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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98화 (98/241)

00098  영지순회  =========================================================================

다각, 다그닥-

밭까지 말을 타고 이동하는 중, 불릿의 앞에 태워진 흙덩이는 말이 없었다.

- ……

불릿도 승마에 집중해야 했기에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밭에 도착하고 나서야 호위병들을 주변에 물리고서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올리비아는 불편한 드레스차림이기에 하녀와 함께 저택에 남겨져 있다.

“히히힝!”

“쓰읍.”

흙덩이가 오는 내내 침묵상태였기에 불릿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았고, 이에 말고삐를 틀어쥐자 말이 고개를 흔드니 성을 내었다.

말이 사람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건만, 웬일인지 얌전하게 멈춰 섰다.

불릿과 벙스 카텐이 나란히 말을 세우고 내려서자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농부들이 달려오려 한다.

“모두 작업을 속행하도록!”

그러자 몰려들던 농민들은 하던 작업을 마저 하러갔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은 주식인 밀이 아닌 구황작물인 감자와 보리들이었다.

급속도로 성장한 밀은 맛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대신할 식량이 필요했던 것.

“흙덩이여, 이리로.”

불릿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흙덩이를 껴안아 조심스레 내려놓았는데, 평소라면 좋다고 매달렸을 텐데 이번엔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 …이거 놔.

톡.

바닥에 내려선 흙덩이가 몸을 돌리며 심통을 부리자 불릿과 벙스 카텐이 난감하게 바라보았다.

“대영주님의 정령이 왜 저러는 걸까요?”

“글쎄다…, 잠시만. 자네는 주변경계를 해주겠는가? 토지는 흙덩이와 본인이 확인하는 게 빠르겠군.”

“알겠습니다. 토질을 확인하신 후 저녁에 첨부서류를 올리겠습니다.”

“음, 부탁하지.”

뚜벅, 뚜벅…

………

주변에 있던 병력과 벙스 카텐, 모두가 외곽으로 물러서자 점처럼 멀어진 그들을 바라본 후 불릿이 흙덩이에게로 다가갔다.

“흙덩이여, 어찌 심통이 나셨나?”

- …몰라. 저리 가.

토질확인은 불릿도 육안과 촉감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보다 자세한 사항은 흙덩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전에 못다한 토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지의 축복도 내려줘야 했기에 밭에서만큼은 불릿보단 흙덩이가 최고였다.

그래서 시작된 불릿의 흙덩이 달래기.

“그러지 말고, 한번 말해보시게. 어찌하여 그러시는가? 본인이 무얼 잘못했는지 알려주시게.”

이제는 키도 커서 머리만이 아닌 어깨에도 손이 닿는지라 자연스럽게 흙덩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말을 걸었다.

그러자 흙덩이가 뒤로 돌아 다시금 불릿의 얼굴을 보더니 그의 허리를 껴안는다.

포옥-.

- 나는 물건이 아니야.

아마도 불릿 주변의 가신들이 자꾸만 자신을 물건취급하는 것이 기분이 나빴던 모양.

이제는 영락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흙덩인지라 그것이 못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당연하지, 흙덩이는 물건이 아니오.”

그러면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흙덩이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불릿.

그는 흙덩이를 정령 그 이상으로 생각해주는 모양이었다.

“자네가 있어 지금의 본인도 있는 것인데, 가신들이 못된 짓을 했구려. 내 일러둘 터이니 마음상하지 마시게.”

- 정말?

“그럼, 정말이고말고. 내 설마 자네에게 거짓을 고하겠는가?”

했었다. 처음 소환했을 때 머리를 쓰다듬은 것을 체면 때문에 친밀을 위한 의식이라고 했던 적이.

그러나 그런 것은 이미 까맣게 잊은 지 오래. 지금처럼 부둥켜안고, 공주님안기에 사랑을 속삭이듯 귓속말을 해주는 것에 비하면 머리쓰다듬기는, 별것도 아니었다.

불릿은 그럴 의도로 해주는 행동들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 나도 올리비아처럼 말하고 싶어, 입으로 호호, 하고.

흙덩이는 음성대화가 불가능하다. 흙덩이는 말은 오직 불릿에게만 전달되는데, 그것이 싫은 것이다.

“조금만 참아주시게. 내 노력해볼 터이니.”

- 믿을게, 불릿이니까.

불릿의 팔에 기대어진 흙덩이의 등에서 온기가 느껴지자 싸늘한 겨울바람도 가시는 듯했다.

