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1 귀환, 정령사! =========================================================================
올리비아와 불릿, 그리고 원 플러스 원으로 따라오는 흙덩이까지.
그들은 수확제의 마지막 밤, 귀족들의 모임인 파티에 참석하기까지 수많은 습격을 당해야했다.
암살자들은 당최 불릿을 쉬게 내버려두질 않았는데, 사람을 보내는 족족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리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나 보다.
그래봤자 합심이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질 않으니 각개격파를 당했고, 결국 파티 당일 날이 될 때까지 불릿 일행은 무사할 수 있었다.
“후아, 정말 끈질긴 녀석들이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올리비아에게 불릿이 한마디를 했다.
덜커덩, 덜컹-
“올리비아. 모처럼 차려입었는데 그렇게 움직이면 옷이 흐트러지지 않겠소?”
그들은 마차를 타고 파티장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올리비아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허리를 조이면서도 가슴을 강조하는, 그러면서도 대세를 따라 한쪽 다리를 드러내는 타입의 패션.
그렇기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조신하게 앉아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실용성을 생각했다면 이번엔 미적인 부분을 신경 쓴 것인데,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생각하면 조금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기도 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이 옷, 조금 노출이 심하지 않아?”
올리비아도 여성이기에 아름다운 옷이 좋았으나 왠지 페로몬을 흘릴 듯한 복장이었기에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본인의 생각도 그렇긴 하오. 그러나 크레파토스가 요즘 레이디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구해다준 옷이니 안 입을 수도 없지 않잖소?”
“아저씨도 참….”
“그래도 잘 어울리오.”
불릿의 칭찬에 당당하게 굴던 올리비아도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그래. 너, 너도 잘 어울려!”
“흠, 그렇소?”
“…야, 불릿 너는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완전 애늙은이야. 좀 나이에 맞게 살라고?”
“……본인의 나이는 올해 40….”
“아아, 나는 몰라! 안 들려, 안 들려, 아아아-!”
- 바보 같아. 불릿, 쟤는 떼놓고 가자.
귀를 막으며 안 들린다고 혼잣말을 반복하는 올리비아에게 흙덩이가 날카로운 말을 날렸다.
불릿의 옆에는 흙덩이가 앉아 있었는데, 정령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구한 것인지 크레파토스는 어린이용 숙녀복을 구해다 주었다.
“…흙덩이여, 어쩐지 피부색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말이오….”
- 뭐가?
확실한 변화는 아니었으나 불릿의 눈엔 흙덩이의 피부색이 완전 샛노랗던 초창기에 비해 약간 옅어져 사람과 흡사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항상 봐와서 그런지 눈에 띄는 부분을 콕 집어서 말하진 못했는데, 이때 창밖을 살피고 있던 크레파토스가 말을 걸어왔다.
“각하,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군.”
잠시 잡담을 하는 사이 그들은 파티장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내성에서도 불릿의 저택에 위치한 연회장이었다.
그토록 돌아오고자 했던 보금자리에 돌아오니 감상에 젖은 불릿.
그러나 아직은 긴장을 늦출 때가 아니었다.
“크레파토스, 가신들과는 접촉했겠지?”
“예, 각하. 다행히 안나라는 하녀장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어 모든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안나는 불릿과 오랜 세월을 같이한 인물. 그녀가 비록 하녀장에 지나지 않았으나 입김만은 그 누구보다 세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녀를 통해 집사장인 밴과 대영주 직속 기사단 라체나의 수석기사 벤젼스에게도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니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좋다, 그럼 결전이로군.”
모두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반역자들을 처리하는 것만이 남을 것이다.
딴, 딴딴, 딴딴, 딴딴.
따라라-, 딴딴.
약간의 흥겨움을 돋워주는 음악이 연주되는 사이로 여러 귀족들이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확제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는 자리여서 그런지 귀족들은 각자 자신을 뽐내기 위해 멋을 부리고 왔는데, 역시 중앙영지라서 그런지 유행에 민감한 자들은 올리비아가 입었던 것처럼 가슴이 파이고 허리가 졸리는, 좀처럼 소화하기 어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여성들이야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선 파티장에서 돋보여야 했기에 치열할 수도 있지만, 남자들은 당최 왜 신경을 썼나 모를 정도로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흠흠, 거스 경, 자네의 주군은 잘 계시오?”
“봉고베리 경이야말로 그대의 영주께서 체면을 꺾이진 않을지 모르겠소.”
어차피 이들은 모두가 조무래기급 귀족인지라 별로 내세울 게 없었는데, 대신 자신이 모시는 각 지역의 영주들과 복장으로 한껏 상대의 기를 죽이려던 것이다.
어차피 대리출석을 위해 보내진 자들이니 기싸움을 해봤자 별 의미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렇듯 반역을 도모하는 자들이 친목과 경쟁을 나누는 사이, 아직도 불릿을 기다리던 충성파는 남들의 눈에 안 띄도록 몰래 대화를 시도했다.
