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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99화 (99/241)

00099  영지순회  =========================================================================

불릿은 벙스 카텐과 나눈 대화에서 베니스 남작과 상담할 필요성을 느껴 그를 찾아가려했다.

아무리 베니스 남작이 충성파라 하더라도 무력시위는 대영주가 건재함을 알려주는 행위이기에 베니스 남작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었다.

다가닥다가닥!

그때, 매우 급박한 소리를 내며 말 한 마리가 접근하자 불릿을 호위하는 병력이 그것을 막아섰다.

“웬 놈이냐!”

호위병력의 리더인 크레파토스가 달리는 말에서 거꾸로 타는 신기를 보이며 외치자 뒤에서 달려오던 자가 마주 소리쳤다.

“전령이오! 바스톤으로부터의 전령이오!”

전령이란 말에 크레파토스가 마차를 세웠다.

“호위병대, 정지! 정지! 선두정지!!”

그러자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마차가 이내 뚝! 하고 멈춰버렸다.

예정에 없던 돌발상황에 불릿이 창문을 두드리자 크레파토스가 크게 외쳤다.

“각하! 바스톤으로부터 전령이 도착하였습니다!”

“바스톤? 루나, 문을 열라.”

“예, 대영주님.”

그의 명에 하녀인 루나가 문을 열어주자 마차에서 내려서는 불릿.

“대체 무슨 일이더냐.”

“큰일났습니다, 백작각하! 바스톤에서 판매했던 몬스터의 사체를 실은 상단이 피습당했다 합니다!”

“보다 자세히 보고하라.”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루나는 간이의자를 가져와 바닥에 설치했고, 불릿은 자연스럽게 거기에 앉으며 한쪽 무릎을 꿇은 정령에게 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옛! 3일 전, 바스톤으로 복귀한 벤젼스 외 100인은 휴식을 취하며 판매처를 변경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판단 하에 베니스 남작의 상단에도 물품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인데, 하필이면 베니스 남작의 데 리치 상단이 산적들에게 당한 것입니다!”

베니스 남작의 상단은 바포 변경백 인근에서 가장 부유한 상단이다.

부유하면? 당연히 강함도 따른다. 돈과 힘은 언제나 수평을 이루었기에 돈이 많은 자는 힘이 따랐고, 힘이 있으면 자연히 돈도 따랐다.

그런 데 리치 상단인데, 한낱 산적에게 피습을 당했다?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크레파토스가 경을 쳤다.

“이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것이더냐!”

“거짓이 아니옵니다! 소식을 전하고자 제가 직접 달려온 것입니다!”

전령의 말에 복색을 자세히 훑어보자 과연, 그는 일반 병사가 아닌 십인장의 직위를 지닌 기사였다.

기사된 자로서 주군에게 거짓을 고할 리는 없었기에 불릿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가…, 크레파토스여, 저자가 본인의 수하가 맞는가?”

불릿이 모든 인원을 다 외울 수는 없다. 그래도 주변에서 자주 보는 이들은 이름을 외우는 편이었기에 평판은 매우 좋았다.

하녀인 루나의 이름도 외우는 것처럼 말이다.

“맞습니다, 각하. 일반기사들의 경우 라체나의 수석기사인 벤젼스가 아닌, 제가 관리하고 있었나이다.”

본래 기사들은 대영주 직속기사단 라체나에서 관리했었지만 지금은 그 존재가 유명무실해진 상태.

그래서 나선 것이 불릿의 영토에서 가장 경험 많고 노련한 크레파토스가 나선 것이다.

그의 실력이 약간 모자라더라도 가르치는 데엔 누구도 따라가지 못했으며, 누구나 인정할 만큼 바포 변경백을 위해 노력해왔음으로 인지도에 있어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름이 무어라 하는가?”

불릿이 기사의 이름을 묻자 그는 깊게 고개를 숙이며 또박또박 외쳤다.

“신, 바포 변경백 중앙군단 소속 백인장 세스터스 산하의 십인장 임파르토라 하옵니다!”

“그래, 임파르토.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수고 많았다. 거의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게로군.”

3일 전에 들은 직스 자작령에서 카질런 남작령에 가는 길목까지 달려오려면 잠도 못자고 달려왔다는 뜻이다.

“여봐라, 십인장 임파르토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

“알겠습니다, 각하! 일동! 임파르토를 마차를 통해 이동할 수 있도록 행동한 후 지친 말에게는 충분한 여물과 물을 보급하라!”

“예, 대장!”

“빨리빨리 움직여라!”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때, 올리비아가 마차 안에서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이야, 자, 자기야?”

“…….”

순간 정적이 일었으나 올리비아는 용기를 내어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자기야, 무슨 일이야?”

