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6 수습하다 =========================================================================
“제가 생각하는 해결방안에는 평민출신을 등용하되, 능력이 있다고 하여 높은 행정직에 앉히기보단 기존의 인식을 고려해 시간차를 둠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흐음, 부가설명이 필요하오?”
상당히 흥미로운 발언이었기에 불릿도 관심을 가지고 베니스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순히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꽤나 그럴 듯하지 않은가?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필요성을 느낀 불릿은 그에게 계속해서 발언권을 허락하였다.
“예, 각하. 감히 각하의 계획을 엿보자면, 각하께선 행정관을 임명함에 따라 능력을 위주로 뽑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송구스럽사오나 맞는지 여쭙고 싶군요.”
숙청사건도 있고 하니 슬슬 눈치를 보았으나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고픈 말을 소신껏 말하는 것을 보니 자신의 주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에 불릿은 동의를 해주었다.
“맞소, 본인은 영토를 안정시키기 위해 능력이 있는 자들을 배치시키고 싶었소. 그대들도 알다시피 직스 자작령은 경우가 심하지 않소?”
직스 자작령은 불릿의 노력으로 인해 겨우 ‘죽지 않을 상태’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간당간당한 신세였다.
당장이라도 유능한 인물을 배치시키지 않으면 숨이 끊어질지도 몰랐다.
게다가 숙청사건으로 귀족들이 대거 빠져버리니 이에 관직에 있던 사람이 사라져버리고, 자연히 그 자리는 붕 뜨게 되었던 것이다.
업무가 정지되니 원활히 돌아갈 리 만무했고, 그래서 급히 원상복귀 시키려는 생각에 평민을 등재시키려던 것이다.
“다들 아는가 모르겠으나, 내 그곳의 무능하며 배덕자인 직스 자작을 처형하였소.”
“헛!”
“가, 각하! 진정이시옵니까?”
“……허.”
모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응을 보이자 불릿은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직스 자작 또한 반역파에 연루되어 있었으니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것이오. 게다가 그곳의 사정을 안다면 놀랄 일도 아니지 않소? 그곳이 어디 사람 살 곳이란 말이오?”
“크흠, 그렇긴 하옵니다.”
“직스 자작은 좀… 심하긴 했지요.”
놀라면서도 긍정하는 가신들. 누가 보더라도 그토록 번성했던 영지를 단 10년 만에 말아먹은 것을 보면 그것도 능력은 능력인가보다.
가신들이 가라앉는 듯하자 불릿은 한마디를 더 던졌다.
“본인이 중앙영지로 귀환하기 전에 손을 조금 써놨으니 얼마간은 버틸 것이오. 그러나 급히 사람을 파견해야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지.”
그리고 자신의 말을 끝마친 불릿이 베니스투에게 말을 건넸다.
“본인이 말을 잘라먹어 미안하군. 계속해보시오.”
“아, 예. 각하.”
불릿의 말은 ‘이런 사항을 참고하라’는 뜻이었는데, 베니스투 또한 이러한 뜻을 내포한 말임을 알아들었는지 말속에 그런 것이 묻어났다.
“각하의 말씀대로 직스 자작령 같은 경우가 발생하였기에 부족한 인원을 평민을 통해 보충함은 마땅하나, 그래도 역시 아직은 시기상조인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니스투가 불릿의 발언을 들었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음에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사회의 풍조를 바꾸기란 단시간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무리하게 강행하다간 기존 세력에게 반발을 살 것이옵니다. 그들을 찍어 누른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문제가 대두될 것이며,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해주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자네의 말은 차차 바꿔나가자는 말이로군.”
“맞습니다, 각하. 그들이 10년, 20년 경험을 쌓다보면 자연히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가 된다면 보다 높은 관직에 앉히더라도 불만의 강도가 약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평민들이 몇 없는 행정관에 앉았으면서도 벼락출세, 능력도 없는 것이 누구누구만 믿고 등의 말이 나오는 이유가 갑작스레 진행되는 일로 인해서였다.
혁명이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축적된 무언가가 하나의 계기를 통해 방출될 뿐인 것이다.
말하자면 댐에 고인 물이 쏟아진다고 할까?
