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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05화 (105/241)

00105  사랑과 전쟁!  =========================================================================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게슐린 그랩 자작도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바포 변경백의 2인자라고 하지만, 정당성을 되찾고 예상치 못한 방법들로 자금을 마련한 불릿이 군대를 재정비했기에 이런 강추위 속에서 진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누가 한겨울 못지않은 꽃샘추위 속에서 군대를 움직이겠는가?

그러나 그랩 자작이 걸출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불릿이 용병생활을 하며 얻어낸 부산물에 관해선 알 방법이 없었다.

쾅!

“이런 젠장! 저 애송이놈이 주제도 모르고 쳐들어온단 말인가?!”

그랩 자작이 불처럼 화를 내면서 직사각형의 긴 탁자에 모인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우리 측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더냐!”

이에 한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발표를 시작했다.

“옛, 각하. 놈들의 병력은 각각 카질런 남작, 베니스 남작, 뎁슨 레너드 남작, 그리고 바스톤의 브룩 남작에게서 차출한 1200명의 혼합군과 4000에 달하는 중앙영지군으로 이루어져 총 5000이 넘는 대군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게슐린 그랩 자작이 침음성을 흘렸다.

“크으…, 삼광! 그게 궁금한 게 아니질 않은가! 그래서, 그래서 우리 측은?!”

발표를 이어가던 인물, 삼광(三光) 셰실리코프 준남작이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발표를 했다.

“옛, 그리하여 각하의 군대가 이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직스 자작령에서 거두어들인 자금을 대거 사용, 용병 500명을 고용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태티스 남작이 설명하겠습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아있던 태티스 남작이 꾸물꾸물 일어나기 시작했다.

“에, 에에…, 그러니까, 바, 바포 변경백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정예병인지라 C, C급 이상으로만 용병을 꾸려봤습니다.”

“……자금의 소비는?”

민감한 문제였기에 태티스 남작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 그것이, C급 용병 450명은 두당 5골드를, B급 49명은 20골드, 그리고 A급 1명… 포함해서 총 4230골드가 사용….”

쨍그랑!

“이런 미친놈이!”

“흐익!”

그랩 자작이 찻잔을 던지며 성을 내자 태티스 남작은 목을 움츠렸고, 앉아있는 수하들도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다.

“하, 하지만, 제, 제 영지에서 나온 돈으로 충당이 가능할 터이니….”

“그게 네놈 돈이더냐! 보호해주고, 나중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대가로 받은 것이거늘, 어디서 감히!”

“죄, 죄송합니다, 각하!”

“크흠!”

그랩 자작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태티스 남작은 찍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착석했는데, 그는 자신의 영지를 그랩 자작에게 넘겨주었음에도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있었다.

그랩 자작이 태티스 남작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는데, 나중이라고 하여 제대로 된 자리를 줄지도 의문이었다.

이에 태티스 남작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삼광 셰실리코프가 다시 일어나서 말을 이어받았다.

“각하, 많은 비용이 소모되었으나 결코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셰실리코프가 태티스 남작을 변호해주는 듯하자 심기 불편한 그랩 자작이 손을 휘저어보였다.

“계속해보라.”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희의 승기는 낮을 수밖에 없고, 인지하고 계시겠지만 정당성에 대해 문제가 있기에 용병들이 오기를 꺼려하는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정당성이라니? 애송이놈이 버려둔 영토를 대체 누가 다스렸단 말이더냐!”

셰실리코프 준남작의 말에 다시금 화를 냈으나 천성 검사인 준남작은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진정하시고 들어보시지요. 비록 저희와 놈들의 수가 거의 2배가량 차이가 나지만, 수성이라는 이점을 생각해보면 그리 꿇릴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자작…백작각하의 병사들 또한 란푸스의 개들을 상대로 단련된 자들, 결코 약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 우리가 당하는 쪽이지. 그래서?”

자신이 쳐들어가는 것이 아닌, 가만히 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게슐린 그랩 자작이 불만을 보이자 셰실리코프가 예의 용병들을 들먹이며 말을 잇는다.

“수성으로 인해 놈들과 저희는 수평을 이루게 됐습니다. 그리고 공성을 하는 입장에선 수성을 하는 측보다 곱절의 병력이 필요한데, 놈들의 경우 딱 2배 정도만을 보유했습니다. 거기에 저희는 용병들을 고용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그들은 보통 용병이 아닙니다. 오로지 전장만을 돌아다니는 들개들을 고용했지요.”

