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3 우리 흙덩이가 바뀌었어요! =========================================================================
“어머나, 그야 당연히 당당한 소녀 아니시겠어요? 보세요, 가슴도 빵빵, 엉덩이도 빵빵, 와. 우리 도련님, 행복하시겠네?”
“장난치지 말고, 심각하니까.”
싱글벙글 웃던 안나도 불릿이 진지하게 묻자 침대에 앉아있는 불릿과 흙덩이의 옆에 앉더니 불릿에게 몸을 비비고 있는 흙덩이의 하체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작은아씨는요, 흙덩이님은 아기를 생산하실 수 있답니다.”
“그 말은….”
“네, 인간이세요. 그것도 완벽한.”
그러면서 간질이듯 손가락을 흙덩이의 하체 은밀한 곳에 가져갔다.
움찔.
“으, 으으응…, 부, 불릿, 이거 이상해….”
안나의 손길에 따라 흙덩이가 야릇한 신음을 흘렸는데, 이에 따라 불릿의 팔을 잡고 있던 손에도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꽈악-.
“흐응! 부, 불릿! 나, 나 무서워. 이, 이거 뭐야?”
“안나! 지금 뭐하는 것인가!”
덥썩!
흙덩이의 은밀한 부위를 쓸어가던 안나의 손을 불릿이 붙잡자 안나는 반쯤 감았던 눈을 뜨며 불릿과 시선을 마주쳤다.
“몸의 떨림과 안면의 홍조, 음성, 여성의 신체구조의 구성, 그리고….”
안나는 불릿에게 붙들린 손을 들어 보이며 집게손가락으로 무언가 투명하면서 찐득한 액체를 보여주었다.
“생식기에서 분비되는 액체까지. 어느 것 하나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고 계세요.”
불릿은 안나의 말에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고, 안나는 살짝 아팠는지 붉어진 손을 매만지며 배시시 웃었다.
“우리 도련님, 작은아씨께서 잘못되셨을까봐 겁이라도 나신 거예요?”
당연히 아니라고 할 줄 알았던 안나는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 무서웠다.”
“도련님…?”
불릿은 거친 호흡을 내쉬며 홍조를 피운 채 알 수 없는 감각에 두려움을 느끼는 흙덩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불릿?”
“괜찮다, 괜찮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겁먹지 않아도 돼.”
그러면서 흙덩이의 가녀린 어깨를 토닥여주는 불릿. 그의 다정한 토닥임에 흙덩이의 떨림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흙덩이는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조용히 잠들었다.
“새액-, 새액….”
불릿은 흙덩이가 잠들자 침대에 흙덩이를 눕히고선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었다.
이후 천천히 입술을 떼며 침대에 걸터앉는 불릿.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안나를 노려보았다.
“무섭고, 무서웠다. 또 다시 나에게 소중한 것이 사라질까봐, 올리비아가 위기를 겪었을 때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크게.”
“도련님….”
“흙덩이는 내가 힘을 잃은 뒤 간신히 계약을 맺은 정령이었다. 오직 나의 부름에 응해,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던져진 가녀린…소녀지.”
그러면서 기다란 흙덩이의 머리칼을 살짝 간질여보았다.
“소환되어 구성한 육체 또한 나의 취향에 맞춰서, 어렵고 힘든 수련과 언어 또한 나를 위해서 익혀주었지.”
차례차례 떠오르는 흙덩이와의 추억. 다른 정령들이 그의 부름에 꼼짝도 하지 않았을 때,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물의 정령들이 자신의 기운을 밀 한 올 만큼도 사용하지 않고 보러오지 않았을 때.
그런 때에 흙덩이는 유일하게 불릿의 소환에 응해주어 인간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불릿의 욕구에 맞추어 행동하고, 생각하고, 이루어주었다.
이후 언어를 배우며 조금씩 세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도 오직 불릿만을 위해 자신의 기운까지 소모하며 헌신적인 희생을 보여주었다.
“내가 어리석은 선택으로 정령력이 고갈됐을 때, 탈진하여 정신을 잃었던 순간에도 흙덩이는 나만을 생각해주었고, 자신이 따로 모으고 있던 기운을 소모하면서까지 치료해주었지. 바보같이,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야.”
정령에게 있어 계약에 따라 인간세상에서 모으는 기운은 본인이 각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정령사가 정령력을 모아 하급에서 중급으로, 중급에서 상급으로 오른다 한들 계약된 정령은 각성을 겪지 못한다.