설득력 있는 베니스투의 말에 불릿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칭찬했다.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그대가 채워주니 마음에 드는군. 다른 가신들도 이처럼 소신 있는 의견을 내보이면 반영할 것이니 고민들 해보시오.”
“예, 각하.”
“알겠사옵니다, 각하.”
“그럼 베니스투 경의 의견에 따라 평민들을 등용하되 하급 관리부터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군. 베니스투?
“예, 각하!”
자신의 의견에 불릿이 만족한 듯 보이자 밝게 대답하는 베니스투.
불릿은 그에게 중책을 내렸다.
“자네가 책임지고 한번 진행해보게. 1에서 10급까지 존재하는 행정관 등급에서 7급까지로 한정하여 일을 진행하도록.”
“소인 베니스투, 각하의 믿음에 보은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껏 평민들이 기껏해야 9급 관리직에 나섰던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일이었으나 기존 귀족출신 행정관들의 세력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였기에 회장에 참여한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베니스투보다 더 좋은 의견이 없다면 오늘 회장은 이만 파하도록 하지.”
“회장에 계신 인원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불릿이 끝낸다는 표현을 하자 불릿의 곁에서 조용히 대기하던 수행원이 말을 하였다.
그러자 우루루, 자리에서 일어서는 가신들.
“바포 변경백에 영광을!”
“영광을!”
수행원의 말을 따라하는 가신들, 이는 항시 있는 일이 아닌 죽었다고 여겨지던 불릿의 무사귀환을 기념하는 뜻에서 펼쳐지는 일이었다.
“백작각하, 만세!”
“만세! 만세!”
“올리비아님 만세!”
“만세! 만세!”
“……잠깐만. 올리비아가 거기서 왜 나오는가?”
수행원의 외침이 이상하자 제동을 거는 불릿. 이에 수행원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에 대꾸하였다.
“총집사님과 안나 하녀장에게서 부탁을 받았습니다.”
“……또 그들인가?”
이제는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 불릿에게 수행원은 뒤이어 말을 뱉었다.
“벤젼스 수석기사께서도 동의하는 바라고 하더군요.”
“벤젼스는 왜?”
아무리 생각해도 기사인 벤젼스가 끼어들 이유가 없기에 불릿이 되묻자 수행원이 재차 대답해주었다.
“각하의 아드님을 모시는 것도 멋지고 보람된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어쩐지 영지로 귀환한 이래 자신과 올리비아를 엮으려는 가신들이 줄을 잇는 것 같았다.
* * *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각하!”
바포 변경백 대영주 직속 기사단 ‘라체나’의 수석기사이자 현재 그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인 벤젼스.
불릿은 크레파토스가 연륜을 가졌다곤 하지만 지방에서 직스 자작을 보필하느라 중앙영지에서 떨어졌던 것을 감안해 모든 것을 맡기진 않았었다.
그래서 보다 자세하고 세밀한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군사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영지군의 실질적인 무력대인 라체나의 임시 우두머리인 벤젼스를 찾아온 것이다.
“예전 모습도 좋았으나 젊어지신 점, 감축드리옵니다, 각하!”
사람은 젊음을 갈망한다. 이는 나이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데, 당장 10대의 소년소녀들만 하더라도 ‘옛날엔 어쩌고저쩌고’라며 추억을 회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벤젼스, 오랜만이로군.”
실제로 그들은 불릿이 결사대에 참가한 이후로 첫 만남이었다.
중앙영지를 복속한 후에도 그동안 바빠 만나지 못했던 것을 오늘에서야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식은 들었네. 라체나의 비극에 대해서.”
“……예, 각하. 기사단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니다, 각하!”
털썩-.
흙바닥임에도 벤젼스는 무릎을 꿇고서 불릿에게 용서를 빌었는데, 불릿은 그를 손수 일으켜 세우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의 탓이 아니네. 단장과 조장들도 비명횡사한 마당에 자네 홀로 무슨 수를 내겠는가?”
“죄송합니다.”
“어허, 이미 지나간 일일세.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복수뿐이네.”
복수라는 말에 눈을 빛내는 벤젼스. 이에 불릿도 말을 이어갔다.
“그것을 위해선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데, 벤젼스. 현 영지군의 편성은 어찌되어 있는가?”
