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7 사랑에 빠진 흙덩이 =========================================================================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표현할 순 없겠으나, 적어도 슬픔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슬픔으로 적셔져가는 남자의 가슴팍에는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가 가련하게도 슬피 울고 있었다.
“흑, 흐윽, 불리잇…, 나를, 흐으윽, 사랑해줘….”
“흙덩아…….”
남자, 불릿은 이 가련하고 소중한 자신의 소녀에게 어떻게 해주어야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사랑에 보답해주기로 맹세했으나, 올리비아와는 달리 흙덩이는 선뜻 그 육체를 자신의 것으로 더럽히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정령에게 나이는 무관한 것이겠으나, 외관상으로는 미소녀 그 자체.
건전한 사상을 지닌 그로서는 흙덩이를 여자의 길로 인도해주기 어려웠다.
불릿이 우물쭈물하며 소녀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며 그저 안아주고만 있자, 이를 지켜보던 올리비아는 척척 다가와 불릿에게 말을 걸었다.
“결국 예쁜이를 울려버렸구나.”
“…올리비아.”
팔짱을 낀 채로 불릿과 눈을 마주보는 그녀에게서 불릿은 분노도, 실망감도 아닌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선 부드럽게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스윽.
“울지 마, 예쁜아. 설마 불릿이 너를 외면하겠니?”
“흐으윽, 오, 올리비아앙….”
감정이 복받쳤는지 흙덩이는 올리비아의 다정한 말에 울음보를 터뜨려버렸고, 불릿의 가슴팍은 이제 홍수가 범람하고 있었다.
“그래그래, 우쭈쭈, 착하다, 착해, 우리 흙덩이, 불릿이랑 해야지?”
“하, 하지만, 엉엉! 나, 나능 하쭐 몰라아….”
도리질을 하며 불릿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던 흙덩이는 슬픔과 불안이 공존하는 떨림으로 말을 이어갔다.
“부리잇…, 나, 나 이상해! 막, 막 우, 훌쩍! 이상해에-엉엉엉!”
처음으로 겪는 감정의 폭발에 얼마 전까지 정령이었던 흙덩이는 안나에게 당했던(?) 때처럼 불안에 떨고 있었다.
진정 그녀가 평범한 소녀가 되어버렸다면 이처럼 뭔지 모를, 감정이라는 생소한 부분에 두려워 할만 했다.
그리고 불릿은 이 가련한 소녀의 등에 힘을 주며, 그러나 부드러움이 함께하는 포옹을 하며 커다란 손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흙덩이의 눈물 훔쳐주었다.
“울지 마라, 네가 슬프면 나도 슬프다.”
“엉엉엉! 으아아아앙!”
다정한 그의 말에 대성통곡하는 흙덩이. 방안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어느새 들어와 있던 아일렌은 어떤 상황인지 깨닫자 조용히 문을 닫고 한쪽 벽에 기대어 서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흙덩이의 눈물이 그칠 기미를 보이질 않자 불릿은 특단의 조치를 결심했다.
“흙덩아.”
“으아아앙! 흐아아아앙!!”
“사랑한다, 진심으로.”
이어지는 다정한 입맞춤, 올리비아에게는 열정적으로 키스를 해왔다면 흙덩이에겐 망가질까봐 조심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살결을 쓸어갔다.
“츄우웁-, 우물우물-.”
“흐, 흐응, 흐으응…?”
자신의 혀로 입술을 간질이다 이내 흙덩이의 입술을 잠식하며 그녀의 혀도 먹어간다.
분홍빛 혀가 불릿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흙덩이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불릿의 키로 인해 침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츄르릅….”
흙덩이는 뽀뽀가 아닌, 진짜 연인의 키스를 경험하며 자신도 모르게 불릿이 흘린 침을 먹어갔는데, 불릿에게 빨려 올라간 혀를 통해 흘러들어온 침을 삼키며 목젖이 울렁거렸다.
“꿀꺽-, 꿀꺽-.”
그리고 드디어 불릿의 입에서 해방되는 흙덩이의 혓바닥.
뽀옹…
너무도 소중하고 가녀린 흙덩이였기에 불릿은 진공상태가 되었던 입안을 풀면서도 살짝, 아주 살짝씩 풀어주며 흙덩이가 놀라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있었다.
“후아앙…, 부, 불릿? 으, 아, 아아아?”
소환된지 얼마 안 됐을 당시, 불릿에게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질문의 의미로 내뱉었던 ‘아아아’까지 나올 정도로 흙덩이는 정신이 없었다.
