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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27화 (127/241)

00127  마물토벌  =========================================================================

“저희 마탑지부는 마물이 발생했을 시 사전에 미리 파악하여 해당 영지의 영주님들에게 통보를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은 이미 할 일을 했었다는 뜻.

어쩐지 항의하는 듯한 마법사의 말에 불릿이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토벌대는 네 번째로 형성됐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군.”

그러자 마법사의 행동도 이해간다는 듯 말을 건넸다.

“괜한 소릴 했군. 본인도 자네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게나.”

“아닙니다, 백작님. 저희도 백작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기에 손수 모셔드리는 겁니다.”

보통 마탑지부의 마법사들은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통보만 마친 후 자신들의 보금자리 꽁꽁 틀어박힌다.

만약 영지가 마물을 막아내지 못하는 경우, 여차할 땐 텔레포트를 이용해 마법사들의 고향인 본토로 피신하는 것이다.

영주의 입장에선 얄밉게 보일 수도 있으나 마탑은 어디까지나 중립을 지켜야했기에 누군가에게 함부로 힘을 실어줄 수 없었다.

한번 도와주면 고마운 줄 모르고 계속 이용하려는 것이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었으니까.

- 쿠오오오!

“가까워졌군.”

이제는 육안으로도 확연히 볼 수 있는 거리까지 도달하자 마법사도 입을 다물고 마물을 쳐다보았다.

쿵, 쿵 발소리를 내며 접근하는 마물은 역시나 덩치만 산만하게 큰 하급 마물이었는데, 마물의 마기에 이끌려야 할 몬스터들을 대동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나온 놈이지?”

혼잣말인 듯했으나 불릿의 그것은 곁에 있는 마법사를 겨냥한 것이었기에 눈치 빠른 마법사도 금방 답변해주었다.

“마물의 마기는 멀리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데, 놈처럼 홀로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아마, 불모의 황무지 중앙에서 출몰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던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는가?”

불모의 황무지가 거의 나라 하나에 필적할 만큼 광활함을 자랑하면서도 여지것 버려져 있던 이유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토질은 최악, 그 흔한 생명체도 없었고 뭔가 건질 만한 물체도 없었다.

마물이 등장할 만큼 무언가가 조성되어 있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중앙에서 출몰했다는 의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불릿이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불모의 황무지와 가장 가까운 영토 중 하나를 다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충성.”

그때, 토벌대를 책임지고 있던 백인장 세스터스가 다가오자 불릿은 뒤를 돌았다.

“세스터스.”

“각하, 토벌방법을 변경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사전에 모의했던 방법은 정예병사들이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백인장과 십인장, 기사들이 주의를 끌어주면 단방에 흙덩이가 마물을 처리하기로 했던 것이다.

“올리비아는 준비가 됐다고 하던가?”

“마님께서는 아래에서 작은아씨와 호흡을 맞춰보고 있었습니다.”

작전은 올리비아가 흙덩이를 껴안고서 놈의 상체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끊임없이 노력해 익스퍼트 하급에 올라선 올리비아의 근력은 마나를 사용했을 시 흙덩이쯤은 가볍게 던질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거기에 장비도 최고급만을 착용했으니 약간 마나가 떨어지더라도 기사들 중에서 제일 안전할 수 있는 이가 올리비아였다.

“크흠, 거, 너무 가까이 접근하진 말라고 하게. 이제 홀몸도 아닌 사람인데….”

불릿은 반대를 했었으나 올리비아가 완강하게 거부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내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지라 훌륭한 장비만으론 안심할 수 없어 또 다시 마의 꽃방울을 목에 걸어주었고, 직접적인 공격은 정령인 흙덩이를 통해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작은아씨께서 잘 하시지…, 음. 잘 하시겠지요, 각하?”

“…본인도 잘 모르겠다.”

요즘 너무도 소녀티를 내는 흙덩이였기에 정령력이 늘어감에도 떨떠름한 모습을 보이는 흙덩이와 세스터스.

마탑지부의 마법사도 대기 중인 흙덩이를 보며 한마디를 거들었다.

