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6 사랑과 전쟁! =========================================================================
다그닥, 다그닥!
“자기야, 성벽을 무너트릴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올리비아는 호위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는 와중에도 달리는 말에서 잘도 말을 하고 있었다.
달리는 말은 위아래의 흔들림이 심해 자칫 잘못하면 혀가 잘릴 수도 있는데, 올리비아는 승마도 능숙한 것인지 전혀 그런 면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영토에서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
이에 불릿도 잘만 대답을 해주었는데, 이상한 점이 포착되었다.
“어? 상태는 좀 괜찮아?”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숨을 몰아쉬던 불릿이었으니 달리는 말이라면 더욱 힘들어해야 맞는 것일 텐데 그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마의 꽃방울을 착용하고 왔지.”
“아아, 그거?”
- 이제 불릿 안 힘들다, 헤헤.
흙덩이는 불릿의 허리를 껴안고, 불릿은 올리비아의 허리를 껴안은 조금 이상한 모습.
그러나 그들을 태운 말은 명마는 아니더라도 준마에는 속했기에 잘도 달리고 있었다.
“그게 회복도 되나봐?”
다그닥, 다그닥.
성벽에 거의 다 와가자 올리비아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는데, 불릿은 전황을 살피면서도 대꾸를 해주었다.
“축적된 마기를 정령력으로 전환했을 뿐이지. 위험한 물건인 것은 여전하니 다루는데 조심해야할 거야.”
마의 꽃방울은 마기를 흡수, 저장해 사용자에게 이로운 기운으로 되돌려준다.
이것만 보면 좋은 아티펙트였으나 최상급 마정석 자체의 마기는 위험했기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마기를 가두는 상자에 보관해야 했다.
그것도 모르고 평범한 액세서리처럼 착용하고 다닌다면 언젠가 마기에 오염될 것이다.
- 불릿, 저기서 강한 힘이 느껴져.
“음….”
호위병대와 함께 무너진 성벽으로 막 진입하는 사이, 흙덩이가 불릿에게 경고를 보내왔다.
흙덩이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저 멀리서 붉은색 일색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돌진해오는 것이 보였다.
“붉은 장미 기사단이로군.”
“기사단? 그럼 좀 위험할 것 같은데….”
올리비아가 걱정스런 어조로 불릿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가 피식 웃었다.
“전황을 봐봐, 우리가 질 것 같은가?”
“하긴. 다 이긴 싸움이긴 하지.”
챙, 카카캉-
채챙!
“끄악!”
“으아악!”
연이어 쏟아지는 비명은 게슐린 그랩 자작의 병사들에게서 터져 나왔는데, 워낙 난전인지라 불릿의 진영에서도 피해자가 조금씩 나왔다.
그렇다곤 해도 기습공격은 성공적이었기에 정석대로 공성전을 한 것보다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었다.
“각하께서 성으로 진입하셨다! 모두 힘을 내어라!”
“각하께서 함께하신다!”
“와아아아!”
“정령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사기증진을 위해 레너드 남작이 고함을 지르자 벤젼스를 비롯한 천인장들이 사방에서 따라 외쳤다.
그러자 가뜩이나 전황이 불리한 자작측은 움츠러드는 기세를 보였는데, 이때 등장한 붉은 장미 기사단이 난입했다.
“놈들을 성 밖으로 몰아내라!”
“이 보루너 님의 앞길을 막지 말아라! 하하하!”
“…….”
우우웅!
콰앙!
“살려줘!”
“씨발, 섀넌 십인장님! 저 새끼 막아주오!”
“어따 대고 반말…, 크악!”
슈칵!
이미 전세는 기울었으나 그랩 자작의 자랑거리인 붉은 장미 기사단이 난입하자 상황은 또 다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부단장 아인그루츠를 필두로 행동대장인 보루너가 길을 뚫고 빌 해그먼이 십인장과 백인장을 하나씩 거꾸러뜨리자 피해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붉은 장미 기사단이 나타났다! 라체나의 기사들이여, 모여라!”
벤젼스의 외침에 곳곳에 흩어져 있던 간부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뭉치자 붉은 장미 기사단도 더 이상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저리 꺼져!”
쾅, 쾅!
보루너가 난폭하게 휘두르는 검에 라체나의 일반 단원들은 맥을 못 추고 있었는데, 그의 검을 한 인영이 막아섰다.
“헤이스트.”
스르륵-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혼란스런 전장에 녹아들며 보루너에게 휘둘러지는 검.
