으로 한정하여 조금씩 진행할 예정입니다.”

불릿의 힘을 받아들일(그 힘 아니다) 흙덩이가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고, 몬스터와 더불어 언제 마물의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토벌을 하면서 개간을 진행해야 했다.

“불모의 황무지 개간은 이렇게 진행될 것이고, 물자보급에 관해선 구 직스 자작령, 지금은 카텐령으로 변경된 그곳을 통할 것입니다.”

단순히 며칠 있다 올 것도 아니었으니 뒤를 받쳐줄 진지가 필요했고, 그것을 맡아줄 것은 벙스 카텐 준남작이 선정되었다.

카질런 남작령도 불모의 황무지와 맞닿긴 했으나 가장 관심을 덜 받는 곳은 카텐령이었기에 그곳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바포 변경백은 도약하기 위해 움츠릴 때였으니까.

“마지막으로, 각하와 작은아씨의 정령력은 신체의 접촉, 그중에서도 성교에 의해 증진된다 하오니 정력에 좋은 음식이 있다면 각자 지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걸 어떻게 안 거냐!”

불릿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도 이우우스 1급 행정관은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조아렸다.

“당연히 작은아씨 아니겠습니까? 겸사겸사 따님도 잉태하시면 좋겠군요. 작은아씨를 닮아 예쁘실 겁니다.”

이우우스, 그도 짓궂은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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