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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17화 (117/241)

00117  사랑과 전쟁!  =========================================================================

쉬릭!

아인그루츠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하체를 쓸어오자 황급히 뒤로 물러서는 벤젼스.

그러나 하체는 미끼였는지 곧바로 진로를 변경해 찔러 들어오는 아인그루츠의 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뒤로 물러서기 급급했던 벤젼스는 그것을 막을 겨를이 없었는데,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던 아인그루츠는 멈칫하다가 순식간에 뒤로 빠졌다.

슈슈슉!

아인그루츠가 물러난 자리에는 돌로 된 송곳이 솟아났는데, 1미터나 되는 크기로 미루어보아 가만히 있었더라면 다리가 아작 났을 것이다.

둘만의 싸움이라 여겼던 대결에 다른 자가 개입하자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아인그루츠는 경계만 할뿐 다른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아인그루츠의 말에 벤젼스를 옆으로 물리며 나타난 인물이 그 말을 받아주었다.

“그래, 자네도 잘 지냈던 것 같군.”

“……많이, 변하셨군요.”

자신을 경계하며 말을 내뱉는 아인그루츠에게 불릿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본인은 변하지 않았네. 변한 것은 자네인 것이지. 레베다 아인그루츠.”

누가 보더라도 확연히 변한 것은 불릿이었거늘, 아인그루츠는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불릿에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는데 자네는 어찌하여 검을 휘두르는가?”

“모시는 분이, 그리하라 명하셨습니다.”

“게슐린 그랩 자작이 자네의 새로운 주군인 것인가?”

“…그러합니다.”

그토록 격했던 전투는 끝난 지 오래였고 지금 성에 존재하는 모든 병력들은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랩 자작이 그토록 자랑하던 붉은 장미 기사단도 새로이 바뀐 군단에 의해 무릎을 꿇었는데, 오직 아인그루츠만이 반항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묻겠네. 자네의 주군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왜 말을 못하지? 자네는 부단장이니 단장의 위치정돈 알고 있을 텐데? 자네들이 이렇게 되도록 그는 대체 어딨냐는 말일세.”

“…그것은…….”

입을 벙긋거리다가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아인그루츠는 팔을 늘어뜨렸다.

그라고 왜 모를까, 자신들이 게슐린 그랩 자작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줄 희생양이란 사실을.

그럼에도 그는 미련스런 충성심 때문에 아직도 저항하던 것이다.

“어리석군, 어리석어. 자네의 발버둥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은 보이질 않는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자네의 충성심은 기사의 표본이라 할 만하지. 그러나 한 번의 배신을 오점으로 남기지 않으려고 그러한 미련을 보이는 것을 보니, 참 많이 바뀌었어.”

“…….”

“시간만 주어지면 자네는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명성을 떨칠 수 있겠지. 아마 길이길이 남을 영광된 길이 될 게야.”

한숨을 쉰 불릿. 그는 서늘하게 식은 눈으로 아인그루츠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욕망 때문에 백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죄, 할 말이 있는가?”

“…한가지, 부탁이 있나이다.”

“이런 간악한! 이토록 큰 대죄를 저질러 놓고도 할 말이 남은…!”

“그만, 군단장은 물러서도록.”

“…예, 각하.”

언제 도착한 것인지 레너드 남작이 아인그루츠의 말에 성을 냈는데, 치열한 전투를 치러서인지 그의 갑옷은 찢기고 뭉개진 곳이 보였다.

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결국 승리했단 소리, 빌 해그먼은 가이아의 품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말해보도록, 반역자 레베다 아인그루츠.”

반역자라는 말에 안색이 어두워졌으나 아인그루츠는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무릎을 꿇었다.

털썩.

“불릿 폰 바포시여, 붉은 장미 기사단의 남은 단원들은 그저 본 죄인을 따라왔을 뿐이옵니다. 부디 그들에게 선처가 있기를….”

그러면서 바닥에 내려놓았던 검을 들고 빙글 몸을 돌렸다.

앉은 자세에서도 부드럽게 몸을 돌릴 정도로 강건한 육체를 지닌 아인그루츠.

그는 하늘을 보며 낮게 통한이 어린 말을 내뱉었다.

