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8 사랑과 전쟁! =========================================================================
춘추전국시대가 되어버린 루드밀라 왕국과는 다르게 란푸스 왕국은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국민의 대부분이 선량한 성격을 띠고 있는 루드밀라의 경우, 외부로부터 들어온 인물들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는데, 그 이유는 남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올라서고자하는 마음이 없어서였다.
그렇기에 루드밀라 왕국은 불릿의 바포 변경백과 투툰 후작령을 제외하면 외국에서 국내로 자리 잡은 이들이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란푸스 왕국은 절대군주제, 오직 단 하나의 존재인 왕이 모든 권력과 권한을 손에 쥐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강인한 왕권은 흑마법사와의 전쟁으로 인해 대륙이 혼란에 빠져듦에도 굳건히 유지되어 다른 국가들이 약해진 마당에도 그들은 여전히 주변 국가 중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전하, 이 포도알 좀 드셔보셔요. 달콤하고 육질이 부드럽답니다.”
“하하하! 네년이 본 왕의 입에 넣어주려무나! 아아-!”
“아잉, 몰라몰라! 아앙-.”
쏙!
탱글한 육질을 자랑하는 포도알이 왕좌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남성의 입속으로 빨려들자 남성은 그것을 입에 물고 여인에게 내밀었다.
“네녀도 머거바라(네년도 먹어봐라)!”
츄웁-
남성은 자신의 무릎에 걸터앉은 여성에게 키스를 하며 포도알을 넣어주었는데, 그러면서 혀까지 넣는 행동을 강행했다.
“아앙, 우물우물…, 몰라잉.”
“하핫! 입으로는 포도알을 씹더니, 가슴에는 콩알이 있구나!”
여성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남성의 행동에 누군가 기침을 뱉었다.
“크흠.”
“아하하…, 뭐야. 자네 아직도 있는가?”
“전하, 즐기시는 것은 상관이 없사오나 주변의 눈이 두렵사옵니다.”
아래에 부복해 있는 자가 걱정스레 조언을 하자 왕은 여성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도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죽이도록. 감히 본 왕을 욕한 자는 살려둘 필요가 없도다.”
이토록 대담한 짓을 하는 자가 바로 란푸스 왕국의 국왕 란푸스 3세였다. 풀 네임은 크레센트 폴 푸바 란푸스이다.
란푸스 국왕의 말에 부복한 상태인 신하가 입을 떼었다.
“그 누구도 전하를 욕하지 않사옵나이다. 소인은 그저 걱정스런 마음에….”
“아아, 듣기 싫다. 그래서 본 국왕이 언제 국사에 소홀한 적이 있던가? 겨우 계집질 좀 한다고 한소리 하다니, 자네. 미쳤는가?”
덜덜덜-.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소인이 실언을 했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부복한 사내가 아예 넙죽 엎드리며 벌벌 떨자 란푸스 3세가 피식 웃으며 여인을 물렸다.
“너는 이만 가보도록. 아, 가면서 짐의 침소에 계집 몇도 넣어두고.”
“그리하겠나이다, 전하.”
“짐이 널 좋아하는 거 알지?”
“당연한 말씀을 하시옵니다, 우훗.”
“크흐흐, 역시 네년은 재밌어.”
그녀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조물딱거리던 란푸스 3세는 한번 찰싹! 친 후 그녀를 밖으로 물렸다.
“아잉, 나중에 뵈어요, 전하-?”
“어여 가봐.”
끼이이…
쿠웅.
왕의 위세를 나타내는 거대한 문이 닫히자 란푸스 3세의 눈빛이 달라졌다.
“짐은 자네들에게 해줄 것은 다 해주었다. 부강한 나라, 굶주리지 않는 나라, 살기 좋은 나라. 그런데 여기서 무얼 더 바라는 것이지? 설마 본 국왕까지 입맛대로 바꾸고 싶은가?”
“절대 아니옵니다, 전하!”
“그래, 잘 알지. 그럴 용기를 낼만한 녀석은 짐이 다 죽였으니 말이야.”
란푸스 3세는 철혈통치로도 유명했는데, 절대군주제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모조리 치워버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숙청이었는데, 자신의 말에 반대하는 자들은 가문 자체를 멸해버린 것이다.
물론 헛소리를 하거나 자신의 이득만 취하는 이들에게만 철퇴를 내렸고, 옳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선 받아들이는 겸허함도 갖추었기에 이토록 폭정을 일구면서도 그 흔한 반란을 겪은 적이 없었다.
왕은 벌벌 떠는 신하가 재미없어졌는지 턱을 괴고선 입을 떠벌렸다.
“지금 이 시국에서 네놈이 찾아올 일이라면 루드밀라의 일이겠군. 그 멍청이가 죽기라도 했더냐?”
