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138화 (138/241)

00138  흙덩이와 함께  =========================================================================

“그럼 올리비아, 다녀오리다.”

불릿은 마차에 오른 상태에서 문만 열어놓은 채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체, 나만 쏙 빼놓고 둘이서만 가게 되었네.”

올리비아는 이전에 크레파토스가 구해다 주었던 최신유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노출도가 전통복장의 드레스보다도 더 많았다.

가슴과 허리라인이야 전통복장 드레스가 코르셋으로 인해 더욱 조여 준다고 하지만, 시원스럽게 노출된 다리와 겨드랑이로 인해 선정적이면서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 느낌을 준 것이다.

그녀가 팔을 들어 올려 뒤통수를 받치고 있자 그녀의 곁에서 보필하고 있던 루나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마님, 속살을 그리 비추시는 것은 조금….”

“앗, 나도 모르게 그만, 아하하….”

올리비아는 용병시절의 버릇이 남아있어 아직도 이런 경우를 보이곤 했는데, 귀족의 기품과 그녀의 미모가 아니었다면 인상이 찌푸려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불릿은 그것마저도 사랑스럽다는 듯 팔을 받치고선 수염도 없는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겨드랑이도 만져보고 싶군.”

“이 변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뭐,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해두지.”

“??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딘가의 마신이 겨드랑이 하나로 세계의 평화를 지켰다고 들은 것 같다.”

“???”

불릿과의 이상한 대화가 끝나고 올리비아는 다시 차분한 상태가 되어 그를 마중해 주었다.

“밥은 꼭꼭 챙겨먹고, 흙덩이 잘 챙겨주고. 아 맞다, 흙덩이는 자기 몸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상태체크 해줘야해. 특히 배를 움켜쥔다 싶으면 새, 새, 생, 생….”

“생리인지 확인해주셔야 하고요, 맞죠?”

“그, 그래! 그거 말이야…, 얘는 부끄러움이 없어!”

찰싹!

“아얏, 마님은 난폭하셔라.”

“흥, 너나 잘하세요.”

루나와 올리비아가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마차 안쪽에서부터 여성의 미성이 흘러나왔다.

“걱정 마십시요, 마님. 작은아씨는 제가 책임지고 모시겠습니다.”

“잘 보필하라고, 유실리아.”

“알았어, 아일렌.”

불릿과 함께 동승한 이는 여기사 유실리아로, 루나와 함께 올리비아를 모시는 입장인 아일렌은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그녀가 움직인 것이다.

아일렌은 마차너머로 살짝 보이는 유실리아를 바라보며 걱정으로 한가득했다.

‘쟤는 어쩌다가 각하께 연정을 품어서는….’

한숨만 나오는 친구의 걱정도 모른 채 유실리아는 살짝 들떠 있는 상태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반드시 각하와 이루어 보이겠어.’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올리비아, 그녀는 불릿과 함께한 동료라는 타이틀로 강력한 지지기반을 수립하여 불릿의 배필 1순위에 올라선 상태였다.

또 흙덩이는 본래 정령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불릿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여인이자 첫 번째였다.

이제는 온전히 인간으로서의 육체기능도 수행할 수 있었기에 임신이 가능, 마음까지 주고받았다고 하녀장과 아일렌을 통해 알게 되었다.

흙덩이가 가능하다면 모자라다고 할 수 있는 자신도 가능성이 열린 것이기에 그녀는 도저히 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

“다녀올게, 올리비아! 아일렌! 루나!”

그때 흙덩이가 불쑥 고개를 내밀어 불릿의 허벅지에 손을 짚고선 팔을 붕붕 흔들자 올리비아는 걱정하면서도 애써 웃어보였고, 루나와 아일렌은 공손히 고개와 허리를 숙였다.

“각하, 이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다각다각, 말을 타고서 다가온 크레파토스가 불릿에게 물음을 건네자 불릿도 응답해주었다.

“그래, 이제 출발하도록 하지.”

“문을 닫겠습니다, 각하.”

