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2 충성, 중립, 반역 =========================================================================
흙덩이는 인간세상에 대해서 잘 모른다. 게다가 불릿을 따라다니며 배운지라 그가 보여주지 않으려던 것은 모르는 상태.
그러니 사람과 사람의 애정행각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뭔가를 먹는 것을 보고도 죽인다고 표현하던 흙덩이였으니 지금 이 장면은 ‘먹는다’라는 것으로 보일 만도 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먹는다는 것이 틀리지만은 않았지만.
흙덩이의 말에 화들짝 놀란 불릿이 올리비아에게서 떨어졌으나 그녀는 아직도 황홀경에 빠져있던 것인지 작은 탄식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
아쉬웠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육체적으로만 따지면 불릿보다 강한, B급 용병인 그녀가 별다른 반항 없이 불릿의 기습키스를 받아들였다.
한껏 치장한 상태인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고 있었고, 불릿은 그답지 않은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며 흙덩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아니, 이건 말이지 흙덩이여, 본인이, 그러니까….”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중구난방 속에서 흙덩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재차 묻는다.
- 왜 먹어? 먹으면 죽잖아.
그러면서 이번엔 반대쪽으로 머리를 갸웃.
- 올리비아, 죽는 거야?
“으, 으음….”
파티장을 습격할 때도 안 나던 땀이 스멀스멀 배어나왔다.
불릿의 볼을 타고 땀이 흐르자 상념에 빠져있던 올리비아가 그것을 목격했다.
“어머! 이 땀 좀 봐! 괜찮아?”
올리비아가 정신을 차리고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소매로 불릿의 땀을 닦아낸 것인데, 거리감이 느껴지던 이전과는 다르게 머뭇거림이 없었다.
토닥, 토닥.
소매를 살짝 쥐고서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는 올리비아에게 불릿은 아까의 대담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더욱더 많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쉬어야겠는걸?”
그녀는 말을 잇더니 이내 조신함이 섞인 미소를 지어보이며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 내가 간호해줄까? 아니, 해줄게.”
“어, 아, 그게….”
‘대체 이 몸은 왜 본인의 명령을 듣질 않는 거냐!’
평소에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 젊어진 육체에 원망한 적은 없었다.
귀족, 그것도 자그마치 백작씩이나 되는 인물이 이리도 거칠게 레이디를 탐하다니?
아직 서로에 대한 감정도 확인하지 못했거늘, 이러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었던 것이다.
흡사 강간과 무에 다르리? 물론 비유가 지나친 면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반응하는 올리비아에게 불릿은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고 있었다.
연애라는 것이, 옆에서 지켜보는 이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판단할 수 있으나 정작 당사자는 그럴 정신이 없는 것이다.
바로 지금의 불릿처럼 말이다.
“올리비아, 내 자네에게 크나큰 실수를 하고 말았으니 이에 대해 사죄를….”
“뭐? 그럼 내 정조를 빼앗아간 것이 실수라는 말이야?”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설마 입술만 훔쳐가고 버린다는 말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자 불릿이 버럭 소리쳤다.
“아니오! 본인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본인도 처음인지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크흠!”
“처음이라고?”
“……크흠!”
불릿이 연신 헛기침을 내뱉자 올리비아는 우는 것도 멈추고서 배시시 웃는다.
귀족들은 방중술이라는 것을 배우는데, 보다 원활한 성관계를 맺기 위해 이러한 것을 배운다.
고위귀족, 특히 왕족일수록 이러한 풍습은 더욱 심했는데, 대가 끊기지 않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구사하였다.
인간이 살아감에 따라 성적인 요소는 필수불가결이고, 천박하게만 굴지 않는다면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부끄럽다.
* * *
똑똑똑.
“들어오게.”
기기긱…
아침에는 서로가 상태가 단정치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 이렇듯 소리를 내며 입장했는데, 밤새 뛰어다니던 크레파토스는 나이도 잊었는지 노구를 잘도 굴려먹고 있었다.
“각하. 신 크레파토스, 복귀하였습니다.”
“어서 오게, 크레파토스여.”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과는 다르게 수면을 취했으리라 여겨지는 불릿의 안색이 초췌해보이자 노장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안부를 건네었다.