이토록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는 것도 인근에서 작업을 하며 이들을 훔쳐보고 있는 농민들에겐 괴상해보일 따름.

“워따, 뭐시여. 백작님 아니싱가? 와 저러고 있다냐.”

“야들 잘 챙겨부러. 시방 직스놈팽이그 야들 따부렀잖여?(?)”

“백작님은 다르당께? 그런말 허덜 말어!”

“야들 들리것소. 목젖 낮추랑게.”

“혀도 야….”

농민들은 풋풋한 소녀의 모습을 갖춘 흙덩이와 밀착한 채로 대화를 나누는 불릿을 보며 온갖 추측과 오해가 난무하고 있는 상태였다.

‘백작님이 젊어지시면서 왕성해지셨다고 하더니 사실이란 말인가….’

벙스 카텐은 자기 나름대로 또 다른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의 추측은 크레파토스라는, 충직한 노가신에게서 나온 정보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 나는 불릿만 있으면 돼….

갈수록 어리광을 부리는 흙덩이였다.

* * *

“아가씨, 괜찮으시겠어요?”

“우웅?”

불릿을 비롯한 대부분의 병력이 밭으로 나간 사이, 올리비아는 눈치 볼 사람이 없어서 홀로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도 귀족의 예의를 지킨 것이 아닌, 모처럼만에 용병 때를 만끽하며 와구와구 퍼먹는 야생미 넘치는 식사법으로.

원래라면 식사를 돕는 역할인 하녀도 그녀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부담스러우면서도 올리비아가 자신을 챙겨주니 하녀는 고마워했다.

“꿀꺽! 또 뭘? 왜 다들 나만 보면 걱정을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다들 올리비아를 걱정만하지 뭔가를 시키거나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불릿의 안주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여성이였기 때문.

그리고 이번 여정에서 불릿의 발언을 통해 아예 확정됐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일들은 본인들 모르게 모든 가신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니, 올리비아를 처음 본 벙스 카텐조차도 그녀를 조심히 다루었다.

올리비아의 반응에 하녀가 그녀보다도 더욱 조신이 먹으면서도 대꾸를 잊지 않는다.

“아가씨, 대영주님이 아가씨를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요, 그래도 주의하셔야 해요.”

“……내 행동?”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괄괄한 면이 있기에 불릿의 안주인이 되기엔 부족하지 않나, 하는 불안한 면이 있었다.

그래도 자신에게 먼저 대쉬한 것은 불릿이기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아주 조금 불안할 것이다.

“아니요? 대영주님이 아가씨를 좋아하시는 건 밝은 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아가씨의 강점이라구요?”

“…그래? 정말이지?”

“정말이고 말고요! 하녀 루나, 절대적으로 대영주님과 아가씨를 지지한답니다!”

겨우 하녀 하나가 지지한다고 뭐가 달라지냐만은, 올리비아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사실 저는요, 대영주님을 지키는 비밀호위대예요.”

엄청난 비밀을 밝힌다는 듯, 주변을 경계한 후 올리비아에게 속삭이는 루나의 말에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뭐야, 비밀호위대면 나한테 말하면 안 되잖아?”

“아가씨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후훗.”

뭔가 장난스러워 보였지만 불릿과 관련된 얘기였기에 올리비아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어떻게 해서 너처럼 어린 아이가 그런 게 됐어?”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의 비밀얘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도 아는 이상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이쯤 되자 하녀인 루나도 장난기를 지우고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 같은 경우는 대를 물려받은 경우인데요, 저희 어머니가 실은 직스 자작령 출신이세요.”

그렇게 시작된 루나의 말은 이렇다.

그녀의 어머니는 17살 꽃다운 나이에 팔려나갔는데,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처형당한 직스 자작이 젊었을 적 아버지 몰래 루나의 어머니를 포함한 젊은 처녀들을 다른 영지로 팔아넘기려했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팔려나가려던 찰나, 어둠을 가르며 그의 기사들이 노예상을 습격했다.

그들이 노예상이었는지, 직스의 수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들에게 있어 불릿의 수하들이 천상의 군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도 비밀리에 수행하던 임무였기에 차마 자신들이 누군지 밝히진 않았으나, 지금 와서 짐작해보면 라체나의 기사들이 아니었을까 추정하는 하녀들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구원받은 저희 어머니는 대영주님의 배려로 그분의 성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 밴님이 하녀들로 구성된 정보조직을 꾸리시게 됐어요.”

