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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15화 (115/241)

00115  사랑과 전쟁!  =========================================================================

“흐으음….”

톡, 톡, 톡.

불릿은 오른손으로 왼쪽손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색에 빠진 모습은 그림과도 같았으나 당사자인 그로서는 지금의 고민은 생각하기도 싫은 부분이었다.

‘정상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의 육체가 비정상적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상처하나 없이 깨끗해진 육체, 소멸의 순간을 기억함에도 살아남았다는 점, 그리고 뒤바뀌어버린 정령친화력.

무엇보다 제일 큰 문제점은 육체가 자신의 통제에 따르질 않는단 것이다.

‘나는 어째서 흙덩이를….’

두근, 두근.

지금도 흙덩이만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것은 올리비아를 생각하면 반응하는 심장의 뜀박질과 같았는데,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감정이었기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이런 자신에게 환멸감도 느끼고 있었다.

‘예전의 나와는 비교가 무의미할 지경이로군.’

톡, 톡.

톡.

손등의 두드림이 점점 느려지고 있을 때, 바깥에서부터 외침이 들려왔다.

“각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곧 나가도록하지. 대기하도록.”

“충.”

대답과 함께 기척은 멀어져갔고, 불릿도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펄럭!

“충성!”

“준비는 끝났는가?”

“옛, 각하!”

그가 막사를 나서자마자 발견한 것은 호위대장인 크레파토스가 아닌 군단장 뎁슨 레너드 남작이었다.

그들의 진지는 인기척이 드물었는데,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군단의 병사들이 넓게 포진되어 전투를 치룰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모두 각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레너드 남작의 말에 불릿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위치한 성을 바라보았다.

이젠 날씨가 제법 많이 풀렸는지라 낮에는 따스한 햇빛을 쬘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은 푸름이 가시질 않은 새벽에 공성을 가하려던 것이었다.

자신들이 가진 이점, 방한용품을 갖췄다는 것을 말이다.

뚜벅, 뚜벅.

불릿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군단을 향해 걸어간 후 호위병대가 막을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 몸을 의탁했다.

스윽…

“왔어?”

“어.”

짧막한 대화. 올리비아와 불릿은 그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 그녀는 여기사들에게서 임시로 빌린 경갑옷을 착용한 상태였다.

판금갑옷의 안에나 착용하는 가벼운 차림이었으나 그녀의 몸에 맞는 갑옷은 현재로썬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음, 조금 꽉 끼는데….”

어딘가를 강조하며 답답한 얼굴을 하는 올리비아. 방금 전까지 고민에 휩싸였던 불릿이었으나 그녀의 말에 절로 눈알이 돌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크흠. 땅의 하급 정령 흙덩이여,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니.”

스으으…

그러자 땅에서부터 치솟는 흙덩이.

- 바보야, 불러주는 게 늦어.

“허허허, 그러한가?”

- 그래도 괜찮아, 불릿이니까.

꼬옥-.

흙덩이는 소환되고서 볼을 살짝 부풀렸으나 이내 밝게 웃으며 그의 허리를 붙들었다.

불릿도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하였으나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도 찜찜함을 떨쳐내긴 힘들었다.

‘나중에, 나중에 생각하자.’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불릿은 뒤로 미루는 성향이 있었다.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려 시간을 어영부영 날리는 것보단 나았으나 지금 상황에서 보자면 그것이 해결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냐하면, 아니라고 해야겠다.

“자, 우리가 힘써왔던 결과를 내야할 때일세.”

- 그거 할 거야?

“그래, 그것일세.”

불릿의 말에 흙덩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모습을 보이자 주변의 시선들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대체 뭐길래 그래? 우리도 좀 알고 싶어.”

“…….”

올리비아를 비롯한 불릿을 지키는 호위병대를 시작으로 군단장 레너드 남작, 마검사 제노시스, 천인장 대표 벤젼스와 기사들로 이루어진 각기 중간간부들, 그리고 새벽의 강추위 속에서도 기세를 잃지 않고 있는 군단의 병사들까지.

모두가 지금 이때까지도 불릿의 작전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고 있었기에 작전시행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에 이르러선 불안감과 함께 기대감도 품고 있었다.

다만 불릿이 준비하라 한 것이 있다면, 공성병기를 치우고 기본병과를 튼실히 하라고 명했던 것이다.

“보여줌세, 우리의 노력을.”

- 그러자! 불릿과 흙덩이가 한 거를!

우우우우웅-!

