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8 수습하다 =========================================================================
불릿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중앙영지를 장악한 후 자신이 돌아왔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그동안 소홀했던 사항들에 대해서 개선과 정비를 동시에 진행해야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았고, 갑자기 젊어진 것을 설명할 길이 없어 믿음을 얻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자신의 젊을 적을 기억하는 노가신들 덕분에 다른 가신들이 미심쩍어 하면서도 따라오도록 만들 수 있었다.
중앙영지에 대한 정비가 끝나갈 무렵, 불릿은 주변의 영지, 자신이 영주로 임명한 자들의 지역으로 사람을 보냈다.
“이거 먹어봐봐. 이게 정력(?)에 좋은 거래!”
- 불릿. 이건 뭐라고 불러?
간만의 휴식시간. 올리비아가 불릿에게 더덕으로 만든 각종 간식을 먹여주고 있었고, 흙덩이는 향기로운 버터향을 풍기는 더덕구이를 들고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우물우물…, 올리비아, 더덕이 강장에 효과가 있으나 본인은 피곤했을 뿐이지 신체기능이 저하됐던 것이 아니오. 우물우물…, 그만 주시오!”
말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먹이려하자 불릿이 거부하니 올리비아가 자신도 한입 베어 물며 소곤거렸다.
“근데 의외로 맛있네? 엄청 쓴 걸로 기억하는데.”
우물우물.
본래 귀족은 소리를 입에서 나는 걸로 한정시키고, 음식을 먹을 때엔 조용히 먹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때에는 조금은 풀어져도 상관없었다.
불릿도 내심 피곤한 상태였기에 이렇듯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때에는 편한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더덕은 구하기 쉬우면서도 재배 또한 용이하오. 그러면서도 그 효능은 내장의 기능을 끌어올리면서도 잔병을 제거하며, 특히 남성에게 좋다 알려져 있지만 실은 여성에게 더욱 좋소.”
단순히 남성에게 좋다는 말에 안나가 챙겨줬던 간식이었던지라 올리비아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응? 여자한테 좋다고? 어디에?”
“그건…, 흙덩이여. 이건 더덕이라고 하는데, 자네는 이미 알지도 모르나 명칭은 외워야 할 것이오. 기본적으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물 중 하나이며 뿌리를 식용으로 쓴다오.”
자신에게 말을 하다말고 흙덩이에게 설명을 이어나가자 올리비아가 그를 흘겨보았다.
“뭐야, 여자의 어디에 좋냐고…요.”
끝말이 뭔가 이상했으나 흙덩이도 챙겨야하는지라 정신이 없었던 불릿은 거기까지 신경 쓰지 못하였다.
“뭐라고 하였소?”
“어디에 좋.냐.구.”
“아, 더덕 말이오? 더덕은 남성에게도 좋지만 여성에게 특효인 이유가 최유(催乳)에 효과가 있어서 그렇소.”
“최…뭐? 처음 듣는 말인데.”
멈칫.
자연스럽게 말하던 불릿이 없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으음, 쉽게 말해 아기에게 좋소.”
“뭔 소리야 대체?”
“……모유수유 말이오. 본인에게 꼭 거기까지 말하게 해야겠소?”
이에 얼굴이 벌게지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는 올리비아. 그러면서도 한마디를 잊지 않고 뱉었다.
“변태.”
“…크흠.”
어쩐지 부정하지 않는 불릿이었으나 이미 어색해진 마차 안에선 더 이상 대화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더덕으로 만든 꿀강정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재어보던 흙덩이가 그것을 먹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들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던 중인지라 이것을 목격한 이가 없었다.
- 얌? 냠? …?
자신이 먹으면서도 뭐라 표현하지 못하는 흙덩이. 그러면서도 자꾸 먹어대니 어느새 더덕은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침묵이 지속되는 사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불릿이 먼저 입을 떼었다.
“이곳에서 지낼 만은 하오?”
그러자 올리비아도 슬며시 팔을 내리며 대꾸를 해주었다.
“뭐어…, 솔직히 말해서 엄청 편한데? 검술수련을 하는 것만 제외하면 힘든 일도 없고, 그마저도 옆에서 시중을 들어주니까 나야 편하지, 뭐.”
어느새 올리비아는 불릿의 ‘그녀’로 알려진 상태였기에 중앙영지 어디를 가더라도 불릿을 대하는 것처럼 대우를 받았다.
그러니 불편한 사항이 있을 리가 없던 것.
