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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39화 (139/241)

00139  흙덩이와 함께  =========================================================================

마수의 숲에 인접한 도시, 바스톤에 도착하자 불릿은 그를 마중 나온 영주 브룩 남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백작각하.”

마차에서 내리며 흙덩이를 에스코트하던 불릿은 그녀가 잘 내리질 못하자 이전처럼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선 들어서 바닥에 착지시켰다.

“에헤헤, 불릿이 들어줬다.”

“언제쯤이면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모르겠군.”

“있지이, 나는 말이야, 흙덩이는 불릿이 있으니까 그런 거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아.”

흙덩이가 불릿의 몸에 부비부리를 하며 애교를 부리자 브룩 남작과 그의 휘하병력에게 위엄을 보이려던 불릿의 얼굴이 풀어지려고 했다.

“…각하, 백작각하.”

“으, 음? 아, 그래. 미안하군, 오랜만일세, 브룩 남작.”

“침실은 따로 마련해드릴 터이니 일은 밤에 치르시고, 일단 토지부터 둘러보시는 것이….”

“커허험!”

“헤헷.”

브룩 남작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네자 불릿이 민망함에 헛기침만 뱉었고, 흙덩이는 그의 팔에 매달려선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유실리아는 홀로 마차의 반대편에서 내리며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는 상태.

“반갑소, 바스톤의 영주시여.”

“그대가 고생이 많소, 크레파토스.”

“고생이랄 것도 없소이다. 이제야 각하께오서 집안을 꾸리시는 듯해 그저 기쁠 뿐이오.”

크레파토스와 악수를 교환한 브룩 남작과의 담소에서 평소 크레파토스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기 옆에서 헛기침을 뱉으며 슬쩍 흙덩이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불릿이 그동안 후계생산에 등한시 했기에 바포 변경백이 이토록 불안정했던 것이다.

만일 제대로 된 후계가 있었더라면 게슐린 그랩 자작과 같은 반역자는 나오지 않았을지 몰랐다.

“흠흠, 브룩 남작. 일단 안내부터 해주겠는가? 휴식을 취하기 전에 한번 둘러보고 싶군.”

“알겠습니다. 거기 여기사, 작은아씨를 안으로 모시도록.”

보통 이런 영지와 관련된 중요한 얘기에선 레이디들은 빠지는 것이 일례였기에 브룩 남작은 자연스럽게 흙덩이의 호위라 여겨지는 유실리아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브룩 남작의 행동은 불릿에 의해 제지당하게 되었다.

“그만, 흙덩이도 동행해야 한다.”

“…? 작은아씨가 정령이셨습니까? 저는 다른 분인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브룩 남작의 오해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흙덩이의 모습은 완전 순도 백퍼센트 인간의 형태였다.

대개 정령은 아무리 교감을 나누더라도 흙덩이가 보이는 모습까지 진도가 나간 적은 없었기에 가신들에게서 떠돌던 이야기는 불릿이 작은아씨라 불리는 흙덩이를 위장전입해서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사실 흙덩이가 보이는 행동이라거나 모습이라거나, 정령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긴 했다.

“으음.”

불릿은 이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까,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브룩 남작, 크레파토스, 그리고 유실리아만 남고 주변의 병력을 물리도록.”

그가 어떤 얘기를 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브룩 남작은 순순히 그의 명에 따랐다.

“전 병력은 반경 30미터 이내로 접근을 불허한다. 백인장!”

“잘 들었겠지? 남작님의 곁에서 떨어지도록!”

“물러서, 물러서!”

불릿을 맞이하려던 주민들은 병력에 의해 뒤로 물러나게 되었고, 이번 여행은 커다란 행사나 강제로 모이게 했던 것도 아니었기에 일부는 원래 하던 생업에 종사하러 떠났다.

“저분이 대영주님이야?”

“글쎄, 내가 알겠는가? 그런데 젊기는 엄청 젊으시군.”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장난 아니시네.”

“근데 저 여자는 누구지?”