달카닥.

크레파토스의 굵직한 음성과 함께 문이 닫히자 우렁찬 소리와 함께 마차와 호위병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열을 지키면서 마차를 호위하도록! 출발!”

“출바알-!”

짝!

“히히힝!”

마부역할을 하는 병사가 고삐를 살짝 내려치자 말이 시원한 울음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각다각-

올리비아는 손을 엇갈리게 쥐고선 기도하듯 홀로 중얼거렸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일 잘 끝내고 돌아와….”

그녀가 불릿과 흙덩이에 대한 걱정으로 그들을 보내주고 있을 때, 아일렌은 유실리아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성공하길 바란다, 유실리아.’

* * *

이번에는 급하게 이동할 필요가 없었던 관계로 불릿과 일행은 마차의 흔들림 없이 쾌적한 상태로 바스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있지, 안나가 자꾸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데, 너무 어려웠어.”

명목상으로는 불모의 황무지 개간에 대비한 각 영지의 토질실험이었으나, 지금의 분위기만 보자면 흙덩이와 불릿의 오붓한 소풍나들이였다.

그렇다곤 해도 단시일 내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기에 둘을 보필, 보좌할 인물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번 여행엔 바포 변경백에 대해서 빠삭한 노장 크레파토스의 호위병대를 불러들인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흙덩이를 위해 같은 여성인 유실리아를 붙여주는 것은 아일렌의 자그마한 센스.

“하녀장이 작은아씨께 성교육을 실시해서 부득이 제가 개입한 부분이 있습니다, 각하.”

유실리아는 흙덩이가 불릿에게 건네는 말에 자신도 말을 보태었는데, 안나는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흙덩이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가 가르쳐주는 지식 대부분이 불릿의 명성에 흠이 가지 않을 법한, 그가 행복할 수 있게, 그가 기분 좋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들이었기에 흙덩이도 적극적으로 지식을 흡수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유실리아가 판단하기에 어린(정령에게 어리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으나) 흙덩이에게 강요하는 면이 있는 교육인지라 일부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거기(?)에 손가락을 넣진 않았겠지?”

“제가 말렸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각하.”

“후우, 흙덩이가 아무리 그런 쪽에서 무지하다고 한들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일러두도록. 상당히 기분 나쁘니 말이야.”

불릿은 이제 흙덩이도 자신이 지켜야할 여자로 인식하고 있던 관계로 이 가녀린, 정령으로서의 특색을 잃어버린 소녀의 몸에 혹여 상처라도 났을까봐 덜컥 두려워졌다.

정령은 기본적으로 소환되면서 정신체에 계약자의 정령력을 덧입혀 육체를 구성한다.

말하자면 기운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물리적인 공격을 무효화하는 특징을 지녔다.

하지만 지금 흙덩이는 완전한 인간이 됐기에 그러한 특징적인 보호를 받을 수가 없었기에 조심해야 했다.

“그거, 안나가 나한테 생긴 구멍에 손가락을 넣는데, 막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쉿, 쉿! 여자애가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응? 그래서 말이야, 처음엔 무서웠는데 나중엔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안나한테 물어보니까 그게 자….”

텁.

“우우웁?”

“작은아씨, 거기까지 하시는 걸로 하지요.”

“우우웅….”

눈을 감은 유실리아가 흙덩이의 입을 막아섰는데, 중간에 막긴 했어도 이정도로 말하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진짜 돌아가면 안나에게 한소리 해야겠군. 도와주는 건 좋은데 이런 식의 도움은 필요 없단 말이다….”

이마를 짚고서 한숨을 내뱉는 불릿을 바라보던 흙덩이가 옆으로 움직이자 유실리아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흙덩이는 불릿의 이마에 자신의 머리칼을 들어 올린 후 이마를 콩, 하고 맞대보면서 불릿의 체온을 재는 듯했다.

“힘들어? 어디 아파? 조금 쉬다 갈까?”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맙다.”

