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5 마물토벌 =========================================================================
퀘엥-
언제나 말끔하고 생생한 피부를 자랑하던 불릿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보이자 올리비아가 걱정스러운 듯 손수건으로 이마를 토닥였다.
“어머, 이 땀 좀 봐. 괜찮아, 자기?”
그와 반대로 올리비아는 쌩쌩한 모습이었는데, 불릿의 푸석해진 피부와 대조되어 한층 윤기가 살아나보였다.
“괜찮을 리가 있겠나….”
손으로 허리를 짚는 것이, 척추도 아파보였고 전체적으로 썩 좋아 보이는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올리비아의 차림은 편한 차림의 원피스, 봄 냄새 물씬 풍기는 복장이었기에 군장을 짊어진 병사들과 차이가 확연한 모습이었다.
둘의 옆에는 흙덩이도 있었는데, 언제나 흙덩이는 원피스 차림이었으므로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래가지고 마물토벌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고고, 허리야.”
불릿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괜시리 얼굴을 붉히는 올리비아.
그러면서도 불릿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툭툭 밀치며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는 병사들의 입장에선 꽤나 괴로운 장면이었다.
“했네, 했어.”
“각하께서 드디어 딱지를(?) 떼셨네?”
“저렇게 될 정도면 대체 얼마나 하신 거지? 부럽군, 부러워!”
“처첩이라니, 어린 신부들만 있어 참으로 부럽구만….”
어쩐지 흙덩이까지 신부모임(?)에 넣는 병사들이었으나 그들에게 있어 정령은 조금 머나먼 존재였기에 인간과 별다른 차이점을 보이지 않는 흙덩이가 첩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일례로, 비단 평민인 병사만이 아닌 귀족출신 가신들에게도 흙덩이는 불릿이 소중히 대하는 첩으로 보였던 것이다.
식사하고, 성장하고, 애정을 보이는 모습까지 보이니 이걸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정령으로 여기기엔 흙덩이가 보여주는 것이 너무 없었다.
오죽하면 대지의 축복을 내리는 것을 보고 성녀 운운하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흙덩이는 그저 불릿의 애첩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다.
“어머, 저이들도 참. 부끄럽게시리….”
그러면서 불릿의 귀에 속삭이는 올리비아의 한마디.
‘저녁에 기대해. 이번엔 내가 위에서 힘낼 테니까.(?)’
대담해진 올리비아의 속삭임에 불릿도 그녀에게 속삭였다.
‘살려주오…, 나는 검사가 아니란 말이다….’
검사인 올리비아는 원체 체력도 좋았지만 마나를 사용하는 용도가 육체강화와 관련되었기에 회복도 빨랐다.
그래서 첫날밤…, 은 아니고. 첫날의 응응을 거친 이후로 불릿을 쥐어짜듯이 해내고 있던 것이다.
가신들은 후사걱정을 덜었다며 훈훈해 했으나, 그들의 만족과는 달리 불릿은 좋으면서 괴로운, 이중적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출정을 앞둔 순간에도 올리비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대감과 걱정이 드는 순간, 흙덩이가 불릿의 허리를 붙잡았다.
덥썩.
- 둘이서 뭐했어? 불릿이 힘들어 보여. 흙덩이가 호해줄까?
응응(?)을 할 때마다 흙덩이를 루나에게 맡기자 만날 때마다 조금씩 수척해지는 불릿이 걱정된 흙덩이가 치유능력을 사용하려하자 불릿은 조용히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오, 작은아씨께서도 하셨나?”
“…음? 정령 아니었슴까?”
“넌 정령이 밥도 먹고 저러고 다니냐? 저번에 뭐시기, 하녀장에게 들어보니까 자기가 손수 속옷도 골라줬다고 하더만.”
“그건 어디서 들으셨슴까?”
“꽃밭에서 혼자 놀고 계시길래 멋모르고 대시 좀 해보려다…, 웁스!”
“……제수씨께 이를 검다.”
200명만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병사들의 대화는 불릿과 올리비아, 그리고 흙덩이에게도 전해졌고 불릿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흙덩이가 이를 말렸다.
- 나도 할래. 근데 어떻게 해야 해? 올리비아랑 뭐 했어?
“아, 그것은….”
- 올리비아가 한 거면 나도 할 수 있어! 어떻게 하면 돼?
흙덩이의 말은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고 묻는 어린아이와 같았기에 불릿은 대답을 회피했다.
