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5 수습하다 =========================================================================
“…가 있습니다.”
“아아….”
널따란 원탁에 여러 인물들이 다닥다닥 앉아있는 가운데, 불릿은 발표를 마친 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게 했다.
“각하, 다음 안건은 비리를 저지른 관료에 대한 보고이옵니다.”
“아아….”
“…각하?”
“아아….”
“백작각하, 괜찮사옵니까?”
여전히 건성으로 대답하는 불릿에게 한 신하가 물음을 건네오자 그제야 정신 차린 불릿이 퍼뜩 대꾸하였다.
“음. 아, 괜찮네. 걱정해주어 고맙군.”
“각하, 피곤하오시면 저희끼리 상의한 뒤 중요안건에 대해서 결제서를 올리겠사오니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어떨는지….”
“괜찮네, 괜찮아.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니. 영지의 유지보수에 관해서 잠시 생각했을 뿐이네.”
“오오, 그러시군요.”
“역시 각하께선 달라도 뭔가 다르신 것 같습니다!”
“…….”
아부를 떨던 가신들은 불릿이 침묵을 지키자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불릿이 예전부터 이러한 호들갑을 좋아하지 않음을 알기는 했으나 그의 귀환 이후 반역파를 숙청하는 것을 보고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불릿도 이를 알기에 별다른 말없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려했다.
“죄송하오나 각하, 회장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있는 것 같사옵니다.”
“그게 누구인가? 본인이 추려서 진행한 인원인데, 마음에 안 드는가?”
회의에 참석시킨 인원은 가신들 중에서도 믿을 수 있다 여겨지는 인물들로, 말하자면 현 바포 변경백의 핵심인원이었다.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인물들이었으므로 불릿이라 해서 마냥 무시할 수도 없던 노릇.
그를 지목하며 말해보라하자 그가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인 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외람되오나 각하의 곁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는 대체 무슨 연유로 있는 것이온지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나이다.”
“음음.”
“저 아이가 누구길래 이곳에 있는 것인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아이는 다름이 아니라 흙덩이를 뜻했는데, 거사 당일에도 흙덩이가 능력을 내보인 적이 없기에 안면이 있으면서도 정체는 모르는 애매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불릿과 함께 등장했기에 함부로 대하진 않았으나 대체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준 사람이 없기에 이렇듯 회의 중에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보는 것이리라.
‘크레파토스가 일러주지 않은 것인가?’
그러고 보니 집사인 밴 앞에서도 흙덩이를 내보인 적이 없었다.
크레파토스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현재 영지에서 흙덩이의 정체를 아는 이가 없다는 뜻.
그러니 안나가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범위가 넓다니, 무슨 의미인지.’
불릿은 안나가 나이를 먹었음에도 지나치게 활발하다는 것을 상기하며 닫혔던 입을 떼었다.
“모두 주목하시오, 주목.”
“주목!”
“주목!”
회장의 모든 인원이 복명복창을 하며 시선을 돌리자 불릿은 한차례 기침을 뱉은 후 말을 잇기 시작했다.
“자네들의 눈앞에 있는 이 아이는 본인이 젊어진 것과도 연관이 있다.”
“…….”
수근거림이 들려왔으나 불릿의 말에 제동을 거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주목하라는 시점에서 불릿만이 발언권을 획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선 손을 들어 불릿이 지목해주지 않는 이상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본인이 결사대에 참전하여 흑마법사와의 전쟁을 끝낸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전쟁은 결사대에 의해 종결을 맺었다. 그 뒤에는 수많은 전사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결사대가 아니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할 위업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 마족과의 결전에 관해서는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웅성웅성.
조용하던 가신들도 이 때만큼은 궁금증이 치밀었는지 서로 속닥이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결사대의 마지막 전투는 그 누구도 목격한 이가 없었기에 어떤 식으로 마무리가 된 것인지 확실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유일한 생존자로 여겨지는 불릿이 귀환했으니 그에게 묻고 싶어 궁금증이 치밀었으나 그 누구도 물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불릿이 귀환을 선포하자마자 제일 먼저 행한 것이 반란자들을 숙청한 것이니 말이다.