하지만 불릿은 자신이 바쁜 나머지 이곳에 홀로 떨어진 올리비아를 챙겨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걸렸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하시오. 영지의 상황이 좋다곤 할 수 없으나 그대를 위해서라면 구해줄 수 있으니.”
“응, 그럴게!”
밝게 외치는 올리비아에게 불릿은 고개를 끄덕인 후 대략적인 현 상황에 대해서 말해주기 시작했다.
“현재 각 지역으로 전령을 보낸 상태인데, 그 중에서도 비중이 높은 가신은 베니스 남작을 꼽을 수 있소.”
- 그 비만인간?
기억력이 비상한 흙덩이가 올리비아와 함께 몰래 훔쳐보았던 인간에 대해 말을 꺼냈는데, 확실히 베니스는 상인의 모범형태라 할 만큼 배가 나온 사람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비만이라 부르는 것은 그에 대한 실례인지라 불릿이 흙덩이를 다그쳤다.
“흙덩이여, 베니스는 가신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에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될 것이네. 본인에겐 소중한 이들 중 하나이니 언행에 주의하게.”
- 어차피 내 말은 불릿만 들을 수 있잖아?
“그야… 그렇긴 하오.”
- 응. 그래서 불릿이 좋아.
앞뒤 아귀가 안 맞는 말이었기에 불릿의 이마가 살짝 주름졌다.
“…고맙소.”
스윽스윽.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이젠 제법 인간처럼 표정도 지으며 기분이 좋다는 제스쳐를 취하였다.
“저기저기, 나랑 대화하다가 꼬맹이랑 대화하면 내가 삐지지 않을까?”
감정을 확인한 후로 올리비아는 당당함에 애교까지 섞여 불릿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데, 구애를 받은 적은 있어도 자신이 해본 적은 없던 불릿이기에 제대로 상대해주기 버거웠다.
“…수확제가 끝나고 이제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당분간 게슐린 그랩 자작과는 충돌이 없을 것이오.”
아무리 반역을 일으켰다지만 겨울은 모두에게 혹독한 계절이었다.
이 시기에 병력을 잘못 일으키면 떼죽음을 당할 수 있었기에 서로가 신중한 마당에 보금자리에서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이런 걸 말해줘도 되는 거야?”
올리비아는 딱히 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불릿은 틈이 날 때마다 이렇듯 정보를 알려주었는데, 당사자인 올리비아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정보관리가 소홀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이에 불릿은 가볍게 그 말을 일축했다.
“중요 가신들과 올리비아를 제외하면 다른 자들에겐 일절 알려주지 않았소. 그리고 본인 다음으로 많은 정보를 아는 것은 아마 올리비아일 것이오.”
“왜 나야? 밴이라고 하는 할아버지도 있잖아.”
밴은 자체적으로 정보조직도 갖추고 있기에 가신들 중에서도 아는 것이 가장 많았다.
게다가 불릿과도 친분을 나누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그를 함부로 대하는 이는 반역자들을 제외하면 일체 없었다.
“수확제 때 올리비아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소. 당신에게만은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말이오.”
비밀,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 쯤은 가지고 있는 보물이며 치부이기도 한 단어였다.
이런 말은 마치 프로포즈와도 같은 어구였기에 또 다시 벌겋게 달아오르는 올리비아.
“나, 나도, 너, 아니, 당신이라면 괜찮을지도….”
몸을 비비 꼬며 부끄러워하자 육감적인 육체가 자태를 뽐냈고, 불릿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것을 회피해 먼 산을 보기 시작했다.
“…크흠.”
그는 신사(?)였으니 말이다.
흙덩이는 그런 불릿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나도 조금은…
* * *
이곳은 회장의 원탁. 각지의 영주들에게 보냈던 전령들이 도착하였기에 그와 관련된 내용으로 회의를 갖고자 가신들이 모인 것이다.
“본 대영주님께서 발령하신 전령들이 모두 복귀하였기에 금일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군의 정비를 위해 참석하지 못한 뎁슨 레너드 남작은 제외되었으니 참고 바랍니다.”
불릿의 수행원이 외치자 회장에 위치한 모든 인원은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이 수행원의 이름은 이우우스, 2급 행정관이었기에 이 자리에 참석할 자격은 충분했다.