올리비아와 키스를 나누던 것과는 전혀 다른, 다정하면서도 놓지 않겠다는 진한 진공키스에 아직 감정을 다루는데 어색한 흙덩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불릿은 흙덩이가 잔잔하지만 넓은 호수처럼 부드러운 키스로 인해 울음을 그치자 그녀의 살짝 부풀어 오른 눈두덩이를 엄지로 쓸어주며 또 다시 키스를 해주었다.
“츄읍…, 사랑해.”
짧지만 가벼운 키스와 함께 전해오는 사랑고백에 흙덩이는 새색시처럼 수줍음을 내보이며 꼼지락거렸다.
“나, 나도 사, 사, 사….”
아까까지만 해도 제발 사랑해달라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말하던 것과는 다르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흙덩이.
그리고 둘이 알콩달콩한 하트를 그리고 있을 때 안나와 루나의 대화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앗, 난 몰라몰라! 도련님이 진짜 남자가 되셨어잉.”
“흐와와와…, 키, 키스가 굉장히 다정하시네요…, 다정한데, 엄청 끈적끈적해요….”
“아, 나도 저런 사랑해보고 싶다!”
“하녀장님은 결혼하셨잖아요?”
“넌 우리 집 남편하고 도련님하고 비교가 되니? 무식하게 박아대기나 하는 놈한테 뭘 바래?”
“쉿, 쉿! 하, 하녀장님! 작은아씨, 작은아씨!”
“앗차. 작은아씨가 계셨지? 입조심 해야지.”
유부녀인 안나는 물론이거니와 귀족들의 이런 일에 익숙한 루나도 얼굴을 붉히고 있었으며, 입구 옆의 벽에 기대고 있던 아일렌은 이미 홍시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사…, 사랑해…, 헤헤.”
드디어 말하고자 했던 단어를 완성한 흙덩이는 이번엔 자신이 먼저 불릿에게 키스를 했다.
수줍음을 넘어 부끄러움이 넘실대는 키스는 발끝을 들어 올려 가슴에 모았던 두 손을 불릿의 목에 걸었는데, 그로인해 불릿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게 되었다.
“츄웁, 츄웁, 츄-웁.”
한번으로는 성이 안 찬다는 양 질끈 감은 눈을 하고선 계속해서 사랑을 갈구하는 흙덩이에게 불릿도 마주 답해주었다.
“대체 언제까지 할 거야? 나는 뭐 바보야?”
“앗, 올리비아!”
불릿에게 무한의 사랑폭격을 내리던 흙덩이는 그녀의 음성에 불릿의 목에 걸었던 팔을 풀고선 여전히 부어있는 눈으로, 그러나 순수함 그득한 눈빛을 올리비아에게로 비춰보였다.
올리비아는 자신에게로 도도도, 다가온 흙덩이를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토닥토닥.
“어이구, 이제 실컷 했어?”
“응. 헤헤헤…, 사실은 쪼오금 부족한 것 같아.”
“그만큼 했으면 됐지 뭘 얼마나 더 하려고, 나는 뭐 석상이야?”
올리비아는 투덜거리면서도 흙덩이의 눈가를 양쪽 엄지로 스윽 닦아주었는데,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녀의 손길에 흙덩이는 고양이처럼 목을 살짝 집어넣으며 눈을 꼬옥 감았는데, 입가엔 미소가 어려있었다.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하는 거니까 이상한 사람이랑 하면 안 돼요, 알았쪄요?”
“그럼 올리비아랑 해도 돼?”
“무, 무슨! 여자끼리는 하는 거 아냣!”
“우웅?”
흙덩이가 고개를 갸웃하자 올리비아는 벌게진 얼굴로 손사레를 쳤고, 불릿은 조용히 다가와 두 팔을 벌려 그녀들을 품안에 가뒀다.
와락!
“어맛!”
“히힛, 불릿이 안아줬다.”
올리비아는 당황했으나 흙덩이는 그저 좋다고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불릿은 그런 그녀들을 품에 안고선 나직이 속삭였다.
“나는 너희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고르지 못한다. 올리비아도, 흙덩이도 모두 다 소중하고 사랑하는데, 못난 나 자신은 기어코 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구나.”
“자기야….”
“나는 이제 괜찮아! 울지 않을게!”
기특한 흙덩이의 말에 불릿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도 말을 잊지 않았다.
“한 번에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너희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도 있겠지만, 이번만큼은 이해해줬으면 싶다. 나는 도저히 둘 중 하나를 버릴 수가 없어.”