군대를 파견하긴 했었으나 그것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왔던 것인지라 일반 주민들은 잘 모르는 사항이었고, 불릿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젊어진 이래로 처음이었기에 사람들의 호기심은 왕성한 상태였다.

그들의 수군거림으로 소란해진 대로였으나 반대로 이러한 소란스러움으로 인해 불릿 일행의 대화는 안전이 보장되었다.

“…사정이 있었다. 본인의 정령력을 토대로 흙덩이가 정령술을 사용할 순 있으나, 온전한 육체를 지닌 순수한 인간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지금 정령이 인간으로 변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당장 인근에 위치한 마탑지부에 알리기만 하더라도 난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 그날, 흙덩이가 인간으로 각성인지 변신인지 모를 일을 겪었던 순간엔 마탑지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용한 것을 보니 불릿이 무언가 조치를 취한 것 같았으나, 현재로썬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말조심하도록! 흙덩이는 본인의 아내일세!”

“하지만 정령이란 말입니다? 인간이 되었다고 하여 각하와 격이 맞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고위귀족에게 있어 혈통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결혼도 마음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정치적 결합에 의해 안주인끼리 자식들의 배필을 맺어주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근친혼도 성행하며 다른 잡스런 피를 섞지 않으려 노력해왔는데, 불릿이 그것을 깨다 못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니 그를 섬기는 브룩 남작의 심기가 좋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불릿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옆에서 브룩 남작의 언성 때문에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흙덩이가 가엾을 뿐이었다.

“이 영토를 누가 구해냈는지 아는가?”

“그야 당연히 백작각하이십니다. 이는 한낱 무지렁이나 마찬가지인 백성들도 아는 사실이지요.”

바포 변경백은 란푸스 왕국과 마주보고 있는 국경선이 위치한 곳이었다.

왼쪽으로는 몬스터와 심처 깊숙한 곳에 마물이 있다 여겨지는 마수의 숲이, 오른편으로는 영토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생명이 살 수 없는 불모의 황무지가, 아래로는 호시탐탐 영토확장을 노리는 알 라스 폰 구울 백작과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 각 지역의 군벌들이 있었다.

그리고 루드밀라 최대의 세력과 부유함을 자랑하는 1순위의 경계대상 투툰 후작이 조용하게 그들을 바라보는 상태였다.

위? 위에는 말할 것도 없이 란푸스 왕국이라는, 절대왕정을 이룩한 무시무시한 적이 도사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게슐린 그랩 자작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1만의 군사까지 대동했던 자들을 아무런 피해 없이 물리칠 수 있었는데, 오늘날 바포 변경백이 무사할 수 있던 것은 선조들의 노력도 있었으나 가장 큰 일등공신은 불릿 폰 바포라고 누구나 목소리를 높여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릿은 이런 당연한 사실을 내뱉는 브룩 남작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본인이 힘을 내며 일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정령사이기 때문일세. 본인이 정령사가 아니었다면 많은 일들이 중도에 좌절될 것이었고, 우리는 가뭄과 자연재해에 시달리다 식량부족으로 알아서 자멸했겠지.”

21년 전의 대홍수에서 피해를 입으나마 살아남을 수 있던 것도 불릿의 부모인 애로우 폰 바포와 스틱스 여사의 힘 덕분이었다.

당시 두 명 다 중급 정령사라는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물의 범람을 겪었었는데, 거기서 성까지 쓸릴 정도로 폐허가 된 영토를 복구한 것은 불릿 또한 정령사라는 점이 매우 큰 역할을 차지했다.

“그리고 흙덩이, 음. 불안해하지 말고, 자. 그녀가 인간이 되었으나 본인과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존재하지. 지금도 이렇게, 흙덩아, 대지의 축복.”

“알았어.”

파아앗…

흙덩이는 자신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불릿의 손길에 안정감을 되찾으며 그의 정령력을 빌어 대지의 축복을 시전했다.