군단으로 거듭난 불릿의 중앙영지군은 원활한 명령체계를 위해 작위를 가진 뎁슨 레너드 남작이 임명되었고, 그 아래로는 라체나의 기사들이 각기 천인장과 백인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십인장의 경우는 일반 기사들이 자리를 꿰찼고, 실적제도를 도입해 얼마나 근명성실하게 군생활을 했는지에 따라 진급이 가능했다.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대영주님.”
불릿의 말을 수행원이 받아들었고, 그가 외치자 회의는 시작되었다.
“전령은 반역자 4인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영주들 중에서 이미 우호를 드러낸 베니스 남작을 제외, 세 명의 영주들에게 보냈었고, 충성에 대한 재확인 및 중립에서 충성파로 위치를 변경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수행원이 발표를 거듭하는 동안 불릿은 휴식을 취하며 자신이 나설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서의 부룩스 남작과 동쪽의 지배자 카질런 남작이 중립에서 우호로 돌아섰고, 뎁슨 레너드 남작은 남쪽에서 알 라스 폰 구울 백작령을 경계하고 있었기에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군단장직에 새로이 올라서며 충성심을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경청하고 있던 귀족중 하나가 손을 들자 수행원이 그를 가리켰다.
지금 수행원은 불릿을 대변하는 대변인인지라 누군가를 지목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말씀하시지요, 비 아이언 외교대사.”
비 아이언 외교대사는 바포 변경백의 중요인물 중 하나로, 수십 년 전 바포 부부가 살려낸 가신들 중 하나였다.
그는 뛰어난 외교력으로 란푸스 왕국과 주변 패자, 군벌들로부터 영지를 지켜내었는데, 그는 무력보다는 언변담당이었기에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기보단 평화기간에 더욱 큰 힘을 발휘했다.
그렇다고 해도 외교라는 것은 영토가 넓을수록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그는 언제나 영지 내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번에 중앙영지군이 새로이 개편되며 군단장이라는 직책이 생긴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군단장이라는 직책에 너무 많은 권한을 설정하신 것은 아닐까 심히 우려되는 바입니다.”
“어떤 면이 우려되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대화는 오직 불릿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회의라는 명목을 가졌지만 불릿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별다른 의미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바포 가문은 대대로 머리가 좋은 인물을 배출해서 무능한 군주로 인해 나쁜 일을 겪었던 적은 없었다.
수행원의 말에 비 아이언 외교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말을 이어갔다.
“다들 아시다시피 레너드 남작은 알 라스 폰 구울 백작령과 맞닿아 있기에 게슐린 그랩 자작을 제외하면 바포 변경백에서 가장 뛰어난 무력과 군사력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헌데 그런 그에게 아무리 충성파에 속했다 하더라도 군단장직까지 겸임하게 만들어 중앙영지군을 통솔하게 만든 것은 그랩 자작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오.”
“군사력이 한데 집중되면 없던 마음도 생기는 법이지.”
“각하께서는 신중히 생각해볼법한 주제라 생각합니다.”
웅성웅성.
회장이 다소 소란스러워지자 수행원이 그들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모두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비 아이언 외교대사의 말은 잘 알겠습니다. 허나 외교대사께서 그러한 질문을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러한 주제는 굳이 외교대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외교대사라는 직책을 지닌 자가 내뱉은 말이라면 다른 의미도 있을 것이라는 게 수행원의 생각.
수행원이라는 자리는 불릿을 대변하는 자이기도 했기에 보통 인물은 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로가 낮은 직책을 지닌 이들이 아니었기에 언제나 신중히, 그리고 깊게 생각한 후에 말을 내뱉어야 했기에 수행원 또한 뛰어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저희 바포 변경백이 혼란스러운 것은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그랩 자작을 응징하기 이전에 최근 구울 백작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에 이러한 말씀을 올린 것입니다.”
루드밀라 왕국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왕실이 유명무실해지고 흑마법사로 인해 세상은 어지러웠으니, 그 상태에서 왕국을 지탱하는 주축 중 하나인 불릿이 사라졌었으니 혼란은 극에 달했던 것이다.
“아직 백작각하께서 귀환한 사실을 모르는 알 라스 폰 구울 백작이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기에 일단은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접선을 시도했었습니다.”
비 아이언 외교대사는 다음에 이어질 말에 눈을 빛낸 후 또박또박 곱씹듯 내뱉었다.
“그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나이다.”
============================ 작품 후기 ============================
오늘의 목표였던 추천수 100을 채워 1편 더 연재할 수 있었음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벌써 90화가 다 되어가는데 생각보다 봐주시는 분이 적네요..
많은 분들이 봐주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