이에 보루너는 기겁하며 동작을 멈추고 검의 중단을 건틀릿으로 잡으며 간신히 막아냈다.
카가가가각!
“크으윽!”
불똥을 튀기며 검을 밀어내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 쏟아내져 내린다.
채채채채챙-
추확! 스걱, 피핏-
“이런, 씨발, 새끼가!”
방금 전의 파상공세가 거짓이었다는양 시종일관 밀리는 보루너.
그 장면을 불릿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제노시스가 무리하는군.”
제노시스의 검술은 소드유저상급, 본래라면 익스퍼트를 상대로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나 보조마법에 능통했기에 보루너를 상대로 밀어붙일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헤이스트는 시간제한과 부작용이 있는 마법, 과연 10초가 지나자 제노시스는 급속도로 밀리기 시작했다.
쾅, 콰과곽, 쾅!
“이런 애새끼가 감히 이 보루너님에게 상처를 입혀? 용서할 수 없다!”
“크극, 닥쳐라, 배덕자여!”
보루너가 근육을 꿈틀대며 힘으로 찍어 누르자 제노시스는 위태함을 드러냈는데, 소드유저상급이 소드익스퍼트 중상급인 보루너를 상대로 버티는 게 용했다.
과연 얼마 안 있어 당하기 직전까지 몰리자 그 사이 마의 꽃방울로 힘을 어느 정도 회복한 불릿이 흙덩이에게 명했다.
“흙덩이여, 저기 저 근육덩어리에게 쌍주먹 쾅.”
- 바보처럼 보이네. 잘 가, 바보. 쾅-.
여전히 말에 올라탄 상태인 그들. 흙덩이는 높아진 시선을 통해 보루너를 발견할 수 있었고, 주먹을 쏘아 보내는 공격인 쌍주먹 쾅을 발사했다.
슈우욱-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흙덩이의 공격을 알아챘는지 보루너가 그것을 쳐내려고 했다.
“흡!”
콰앙!
찌릿찌릿.
“커헉….”
화살인 줄 알고 가볍게 쳐내려던 것이 팔뚝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자 한순간 그는 검을 놓칠 뻔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제노시스는 놓치지 않고 보루너의 목에 쑤셔 넣었다.
푸북.
“꺽! 꾸르르르륵, 게르라라아악!!”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에게 약점이랄 수 있는 관절부위, 그 중에서 투구의 아랫부분을 검으로 찌르자 성대와 뒷목을 관통한 검에 몸을 파닥이던 보루너는 제노시스를 향해 쓰러졌다.
퍼억!
“크윽.”
워낙 덩치가 산만했던 보루너이기에 단순히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아직 어린 제노시스에게 충격을 주었고, 제노시스가 신경질적으로 발로 차자 옆으로 기우뚱 쓰러졌다.
쿵-!
“후우우….”
제노시스는 한숨을 내쉰 후 사방을 둘러보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불릿에게 경례를 올렸고, 불릿도 이를 받아주려다 급히 흙덩이에게 명을 내렸다.
“흙덩이! 송곳!”
- 응, 지옥송곳.
슈슉!
흙덩이가 시전한 땅에서 올라온 돌로 된 송곳에 제노시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칫.”
“헛! 누구냐!”
제노시스는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 뒤를 돌아보니 백덤블링을 하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뒤돌아선 자신의 바로 앞에 1미터나 되는 돌로 된 송곳이 생겨난 것을 보고 또 한 번 기겁했다.
“헛, 이게 무슨….”
“제노시스! 비키거라!”
“아버지!”
“흐아아앗!”
제노시스가 위험에서 벗어나자 뎁슨 레너드 남작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검에 오러를 씌우며 등장했고, 올리비아처럼 경갑옷을 입은 붉은 습격자는 낮게 중얼거렸다.
“……레너드 남작.”
“흐앗!”
우우웅!
한껏 마나가 서린 레너드 남작의 검에 붉은 습격자, 빌 해그먼은 자신도 검을 휘둘렀다.
쩡!
“큿.”
“……제법.”
빌이 자신의 검을 막아내자 레너드 남작의 눈이 살짝 커졌다.
“넌, 아마도 빌 해그먼이겠군. 맞는가?”
레너드 남작의 음성에 빌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죽일 맛이 있겠군.”
냉정하면서도 오싹한 말에 흥분했던 레너드 남작의 입에서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제노시스! 너는 각하를 모시고 전장을 진압하라!”
“하지만, 아버지!”
