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3 사랑과 전쟁! =========================================================================
불릿의 심장을 들었다 놨던 일기토가 있기를 삼일이 지났다.
그동안에도 불릿은 흙덩이와 함께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슬슬 날이 풀리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그의 의중을 모르는 간부를 비롯한 가신들은 안달이 나고 있었다.
“각하,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기온이 상승하면 저희가 가진 이점이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날마다 그의 막사로 찾아오는 간부들이 내뱉는 말은 방한용품으로 무장한 자신들의 이점이 사라지기 전에 공격을 하자는 것이었다.
기존 바포 변경백의 정예병들도 방한용품을 구비해두긴 했으나 불릿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사이 노후되거나 파손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수백골드를 들여 장만한 방한장비를 믿고 몸이 얼어붙은 놈들에게 파상공세를 밀어붙이자는 것이 간부들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불릿은 그들의 간청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라는 말로 일축하며 그들을 모두 물렸는데, 그때마다 올리비아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만 좀 들어오라고 해. 사람 민망하게…….”
일기토 이후, 불릿과 올리비아는 거의 하루 종일 붙어서 지냈다.
무언가 야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풋풋한 새내기 연인처럼 알콜달콩, 그렇게 지내며 간간히 스킨쉽도 즐기고 있었는데, 빈번한 간부들의 방문에 그녀는 난감했던 것이다.
마침 갑옷도 파손되었기에 그녀는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치마에 블라우스를 입는 것으로 불릿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에취!”
아름다워 보이려면 추위는 감내해야 했지만 말이다. 불릿도 그녀를 위험한 전선에 세우기는 싫었기에 그냥 사복차림으로 돌아다니게 내버려두었다.
병사들이야 뭐, 그녀의 활약상이나 위험했던 순간을 지켜보기도 했으며 자기들도 눈이 호강하니 불만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 그럼 네가 나가면 되잖아.
이런 그녀의 행동에 불만 가득한 흙덩이가 종이에 글을 적어서 앞으로 척하니 내밀자 올리비아는 흙덩이를 껴안고선 침대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아, 몰라몰라. 여기가 제일 따뜻한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게다가…에잇.”
- 응?
풀썩!
이불까지 덮고선 흙덩이를 인형처럼 품에 가둬버리는 올리비아.
그러면서 원피스를 입은 흙덩이의 맨살에 볼을 부볐다.
“이렇게 따뜻한 게 있는데 내가 어딜 가겠어?”
마치 손난로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흙덩이가 인상을 쓰며 그녀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올리비아는 불릿에게 잘 보이겠다고 모처럼 치마를 입었기에 쌀쌀한 날씨 탓인지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둘의 사이는 나쁜듯하면서도 썩 괜찮았는데, 그것은 올리비아가 불릿에게 자신을 완전개방(?)한 이후로 개선된 것이다.
흙덩이야 올리비아에게 질투심이 일었지만, 최근 불릿의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알기에 무작정 싫어하진 않았다.
그저….
- 불릿, 나도 사랑해. 안아줄래?
자신의 말이 불릿에게만 들린다는 것을 이용해 이런 말들을 계속해서 보냈다.
“……크흠.”
저벅저벅-
털썩.
간부를 내보낸 불릿이 자리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으니 커다란 침상이라 하더라도 약간 내려앉는 모습이었다.
‘아아, 흙덩이여…….’
불릿은 흙덩이로 인해 골치가 아팠는데, 자신이 올리비아에게 사용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그렇다.
단순히 언어를 배우기 위해 따라하는 거면 모를까, 자신에게 좋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랬던 것이다.
“올리비아, 잠시 흙덩이와 나갔다올게.”
둘만 있을 때는 말을 편히 사용하기 시작한 불릿에게 올리비아가 이불에서 고개만 내민 채로 속닥였다.
“또 둘이 뭐하려고 그래?”
그녀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흙덩이도 고개를 내민 상태에서 팔을 내밀었다.
싱긋.
- 나갈 거면 안아줘. 그거, 공주님안기로.
“…밖에는 사람이 많으이. 나중에….”
“뭐야, 또 뭐라고 한 거야? 다시 말하지만 꼬맹아, 넌 아직 이르다?”
올리비아는 불릿보다 훨씬 전부터 흙덩이를 감지하고 견제해왔다.
여자의 감이랄까, 흙덩이가 점점 불릿이 보기 좋도록 성숙해지고, 옷도 꾸미고, 속옷도 입고(?), 애교까지 부리니 경계를 안 할 수가 없던 것이다.