그러면서 흙덩이의 눈꺼풀에 짧은 입맞춤을 하는 불릿. 그녀는 그런 그의 입맞춤이 간지러웠는지 살짝 움츠렸다가 번쩍 눈을 뜨며 자신도 입을 맞췄다.

“쪽!”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흙덩이가 입술을 마주대자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게 된 형국이 되어버렸다.

흙덩이는 뒤로 슬쩍 물러서며 해맑게 웃었다.

“헤헤헤, 역시 불릿의 입술은 부드럽고 기분 좋아.”

“……아마, 네 입술이 부드러워서 그런 건 아닐까.”

“그런가? 헤헤.”

포옥.

“이러고 있으니까 행복하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아….”

불릿의 허벅지에 옆으로 누운 흙덩이는 작게 속삭였고, 불릿도 그녀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졸리면 자도 좋다.”

그의 말에 흙덩이는 눈을 비비다가 미소를 지은 후 눈꺼풀을 닫았다.

“그럼 조금만 잘게…, 잘 자, 불릿….”

“잘 자, 내 사랑.”

‘음, 이건 좀 닭살 돋는군.’

“헤…헤…헤…….”

불릿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흙덩이는 웃음을 흘리며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새액…, 새액….”

그녀의 숨소리가 고르게 울리자 불릿은 유실리아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하군, 자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서.”

불릿의 말에 멍하니 그들을 보던 유실리아는 화들짝 놀라며 더듬거렸다.

“아, 네. 아, 아닙니다, 각하. 저는 신경 쓰지 마시길.”

‘당황하는군.’

유실리아는 이제야 막 성년에 들어선 나이였으니 이런 애정행각을 보면 당황할 법도 했다.

그 외에도 추측되는 것들이 있었으나, 불릿은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는 분위기를 반전하고자 조용하며 낮은 기침으로 흙덩이가 깨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를 냈다.

“어흠, 자네는 본인이 어찌해서 바스톤으로 향하는지 알고 있는가?”

“토질실험, 이라고 드, 들었습니다.”

“…웬만하면 애정행각을 하더라도 안 보이는 데서 할 터이니 너무 긴장하지 말게.”

“괘, 괘, 괜찮!…습니다, 큿.”

하마터면 흙덩이를 깨울 뻔했기에 유실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참는 모습을 보였다.

“서두른다고 해도 어차피 여름에 들어섰기에 파종을 하기엔 늦은 감이 있지. 본격적인 개간은 내년부터 할 것인지라 이번 여정은 전체적인 점검을 겸하고 있다.”

“…이미 충분히 돌아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옥체가 상할까 염려되옵니다.”

불릿은 복권한 이후로 내내 제대로 쉬지도 않고 영토를 돌아다녔다.

쉬는 시간에도 올리비아와의 사랑을 속삭였는데, 사실 그건 휴식이라고 하기엔 조금 체력적으로 무리가 갔다.(?)

그나마 최근 유실리아가 한소리를 한 이후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올리비아였으나, 불릿은 그때 잠들어 있었으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쉬면서 하려고 이렇게 느릿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가?”

불릿은 말을 하면서도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는데, 잠들어 있으면서도 그것이 좋았는지 슬금슬금 미소가 어리는 중이었다.

“우웅….”

“가이아 여신에게 고마워해야겠군.”

불릿은 몸을 뒤척이느라 사라락, 흘러내리는 흙덩이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흙덩이를 내게 보내줘서.”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흙덩이를 내려다보는 불릿.

그런 불릿을 바라보는 또 다른 여인의 마음은 애간장이 타고 있었다.

유실리아는 루나가 알려줬던 필승법을 떠올리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기정사실…이라고 했지?’

그녀는 은밀하고 위험한 음모를 꾸미는 중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추천과 선작 감사합니다! 신규베스트 9라니 우와왕!

내일도 같은 시각과 같은 분량이 연재될 겁니다!

왜냐하면 추천1800,  선작900이 되었기에 주말 3회분에 2가 더해져서 그렇지요!

그럼 저는 다시 글을 쓰러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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