그랬던 찰나에 불릿이 먼저 털어놓아주니 얼마나 속이 시원한가?
불릿은 잠시 멈췄던 말을 이어갔다.
“결사대의 동료들이 마족의 마기를 견디지 못해 폭사되어가고, 공략의 가망성이 없을 때 쌍성의 수호자가 자폭으로 희생하며 마족에게 상처를 주었었지.”
“오오….”
불릿이 언급하는 쌍성의 수호자는 6인의 영웅에 포함된 매우 유명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최후가 궁금하지 않다면 이상할 정도. 이를 알면서도 불릿은 내심 씁쓸했으나 그들의 최후를 대중이 알아야했기에 가신들을 통해 배포할 작정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라그나로크를 발동시켰다.”
“라그나로크가 뭐지?”
“아, 나는 그걸 아네. 최후의 순간에만 발동한다는 공격기로, 기운의 집결체이기 때문에 어떤 방어기로도 막을 수 없다하더군.”
가신이 저러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은 연합체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기 때문이다.
마족을 쓰러뜨림으로써 더 이상 역할을 상실한 연합체가 아직 건제함을 과시함과 함께 자신들의 위업을 알리기 위해 대중에게 결사대의 숭고함과 연합체의 중요성을 토로했기에 그렇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연합체는 전쟁이 끝난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었으며 각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지 않고 있었다.
‘어리석군, 어리석어.’
물론 라그나로크라는 기술은 금지시켜 마땅한 기술이었다. 자신의 마나회로를 망가뜨리고, 정령력을 상실시켜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기술이 정상일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것을 기획할 만큼 당시엔 무척이나 처절했었다.
‘그러지 않고선 이길 수가 없었지.’
놈들의 심처에 다가갈수록 결사대의 인원은 자꾸만 줄어들었기에 탄생한, 어찌 보면 어쩔 수 없이 탄생한 기술이었다.
불릿에게 있어선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기에 추억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그래, 잘 알고 있군. 본인도 그 작전에 참여했었기에 마족이 일으키는 대폭발에 휘말렸었다.”
“저런….”
“큰일이셨습니다, 각하.”
“옥체는 괜찮으신지요?”
가신들이 앞 다투어 물어오자 불릿은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손을 앞으로 작게 흔들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지는 회장.
“여기까지는 대중에 알려진 대로일 테고, 사실 그 이후의 일은 본인도 잘 모르는 바다.”
또 다시 웅성이는 회장. 당사자인 불릿이 모른다면 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러나 불릿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본인은 알려진 대로 정령력을 상실했었지. 그러나 본 바포 가문이 어떤 곳인가? 바로 정령의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는 곳, 본인은 가문비전의 비술을 통해 기적적으로 정령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오오오.”
“그렇다면 저 소녀가 정령이란 말씀이십니까?”
이쯤 말하면 그들도 불릿이 무얼 말하고자하는 것인지 깨달았기에 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흠, 본인은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만…, 어느 놈이지?”
“헙.”
“이크.”
놀라워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던 입을 다무는 가신들.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다면 모를까, 이곳은 회장이었기에 발언권 없이 말하는 것은 불릿에 대한 도전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잠시 그들을 눌러놓던 불릿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대들이 예상한대로 이 소녀….”
- 예쁘다고 해줘.
“……예쁜 미소녀는 본인이 소환한 정령일세.”
흙덩이의 소원대로 예쁘다는 말을 붙여준 불릿.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사족을 붙였기에 가신들이 이상하게 볼 법도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대해선 상관하지 않았다.
이때, 한 가신이 손을 들어 올리자 불릿이 그를 지목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궁금한 게 있사온데, 저 소녀, 정령의 속성은 무엇이옵니까?”
아무리 봐도 인간과 흡사한 흙덩이의 모습에 그들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바포 가문의 가신, 정령에 대해서라면 상식 이상으로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어떤 정령의 특징도 띄고 있지 않은 흙덩이에게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에 대해서 본인이 설명하려 했던 것이지. 흙덩이의 속성은 이름에서 알다시피 땅의 정령이라네.”
“…….”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손. 불릿은 그들의 손을 내리면서 자신이 먼저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대들의 의문은 잘 아네. 분명 흙덩이는 하급 정령이라기엔 특이한 점이 많지.”