“게슐린, 우리를 버린 대가를 그대는 치르게 될 것이다. 외세를 끌어들이는 망령된 짓을 나 레베다 아인그루츠가 책임지고 가져가겠나니!”

그리고 검을 수직으로 들어선 그대로 자신의 배에 찔러 넣었다.

푸욱!

“…외적을 조심하소서, 백작각하!”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서 고개를 떨구었다.

붉은 장미 기사단의 부단장 레베다 아인그루츠, 그의 최후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흐느꼈으나 같은 국민이라 할지라도 군단과 백성들의 눈엔 살인자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각하, 그랩 자작이 외세를 끌어들인 것 같습니다.”

레너드 남작의 말에도 불릿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다.

“그에 대해선 차후 논의하기로 하고, 그랩 자작을 잡는 게 우선이다. 병단의 일부는 성을 수습하고, 나머지는 반역자들을 찾아내라.”

“옛, 각하!”

“옛, 각하!”

주변의 간부들이 부복하며 복명하자 불릿이 자신의 허리에 꽂혀있던 검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적장을 물리쳤다!”

와아아아아!!

“헉, 헉.”

어두운 통로엔 앞장서서 걸어가는 그랩 자작의 손에 들린 횃불만이 사위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는 기습을 당한 시점에서 승산이 없다고 여긴바, 가족들만 데리고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짊어진 채로 도주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 여보, 하악, 너무 힘들어요….”

“닥쳐, 닥쳐! 주둥이 나불댈 시간 있으면 움직이기나 해!”

이곳은 자작성의 비밀통로로, 웬만한 성의 성주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은밀한 장소였다.

최후의 최후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는 장소로, 대부분의 귀족들은 만들어놓고도 자존심 때문에 사용하질 않는 장소이기도 했다.

왜냐? 성주쯤 되면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기에 그렇다.

“각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헉, 헉. 또 뭔데!”

모든 수하를 버리고 도주하던 그랩 자작이 딱 한명 데리고 다니던 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삼광(三光) 셰실리코프였다.

지금 그랩 자작은 셰실리코프의 영토로 도주하려던 속셈이었는데, 그곳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려던 생각이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셰실리코프의 영지는 아직 안전한 곳 중 하나였고, 이게 통한다면 란푸스 왕국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

“각하께선 란푸스 왕국으로 가실 생각이시지요?”

“그들이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들에게 붙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한시가 급한데, 자네는 왜 불러 세우고 그러나? 어서 자네의 영지로 가세!”

“셰실리코프님, 어서 가보아요.”

그랩 자작의 부인까지 합세해서 닦달하자 셰실리코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사악-

핏.

“어서 가서 쉬고 싶….”

그가 검을 뽑자 말을 하던 자작 부인은 말을 멈추었는데, 그랩 자작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무슨 짓이냐, 삼과앙!!”

“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흡사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는 그랩 자작에게 아들이 의문을 가졌으나 미천한 실력을 가진 아들도 곧이어 알게 되었다.

주륵…

털썩-.

“커헉, 어머니!”

“네 이노오옴!!”

자작 부인의 머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표정이 멈춘 상태에서 스르르, 목에서 떨어지더니 그대로 바닥을 굴러버렸다.

얼마나 날카롭게 베었는지 목에서는 몇 줄기를 제외하면 솟아나는 피도 없었다.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는 그녀의 시체를 받아든 아들의 숨 막히는 음성에 그랩 자작이 검을 뽑으며 오러를 끌어올리자 삼광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왜 당신을 따라온 줄 아십니까?”

“이 개만도 못한 놈! 감히 주인을 물어?!”

그랩 자작의 아들은 마치 백치라도 된 듯 ‘어머니’만을 연신 중얼거리며 시체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 욕설을 내뱉었던 그였으나 막상 가족이 죽음을 맞이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건 살아남기 위해선 당신의 목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노오옴!”

캉, 캉캉.

채챙, 챙!

어두운 통로, 바닥에 떨어진 횃불만이 게슐린 그랩 자작의 최후를 비춰주고 있었다.

* * *

“…해서 반역에 연루된 귀족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나가보도록.”

“옛, 편히 쉬십시오, 각하.”

달칵.

“이제야 쉴 수 있겠군.”

불릿은 그랩 자작의 침실에서 보고를 받으며 자작령을 정리하고 있었다.