은은한 빛을 뿌리던 그것은 그들이 딛고 선 바닥으로 흡수되면서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푸스스스스…

“우왓, 이게 뭐지?!”

“땅에서 거뭇한 게 올라오네?”

“뭐, 뭘까요, 이건?”

주변에서 구경하던 주민들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들을 통제하는 병력들 또한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각하, 이것은!!”

“그동안 땅을 침범하던 마기라고 생각되네.”

브룩 남작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불릿은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잘했어, 역시 난 네가 있어야해.”

“헤헤, 나도 불릿이 있어야해!”

흙덩이는 불릿의 칭찬에 그를 와락 안았는데, 불릿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덩치였기에 오히려 그가 그녀를 안는 구색이 되었다.

불릿은 흙덩이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미소를 짓고선 브룩 남작에게 말을 이어갔다.

“이렇듯, 그녀가 없으면 본인도 없다네. 반역자 그랩 자작의 성을 무너뜨린 것도, 죽어가던 영토를 살린 것도, 대지의 기운을 북돋는 것도, 베니스 남작이 향신료를 기를 수 있던 것도, 그리고 지금 본 것까지. 자네는 이래도 흙덩이가 본인과의 격이 맞지 않는다 생각하는가?”

마기를 몰아내는 행위는 고위신관이라 할지라도 매우 힘든 일이다.

그것은 퇴마와 관련된 것으로,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침범된 땅의 기운을 북돋아줌과 동시에 마기를 몰아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어렵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이었다.

“…….”

브룩 남작은 잠시간 말이 없더니 이내 무릎을 꿇으며 부복했다.

바스톤의 영주인 브룩 남작이 부복하자 주변에서 경계를 서던 기사와 병사들도 무릎을 꿇었고, 눈치 빠른 영지민들도 그들을 따라했다.

털썩.

“백작각하, 만세! 작은아씨, 만만세!”

그리고 이어지는 우렁찬 대화합.

“백작각하 만세! 작은아씨 만만세!”

“바포 변경백 만세!”

“거유 로리 만세!”

“저 새끼 잡아.”

“넵!”

십인장의 명령에 끌려 나가는 누군가. 그의 비명이 환호성을 지르는 시민들의 음성에 파묻히고 있었다.

“아악! 여기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에에-!”

중앙영지에서도 본 것 같은 사내가 끌려 나가는 사이에도 불릿과 흙덩이는 서로를 끌어안고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상태였고, 대지의 축복이 시전 된 토지에서는 아직까지 남아 있던 정령력이 은은한 빛을 부리고 있었다.

* * *

“진정 괜찮으시겠습니까, 각하?”

브룩 남작은 아까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는지 약간 흥분한 모습을 보였는데, 불릿은 그런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마 입을 열었다.

“모름지기 군주라 함은 타의의 모범이 되어야하는 법. 휴식도 중요하지만 나의 백성들이 힘들어하는데 마냥 쉴 수도 없지.”

불릿은 흙덩이와 유실리아는 저택에 내버려두고 시찰을 하고 있었는데, 사전에 미리 관측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젠 흙덩이도 더 이상 정령이라 부를 수 없었기에 소녀의 육체로는 장시간 걷는 것만으로도 몸에 부담이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술로 단련되어 체력은 튼튼한 자신이 미리 좀 봐두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브룩 남작은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아닌 듯 이를 부정했다.

“아니, 그것 말고 말입니다. 어찌하여 침실을 따로 잡으신 것입니까? 밤일을 하시려면 호위기사만 옆방에 두시는 것이 이롭지 않습니까? 작은아씨와 합방을 하셔야 잉태를 할 수 있는….”

“미친.”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

“아무것도 아닐세. 흠, 흙덩이를 왜 따로 두냐고 물었는가?”

“아,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합방을 하시는 편이 거사를 치르는데 이로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끄응.”

============================ 작품 후기 ============================

지각...죄송합니다 ㅜ.ㅜ

이건 추천1800이고 선작900기념은 저녁 것인데, 밤사이 1000이 되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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