바람둥이들이 흔히 내뱉는 대사중의 하나였으나 올리비아도, 또 아무것도 모르는 흙덩이도 고개를 저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난 또 뭐라고, 내가 허락한 일인데 설마 뭐라고 할까봐? 이 귀여운 꼬맹이가 드디어 나와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기쁠 뿐이야.”
“나도, 나도! 올리비아랑 똑같아! 불릿이 좋아! 너무 사랑해! 항상, 항상 같이 있고 싶어! 그리고….”
잠시 말을 흐리던 흙덩이는 고개를 살짝 빼내 불릿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쪽!
“…이렇게, 기분 좋은 일도 하고 싶어. 헤헤….”
“요 꼬맹이가, 내가 허락했다고 금세 불릿이랑 그렇고 그러려는 것 좀 보소? 안 되겠어. 에잇!”
간질간질-
“히야앙! 히히힛, 파하하! 하, 하지 마, 올리비아! 이, 이건 뭐야?”
“에잇, 에잇! 이럴 땐 간지럽다고 하는 거야! 에잇!”
“푸히히힛! 가, 간지러! 간지러워!”
올리비아가 깃털처럼 손가락을 흐느적대며 흙덩이의 옆구리를 간질이자 흙덩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맑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출렁였는데, 이것은 속옷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흔들흔들-
“뭐가 이리 커…….”
“하하하…, 응? 왜 그래, 올리비아? 어디 아파? 힘들어? 흙덩이가 치료해줄까?”
대부분의 신체능력을 상실한 흙덩이가 육체를 통해 발현 수 있는 것이라면 딱 하나, 치유능력만이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지옥구덩이나 지옥송곳, 돌벽 등의 기술만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치유능력은 신체를 날리거나 변형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인간이 된 육체로도 가능한 듯싶었다.
흙덩이는 올리비아가 시무룩해하는 것이 걱정됐는지 애틋한 얼굴로 올리비아를 올려다보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덥썩.
“아파? 아파?”
“아, 아니, 아프긴 한데, 몸이 아픈 건 아닌지라….”
그저, 흙덩이의 거대한 두 개의 융기가 너무도 당당히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지라 그것에 밀린 올리비아의 마음이 아파하고 있던 것뿐이다.
‘나도 큰 편이라 생각했는데….’
흙덩이의 가슴은 불릿에게 예뻐 보이고자하는 마음이 깃들어 육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저렇게 된 것 같았는데, F컵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졌으면서도 모양은 망가지지 않는 탄력을 지녔기에 그야말로 여성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올리비아도 검술단련을 통해 육체가 탄탄했으나 저것만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엉덩이는 또 왜 이리 튼실해?’
아래로 향한 그녀의 시선엔 흙덩이의 둔부도 보였는데, 전체적인 굴곡을 S라인으로 만드는 최후의 한수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아프지 마…, 흐윽, 훌쩍.”
“아니야, 안 아파! 이, 이것 봐봐! 알통이다! 튼튼하지?!”
올리비아는 흙덩이가 울려는 조짐을 보이자 팔을 걷어붙이며 근육을 보여주었는데, 인간이 된 이후로 잘 웃고 잘 우는 흙덩이에게 말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고, 우리 애기, 왜 이리 잘 우는 걸까?”
올리비아가 울먹이는 흙덩이의 얼굴을 매만지자 언제 그랬다는 양 다시 환하게 웃는 소녀.
“이렇게 될 때마다 막, 막 무서운데 말이야, 그래도 난 괜찮아. 올리비아도 있고, 불릿도 있으니까!”
흙덩이는 그렇게 외치며 두 사람의 손을 하나씩 붙잡고 신나게 흔들었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나도 있고, 올리비아도 있지.”
“그러엄-? 우린 이제 가족인걸? 그치, 자기야?”
“가족…, 그래, 가족이지. 소중하고, 그토록 바라던 가족….”
21년 전, 대홍수로 인해 끝나버렸던 가족이란 관계를 자신의 손으로 다시 만들게 된 불릿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아.’
그동안 또 다시 잃어버릴까봐, 혹여 남겨질 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만들 수 없었던 가족이란 것이 자신의 손에 다시금 쥐어지자 불릿은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흐뭇한 모습을 지켜보던 아일렌은 속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중이다.
‘어떡하니, 유실리아, 네가 끼어들 자리가 도저히 안 보여….’
아일렌은 불릿을 사랑하는 또 다른 여성, 자신의 친구인 유실리아를 떠올리며 걱정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