“이놈! 지금 이 순간에도 백성들은 고통 받고 있느니라!”
“큿…, 보중하십쇼!”
헤이스트의 부작용으로 탈력감에 빠진 제노시스가 힘겹게 뜀박질을 하며 불릿에게 다가갔고, 레너드 남작은 비로소 긴장을 덜 수 있었다.
“후우, 못난 아들놈이지만 그래도 살려서 다행이군.”
그러면서 눈앞에 있음에도 기척이 약한 빌 해그먼에게 말을 건넸다.
“붉은 장미 기사단에 음침한 놈이 있다더니, 과연 소문대로군. 상급인 주제에 잘도 중급인척 연기를 했구나.”
“…멍청이 보루너와 비교하지 말라.”
“흠. 그랩 자작의 숨겨진 청소꾼이 바로 너였나 보군.”
“…….”
스윽.
이번엔 대꾸하지 않고 검을 슬며시 앞으로 내미는 빌 해그먼에게 레너드 남작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상급이라고 해서 네놈과 본인을 같은 수준으로 여기지 말라.”
“……죽어.”
쉬익!
* * *
“헉, 헉!”
“제노시스, 자네는 병사들을 도와주도록. 지금은 전장을 수습하는 게 우선일세!”
“아닙니다, 각하! 후욱!”
불릿은 자신도 헤이스트 스크롤을 통해 겪었던 탈력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았기에 제노시스에게 상대적으로 편한 병사진압을 맡기려했다.
이미 말에서 내린 올리비아와 불릿, 흙덩이었기에 지친 제노시스라도 따라잡을 수 있었으리라.
“이건 명령일세. 본인에겐 올리비아와 흙덩이가 있으니 지금 이 상황에선 호위가 필요 없다. 당장 가서 적들을 제압하고 투항하는 자는 포박하도록!”
“후욱…, 옛, 각하!”
명령이라는 말이 나오고서야 비로소 제노시스는 절뚝이면서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다치기라도 한 것인지 허벅지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쯧, 자기상태도 모르고선 저러는군.”
제노스의 아들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좀 더 가는 인물인지라 불릿이 혀를 차며 말하자 올리비아가 이를 받아내었다.
“그게 다 자기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지.”
“…전장에선 좀 자제하는 게 어떻겠나?”
“누가 내 마음에 불을 지폈는데 그런 소리를 해?”
“…….”
- …치사해.
“……….”
쾅! 투캉!
채채챙, 피릿!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는데, 거의 정리가 되어가는 전장에서도 한층 격렬해진 전투가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푸확!
땅거죽이 뒤집어지며 시야를 가리고 있음에도 둘의 대결은 막힘이 없었는데, 어찌나 사납던지 주변을 둘러싼 라체나의 기사들은 다가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아인그루츠! 이제 저항을 포기하시게!”
까가가강!
“어림없는 소리!”
폭음이 일고 검이 깎여나간다. 주변의 지형지물이 파괴되는 이 싸움이 진정 인간의 전투인 것인지 기사들은 지켜보면서도 전율이 일었다.
“홀로 독보할 수는 없는 법일세! 이제 그만 각하에게로 돌아오, 크윽!”
투콰아앙!
“흐아아압!”
그리고 이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또 다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불릿이었다.
“으음…, 벤젼스가 밀리는군.”
“저 빨간 아저씨 엄청나. 벤젼스 아저씨가 밀리다니, 믿을 수가 없네.”
이제 19살에 진입한 올리비아에게 있어 벤젼스도 아저씨에 속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벤젼스보다 거의 10살이 더 많은 불릿은 노땅이었지만 말이다.
“상급이라고 알려졌던 붉은 장미 기사단의 부단장이 경지를 뛰어넘었나보군.”
“내가 보기에도 상급은 아닌 것 같아. 마스터도 아닌 것 같고, 최상급? 하여튼 간에 대단하다….”
올리비아는 본인도 검을 다루는 검사였기에 둘의 대결에 감탄을 쏟아냈고,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남는지 불릿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래도 난 이제 저런 쪽으로 몸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무슨 의미지?”
“글쎄, 내가 어디로 몸을 쓸지는 자기가 알겠지?”
“……크흠.”
둘의 애정행각에 흙덩이가 둘의 사이를 가르며 등장했다.
- 불릿은 내가 처음이야.
괜시리 홀로 목숨을 건 사투를 겨누는 벤젼스가 불쌍해보였다.
============================ 작품 후기 ============================
저녁 6시와 밤 12시 10분에 이어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