“마, 맞사옵니다, 전하! 전하의 신통력에 감복하였나이다!”
“흠, 빨리도 죽었군. 보나마나 수하에게 당했겠지. 그놈 성격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저 신하가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발휘하는 란푸스 3세에게 부복한 신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분은 진정 인간이 아니시다!’
여자와 놀 때의 한량과 같은 모습과는 달리, 중요한 순간에는 매번 이렇게 날카로워지니 그 누구도 찍소리를 못내는 것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 놀렸다가 저승구경하기 좋은 인물이 바로 란푸스 3세였으니 말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자세한 보고는 들어야겠지. 말해보도록.”
“예, 전하! 게슐린 그랩 자작의 반란에 군사를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그가 성공했을 시, 루드밀라 왕국으로 진입하는데 도움을 받기로 했었나이다.”
루드밀라가 혼란스런 틈을 타 땅따먹기를 하려던 것이 란푸스 3세의 생각이었기에 이건 굳이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
“알아, 알아. 다음.”
역시나 예상대로 바로 넘겨버리는 란푸스 3세, 이에 신하는 더욱 긴장했는지 침을 꼴깍 삼켰다.
“끕. 예, 전하. 그리하여 군사 1만을 준비시키고 있었는데,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게슐린 그랩 자작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지고 말았나이다.”
“왜지? 수성을 한다던 놈이 그렇게 일찍 죽어?”
“그것이, 사망했는지에 관해선 알려진 바가 없사오나 정황을 보면 그리됐다고 판단….”
“짐이 우스운가? 내 분명 전부터 말했을 텐데? 확실한 보고만 올리라고.”
차킹, 차킹!
“히, 히익! 죽여주시옵소서, 전하!”
짜증을 내는 란푸스 3세의 말에 반응한 친위대가 신하의 목에 검을 겨누자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땅에 박지도 못하고 그저 간절히 빌고 있었다.
“입 다물라. 진짜 죽여버리고 싶어지니까.”
“흐읍!”
입술을 안으로 집어넣으며 숨을 멈춘 신하의 얼굴은 우스꽝스러웠다.
마치 항문이 얼굴에 달린 것처럼 보였고, 숨을 참았기에 한껏 시뻘게진 얼굴은 화장실을 못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 것처럼도 보였다.
그 얼굴이 웃겨서인지 찌푸려졌던 란푸스 3세의 얼굴이 펴지며 피식 웃었다.
“담도 작긴. 여봐라, 칼은 치우도록. 살려둬도 괜찮겠구나.”
철컹.
금속소리와 함께 착, 하며 납검하는 친위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부동자세를 취하는 그들은 언뜻 석상이 연상되었다.
신하는 죽다 살아났기에 한숨을 내쉬고 싶었으나 저 성질 급한 왕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이번에야말로 죽을 것이다.
란푸스 3세에게 있어 귀족들은 별로 쓸모도 없는 주제에 말만 많은 해충이었으니 말이다.
“헌데 참으로 이상하구나. 대체 어떤 방법으로 한 달도 안 돼서 점령에 성공한 것이지?”
그러면서 물끄러미 신하를 쳐다보는 국왕. 그는 현재 신하에게 답을 요구한 것인데, 이에 신하는 급히 입을 열었다.
“예, 옛! 알려진 바로는 점령에 걸린 기간은 2주가 채 안 되었다고 하며 바포 변경백의 주인인 불릿 폰 바포 백작이 정령술을 사용했다 하옵니다!”
신하의 우렁찬 대답에 란푸스 3세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린다.
“녀석, 시끄럽긴. 흐음…, 바포 백작이라….”
톡, 톡.
란푸스 3세는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금세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정령술, 정령술…. 뭔가 이상한데?”
그는 대륙의 현황을 기억하고선 신하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바포 백작은 물의 중급 정령사로 기억하고 있지. 그렇다면 그가 힘을 내봤자 하급 정령이 최대일 것이고, 아예 소환을 못할 수도 있을 터. 대체 무슨 수로 점령을 한 것인지 자세히 말해봐라.”
“…전하, 이번 내전에서 사용된 정령술은 물의 정령이 아니오라 합니다.”
“뭣이? 물의 정령이 아니다?”
대륙 전역이 원인모를 힘의 하락으로 시름시름 앓는 중이었다.
마법사들은 그나마 나았으나, 정령사들의 경우 한 단계의 하락으로도 매우 치명적이었다. 하급이냐, 중급이냐의 문제는 그들에게 있어 삶을 가를 정도로 대단히 중요했던 것이다.