“……그냥, 상단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이오. 어차피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이동하며 얘기하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어느새 기어 나온 흙덩이를 안아든 불릿.

불릿이 마차에서 내릴 때면 흙덩이는 자신이 할 일이 없음에도 덩달아 내리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었다. 그가 마차로 들어서자 불릿을 보필하던 하녀를 끝으로 모두가 길목에서 다음 목적지인 카질런 남작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덜컹-.

마차가 흔들리는 가운데, 바깥상황을 모르고 있던 올리비아가 조신하게 물어왔다.

“무슨 일인지 나한테도 말해줘, 자, 자기야….”

‘자기야라니…, 누군가 바람을 넣은 것인가?’

올리비아가 여장부라고는 하나 첫 입맞춤을 한 이래로 사이가 가까워질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뭔가 하려다가도, 부끄러워서인지 스스로 물러나기도 하는, 그런 면을 보이던 올리비아였는데, 간혹 보이는 이상행동의 대부분은 누군가 바람을 넣거나 흙덩이를 의식해서 보이는 일들이었다.

“어머나, 대영주님, 아가씨께서 이제 안주인이 되실 준비가 끝나신 것 같아요-.”

하녀인 루나까지 합세해서 말하는 본새를 보니 누가 범인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대체 우리 영지의 하녀들은 하나같이 왜 저러는 건가.’

- 불릿은 저 바보들 신경 쓰지 마.

그녀들의 말에 흙덩이가 새침하게 대답하며 불릿에게 엉겨 붙었다.

달리는 마차이기에 그에게서 떨이지지 않으려고 아예 품안을 파고들었는데, 조신하게 말하던 올리비아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올라왔다.

빠직.

“호, 호, 호. 이런 협소한 공간에서 그런 자세를 취하면 자.기.가 불편해하지 않겠어?”

“어머어머, 우리 대영주님 힘드시겠다아-? 불쌍해서 어쩜 좋아….”

둘이서 합세해 흙덩이를 압박했으나 흙덩이는 불릿의 목에 팔까지 두르며 도발할 뿐이었다.

- 불릿은 내가 좋지?

“…….”

그의 입장에선 누구의 편을 들기도 애매한 상황. 올리비아는 진짜로 미래의 안주인이 될지도 몰랐고, 흙덩이는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섣부른 행동은 자신의 미래에 크나큰 타격을 줄 것이다!

…라는 명언이 찾아보면 있을지도?

“크흠, 일단 카질런의 영토에 도착하면 예정대로 영지를 한번 둘러본다.”

불릿은 자신의 휘하에 놓인 베니스 남작의 상단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에도 일정을 변경하지 않았다.

그러한 선택엔 이유가 있을 터이니, 곧이어 이어지는 불릿의 말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베니스 남작의 데 리치 상단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에게 습격을 당했단 정보가 입수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따로 알아봐야겠으나, 현 상황으로 보자면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세력이 있음을 확인한 바이다.”

“누가 우리 불릿을 건드려!”

조신한척 했지만 누군가 휘하세력을 건드렸다는 말에 역시나 불같은 성미를 드러내는 올리비아.

이에 루나가 고개를 돌리고서 작게 한숨을 쉬었고, 흙덩이는 더욱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거, 걱정해줘서 고맙소.”

“누가 불릿을 건드리면 내가 빠박! 하고!”

자신이 코르셋을 겸비한 전통복장의 드레스를 입었단 것을 망각한 걸까?

주먹을 앞으로 내지르며 소리를 지르니 한껏 강조된 가슴이 앞으로 더욱 튀어나왔다.

“……크흠, 크흠! 어, 어쨌든! 카질런 남작령까지 들른 이후 그 아래에 위치한 베니스 남작과 특산물에 대한 주춧돌을 마련하고서 중앙영지로 복귀할 것이오. 크흐흠!”

불릿이 고개를 돌리며 민망해하자 왜 그러나 싶던 올리비아가 화들짝 놀라 자신의 가슴을 가리려하자 그녀의 옆에서 이를 말리는 루나.

루나는 올리비아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아가씨, 가리시면 안 되죠!’

‘어, 어떻게 그래! 가, 가슴이 보이려고 하는데?!’

앞으로 주먹을 내밀자 가뜩이나 풍만한 가슴이 옷을 삐져나오려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가리려던 것인데, 루나가 이를 말리니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이다.

‘주인님 여심을 잡으셔야죠! 저거 보세요, 흙덩이님처럼 해야 한다니까요?’

‘몰라, 몰라! 그렇다고 어떻게 가, 가슴을!!’

‘아이 참, 대영주님 반응을 좀 보시라구요!’

루나가 몰래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자연스레 옮겨지는 올리비아의 시선.