불릿에게 목숨을 구원받았기에 처녀들은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하녀일과 비밀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월급을 받으며 가족까지 중앙영지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니, 사실상 성공한 평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어머니도 은퇴하시고 저에게 자리를 물려주셨지만, 저희는 그 누구보다 대영주님을 위하는 비밀호위대랍니다?”

조용히 루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던 올리비아는 조금씩 훌쩍이더니 이내 눈물을 똑똑 떨구었다.

“흐흑,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머님이 엄청 힘드셨겠어….”

이야기만 들으면 성공신화나 비밀조직에 관한 얘기였기에 흥미를 돋우는 것이었으나 올리비아는 그녀들이 겪었을 공포를 상상한 것인지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심성에 루나는 하녀라는 신분도 잊고 올리비아를 감싸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우리 아가씨, 대영주님을 잘 보필해주세요. 저희의 존재는 대영주님도 모르고 계시니까요.”

“어째서, 훌쩍. 그런데?”

올리비아가 울먹이며 묻자 루나가 토닥이면서도 대꾸해주었다.

“저희는 밴님의 지휘아래 세워진 점조직,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지 다른 보상을 받진 않아요. 2대째인 저희는 그 수가 1대보다 확연히 줄어서 외부에 노출되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불릿에게 말해주면 돈도 받고, 대우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말에 루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아가씨. 저희는 음지에 있기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예요. 대영주님이 아시면 다른 자들도 알 가능성이 높아져요.”

무의식중에 불릿이 정보를 흘릴 수도 있었기에 그를 위해서 뛰어다니는 비밀호위대가 당사자에게도 알리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서글퍼졌는지 루나를 얼싸안고 흐느껴 우는 올리비아.

“미안해, 루나. 우리 불릿 때문에 고생이 많지?”

“아가씨가 대영주님의 배필이라 정말 다행이에요. 이렇게 심성도 곱고, 아름다우신데 검술도 뛰어나시니 대영주님을 지켜주실 수 있잖아요? 저희는….”

‘희생술을 익혔기에 오래토록 그분을 지켜볼 수 없어요.’

뒷말을 삼키는 루나.

그녀들이 정체를 들키지 않으면서도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신체는 건드리지 않고, 기운을 한순간에 폭발시킬 수 있는 희생술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릿이 결사대의 일원들과 함께 사용했던 기운을 폭사시키는 기술과 흡사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한번 사용하면 사람이 폐인이 되어버린다.

올리비아는 그녀들이 어째서 호위대라고 불리는지 아직까지 깨닫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토록 가녀린 루나가 불릿을 지킨다니, 정보원이라면 모를까 다른 점에서는 이유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아가씨가 주의하실 점은, 흙덩이님이에요.”

“훌쩍…, 으, 응? 흙덩이?”

뜬금없이 흙덩이라는 말에 올리비아가 울다말고 루나에게서 떨어지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루나는 곱게 접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방금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대영주님이 또 흙덩이님과 껴안으면서 부비고 계시데요.”

“……뭐?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야?”

루나는 종일 올리비아와 함께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나 루나는 의미심장한 말을 뒤이어 건넸다.

“그리고 밴님의 조언을 첨부하자면, 흙덩이님은 정령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하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애매모호한 말이었으나 불릿과 흙덩이가 서로 껴안고 있다는 말에 이전에도 목격했던 장면이 떠올라 금세 기분이 상했다.

그녀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을 잇자 루나가 호호 웃으며 입을 가렸다.

“아가씨가 흙덩이님을 더 오래도록 보셨겠지만, 밴님은 정령사가문의 총집사시랍니다. 아시는 것도 많고, 보아온 것도 많으시지요.”

그러면서 이번엔 개구쟁이처럼 속삭이길,

“이럴 때 아가씨가 하실 행동은 하나가 아닐까요?”

“뭐, 뭐야…, 그 얼굴은….”

음흉한 미소가 깃든 루나의 표정에 올리비아가 상체를 뒤로 물리자 이어지는 루나의 말.

“기.정.사.실.이요.”

그녀의 말에 그녀는 벙 찐 얼굴이 되었다. 그녀와 그녀, 그리고 그녀(?)일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불릿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추천수 800이 되기를 계속 기다렸습니다!

오늘 2연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제 예상을 뒤엎고 밤사이 추천 100단위를 달성해 한편이 추가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즐거이 감상해주시기를 바라오며 저녁 6시와 밤 12시 10분에도 만나길 고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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