“크흥, 더러운 것들이지만 쓸모는 있겠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각하.”

고개를 꾸벅 숙이며 동의하는 셰실리코프. 이들에게 있어 용병은 하찮은 천민으로 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하물며 전쟁용병은 인간백정이라 불리며 더욱 낮은 취급을 받는 면도 있었다.

“더구나 때마침 날씨도 쌀쌀하니 이곳까지 오며 놈들의 체력은 떨어져있을 것입니다. 그때를 노려 사기를 낮출 용도로 일기토를 제안하면 어떨까 생각하옵니다.”

“호오, 일기토라?”

불릿의 군단은 정당성을 내세워 반역자들을 처단한다는 명분이기에 일기토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부분에서 일기토를 거부한다면 기껏 끌어올렸던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치달을지도 몰랐다.

일기토란 것이 뛰어난 실력자가 없으면 꺼낼 생각도 어려웠으나 때마침 그들에겐 적당한 실력자가 있었다.

“용병들 중에 A급 용병이 있는데, 그의 이름이 귀신(鬼神) 아부토라 합니다.”

웅성웅성.

“아부토? 그 개백정 아부토를 말하는 건가?”

“그런 미친 작자를 끌어들이다니, 제정신인 건지 모르겠군….”

일부 수하들 중에서 아부토를 아는 자들이 있는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는데, 그 내용이 가히 좋진 않았다.

이에 궁금증이 일은 그랩 자작도 물음을 던지게 됐다.

“귀신이라…, 그 아부토라는 놈이 무얼 하는 놈이길래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지?”

“아부토는 전쟁전문 용병 중에서도 특출난 인물로, 1:1에 관해선 절대 패배한 적이 없다고 알려진 칼잡이입니다.”

‘이상한 기운을 흘리던 놈이었지.’

불길하며 음침한 무언가가 있는 작자였으나 그것까지는 주군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셰실리코프.

쓸데없는 사족을 붙였다간 그를 출전시키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셰실리코프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랩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선봉으로 쓰고 버리기엔 쓸 만한 놈이겠군.”

“그렇습니다, 각하.”

아부토는 흑마법사와의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활약한 적이 없는 인물이었으나, 그것까지 알아내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셰실리코프였다.

애초에 용병을 고용하기로 한 것은 태티스 남작이었기에 한계가 있었다.

‘무능하고 멍청한 놈.’

속으로 혀를 찼으나 태티스 남작은 자신보다 작위가 높았기에 말을 삼가는 셰실리코프였다.

그가 자리에 착석하자 그랩 자작이 기이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나열한 수하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다들 잘 들었겠지? 그동안 영토를 내버렸던 애송이놈이 이제 와서 주인행세를 들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감히 나, 게슐린 그랩 백작에게 철퇴를 내리겠단다! 사리구분을 못하는 애송이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도록!”

“예, 각하!”

“반드시 놈들을 물리치겠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탁자로 시선을 고정시키자 이제야 만족했다는 듯 의자에 몸을 묻는 게슐린 그랩 자작.

“뭐, 정 안 되면….”

무언가 더 남아있는 듯했으나 그는 독선적인 인물, 어떤 식으로 직스 자작령을 먹어치운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수하들도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그것을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게슐린 그랩 자작이야말로 온당한 지배자였으니 말이다.

* * *

그랩 자작이 준비를 한다면, 반대로 불릿 또한 준비를 마쳤기에 출정을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평온하기만 하던 불릿의 얼굴에 한줄기 근심이 어렸으니 그것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보냈던 파발병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다.

“백성들을 성 안으로 끌어 모았다고?”

“그렇습니다, 군단장님.”

벤젼스가 정보를 취합해 보고를 올리자 군단장 뎁슨 레너드 남작은 신음성을 흘렸다.

“으음…. 놈들이 수를 쓰는군.”

“무슨 일인가, 군단장?”

한켠에서 휴식을 취하던 불릿이 호위병대를 대동하고서 다가오자 레너드 남작이 군인의 예를 올린 후 입을 열었다.

“최고사령관각하, 게슐린 그랩 자작이 백성들을 성의 내부로 모았다고 합니다.”