- 불릿은 내꺼니까 올리비아는 잠이나 자.
간간히 종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알려줬으나 흙덩이는 사람들과 잘 대화하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불릿, 일편단심 불릿, 그에게 안겨만 있으면 그가 다른 여자와 뭘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와 멀어지거나 접촉점이 없으면 삐진다.
“……성을 공략하기 위해 둘러보는 것이니 오해마라. 흙덩이여, 이리로.”
- 와, 불릿이 안아준다!
공주님 안기는 아니었으나 불릿이 흙덩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서 들어 올리자 밝게 웃는 흙덩이.
불릿이 무표정한 것보단 활동적이고, 보다 인간적인 것을 좋아함을 파악했기에 꾸준히 노력해온 흙덩이의 산물이었다.
흙덩이의 반응에도 그는 말없이 바닥에 내려놓고선 손을 잡고 막사 밖으로 나섰다.
자신을 놀리려는 것인지, 요 며칠사이 흙덩이는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어딘가로 이동하려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인 것인가?’
반대쪽 손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밖으로 나서는 불릿. 그는 일기토 때의 진한 딥키스를 떠올리며 흙덩이의 손을 매만졌다.
- 역시 흙덩이의 손은 부드럽지? 따뜻하지?
“…따뜻하네, 따뜻해.”
- 헤헤! 이렇게 하면….
부빗부빗-.
자신의 얼굴에 약간 온기가 식은 불릿의 손을 비비며 말을 잇는다.
- 좋지? 하고 싶지?
“…….”
뭘 하고 싶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욕망이 이는 것 같긴 했기에 서둘러 올리비아를 피해 밖으로 나서는 불릿.
“빨리 돌아와! 또 탈진하지 말고!”
“알았어.”
펄럭.
막사의 입구를 젖히며 밖으로 나서자 입구를 지키던 두 명의 여기사가 경례를 올린다.
처척.
“충! 최고사령관각하.”
“오늘도 멋지고 늠름하십니다, 각하!”
“…그래, 고생하는군. 아일렌, 그리고…유실리아.”
“기억해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애용해주십쇼!(?)”
“……후우.”
청순한 줄 알았던 유실리아가 외모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나서자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으나 손을 흔들어주며 흙덩이를 이끌고 되도록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는 불릿.
그렇다곤 하나 어차피 호위병대가 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외곽을 지키고 있었기에 불릿에게 있어 인적이 드문 곳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흙덩이여, 자네가 본인에게 그러는 것은 좋지 못하네.”
- 뭐가?
올리비아에게 했던 말과는 다르게 불릿은 흙덩이에게만 할 말이 있었던 듯했다.
손을 맞잡기는 했으나 정령력을 끌어올리지는 않았고, 취하고 있는 자세도 한쪽 무릎을 꿇어 흙덩이와 눈높이를 맞춰주는 불편한 상태였다.
“자네가 올리비아를 따라하는 것은 알고 있네만, 자네는 정령이고 본인은 인간일세. 그러한 행동은 옳지 못하이.”
그는 흙덩이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나무라는 중이었는데, 인간도 아닌 정령에게 이상한 짓을 시킨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대영주라는 위치에 있는 불릿에겐 커다란 수치일 수 있었다.
물론 흙덩이는 평범한(?) 미소녀로 보인다. 아마 소환과정만 보질 않는다면 영락없는 열넷의 소녀로 보였던 것이다.
- …흙덩이가 잘못했어?
흙덩이도 그것을 파악했는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우물거리며 묻는다.
대번에 시무룩한 표정을 보이자 불릿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본인도 자네가 좋네. 하지만 흙덩이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했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군.”
- 난 불릿을 사랑해. 자, 봐봐.
덥썩.
순간 불릿의 손을 잡은 흙덩이가 자신의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의 손을 이동시켰다.
움찔.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손에 와닿자 불릿은 당황했으나 이내 침착할 수 있었다.
- 흙덩이는 불릿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올리비아처럼 그러지 않고, 지금도 바로 할 수…
그는 흙덩이의 가슴에 손이 얹어졌으나 결코 흥분하지 않은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인간과 정령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아시는가?”
- ……?
자신의 말을 막는 불릿의 발언에 흙덩이가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으나 이내 얌전히 경청하기 시작했다.
흙덩이에게 있어 세상의 중심은 불릿이었으니 말이다.
“자, 자네도 손을 줘보시게.”
- …여기 있어. 따뜻하지?
흙덩이에게서 조그마한 손을 건네받은 불릿은 한차례 주물러보았다.