각 단계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이지 정령사가 보유한 정령력이 비슷한 수준의 마법사보다 월등히 많은 게 아닌 탓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와중에 새로운 친화력을 일깨운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복권한 이래 물의 정령을 사용한 모습을 내비춘 적이 없다하옵니다.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바포 백작은 땅의 정령과 계약을 맞은 것으로 사료되옵나이다….”
“땅, 땅, 땅이라.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와 비슷한 길을 걷는 것인가?”
“에스아이의 판단은 속성이 변경된 것으로 여겼나이다.”
에스아이는 란푸스 왕국의 특밀부서로, 란푸스 3세가 대량 숙청을 위해서 창설한 조직이었다.
‘피의 일주일’이라 불리는 기간 동안 죽어나간 귀족들의 수만 해도 전체 비율의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함을 자랑했다.
덕분에 그 누구도 란푸스 3세에게 대항할 생각도 못했으며 에스아이에게 있어 알아내지 못할 비밀은 없었다.
정보조직이 있긴 했으나 창설된 이유가 숙청을 위해서인 에스아이가 더욱 뛰어난 기현상을 보였기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때마다 에스아이를 이용하곤 했다.
그런 에스아이의 일원들도 란푸스 3세만은 두려워했으니, 철권통치란 이런 것을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정령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하옵니다.”
“무슨 소문?”
“그것이… 열셋에서 열넷 사이의 소녀를 데려다놓고선 땅의 정령이라 주장하는 것이옵니다.”
“…? 바포 백작이 미치기라도 했는가?”
이상한 정보였기에 란푸스 3세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묻자 신하는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보고만 이어갔다.
“워낙 증인이 많은지라 정확한 정보입니다, 전하.”
“흐음…. 그렇게나 사람과 닮았단 말이지?”
“당사자인 바포 백작은 하급 정령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기존 땅의 정령사들과 비교했을 시 중급 정령사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일부 면에선 그 이상의 능력도 보유했다 사료되는 줄 아뢰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신하의 말에 란푸스 3세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정령이라고 말씀드린 소녀와 불순한 행동을 하는 것도 여럿 포착되었나이다, 전하….”
“고자인줄 알았더니 놈도 남자는 남자인가보군. 그런데 얼마나 사람 같으면 정령에게 욕구를 풀지?”
호기심이 인 란푸스 3세에게 신하가 바로 알려주었다.
“그의 아내로 내정된 올리비아라는 여인과 더불어 그 미모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해지나이다.”
“아 맞다, 그 올리비아라는 계집도 이쁘더냐?”
올리비아에게 궁금한 것이 비단 그것만은 아닐 테지만 란푸스 3세는 그것보다도 남성의 욕망에 관한 얘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에게 있어 조그마한 무력은 있으나마나였다. 여차하면 쓸어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신하가 생각하기에도 란푸스 3세가 여자를 밝히긴 하나, 이렇게 농을 건네면서도 할 일은 다 했기에 별다른 반발심은 일지 않았다.
아니, 반발심을 품으면 귀신 같이 알아채고 숙청당할지도 몰랐지만.
“전쟁을 치루는 와중에도 정령과 함께 올리비아라는 여인과 본인의 막사에서 일을 벌인다 하나이다.”
“짜식, 아닌 것처럼 굴더니 드럽게 밝히는군. 근데 정령이랑도 할 수 있나?”
“…소신이 생각하기로도 그 점은 이상하나이다. 능력을 발현할 때가 아니라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정보와 올리비아라는 여인과 애정싸움을 벌이는 등의 행동을 한다는데, 이건 마치….”
“……흠. 에스아이에게 좀 더 알아보라고 하도록.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기니 말이야.”
“그리하겠나이다, 전하!”
“가봐, 고생했다.”
“소신 물러나겠나이다….”
허리를 굽힌 채 자리에서 슬슬슬 일어난 신하는 뒷걸음질을 치며 친위대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조용히 빠져나갔다.
쿠웅.
육중한 문이 닫히면서 말이 없는 친위대를 제외하면 그는 홀로 남게 되었다.
톡, 톡.
“사람과 구별이 안 되는 정령이라….”
란푸스 3세의 독백이 실내에 퍼지는 가운데,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씨익-.
“바포 백작이 이번엔 또 어떤 일로 나를 즐겁게 해줄 것인지 궁금하군.”
쿠후후, 웃는 소리가 방탕하기만 했던 왕을 철혈의 군주로 되돌려놓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독자 여러분께 올려드립니다.
추천과 선작이 100이 될 때마다 1편씩 추가분을 연재하겠다는 약속을 제가 잊고 있었기에 월요일인 내일, 추천 200분과 선작100분량의 3화가 추가로 올라올 것입니다.
그래서 점심 낮 12시에 1편, 저녁 6시에 3편, 밤 12시 10분에 1편 총 5화가 올라올 것이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