불릿이 정령력을 끌어올리자 흙덩이가 그것을 받아내어 무언가를 시작했는데, 당사자들은 여기에 있건만 저 멀리 게슐린 그랩 자작의 성벽에서부터 반응이 나는 순간이었다.

“무너져라, 성벽이여!”

콰르르르르르르-!

쿠구구구궁-

콰아아아앙!!

막대한 정령력은 이 자리에 위치한 누구나가 알 수 있었기에 게슐린 그랩 자작 측이라고 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쿠구구구구-

“뭐, 뭐지?”

“지진인가?!”

어슴푸레한 꼭두새벽의 시간이었기에 그들은 불릿의 진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꾸미는지 볼 수 없었다.

병사들도 은밀히, 조금씩 움직여서 뭉쳤기에 멀리서도 관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그들은 경계하는 정도가 전쟁의 초기 때보다 낮아져 있었다.

평소처럼 성벽을 돌아다니며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땅이 흔들리는 이상현상에 주춤거리다가 경악을 하고 말았다.

콰르르르르르-!!

“으아아악!!”

“사, 살려어어--!”

퍽!

콰직!

갑자기 성벽의 한쪽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그곳에 서서 경계를 보던 병사들이 떨어져 내렸고, 바닥에 추락하며 피떡이 되어버렸다.

매우 끔찍한 광경이었으나 병사들은 추락사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그들을 구하기보다는, 지진처럼 흔들리는 성벽에서 엉금엉금 기며 무너지고 있는 성벽에서 멀어지려 안간힘을 썼다.

콰아아아아앙-!!

갈라지고, 무너지던 성벽은 결국 중간이 뻥 뚫리는 결과를 낳았고, 그로인해 외부와 단절되었던 장소에 ‘길’이 생겨버렸다.

“전구우우운! 돌겨어어억!!”

“와아아아아아아!!”

성벽의 길은 끊겨버렸고, 그로 인해 반대편에 있는 자가 다른 쪽으로 도움을 주려면 한참을 빙 돌아서 향해야 했다.

불릿의 진지에서 시작한 외침에 응답한 수천 명의 병사들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것을 알아챘을 땐 이미 그들의 대응은 너무도 느렸다.

“와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언덕에 위치한 놈들의 성에 돌격하는 사이, 불릿은 흙덩이에게 재차 명령을 내렸다.

“흙덩이여, 무너진 성벽까지 이어지는 다리를 만들어주시게!”

- 나만 믿어!

우우우우우웅-!

“크으윽….”

비틀.

이쯤이면 초장거리에서 기술을 발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불릿의 정령력은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소모되고 있었다.

게다가 한 번에 수십, 수백 명의 병사들이 올라서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고 넓은 돌다리를 건설해야했으니 얼마나 힘들겠냐는 말이다.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도 불릿의 정령력은 대량으로 소모된 상황, 그는 팔이 덜덜 떨리는 상황에서도 흙덩이와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모두 저기 저곳으로 돌격하라! 성벽은 무너졌다!”

“각하께서 다리를 건설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돌겨억!”

“안으로 진입한 병사들은 아군이 들어설 수 있도록 성문을 열어라!”

“와아아아아!!”

병사들은 중간간부인 십인장과 백인장의 말에 착실히 따르고 있었는데, 불릿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병사들만으로 이루어진 군대였다면 처음 받은 명령에 의해서 단순하게 움직이거나 훈련받은 내용대로만 행동했을 텐데, 이렇게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기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니 상황에 따라 움직이며 판단할 수 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쿠르르…

“헉!”

“성벽이 무너진다!!”

불릿이 설계한 작전은 성벽에 정령력을 심어 일시에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정교하게 작전을 구상했더라도 지금처럼 2차로 무너져 내리는 돌덩이까지 계산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 점점 넓어지며 꾸득꾸득, 이상한 소리를 내는 다리를 건너던 병사들은 마치 여진처럼 떨어지는 성벽의 잔해에 비명을 질렀다.

“모두 비켜! 하아아앗!”

콰앙!

푸스스스…

“와아아! 오러소드다!!”

위에서부터 떨어지던 돌덩이들을 기사들이 마나를 끌어올리며 부숴버리자 병사들이 환호를 했다.

십인장, 백인장들이 단순히 병사들을 이끄는 자가 아닌, 스스로도 일당무력이 뛰어남을 내보인 것이다.

“쏴! 쏘란 말이다!”

“이익!”

“죽어!”

슈슈슈슉!

