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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26화 (126/241)

00126  마물토벌  =========================================================================

“으음….”

숙면을 취하던 불릿이 깨어나려 하자 올리비아가 재빠른 몸놀림으로 그에게 바짝 다가오려 했으나 그녀를 흙덩이가 막았다.

“익, 무슨 짓이야?”

- 바보야, 불릿이 힘들어하잖아.

이제는 제법 인간의 음성구조를 잘 따라하는 흙덩이였는데, 입모양을 보고서 올리비아가 대강이나마 알아차렸다.

“흥, 칫, 쳇!”

유실리아에게 혼이 잔뜩 난 상태였기에 불릿에게 위로받고 싶었던 올리비아였으나 자신과의 응응(?) 때문에 피로가 중첩됐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지 잠자코 자리에 착석했다.

“…후암.”

불릿이 저도 모르게 하품을 했으나 마차 안의 그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지금 마차에 탑승한 이들은 모두가 불릿의 최측근들로, 가뜩이나 피곤한 상태인 불릿이 체면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가 여전히 피곤해하는 모습에 올리비아는 괜시리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흐음, 좀 낫군.”

“기침하셨습니까, 각하!”

“유실리아, 선발대의 상태는 어떠한가?”

“1시간 단위로 보고를 받고 있사온데, 산속에 숨어있는 몬스터를 제외하면 딱히 조짐이라 여길 만한 부분은 없다합니다.”

“역시 카텐령에 도착해야 알 수 있는 것인가….”

“그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하.”

토벌에 동원된 병사는 그동안 마수의 숲에서 사냥을 해왔던 200여명이었으나, 마물이 등장했다는 카텐령과 불모의 황무지의 경계선까지는 선발대를 따로 추려서 길을 뚫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이미 정예병 200여 명만으로도 몬스터가 습격할 생각을 하지 못할 텐데 조금 오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병사들에게는 철저한 체력배분을 요하도록. 이번 토벌은 마수의 숲에서 단련된 병사들의 실력 외에도, 본인과 흙덩이의 실력의 증진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니 말이야.”

“염려마시고 푹 쉬셔서 기력을 보충 하시옵소서, 멋있고 늠름하신 주군이여!”

“……어, 그, 그래. 그럼 실례하지.”

웬일로 보고를 제대로 하는가 싶더니 불릿이 꺼려하던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재빨리 눈을 감고 다시금 숙면을 취하기 시작하는 불릿.

올리비아가 얼마나 절륜했는지 젊어진 육체로도 불릿이 따라가질 못하는 듯했다.

“새액, 새액….”

금세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든 불릿을 보며 마차 안의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아…, 자기랑 대화하고 싶었는데….”

- ? 왜 자꾸 자는 거지?

“마님은 대체 얼마나 각하를 혹사시키셨길래 자도, 자도 졸려하시는 건가요?”

“흥, 네가 아직 사랑을 몰라서 그래. 그때 불릿이 얼마나 부, 불, 불타올라….”

화아악-.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올리비아에게 유실리아가 쏘아붙였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남성분은 여성과는 달리 한계가 뚜렷해서 절대 쥐어짜내서는 아니 될….”

“아니야! 그, 그렇지 않다고?! 쥐, 쥐어 짜내다니! 불릿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

펑!

그녀의 폭탄발언에 유실리아는 물론이거니와 아일렌의 귀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어버렸다.

둘이 말을 잃고 필사적으로 창밖을 주시하자 그제야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깨달은 올리비아는 팔로 얼굴을 가리며 존재감을 지우려 애를 썼다.

- 뭐야? 응? 뭔데 그래? 뭐가 나와? 불릿이 힘을 뽑아냈어?

힘이라면 힘인 그것을 뽑아내기야 했을 것이다. 다만, 그 힘의 종류와 뽑아내는 방법은 남들 앞에서 대놓고 하지 못하는 은밀한 것이겠지만.

궁금증을 드러내는 흙덩이를 제외하고선 다들 조용해지자 약간 찌푸려졌던 불릿의 미간도 평평해지며 달콤한 숙면을 이어나갔다.