자신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을 감수하고서도 억지로 자신의 기운을 소모하며 소환을 유지하고, 치료까지 해줬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점을 전혀 티내지 않았고, 그저 불릿이 아플까, 안 아플까.
자신을 좋아해줄까 그것만 생각하는 이 정령에게 불릿이 해줄 수 있는 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거짓된 친밀의 의식뿐이었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어, 자신의 기운까지 빼다 써, 그러고도 원하는 바를 이뤄줄 수도 없어….”
점점 감정이 고조됐는지 불릿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고, 안나는 이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불릿이 손바닥을 떼며 벌떡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해줄 수 있다고!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이룰 수 없다며 흙덩이의 마음에 상처만 주었던 그것을!”
난생 처음 겪는 이상한 생리반응에 덜덜 떨던 흙덩이가 잠든 것이 깰까봐 울부짖음을 속으로 삼키며 말을 내뱉는 불릿.
그의 몸은 약간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이게 옳은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거짓된 일이라도 나는 해주고 싶다. 흙덩이가 그토록 원하던, 나의 마음을….”
“작은아씨에게…, 정을 주실 건가요?”
더 이상 정령인지도 모호해진 흙덩이에게 사랑 운운하는 불릿이 걱정스러웠으나 직접 확인까지 한 것은 안나였으니 반대하기도 어려웠다.
안나의 물음에 불릿은 얼굴에서 손바닥을 떼며 천천히 끄뎍였다.
“올리비아에겐 정말 미안하고, 할 말이 없는 짓이지만, 나는 흙덩이의 행복을 위해 그럴 것이다.”
사랑, 정령과 인간에게 있어서도, 이뤄질 수도 없는 금단의 영역이 ‘마(魔)의 꽃방울’이라고 하는 전설적인 아티펙트로 인해 깨져버리려는 순간이었다.
“그게 정녕 행복한 길이라 생각하세요?”
지금 이 순간만큼 안나가 진지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불릿이 그녀와 함께 한 세월이 대체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긴 시간을 안나와 함께 해왔다.
그녀의 거듭된 물음에 불릿은 작게 흔들던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가 바라고, 흙덩이도 바란다. 뭐가 문제인 것이지?”
불릿은 진정 흙덩이의 행복을 위해 다소의 손가락질도 감내할 수 있었고, 그의 진정성을 안나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보던 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에 깍지를 꼈다.
“우우웅-! 하아아…….”
기지개를 한껏 켜던 안나는 이내 허리를 두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아니. 불릿 폰 바포 백작 진(眞)이시여. 당신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이 몸은 그저 따를 뿐입니다. 부디 당신의 선택에 후회 없으시길 간절히 바라나이다….”
두 손을 깍지 낀 상태로 살포시 무릎을 꿇으며 불릿의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안나.
이런 모습은 불릿도 처음 보았기에 감정이 한껏 고조되었던 불릿도 동공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안나의 말은 의미심장했으니, 그 의미를 깨달은 불릿도 자세를 바로잡고 이에 응해주었다.
“나 불릿 폰 바포 백작 진(眞)은 그녀들을 사랑한다는 점에 한점 거짓이 없으며, 나와 그녀들의 행복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안나는 나이 41살의 아줌마이자 하녀장일 뿐이다. 이 주름살과 뱃살이 늘기 시작한 중년여성이 마치 이야기에나 나오는 성녀처럼 보이는 순간이, 그리고 불릿은 성녀에게 신탁을 내리는 신관처럼 보이는 성스러운 맹세가 너무도 신비하게 연출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맹세가 끝나자 안나는 언제 그랬다는양 자리에서 일어서며 뱅그르르 한 바퀴를 돌았다.
“어머나, 나이도 잊고선 주책을 부려버렸네요오-? 안나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안나의 나이는 본인과 같지 않은가? 분명 올해로 사십….”
“쉿, 여성의 나이는 비.밀.이.랍.니.다?”
불릿이 나이를 밝히려하자 안나는 수줍은 소녀처럼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안나는 애가 몇이지?”
“에, 그러니까 첫째가 18살, 둘째가 17살, 셋째가 15살인데, 첫째가 올해 9급 행정직에 붙어서 어찌나 기뻤던지…!”