그때, 성벽의 위에서부터 화살이 쏟아져 내리니 순조롭게 진입하던 병사들에게서도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푹!

“커헉….”

텅! 텅!

방패로 막는 이도 있었으나, 아닌 이도 있었고,

“아아악! 내 눈!”

치명적인 중상을 입은 자들도 존재했다.

지금이야 불릿의 기발한 작전에 당황한 적들이었으나 점점 불어나기 시작한 적들에 의해 아군의 피해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꺄아아!!”

“으앙, 엄마아!”

“민간인 공격하지 마! 미친놈아, 칼 휘두르지 말라고!”

“십인장들은 자신의 병사들을 챙겨라! 병사들이 날뛰지 않도록 붙잡으라고!!”

이 가운데, 인질로 잡혀 들어갔던 선량한 영지민들이 집안에서 뛰쳐나오거나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불릿도 이러한 혼란을 예상했으나 다리를 건설하며 힘이 쭉 빠진 상태였기에 입에서 단내를 풍기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커허억, 크으!”

- 괜찮아? 힘들어? 이, 이거, 마정석. 빨리 흡수해!

흙덩이가 어디서 챙겨온 것인지 두 손으로 마정석을 건네주자 불릿은 고개를 저었다.

“후욱! 흐, 흙덩이! 하악! 나, 나를, 후욱후욱! 병사들이! 하악! 있는 곳으로!”

마정석을 흡수하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 불릿은 흙덩이를 소환할 수 있는 아주 미량의 정령력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는데, 그가 흙덩이의 걱정을 뒤로 물리고도 성으로 향하려는 것엔 이유가 있었다.

“불릿! 또 그렇게 탈진하면 어떡해!”

올리비아가 다가와 부축하자, 불릿이 그녀의 귓가에 힘겨이 속삭였다.

“하아, 하아. 빨리 나를 저곳으로! 허억, 그랩 자작을 잡아야해! 하악!”

“하지만…, 네 몸도 생각을 해야….”

“어서! 크레파토스으으!!”

“옛, 각하! 여봐라, 각하를 모셔라! 진군이다!”

“사위를 경계하라!”

“주변에 적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라!”

불릿이 올리비아와 함께 말에 올라타자 흙덩이도 불릿의 허릿매를 잡으며 불릿을 기준으로 앞뒤에 꽃이 놓인 장면을 연출했다.

“허억, 허억. 빨리….”

“이럇!”

“히히히힝!”

다그닥, 다그닥!

올리비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불릿의 원에 응했으나 그가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등에 얼굴을 묻었다는 사실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 …올리비아 바보변태.

* * *

쾅! 쨍그랑, 와장창!

“각하, 적의 기습을 받았나이다!”

“나도 알아, 이 멍청아! 저걸 보고도 모르면 눈알을 후벼 파야지!”

게슐린 그랩 자작은 자다 말고 갑작스런 굉음에 눈을 떴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던 중, 성벽의 한쪽이 무너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부실공사를 떠올렸으나 최전방이라는 특성상 꼼꼼하게 관리를 해왔기에 그럴 일은 없었다.

이후 성벽의 너머에서부터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한 그랩 자작은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부단장! 부단장 어딨는가!”

“여기있습니다, 각하.”

그의 방에는 총 네 명의 인물이 있었는데, 그 인물로는 삼광 셰실리코프, 붉은 장미 기사단의 부단장 레베다 아인그루츠, 수석기사 보루너, 차석기사 빌 해그먼이 존재하고 있었다.

기습공격을 당했음에도 그들의 차림은 완전무장이었는데, 평소 얼마나 훈련을 해왔던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자네는 무얼 한 것인가!”

“각하, 질책은 나중에 받겠사오니 명을 내려주시길.”

“크으으….”

화를 내고 싶어도 워낙 급박한 상황인지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랩 자작은 방안 이것저곳을 서성이더니 제자리에 우뚝 섰다.

“붉은 장미 기사단을 이끌고 적의 공세를 막아라! 애송이놈이 보인다면 바로 죽여 버리고!”

“각하, 그 말씀은….”

“삼광은 본인을 따라오도록!”

“…예, 각하.”

자작은 수하들의 말을 마저 듣지도 않고 방에서 나가버렸는데, 남겨진 기사 삼인방은 안색이 어두웠다.

“……가도록하지.”

“킁, 그럽시다.”

“…….”

============================ 작품 후기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같은 시각에 뵙기를 고대하며 전 이만 물러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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