“……백성들을? 설마 징집을 한 것인가?”

그동안 바포 변경백에선 징집병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직업군인이 있기도 했고, 국지전을 제외하면 커다란 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느 샌가 징집이란 것은 은연중 해서는 안 될 행위라고 인식되어 왔었는데, 그랩 자작의 행동을 보니 그걸 깨버린 듯했다.

그러나 불릿의 말에 레너드 남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그동안 아무런 훈련도 없이 방치되었던 백성들을 저희가 오는 시기에 맞춰 성으로 끌어들인 것은 제가 생각하기론 저희의 작전 수를 줄이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죄 없는 백성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백성을 아끼는 불릿에게 있어 일종의 약점으로 작용했다.

성 안에 적과 인질인 백성이 뒤섞여 있으니 거친 행동을 하기에 제약이 따랐고, 화공이나 공성병기를 사용하는 데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더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근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용병무리가 성으로 진입했다 합니다. 그 기세가 매우 사나워, 병사출신인 주민이 겁을 집어먹을 정도라 했습니다.”

“저놈들이 들개를 고용했나보네?”

불릿의 곁을 지키던 올리비아의 말에 불릿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용병생활을 해왔기에 전쟁용병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풍기는 기세는 일반인이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보통 전쟁용병의 생존률은 극히 낮았는데, 대개 첫 전투에서 50%를 채 넘지 못한다고 한다.

당연히 전쟁을 반복할수록 그 수는 극히 낮아지는데, 그것을 극복한 용병에게선 절로 살기가 이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얘기만 듣자하면 A급인 것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네.”

올리비아도 한층 긴장한 모습이었으나 불릿은 무덤덤하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급조한 용병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지. 이렇게 놈들이 수성을 하는 상황이라면 한밤중에 밖으로 뛰쳐나온다거나, 그도 아니면 일기토를 제안하겠지.”

“그럴 것 같습니다, 각하.”

경험 많은 크레파토스도 동의하자 레너드 남작도, 주변의 수뇌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은 홀로 뛰어나다하여 이기는 것이 아니기에 호흡이 맞지 않는 용병과 군대는 각자의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영지만 탐욕적으로 사수하는 놈에게 있어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겠지. 일기토를 제안한다는 가정 하에 누가 나설 것인지를 검토해보도록하지.”

불릿의 냉철한 판단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받들었다.

“예, 최고사령관각하!”

“충!”

그들이 대답을 하자 불릿이 말을 이어갔다.

“일기토는 일기토이고, 기습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수성에 관련해선 공성전에 능한 레너드 남작이 의견을 제시해보도록.”

“각하, 파발꾼에 의하면 놈들의 성벽이 한층 보강되었다 합니다. 게다가 삼광 셰실리코프가 참전하였기에 공성에 어려움이 따를 듯합니다…, 음. 잠시 실례를.”

이미 도착한 선발대의 파발꾼 이외에도 누군가가 다가오자 레너드 남작이 그를 맞이했고, 고개를 조아리며 무어라 중얼중얼 거리는 그의 말에 레너드 남작이 다시 다가왔다.

“최고사령관각하, 삼광의 병력은 이번 내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하옵니다.”

“…무슨 꿍꿍이지?”

“송구합니다, 각하. 거기까진 소신도….”

그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인사를 건네자 불릿이 알았다며 레너드 남작을 일으켜 세웠다.

“바스톤을 경계하는 건가?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놈들의 병력 수는?”

“예. 용병을 포함, 대략 2600에서 3000사이라고 예상됩니다.”

게슐린 그랩 자작은 왕국이라는 강대한 적과 맞닿은 국경수비대를 맡고 있었기에 군대의 질이 월등했다.

그래서 바포 변경백에서 2인자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삼광의 군대가 없음에도 해볼 만한 전력을 갖춘 것이다.

“놈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췄으나, 놈들도, 자네들도 한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척.

불릿은 고개를 한번 풀더니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로 저 너머에 존재할 그랩 자작의 성을 노려보며 또박또박 입을 떼었다.

“바로 본인이 정령사라는 사실을.”

============================ 작품 후기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베스트 20위 안에 드는 것은 어렵군요..

그래도 추천수 1000을 달성했기에 내일도 저녁 6시와 밤 12시 10분의 연재 외에 점심시간인 낮 12시에도 추가 연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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