손가락을 접어가며 기쁜 표정을 짓던 안나는 아차 싶었는지 손을 뒤로 숨기며 휘파람을 불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많이도 낳았군. 남편과 사이가 좋나봐?”
불릿의 농에 항시 여유만만이던 안나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서리고 있었다.
“그, 그게 말이에요? 바, 바깥양반은 언제나, 그게, 그냥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애를 셋이나 덜컥 낳는가? 부부사이가 좋기도 하구만.”
이에 안나의 얼굴이 처음으로 붉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불릿은 처음으로 안나를 놀려먹는데 성공하자 흐뭇하면서도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중년여성이 부끄러워하는 것은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군.’
저 뱃살이라도 어떻게 하면 좋으련만, 이라고 잠시 생각해본 불릿이었으나 작게 고개를 털며 그 생각을 멀리 던져버렸다.
“우리 도련님이 달라지셨어….”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매만지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시늉을 하던 안나.
그녀가 또다시 귀여운 척을 하자 불릿은 이마를 짚고선 대놓고 고개를 저었다.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짓은 집어치우도록.”
“쳇, 체체! 뿌우-, 도련님은 너무 삭막하세요!”
여전히 귀여운 체를 하는 안나가 못마땅했는지 불릿은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흙덩이의 절반만이라도 닮아봐라. 무슨 여자가 부끄러움이란 것이 하나도 없어.”
“어머, 왜 곤히 주무시는 작은아씨를 가지고 그러세요? 안나가 뭘 어찌했다고요.”
“그럼 올리비아의 절반이라도 닮아보던가.”
불릿의 연이은 물음에 안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작은아씨도, 마님도 너무 아름다우셔서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네요. 네네, 안나는 늙고 못생겼답니다, 흑.”
그러면서 안나는 어딘가의 신파극을 따라하는 듯,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닦아내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에 불릿은 걸터앉았던 침상에서 일어나 바닥에 주저앉은 안나에게로 다가갔다.
뚜벅, 뚜벅.
스윽-
불릿은 연신 우는 척 연기를 하는 안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안나의 손에서 손수건을 빼앗았다.
“어머! 왜, 왜 이러세요?”
불릿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손수건을 들고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자, 안나는 괜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흑, 못생긴 얼굴, 자꾸 보셔서 뭐하시게요.”
“안나는 못생기지 않았다. 확실히 나이를 먹어 주름살도 생기고, 배도 살짝 나왔지만….”
“절 놀리시는 거예요?”
불릿의 말에 안나가 그를 흘겨보았으나,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불릿은 안나에게서 빼앗은 손수건으로 땀이 맺힌 그녀의 목덜미와 이마를 닦아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것으로도 안나의 아름다움을 가릴 순 없지.”
예상외의 칭찬에 안나는 입을 헤, 벌리고 있었고 불릿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분간은 흙덩이가 인간이 됐다는 사실을 감추도록.”
“도련님이 짐승이 되셨어…. 아니, 바람둥이인가? 이런 중년여성도 범위 안에 들다니….”
“안나, 미안하지만 그대는 내 취향이 아닐세. 유실리아라면 모를까.”
“뿌뿌! 너무하시네요, 진짜.”
얼핏 누군가의 이름이 스쳐지나간 것 같으나 올리비아는 자신이 무시 받았다는 사실에 입을 나팔모양으로 만들며 새침모드로 들어섰고, 불릿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서 자신이 할 말만 이었다.
“그리고 흙덩이에게 기본적인 지식 좀 가르쳐주도록. 속옷도 좀 입히고, 옷도 갈아입혀. 안이 비치지 않는 걸로.”
새근새근 천사처럼 잠들어 있는 흙덩이, 그녀의 복장은 예전에 올리비아가 입었던 속이 비치는 얇은 네글리제였던 것이다.
불릿이 괜히 당황한 게 아니다.
============================ 작품 후기 ============================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신규투뎃 11위..
와 엄청 격동적인 날이었
일단 글 올리고 후기 적어야겠다
습니다!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흙덩이를 여러분도 사랑해주시는 듯해 기분이 몹시 좋군요!
내일(금요일)은 추천1500에서 1700을, 선작 700에서 800을 넘긴 기념으로 3편을 더 연재할 생각입니다.
점심 낮 12시에 1편, 저녁 6시에 2편, 9시에 1편, 밤 12시 10분에 1편식으로 올릴 생각인데요,
비축분이 줄어드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서 무섭습니다...
아무튼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