* * *

마물 출몰지와 가장 가까운 직스 자작령, 지금은 카텐령으로 변경된 영지에 도착한 불릿 일행은 영지에서 흐르는 긴장감을 포착하고 그들 또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각하, 각하. 기침하셔야합니다, 각하.”

잠들어 있던 불릿을 깨우는 일은 유실리아가 도맡아 했는데, 그동안 바포 변경백에서 지내며 불릿에게 크게 기대고 있던 올리비아를 따끔하게 혼내주고, 흙덩이에겐 미처 자각하지 못한 일을 알려주면서 어느 샌가 마차에서의 주도권을 유실리아가 가져갔던 것이다.

깨어있는 시간도 없이 계속 잠들어있는 불릿이 안쓰러워 원인제공자인 올리비아가 꾸중을 얌전히 받아들인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흙덩아, 주변에 몬스터가 있나?”

- 없어. 좀 더 잘래?

멈춰선 마차이기에 흙덩이는 종종걸음으로 불릿의 곁에 다가와 그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고선 자신의 허벅지에 얹어놓았다.

따스하며 포근한 흙덩이의 허벅지살에 불릿은 눈도 뜨지 않고 열었던 입을 도로 닫고서 잠들려했다.

“작은아씨! 각하께오선 기침하셔야 합니다!”

유실리아의 다소 엄한 어조에 흙덩이가 움찔하자 흙덩이의 떨림을 느낀 불릿도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자도자도 졸리군. 후으읍…, 크흠.”

“각하께오선 잘못이 없나이다. 일단 저택으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주무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이미 시각은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사이, 습격에 대비하며 진군했기에 다소 예정보다 늦은 감이 있었다.

이런 시간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불릿도 유실리아의 말에 동의했다.

“병사들도 피곤해하는 듯하니 카텐령의 군영에서 쉬게 하도록. 막사가 비어있는 곳이 많을 테니 자리가 모자라진 않을 것이다.”

불릿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직스 자작령의 병사 수는 200에 기사 다섯이었다.

지금 불릿이 데려온 병사의 수보다도 적었던 것인데, 길을 뚫어주던 병사들이 복귀했으니 막사가 부족할 일은 없을 터였다.

“미안해, 자기야….”

뜬금없이 올리비아가 사과를 하자 불릿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음을 건넸다.

“본인이 잠든 사이에 잘못이라도 저질렀는가? 갑자기 사과를 하니 조금 당황스럽군.”

“아니, 그게 아니라, 피곤한 이유…, 나랑 그거….”

“……크흠! 커허험! 어서 카텐의 저택으로 마차를 몰지 않고 무얼 하느냐!”

불릿이 거친 기침과 함께 호통을 치자 밖에서부터 병사의 외침이 들렸고, 멈추었던 마차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흙덩이는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타닥, 탁-.

타오르는 모닥불, 벽난로 속에서 진홍색 불꽃을 튀기는 장작더미에서 온기가 뿜어져 쌀쌀한 밤의 공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불릿은 자다가 일어났는지 가운을 입고 등장한 벙스 카텐과 대면하고 있었는데, 방금 일어났다는 것이 거짓이라는양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마중하지 못한 점, 미리 사과드립니다.”

“아닐세. 전령을 운용하지 않은 본인의 잘못도 있고, 오히려 늦은 시각에 도착하여 소란스럽지 않게 입성했으니 나쁘지 않다 생각하네.”

잠을 그렇게 잤으면서도 불릿은 졸음을 이겨내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는데, 역시 올리비아가 원인인 듯했다.

“피곤하신 듯하온데, 명일 아침에 식사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떨는지 여쭤봅니다.”

“후우…,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간단하게나마 얘기를 추려두고 싶어서 그렇네.”

“하급 마물과 관련된 것입니까?”

“이미 알고 있었군.”

마탑의 지부는 웬만큼 성장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곳이라면 대륙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는 비단 불릿의 영토만이 아니라 산골마을에도 있던 것을 생각하면 없는 곳이 없다고 보면 되리라.

직스 자작령으로 텔레포트가 가능했던 것도 마탑지부가 있어서였으니 당사자인 벙스 카텐에게 알려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계를 강화하는 것밖에 없었기에 국경선에 병력을 조금 더 배치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주민들은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요.”