“예, 각하! 현 바포 변경백 중앙영지군은 대영주 직속 기사단 라체나와 그 밑에 일반 기사들이 주둔하고 있으며 병사 5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비에 특화되어서 궁병의 비율이 높았지?”
“맞습니다, 각하!”
중앙영지군은 지리적 특성상 주변의 위성영지들이 둘러싸고 있었기에 특별히 출전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병력의 대부분이 수비에 집중되어 있었고, 각 영지로 지원을 나가더라도 불릿의 직속 기사단인 라체나를 파견하지 그들을 내보낸 적은 없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전경험이 없던 것은 아니었는데, 대륙엔 몬스터가 없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
“병사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명령체계는 불안정하겠군.”
“아닙니다, 각하. 병사들 사이에서도 위계질서가 존재하여 하위병, 중위병, 상위병,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는 병사들의 장인 병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전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을 영지에서 나와 생활하며 배워가기 시작했고, 홀로 떨어진 이후엔 용병으로 활동하며 몸으로 직접 체득한 불릿이다.
그가 보기엔 영지의 병력구성은 미진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단순히 명령체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야. 정확히 상황을 판단할 지식과 중형급 몬스터를 상대할 무력을 지닌 기사가 있어야지만 병사들의 피해가 적어질 것이다.”
오크만 하더라도 일반 병사라면 두셋이 달려들어야 상대할 수 있었다.
중형급으로 들어서면 이는 더욱 심해졌는데, 거의 30, 40명이 상대를 해야 겨우 죽일 수 있었으며 그마저도 피해가 발생했기에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병사들이 견제하는 사이 기사가 난입한다면? 기사는 병사들에게 정신이 쏠린 몬스터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몬스터만이 아니더라도 인간과의 전투에서도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기사들이 훨씬 더 정확한 상황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각기 기사와 병사들이 따로 놀고 있는 중앙영지군은 문제가 있던 것이다.
“자네도 기사이니 병사들의 문제점은 알고 있겠지. 본인이 왜 기사와 병사들을 섞어 군대를 새로이 만들려는 것인지, 이해하는가?”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벤젼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무장의 차이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좋은 지적이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
“감사합니다, 각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세의 기사들은 풀 플레이트메일 같은, 판금이나 사슬갑옷으로 온몸을 무장했다.
거기에 잘 정련된 무기까지 갖춘 자들이 군사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말을 타고 돌격한다.
이들을 두꺼운 솜옷(누비옷)에 기껏해야 얄팍한 나무방패와 스스로 마련한 나무창, 낫 등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마주치면?
유리가 깨지듯 와장창 깨지는 것이다.
불릿의 영지는 그 정도로 열악하지도 않았고, 직업군인을 고용한 상비군의 형태를 띠었기에 보다 나은 상태였다.
그렇다곤 해도 기사는 너무도 막강한 존재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비유할 수 있겠다.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겁이란 것을 안고 산다. 명예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기사들과는 다르다는 뜻이지.”
기사는 귀족자제들로 이루어지므로 명예를 우선시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병사는 거의 백퍼센트 평민으로만 구성되는데, 간혹 노예도 포함되지만 귀족은 절대 없었던 것이다.
당장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평민들이 명예를 추구할 리가 있는가?
그런 보지이도 않는 것보단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했으니 자연히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을 방지하기 위해선 같은 병사가 아닌, 그들을 휘어잡을 카리스마와 지식을 지닌 기사라는 고급병력이 필요했다.
“기사 따로, 병사 따로, 대체 왜 그렇게 싸워야 하는가? 내 직스 자작령을 보고 한탄했으나 딱 한가지 잘했다고 보는 점이라면 바로 이러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경청하겠습니다.”
“직스 자작령에선 기사의 최소직급을 십인장으로 구축해놓았는데, 이로 인해 기사라는 자부심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영지에서 병장이라고 불리는 병사들의 우두머리가 존재하는 것과는 다르게 직스 자작령에선 기사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병사들을 다루었던 것이다.
불릿은 직스 자작령의 장점과 중앙영지만의 특성을 뒤섞어 새로이 군대를 재편하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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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도 힘들지만 추천도 100을 찍기가 힘들군요..
그래도 꾸준히 비축분을 쌓고 있답니다.
오늘도 밤 12시 10분에 이어서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