조물조물.
물렁하면서도 딱딱함이 느껴지는, 인간의 손과 흡사한 따스한 기운.
그러나 그 손을 불릿은 자신의 심장이 있을 부위에 가져다 대며 입을 떼었다.
“어떤가, 본인의 심장은?”
두근, 두근, 두근.
- 언제나와 같아. 두근두근해.
흙덩이가 자신의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을 느끼며 얼굴을 기대려하자 불릿이 이를 만류했다.
- …? 어째서…
“이처럼 인간은 심장이 뛰고, 피가 온몸을 돌지. 그러나 자네는….”
- 나?
“…자네는, 심장이 뛰질 않아. 아무리 모습을 가꾸고 흉내를 내더라도, 그것만은 어찌할 수 없는 게야….”
불릿의 말에 흙덩이는 봉긋 솟아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
아무리 기다려도 뛰지 않는 심장, 따뜻한 육체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피가 돌고 있지 않았다.
흙덩이가 아무리 불릿을 좋아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하더라도 이어질 수 없는 이유.
그것이 바로 이러한 차이점에서 오는 것이었다.
- ……
흙덩이는 충격이 컸는지 두 팔이 축 늘어졌고, 고개를 푹 숙이게 되었다.
얼핏 엿보이는 눈동자는 그렁그렁, 정령인 흙덩이가 눈물이 날 리도 없건만 불릿의 가슴은 시큰거렸다.
- 나…, 오늘은 돌아갈래.
“…그러시게나.”
사라락……
그 상태로 흙덩이는 땅으로 꺼지듯 사라졌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불릿은 흙덩이가 정령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걸로 된 것이야, 이걸로….”
자신의 정령이 상처받을 수 있겠지만 이젠 확실한 선을 그어줘야했다.
언제까지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다간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었기에, 불릿은 단호하게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그라고 해서 흙덩이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마치 인간처럼 변해가는 흙덩이를 보면서, 자신에게 호감을, 그리고 그 이상의 감정을 보여주는 정령에게 때때로 인간의 감정을 품지 않은 것도.
빠드득-
“그는 정령이고, 난 인간이다.”
다시금 되뇌이는 말. 천재가 개벽하더라도 이러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예술가중에선 자신이 그린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며 사랑에 빠진다고도 하는데, 그러한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하아아, 이제 봄이 오는 것인가….”
4월이 오기 전에 그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전쟁이건, 또는 사랑이건 간에 말이다.
그 시각, 불릿의 막사.
데굴데굴-
“아아아, 심심한데 춥다아-.”
불릿을 위해 마련된 넓은 침상에서 굴러다니는 올리비아.
그녀는 치마가 말려 올라가는 것도 잊은 채 침대를 뒹굴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일기토에서 심신을 쏟아부었기에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기토에서 보여준 그녀의 무력에 감탄한 군인들이 존경의 눈빛도 보냈기에 내심 콧대가 높아진 올리비아였다.
“하아…, 뭐였을까, 그 목걸이는.”
심심함에 침상을 구르다가도 추위를 느꼈는지 부르르 떨다가 말려 올라간 치마를 슬쩍 내리며 이불을 가슴까지 덮으며 중얼거린다.
“내가 아는 보호계열마법은 아닌 것 같았는데….”
보호계열마법은 시전자의 몸에 막을 형성한다. 그것은 하위마법이건, 고위마법이건 공통의 사항이었다.
대표적으로는 마법의 방패라 불리는 실드와 몸에 갑옷처럼 두르는 아머.
마법의 이름 그대로를 따라가는 성능이었기에 간편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프로텍트학파의 대표적인 마법이었다.
“이상해, 이상하긴 한데, 우웅.”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매우 중요하며 주의를 요해야하는 아티펙트이기에 불릿이 손수 관리하고 있어 아무렇게나 달라고 하기에도 좀 그랬다.
결국 마의 꽃방울에 대한 올리비아의 고민은 미제로 남게 되었다.
“그나저나 얘네는 언제 돌아오는 거야?”
투덜거리며 불릿을 찾는 올리비아. 그녀는 흙덩이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있는 불릿의 입술을 훔치는 것이 못마땅했다.
흙덩이는 불릿에게 너무 스스럼없이 애정행각을 가했다.
“발랑 까진 기집애, 그건 내거라고….”
슬쩍 손으로 입술을 매만져보는 올리비아.
입술이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불속에서 따뜻하게 달구어진 손가락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녀가 응큼한(?) 상상을 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