일반적인 백성들은 정보에 둔하다.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곳에서만 지내기도 하고 대부분 농업과 관련된 생업에 종사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흘러가도 대부분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입소문에 기대는 경향이 강했다.

벙스 카텐은 그러한 점을 이용해 몇몇 영향력 있는 주민을 포섭해 그러한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주민들은 새로 온 영주가 자신들을 걱정해주는구나, 하고 여기며 안심하고 있었다.

“…흠. 비록 거짓이긴 하나 영지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게 쳐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대영주님.”

“그러나 다음부턴 거짓말과 입소문 등의 계략은 행하지 말도록. 본인은 쥐새끼라면 다 죽이고 싶으니까.”

거짓으로 라체나의 기사들을 죽이고, 여론을 선동해 자신이 출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불릿은 그러한 점들 때문에 벙스 카텐의 행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칭찬을 받았지만 경고성이 섞인 말이었기에 벙스 카텐 준남작은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깊게 고개를 숙인 벙스 카텐을 보며 불릿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젠 육체의 활력에 생각까지 따라가는군.’

워낙 절륜(?)해진 육체인지라 이전처럼 냉철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말을 하면서도 종종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처럼 거친 말을 함부로 내뱉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젊어진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했으니 성과가 없진 않았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오늘만 하더라도 마차로 이동하는 내내 수면을 취하는 척 했었지만, 끓어오르는 욕구를 참느라 힘들어했다.

‘나중엔 자기도라니, 유실리아까지 그러니 골이 아프구나.’

바로 옆에 있었기에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도 그녀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크흠! 하루간의 정비시간을 가진 후 토벌에 나설 것이니 병사들을 든든히 먹이고 기사들에게 국경선의 지리에 대해서 알려주도록.”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봄세.”

“편안히 주무시지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불릿의 걸음은 어딘가 엉기적거리는 느낌을 주었는데, 벙스 카텐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대영주님께서 몸이 불편하신가? 허리를 뒤로 빼시네.”

* * *

- 크르릉……

국경선에 자리를 잡은 채 불모의 황무지를 바라보던 불릿은 저 너머, 모래둔덕을 오르며 다가오고 있는 어떤 물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놈들이 맞는가?”

불릿이 삭막한 모래바람을 맞으며 입을 열자 약간 뒤에 서있던 로브차림의 사내가 대답하였다.

“그동안 주시하고 있던 파장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혹시 모르니 대기해줄 수 있는가?”

정령사만큼이나 귀중한 존재가 마법사였고, 화력이라는 면에서 따지면 정령사보다 마법사가 더 막강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정령사인 백작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러나 정령사의 진정한 강점은 같은 수준일 경우 보다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짧은 딜레이로 기술을 연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령사는 정령과의 계약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존재, 정령이 정령사의 정령력을 받아들여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라서 정령이 기술을 발휘하는 동안 자신은 상황판단을 하거나 다른 기술을 준비하는 등, 보다 자유로운 것이다.

정령사는 단순히 재능이나 노력만이 아닌, 정령과의 계약에도 성공해야했고 교감 또한 통해야했기에 까다롭다는 측면에선 다른 직업군이 따라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륙 곳곳에 지부를 만든 마법사보다는, 정령사를 한수 위에 두고 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은가?…그런데 론 타로 왕국의 데빌로안에서는 어찌 도와주지 않았는가?”

저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그림자를 보며 불릿이 말을 걸어오자 마법사는 그의 곁으로 다가온 후 대화에 동참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내일도 저녁 6시와 밤 12시 10분에 연재가 이루어질 것이오며 추천이 1400이 됐을 시엔 목요일 낮 12시에 1편 더 이어서 올릴 것입니다.

선작도 100단위가 되면 1편 더 올라갑니다.

여러분! 귀환정령사는 빨간 딱지가 없어요!

우리의 주인공이 응응(?)을 하더라도 적나라한 표현은 나오지 않아요!

응응...응응...

응?

[수정, 중복으로 나왔던 126화와 127화 중에서 밀려썼던 125화를 수정, 126화에 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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