“정령이라기엔 뭔가 좀…, 혹 정령사가 아닙니까?”

마법사의 말에 불릿이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본인이 미쳤다고 흙덩이를 전선에 내세웠겠는가?”

“정령의 실체가 너무 뚜렷한 게 아닙니까? 땅의 정령이 다른 원소에 비해 실체화를 하면 만질 수도 있다고 하지만, 저건 그냥 인간처럼 보이는데 말입니다.”

“으음….”

“게다가 저 복장은…, 설마 백작님의 취향이?”

지금 불릿이 위치한 장소는 주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초소의 위였다.

초소라곤 해도 나무로 지어진 목제방벽에는 병사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정찰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허술하긴 했지만 바포 변경백은 루드밀라를 지키는 방패였기에 있을 건 다 있다.

이 정찰로의 위를 걸어 다니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것인데, 2미터의 높이를 가진 정찰로에 약간 언덕진 곳이었기에 저 아래, 바람에 휘날리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흙덩이가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리고 흙덩이의 원피스는 몸통만 가려주는 옷, 겨드랑이나 어깨 등은 훤히 보이고 있었으며 안에 껴입은 속옷의 존재도 여실히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

“백작님?”

“…각하? 설마….”

“허험! 하급, 하급 마물이 오는군!”

사실, 조금 취향이었다.

“흙덩아, 준비됐어?”

- 쿠오오! 쿠오오오-!

마기를 흘리며 괴음을 내는 마물의 모습에 올리비아가 주변의 기사들과 함께 몸을 풀고 있자 흙덩이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 불릿과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비록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분위기만 보아도 흙덩이가 자신만만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올리비아도 별다른 말을 안 하고 있었다.

- 여기야, 불릿!

돌연 흙덩이가 두 팔을 들고 휘젓자 모여 있던 기사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는데, 흙덩이가 바라보는 방향에선 불릿이 두 명을 대동하고서는 방벽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흙덩아, 머리 아프다.”

최근 정령력이 강해져 흙덩이와의 텔레파시가 성공률이 높아졌는데, 흙덩이가 외치면 불릿은 거리가 어떻든 간에 코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에 고막이 아픈 듯했다.

도도도-.

와락!

이제는 불릿도 흙덩이에게 편히 말을 놓았는데, 이렇듯 자기가 달려와선 껴안곤 했으니 존대를 하기도 뭐했던 것이다.

“백작님, 역시 정령이 아니라 정령사인 것 같은데….”

“저희는 저분을 보고 작은아씨라 부르고 있습니다.”

“호오, 그거 참…. 정령과 인간 사이에서도 그렇고 그런 게 된단 말입니까?”

“글쎄요, 될 것 같기도 하고….”

세스터스가 마탑지부의 마법사와 속닥이는 사이, 불릿은 흙덩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살짝 떼어놓았다.

“잘 할 수 있겠는가?”

- 나만 믿어!

약간 걱정이 서린 불릿의 물음에 흙덩이가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만만하게 굴자 불릿이 살짝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더 커졌나….’

갈수록 자기도 몰랐던 취향으로 변해가는 흙덩이에게 관심이 쏠리는 불릿, 그러나 여기서 그러면 안 되었기에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커흠, 올리비아도 괜찮겠는가?”

“뭐야, 올리비아‘도’? 나는 뭐 덤이야?”

마물이 접근하는 와중에도 여유로움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러한 면에는 주변에 그들을 방해할 몬스터가 없는 것과 불릿의 병사들이 정예 중의 정예라는 점,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익스퍼트에 올라서며 질 좋은 장비를 착용했기 때문이리라.

올리비아의 말에 불릿을 보필하고 있던 유실리아가 살짝 웃었다.

“으흠.”

그리고 유실리아의 웃음을 본 아일렌. 아일렌은 올리비아의 수중을 들고 있었는데, 저러한 유실리아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어 했다.

“저런 애가 아니었는데….”

마치 ‘나의 OO은 이렇지 않다능!’이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듯했다.