최대한 피해를 적게 주려고 했으나, 전쟁이란 것이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기물파손도 장난이 아니었다.

“성벽의 수리가 골치 아프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부쉈던 성벽이 이제는 그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반쯤 허물어진 성벽을 복구하려면 많은 시간과 인력, 자금이 소모될 것이다.

불릿이 할 수도 있으나 파괴와 창조는 다른 영역으로, 땅의 정령의 힘을 빌리더라도 장기간이 소모될 것이다.

“중앙영지로 돌아가야 하기도 하고….”

언제까지 자리를 비울 수도 없기에 이곳엔 그에 걸맞은 대리 통치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보고를 받으며 지원만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앙영지로 돌아가서 뭐하려고 그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게 아닌가, 올리비아.”

“흐흥…, 그것뿐?”

이곳은 자작의 침실, 당연히 침대도 있었고 갖가지 편의시설 또한 함께 있었다.

게슐린 그랩 자작은 본인의 무력을 자랑하던 이, 평소에도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정력이 넘쳐났다.

불릿이 발견한 애첩만 하더라도 10명이 넘었으니, 그가 본부인을 제하더라도 얼마나 음란하게 지내왔는지 알만한 대목이었다.

“그럼, 늦게 돌아갈까? 자작의 애첩들이랑 어울리며?”

“미쳤어?! 내가 있는데 그년들이랑 왜 놀앗!”

침대를 뒹굴며 다리를 파닥이던 올리비아는 불릿의 음성에 버럭 성을 내었다.

이에 불릿은 한숨을 쉬며 미간을 짚는다.

“그래서 빨리 돌아가겠단 거다. 이곳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지.”

바포 변경백은 불릿의 영토였으나 이곳 그랩 자작령은 그의 손길이 닿아있었기에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지금 돌아가선 안 되겠군.”

“이게 진짜, 아랫도리 간수 똑바로 못햇!!”

“……올리비아, 너의 머릿속엔 그 생각밖에 없나? 나는 란푸스 왕국이 병력을 이끌고 온다는 생각이었는데.”

불릿의 말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러면서 아직도 애첩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베개를 끌어안고선 슬쩍 얼굴을 가렸다.

“그, 그건 아니고….”

“41년을 참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나?”

“…알지, 잘.”

더더욱 붉어지는 얼굴에 불릿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스윽-

“왜, 왜 그래?”

불릿은 침상의 머리맡에 기대어있는 올리비아에게로 기어가더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으으으…, 왜, 왜 그러는데에…?”

“…참기 힘들어?”

“으응?”

“원한다면 지금 여기서도 할 수 있다. 할까?”

“헉.”

그것이 부끄러웠는지 베개로 얼굴을 가리는 올리비아. 그러나 눈 부분만 살짝 내리며 작게 속삭였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누가, 그랩 자작이? 여기는 침실인데?”

그랩 자작의 모든 재산은 불릿이 회수했다. 고로 이 성 또한 온전히 그의 것이 된 것.

자신의 침실에서 거사를 치루겠다는데 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다만, 그들은 언제나 한 명(?)을 놓치고 있었다.

- 아니, 내가 보고 있지.

포옥!

흙덩이가 침대에 뛰어들며 드러눕자 올리비아가 화들짝 놀란다.

“꺄악! 예, 예쁜이?! 언제부터 거기에…!!”

- 불릿은 응큼해. 내가 있는데도 올리비아랑 이상한 짓을 하려고.

“…별로. 하려고 하진 않았다만.”

흙덩이에게 대꾸하는 불릿의 말에 이번엔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뭐? 그럼 날 놀린 거야?”

그러자 불릿이 그녀의 입술을 막은 후 천천히 떼며 싱긋 웃었다.

“아니, 난 언제나 진심이다.”

불릿이 올리비아에게 키스를 가하자 흙덩이가 강인한 힘으로 불릿의 얼굴을 낚아채더니 자신도 키스를 했다.

- 쪼옥….

“흡!”

“뭐, 뭐야!”

퐁-

마치 병마개를 따듯, 진공이 풀리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흙덩이도 싱긋 웃었다.

- 나도 언제나 진심이야.

============================ 작품 후기 ============================

지각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밤새 쓰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12시 10분에는 안 그럴게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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