아무리 그래도 흙덩이는 아니다, 흙덩이는.
‘가라앉아라, 이 녀석아!’
자신의 작은 아들(?)에게 속으로 호통을 치며 두 눈을 감는 불릿.
올리비아와 사랑을 나누며 그동안 잠재웠던 육체의 욕구가 폭발했기에 마치 사춘기의 소년처럼 시도 때도 없이 기지개를 켰다.
대충 상황파악을 완료한 올리비아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는데,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며 어딘가의 귀부인처럼 웃었다.
“흙덩아, 너는 몰라도 되는 일이란다? 오호호!”
승부를 한 것도 아니건만, 마치 승자처럼 행동하는 올리비아의 발언에 울컥한 흙덩이.
지지 않겠다는 듯 불릿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댄다.
포옥-.
- 지지 않아!
정신이 없던 불릿은 모르고 있었으나, 두 눈 뜨고 지켜보던 올리비아는 고음을 내질렀다.
“불릿!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얏!”
“……? 무슨….”
올리비아의 호통에 피곤함을 뒤로한 채 눈을 뜨는 불릿.
그리고 그는 자연스레 기겁했다.
“헉, 흐, 흙덩이여, 손을 놓는 것이….”
- 싫어, 맨날 올리비아랑만 놀고. 어때? 커졌지? 부드럽지? 따뜻하지?
말캉말캉.
“으윽, 그렇긴 하다만, 일단 손 좀 놓으시게!”
“자기야? 언.제.까.지.그.러.고.있.을.거.야?”
“으음….”
- 베에, 아무것도 못하는 올리비아는 저리 가!
백인장을 비롯한 병사들은 아까 전부터 이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정령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어쨌든 간에 경사는 경사로군.”
백인장 세스터스의 말에 십인장 기사들이 말을 받아주었다.
“그렇습니다. 조만간 겹경사가 있을 듯합니다.”
“작은아씨도 그리되신다면 저희야 더 바랄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런 모습을 보이니 흙덩이를 신부모임(?)에 넣는 것이다.
이는 불릿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그가 사람처럼 대하니 그 아래에 있는 가신들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세스터스는 조용히 읊조렸다.
“올리비아 마님이 아드님을, 작은아씨가 따님을 잉태하시면 이상적인 결과겠군.”
이것이 요즘 가신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혼돈의 카오스’였다.
* * *
저벅, 저벅.
불릿은 군단의 정예병들과 이동하고 있었다. 이전처럼 호위병대를 구성하진 않았으나 그를 보필할 인물로 여기사 두 명을 선출하였는데, 몇 없는 여기사들 중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활달한 성격의 아일렌과 청순미를 뽐내는 유실리아를 마차에 탑승시켰다.
바포 변경백의 병사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정예수준이긴 하나 이들 중에서 진짜 정예는 얼마 전 마수의 숲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던 100인대였다.
세스터스와 다른 백인장이 번갈아가며 사냥을 했었는데, 이번 여정에 둘이나 되는 백인장은 불필요했기에 세스터스가 책임지고 두 병대를 이끌고 있었다.
덜컹-, 덜컹-
병사들의 움직임에 맞춰 느릿하게 이동하는 마차 안에는 양쪽 창가에 나란히 앉아있는 아일렌과 유실리아가 있었고, 안쪽으로는 나들이를 가는 듯한 차림의 올리비아와 흙덩이, 그리고 숙면을 취하고 있는 불릿이 있었다.
“루나도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루나가 이번 여정에선 빠져버렸기에 올리비아는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아쉬워하자 아일렌이 올리비아의 말상대를 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마님. 이번 여정에선 저희가 책임지고 모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님. 각하는 제가 모실 테니 편안한 여행되시기를….”
뭔가 이상한 유실리아의 발언에 올리비아가 울컥했다.
“불릿은 내가 챙길 거거든? 흥!”
올리비아가 새침하게 반박하자 반박에 반박하는 유실리아.
“저런, 각하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시달리지 않으셨다면 이리 되진 않았을 텐데. 저라면 조절해서 했을 것입니다.”
푸욱!
가슴에 날아와 꽂히는 듯한 유실리아의 말에 올리비아가 주춤했다.
“윽! 하, 하지만, 불릿도 좋아했는걸?”
“여성과 달리 남성은 한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올.리.비.아.마.님.”
“우으으….”