“그들이 걱정되어 지금껏 깨어계셨나이까?”
“음?”
“각하께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을 소식이 기다리고 있사오니 보고를 받으신 후 옥체를 보전하심이 어떨까 소신, 생각하나이다.”
크레파토스는 계획이 틀어져 상황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불릿이 깨어있었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밤, 불릿은 올리비아와 흙덩이로 인해, 아니, 그저 자신의 돌발행동에 의해 머릿속이 어지러워 잠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결코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렇게 할 터이니 상황보고를 시작하도록.”
“옛, 각하!”
크레파토스는 자기도 잠을 자지 못하였고, 그러면서도 현장을 돌아다니며 반역자들의 끄나풀을 상대했는데 여전히 쌩쌩해 보이는 몰골이었다.
그는 힘차게 대답하며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반역의 무리는 총 53명으로, 게슐린 자작 외 그와 손을 잡은 동맹으로 이루어진 자들이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53, 단순한 수치에 불과했으나 그들 전원이 귀족이란 점에서 결코 적다 말할 수 없었다.
“53이라…, 많군.”
“파티에 참여했던 인원이 120명, 그 중에서 중립을 표방하거나 상황의 추이를 가늠하던 이는 37명으로 추산됩니다.”
“본인의 편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귀족은 30명이었다는 소리군.”
반역자들보다도 적은 충성파의 인원에 실망할 법도 하건만, 불릿은 그다지 실망한 반응이 아니었다.
크레파토스도 그런 불릿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덤덤히 보고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중립을 지키던 자들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 과인의 부덕함이 낳은 결과에서도 뒤돌아서지 않았다는 점을 보아주어야겠지?”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각하.”
중립이라 말했지만 불릿이 돌아온 시점에서 그들은 충성파로 이끌릴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들이 중립을 지키던 이유는 반역파의 행보가 마음에 안 들기도 했으나 내심으로는 바포 변경백의 정당성은 불릿에게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돌아오는 것이 조금 늦었으나 불릿은 돌아왔고, 그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증명된 셈이다.
“중립파라고 칭해야 되는가…. 크레파토스, 그들이 본인에게 다시금 충성을 맹세할 것 같나?”
그렇다곤 해도 불만을 품은 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사정이 어떻든 간에 불릿은 대영주로서의 역할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고, 그로 인한 결과가 변경백의 혼란을 초래했으니 상황을 수습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영주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인지, 반란을 제압하는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었지만, 일단 지금의 행보만 보자면 반란진압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본디 중립파는 눈앞의 손익보단 생존을 택했던 자들, 이번 사태를 통해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아뢰옵니다.”
“생존, 생존이라… 살고 싶었단 말이지….”
불릿이 고민하는 듯하자 침묵을 지키는 크레파토스. 불릿은 생존이라는 대목에서 결사대의 마지막, 마족과의 혈투를 떠올리고 있었다.
‘모두 미안했다! 같이 죽자!’
‘흐아아아!’
‘사랑해, 라냐!’
‘조국에 영광을!!’
6영웅의 일인이며 결사대의 리더였던 폭염의 잉켈스의 명에 그대로 따랐던 결사대원들.
그 중에서도 불릿은 소멸되는 가운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던 바람의 대리자와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하오.’
‘…이런 상황이더라도 그대를 받아들일 순 없어요.’
‘사랑하오, 미칠 듯이. 지금이 아니면 죽어서도 후회할 것이오.’
‘……바보 같은 사람.’
그들의 대화는 가까이 있던 자들만이 들을 수 있었는데, 잉켈스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은 둘의 마지막 사랑의 속삭임을 지켜주기 위해 소멸의 순간을 늦추기 위해 앞을 막아서주었었다.
그래서 결사대를 이끄는 중심인물들이 가장 늦게 소멸했던 것이고, 그러면서도 은연중 그들은 불릿에 대한 은혜에 대한 보답일지, 가장 후방에 세워줬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까?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는 불릿의 마음이 얼마나 상처 입었을지, 얼마큼 고통스러웠을지 말이다.
군주는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지만 소중한 이들이 죽어나가는 순간에도 그렇기란 힘든 법이었다.