그곳엔 여전히 민망한 표정으로 아기를 재우듯 흙덩이를 어야둥둥 흔들며 ‘시간아 가라, 빨리 가라’라고 하는듯한 불릿의 모습이 포착되고 있었다.

아무리 당황해도 저렇게 까진 안 했던 불릿이었기에 올리비아도 살짝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와, 진짜 효과가 있나봐? 그저 가, 가슴만 살짝…, 보였을 뿐인데?’

말을 더듬으면서도 놀라워하는 올리비아에게 루나도 맞장구를 친다.

‘그렇다니까요?! 남자들은 가슴이면 좋아 죽는다고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고, 하녀장님께서도 그러셨어요!’

결국 자신의 경험담은 아닌 듯, 루나도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로 올리비아를 꼬셨는데, 불릿의 반응을 보아하니 없는 얘기도 아닌 듯했다.

‘…그래? 그래?’

‘뽀뽀 이후로는 진도를 못 빼셨잖아요? 이번 여정이야말로 기회예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둘 만의 비밀이라 생각했던(당시 흙덩이도 있었다) 키스사건을 루나가 알고 있자 자신들이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크게 소리치는 올리비아.

그런 그녀를 마차안의 모두가 동시에 쳐다보았다.

시선고정, 그것을 깨닫자 올리비아의 목소리도 자연히 작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그냥, 별건 아니고….”

“아유, 대영주님! 저희는 여자들만의 얘기를 좀 나누고 있었어요, 아주 조금, 요만큼?”

검지와 엄지로 콩알만한 크기를 만들며 별 것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자 불릿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생각 좀 하겠소.”

“으, 응, 그, 그래! 조용히 할게, 쉿?”

“네, 아가씨. 쉿.”

- …자기들이 제일 시끄러우면서. 쉿.

그렇게 모두가 소리를 죽이자 불릿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 병력을 움직일 자라면 게슐린 그랩 자작밖에 없지.’

이미 불릿은 산적을 그랩 자작의 병력으로 여기고 있었다.

겨울에 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얼어 죽지 않으려면 방한장비도 필요했고, 추위를 이길 장작과 사냥에 어려움이 따르기에 식량도 챙겨가야 했고, 습격을 성공시킬 만큼의 무기도 가져가야 했는데, 적절한 습격의 순간을 성공시킬 정보력까지 갖추려면 바포 변경백에선 2인자인 게슐린 그랩 자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베니스 남작…, 조사는 해봐야겠군.’

그래도 당사자인 베니스 남작을 배제할 순 없었다. 아무리 믿음직한 사람이지만 군주라면, 근 백만에 달하는 바포 변경백의 지배자였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던 것이다.

자작극일 가능성도 있었기에 피해자라고 해도 범인이 확실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용의자목록에 넣어야 했다.

‘조금 순조롭게 진행된다 싶더니 사고가 터지는구나.’

벤젼스를 필두로 한 군단의 군인들 덕에 일부 자금문제가 해결되는 중이었고, 이번에 직스 자작령에 들러 다시 한 번 대지의 축복을 뿌려 토질을 상승시켰기에 봄이 지나면 무럭무럭 곡식이 자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식량을 구매할 필요가 없었고, 베니스 남작령에 허브를 비롯한 후추 등의 향신료의 재배에 성공하면 영지의 자금상황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

‘세금을 알아서 납부해주면 좋으련만, 꼭 지금 같은 때에 뭉기적 거리다니, 짜증이 절로 나는군.’

본래 차분하고 냉철한 성격인 불릿이지만 젊어진 이후로 그러한 면이 상당수 사라진 모습을 보였다.

예전, 20년 전만 하더라도 그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젊었으나 분위기는 약간 음침한 부분이 있었다.

부모를 여의며 생긴 고독하며 외로운 분위기가 여성들에겐 인기가 있었지만, 그는 가족을 만들 생각도 없었고, 바쁜 생활로 인해 연애를 꿈꿀 여유도 없었다.

‘…이제는 괜찮겠지요, 어머니, 아버지.’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아이와도 같은 흙덩이도 있고, 자신과 입맞춤도 가진 올리비아도 있었다.

‘흙덩이는 대체 어찌하면 좋을지…….’

정정한다. 아이와도 같았지만 이젠 소환한 당사자인 불릿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는 행동만 보자면 올리비아와도 비등할 정도로 불릿을 난감하게 만들었으니, 흙덩이 또한 요주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놈의 육체, 아무 때나 서지 말란 말이다!’

자신에게 붙어있는 흙덩이와 올리비아의 가슴까지 생각하자 불릿은 생각을 중지하고 무념무상을 속으로 곱씹으며 마음을 비우려했다.

거기(?)가 반응하기 전에.

============================ 작품 후기 ============================

확인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밤에 이어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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