그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불릿을 쥐어짜내며(?) 알 수 있었던 사실이기에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올리비아.
그래도 꿋꿋하게 입을 열어보려했다.
“나, 나는 어디까지나 불릿을 기쁘게 해주려고….”
“바포가의 안주인이 되시려면 어디까지나 각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이는 상하지위를 논하지 않고 반드시 지켜야하는 사항, 올리비아 마님이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너무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히잉….”
잔뜩 주눅이 든 올리비아였으나 아일렌도 딱히 제지하는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불릿은 깊은 잠에 빠져든 상황이기에 여자들의 토크는 못 듣고 있었고 말이다.
“지금이야 올리비아 마님이 백작각하를 독차지하고 계시지만 나중에 각하를 보필할 첩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행동은 구설수에 오르기 충분합니다.”
거기에 말을 덧붙이는 유실리아.
“이는 작은아씨도 해당되는 사항이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 응? 나?
올리비아가 된통 혼나는 모습에 고소해하던 흙덩이는 자신에게로 화살이 돌려지자 의아해했다.
그러나 유실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끊지 않았다.
“작은아씨의 목소리는 각하께서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이용해 각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 그분의 기사인 이 유실리아가 용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불릿을 수호하는 기사라는 점을 적극 활용하여 둘을 쏘아붙이는 유실리아를 보며 아일렌을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기집애가, 원래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사랑을 하더니 변했어, 쯧쯧쯧.”
바포 백작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선망은 어느새 사랑으로 변하여 늘 그의 곁을 맴돌게 만들었다.
유력가의 레이디들이 날마다 편지를 쓰고 가신들이 혼인을 유도해도 늘 관심이 없던 불릿이기에, 후계문제에 민감했던 가신들은 그녀의 그런 사랑에 일부 지지해주기도 했다.
비록 출신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밴을 비롯한 1세대 비밀호위대의 사정을 아는 기사들은 유실리아가 불릿의 곁에서 보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대영주인 불릿을 보필하기 위해선 검술실력을 빼먹을 수 없었으므로 유약했던 그녀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던 것은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첫째도 각하, 둘째도 각하, 셋째도 각하입니다. 출발하시기 전에 피곤하신 각하를 쏘아붙이시는 모습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얘가 우리 자기에게 달라붙잖아.”
“작은아씨도 엄연한 각하의 애첩, 솔직히 말해서 마님과의 차이점은 그리 많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우으으….”
올리비아의 출신내력은 몰락한 귀족, 그리고 흙덩이는 알려지기론 정령이지만 이제와선 다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항이었다.
둘 다 유력가문은 아니었으나 불릿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에 나이차를 빼면 그렇게 차이나는 것도 아니었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흙덩이의 말은 불릿을 제외하면 들을 수가 없으니 벙어리취급을 받았다는 점이다.
올리비아가 먼저 사랑을 나누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불릿에 대한 올리비아 최대의 강점일 것이다.
- ?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체.
언제나 일편단심, 불릿만 바라보는 흙덩이에게 있어 유실리아의 말은 그저 기분 나쁘기만 할 뿐이었다.
“작은아씨, 바깥에서는 함부로 애무를 하시는 게 아닙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시지요.”
유실리아는 아까 전에 흙덩이가 불릿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대고 주무르게 만들었던 사건을 말하고 있었는데, 자주 목격되는 광경이었던지라 결국 한소리를 했던 것이다.
아마 올리비아나 흙덩이의 출신이 대단했다면 아무리 유실리아라 할지라도 이렇게 잔소리를 하진 못했으리라.
“으으음…….”
덜컹, 덜커덩-
뒤척이지도 않고 잘만 잠을 자는 불릿을 사이에 두고 조잘대던 유실리아는 아주 낮게, 말을 끝마치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중엔 저도….”
살짝 발그레해지는 보조개였으나 잔뜩 혼나고 있던 올리비아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고, 흙덩이는 볼을 부풀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기에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유실리아의 친구이자 동료인 아일렌만이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할 뿐.
“쩝. 유실리아, 파이팅이다.”
아일렌, 그녀도 이러쿵저러쿵 말은 많았지만 루나와 마찬가지로 유실리아가 사랑에 성공했으면 싶었다.
============================ 작품 후기 ============================
밀려썼던 부분을 수정하여 7권 3챕터에서 5챕터로 넘어가던 부분이었던 125화에 본래의 4챕터가 들어갑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