하급 정령답지 않다. 그러나 다른 점도 중요했으니….
“본인이 물의 정령이 아닌, 땅의 정령을 다루는 점에서도 의문이 있을 것이네. 그러나 걱정하지 말게. 가뭄에 대해선 수맥을 찾는 방법도 있고, 대지의 축복도 사용할 수 있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네.”
물의 정령을 다루지 못하면 가뭄이란 재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옆에 불모의 황무지가 있는 것만 하더라도, 바포 변경백이 그렇게 썩 좋은 위치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을 정령의 힘을 통해 극복했던 것이다.
“자, 이쯤 말하면 더 이상 본인에 대한 궁금증은 없겠지. 있더라도 본인도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으니 영지에 대해서 의논키로 하지.”
“예, 각하.”
“알겠습니다.”
저마다 대답하는 가신들에게 불릿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안건에 관해서 말하려했다.
- 안 쓰다듬어줄 거야?
“……잠시.”
불릿은 가신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흙덩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흙덩이여, 나중에 해드리면 안되겠는가?’
- 왜? 쟤들 기분 나쁘게 나 쳐다보잖아.
흙덩이는 타인의 시선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근래엔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불릿과 올리비아를 제외하면 신체접촉도 거부할 정도.
그럴 때면 불릿이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달래주었기에 이러는 것이리라.
‘부탁하이. 본인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라네.’
아무리 그래도 회장에서까지 그럴 순 없었다. 체면의 문제도 있었으니까.
다행히 흙덩이도 받아들였는지 슬그머니 불릿에게서 떨어졌다.
- 이따 밤에 봐.
곁에서 떨어지며 내뱉는 소리만 아니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후우, 갈수록 점점….’
인간과 닮아가는 흙덩이에게 한숨만 늘어갔으나 별 수 있겠는가? 보고 배우는 것이 그거인 것을.
“흠흠, 잠시 실례했군. 어쨌든 간에, 안건 중에 행정관 임명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되었군. 이의 발의자가 회장의 절반이 차지하는데, 누구부터 말해보겠나?”
불릿이 능력만 있다면 평민에게도 등용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가신들이 있었는데,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지라 넘겨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민감한 문제인지라 서로가 손을 들고 있어 불릿이 한 인물을 지목했다.
“베니스투, 말해보게.”
“감사합니다, 각하.”
베니스투라 불린 가신은 불릿과 좌중에게 인사를 건넨 뒤에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앞서 말씀드릴 것은 행정관의 임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비단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계속하도록.”
“감사합니다. 분명 능력이 있다면 평민들에게서도 등용의 기회를 주어야함이 마땅하나, 그들은 본디 어렵게 사는 자들이 대부분인지라 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합니다.”
행정관이 돈에 욕심을 부리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베니스투는 그것을 꼬집고 나선 것.
“그리고 배움에 있어서도 저희 귀족출신에 비해서 모자람이 있고, 행정처리를 하다보면 다른 직급의 인물이나 타 행정관과의 충돌이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 없사옵니다.”
말하자면 뒷배경이 없는 평민들은 정계싸움에서 버틸만한 바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식, 배경, 금전, 불순한 욕구의 존재 등, 무엇하나 귀족출신보다 앞설 수 없다는 점.
그것이 평민들이 관리가 됨에 있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베니스투는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하는 해결방안엔 어떤 것이 있는가?”
자신보다도 어려보이는 불릿의 하대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베니스투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베니스투만이 아닌 회장에 있는 모든 인원들이 그러했는데, 전장을 겪으며 전사로서의 풍모와 알 수 없는 기운을 풍기는 불릿을 쉽게 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불릿이 간간히 보여주는 단호함을 생각하면 조심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리고 이번 숙청사건과 더불어 반역파를 없앨 계획을 세우는 불릿에게 조심하지 않으면 목이 떨어짐을 잘 알기에 베니스투는 불릿의 물음에 한층 조심함이 보였다.
“예, 제가 생각하는 해결방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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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추천과 선작이 100단위가 넘어서 2연재 외에 추가분을 올리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