“덤이라니, 섭섭하게 말하는군. 흙덩이는 흙덩이, 올리비아는 올리비아.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서 흙덩이의 손을 잡고 가까이 다가온 불릿은 올리비아의 입에 살짝 입맞춤을 하며 부드럽게 볼을 쓰다듬었다.

“네가 처음이듯, 나도 처음이었다.”

한껏 붉어진 올리비아의 얼굴. 병사와 기사들이 남들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불릿에게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그럼 이번 저 녀석 잡고나면, 또…, 할까?”

경갑옷을 입고 작게 속닥이는 올리비아의 말에 불릿이 헛기침을 뱉었다.

“험험.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불릿도 좋아하는 듯하자 올리비아가 연이어 속삭였다.

“그러면…, 일단 그 손부터 놓지 그래?”

살짝 언성이 높아지는 그녀의 말에 불릿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그곳엔 불릿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흙덩이가 있었다.

자신에게로 시선이 모이자 흙덩이는 그의 손을 매만지던 행위를 멈추고 해맑게 웃었다.

- 이번엔 나랑 하면 되겠네!

위험한 발언은 언제나 고스란히 듣고, 따라하는 흙덩이.

이번에도 흙덩이가 따라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올리비아가 냉큼 차단하려고 했다.

쿵, 쿵, 쿵!

“놈이 온다!”

“밀집대형! 포박부대는 대기!”

“대기!”

“대기!”

병사와 기사들이 빠르게 흩어지며 자신들이 맡은 구역으로 돌아가자 올리비아는 눈을 흘기면서 불릿에게 재촉했다.

“손 안 놔?”

“어허, 내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다. 흙덩아, 힘을 받아들이도록.”

- 많이 싸줘?

“…음? 많이 싸다니, 무슨 소리지?”

흙덩이의 이상한 표현에 정령력을 전해주려던 불릿이 의문을 가졌다.

정령은 계약자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힘이 약화되기에 미리 전달해놓으려던 것인데, 약간 어색한 표현에 단어를 잘못 배웠나 싶은 것이다.

이에 흙덩이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올리비아가 불릿 보고 많이 싼대! 근데 불릿은 힘들면 많이 못 싸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더라.

“으, 으음….”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 자기야?”

흙덩이는 정령력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미묘한 인간세상의 언어는 넓고도 복잡한 것이었기에 결전을 앞두고 올리비아와 불릿을 어색하게 만들어 놓았다.

- 쿠오! 쿠오!

쿵, 쿵-

작은 입자를 지닌 모래에서도 지축을 울리는 마물을 앞두고서도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자 불릿이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흐, 흙덩아. 내 히, 힘을…, 아니. 정령력을 받아라.”

- 힘 많이 싸줘야 해?

“…싼다는 표현 말고 정령력이라고 해라. 민망하다.”

“……읏.”

- 왜 민망해? 올리비아랑 뭐한 거야?

“……간다!”

우우웅-!

한꺼번에 대량의 정령력이 주입되기 시작하자 흙덩이도 말을 멈췄고, 올리비아도 달아오른 체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닌, 전투를 위한 용도로 돌려놓고 있었다.

우우웅-

한껏 주입된 정령력으로 인해 흙덩이의 몸이 미미하게 빛나자 불릿은 올리비아에게 소리쳤다.

“올리비아! 흙덩이를 안으시오!”

“아, 안아?!”

“…후우, 아니. 그거 말고, 좀.”

“아, 아아아! 그, 그래! 지금 전투 중이지?!”

…정신을 차린 줄 알았거늘, 아직 음란마귀(?)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어나 보다.

둘, 아니 셋이 좀체 거시기한(??) 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하자 이번 토벌대장인 세스터스가 대신 외쳤다.

“일동, 전투개시!”

============================ 작품 후기 ============================

밤 12시 10분에 이어서 올라옵니다.

추천수 1400 달성!...

내일 낮 12시에 1편 추가로 올라가지만 비축분이 줄어드니 채워넣어야하는 부분이 무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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