‘그동안 외면해서 미안해요.’
‘알고 있었소?’
‘…네…….’
잉켈스가 죽은 직후 탐지의 빈스는 모든 마력을 개방해 마족의 마기를 자신에게로 모이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길을 만든 것으로 점성학파 출신의 빈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천부적 마나회로를 지녔기에 길을 찾는데 도가 텄고, 그러한 재능을 마족의 마기를 자신의 몸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마지막 생을 불사른 것이다.
덕분에 둘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의 사랑을 아시오?’
‘…….’
‘사랑하고, 사랑했소. 죽어서도 사랑하오.’
바람의 대리자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시도한 아틱 커맨더.
바람의 대리자는 무표정한 얼굴에서 한줄기 눈물을 떨구더니 그를 받아들이며 부등켜 안고선 함께 소멸의 길을 걸었다.
“…….”
불릿과의 대화가 중단되자 크레파토스는 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여겼는지 조심스레 물어보기 시작했다.
“각하, 중립파에게 기회를 주심이 어떻습니까?”
“…어떤 기회를 말인가?”
드디어 자신의 말에 반응하자 크레파토스는 신중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중으로 중앙영지의 군사적 측면에서의 장악은 끝날 것입니다.”
“그렇겠지.”
단순히 저택도 아니고, 그 넓은 중앙영지에서 반란파의 손길을 제거하는 것이니 하루이틀로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곤 해도 정당성은 불릿에게 있었으니, 그가 돌아옴에 따라 라체나를 비롯한 휘하 병사들은 불릿을 따를 것이다.
“군대만 장악해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지.”
“그렇습니다, 각하.”
모름지기 폭력 앞에선 모든 것이 무의미한 법이다. 제아무리 그랩 자작을 부르짖는다한들, 그의 수하들만이 존재하는 중앙영지에선 불릿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 중립파에 대해선 기회를 주는 것으로 하지. 그냥 놓아주기엔 언제 또 상황을 가늠할지 모르는 자들이니 말일세.”
불릿은 쥐를 싫어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박쥐처럼 이곳저곳을 오가는 것도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
충성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충성파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처형할 정도도 아니었기에 기회라는 명목하에 그들의 충성심을 다시금 확인해봐야 할 때였다.
“반역파에 대해선 살려두지 말게.”
“…너무 많은 자들이 죽지 않겠습니까?”
“반역자들이 53, 아. 크레파토스여. 그 53은 ‘생존자’들의 수인가?”
“사망한 자를 포함한 수로, 각하께서 손수 처형하신 1명을 포함 총 2명이 되겠사옵니다.”
2명이라는 말에 불릿은 그랩 자작의 수하가 죽자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다가 병사의 창에 꿰뚫린 채 돼지처럼 꽥꽥거리다 죽은 자를 떠올렸다.
“그 이후로는 얌전히 굴었다는 소리로군.”
“간악한 자들이지만 그들을 모두 제거하면 영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크레파토스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불릿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
“반역자들의 출신지를 알 수 있겠는가?”
“자세한 것은 알아보아야합니다.”
“루드밀라 왕국 출신이 아닌 자, 근 수십 년 안에 갑자기 부흥한 자들과 벌의 경중을 내리기위해 어떤 죄악을 저질렀는지 ‘심문’하라.”
“각하의 은혜에 그들도 기뻐할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불릿이 루드밀라 토박이가 아닌 외부출신을 가리려는 이유는 어떤 생각이 있어서였다.
‘냄새가 나, 더럽고 불결한 냄새가.’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오면서 엿볼 수 있었던 흑마법사의 존재, 불릿은 결사대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선 진저리칠 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마족과의 결전에서 모두가 소멸하고, 자신의 몸마저 이상하게 변하지 않았는가?
그 탓에 어젯밤에는……
“흠흠. 이만 가보도록.”
“예, 각하. 옥체 보전하시길….”
불릿의 말에 크레파토스는 고개를 숙인 후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조용히 방을 나섰다.
달칵.
문이 닫히며 혼자가 되자 불릿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후우….”
절로 터져 나오는 한숨, 그러다가 부채질하던 손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중얼거렸으니,
“부드러웠지…….”
달콤함이 입안을 맴도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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