“파티도 무르익어가니 곧 등장하시겠소.”
“쯧, 저놈들은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싸기만 하는군. 음탕한 것들.”
충성파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던 것은 반역자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에 대해서였다.
자신들의 고삐를 틀어쥐던 불릿이 사라지니 2인자였던 게슐린 그랩 자작이 1인자의 역할을 했고, 그가 본격적으로 나서자 세력이 미약한 충성파는 지그시 눌린 채 숨을 죽이고 있어야했다.
자신들을 상대할 적이 사라지니 그들은 방탕한 생활을 즐겼고, 점점 귀족으로서의 품위는 어딘가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와중에 불릿이 귀환했다는 소식을 전해오니 충성파로서는 그저 반가울 따름.
수확제기간 동안 충성파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직스 자작령의 영주, 직스 자작께서 입장하십니다!”
순간 모든 음악과 소리가 멎고 파티장의 입구에 시선이 집중됐다.
이유는 어차피 대영주인 불릿도 없으니 자신들이 귀찮게 이 먼 거리를 횡단할 필요가 없어서였는데, 직스 자작이 마기 탓에 이상해진 사실을 모르는 귀족들은 그저 직스 자작이 과시하고 싶은 욕심에 때때로 등장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 지역의 영주이며 작위까지 지닌 자라서 이곳에서는 가장 웃어른이라 대접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사이, 불릿의 음성이 넓은 홀에 울려 퍼졌다.
“군사들은 당장 반역자들을 무릎 꿇려라!”
쾅!
“와아아!”
쾅! 콰당-!
“명령에 따라 반역자를 포박하라!”
그러자 연회의 가장 큰 입구는 물론, 사방의 작은 문이 차례로 열리기 시작하더니 기사와 병사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에구머니, 이게 무슨 일이람!?”
“사, 살려주세요!”
“억, 네 이놈! 당장 놓지 못하겠느냐!”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것인가? 내가 바로 게슐린 그랩 자작각하의 전령이란 말이다!”
그 말에 제압을 해가던 병사가 움찔했는데, 이에 멀리서부터 불릿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넓은 홀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오가는 가운데에도 불릿의 발자국 소리는 단연코 귓가를 파고들었는데, 입구에서부터 올리비아, 흙덩이, 그리고 크레파토스와 함께 등장한 불릿은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우우웅…
- 반짝반짝…
……아니다. 진짜로 비춰졌다. 흙덩이의 치유능력에 의해서.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그랩 자작의 전령이라던 귀족에게 다가간 불릿이 그에게 물었다.
“본인이 아닌, 그랩 자작에게 각하라 했는가?”
“하, 새파랗게 젊은 놈이! 네놈이 소문으로 떠돌던 백작의 사생아인가?”
“흠, 라체나여. 놈을 무릎 꿇리게.”
“옛, 각하!”
이미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던 라체나의 단원은 발로 걷어차 전령을 무릎 꿇렸고, 전령은 무릎을 꿇리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크으, 각하께서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전령의 말에 불릿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크레파토스에게 손바닥을 건넸다.
그러자 크레파토스는 공손하게 자신의 검을 빼다가 쥐어주었는데, 불릿은 그대로 검을 그어버렸다.
촤악!
데구르르…
피가 튀며 목이 바닥을 구르자 시체는 뒤로 넘어갔고, 불릿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반항하는 자는 살려두지 말라! 이는 불릿 폰 바포 진(眞)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이니라!”
“와아아!!”
“백작각하, 만세! 만세!”
“대영주님께서 돌아오셨다!”
“반역자를 몰아내자!”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외침에 충성파와 병사들이 동조하였고, 올리비아는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치, 이럴 거면 나보고 드레스는 왜 입으라고 한 거야.”
올리비아의 중얼거림에 흙덩이가 말을 이었다.
- 나도 입었는데…
둘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도 써보지도 못한 채(?)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파티장의 중앙에 서있어야 했다.
* * *
불릿은 저택에서 반역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포박을 실시했다.
이미 깊은 밤이었으나 파티의 열기와는 또 다른, 기이한 곡소리가 울렸으나 바깥과는 이미 차단된 상태.
눈이 맞은 상대끼리 불릿의 저택에서 불경한 짓, 즉 밤일을 치르기도 했으니 이에 익숙해진 그들의 수행원들이 난입하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날이 밝으면 차차 진행될 계획, 어차피 지금으로썬 불릿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기에 연회장에서 침실로 이동하던 찰나, 테라스에 흙덩이와 함께 별을 구경하고 있던 올리비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차.”
하도 반역자들을 처리하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올리비아를 생각하지 못했는데, 만약 그가 그대로 잠들었으면 올리비아는 객실도 지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곳저곳을 떠돌다 자신이 직접 배정해달라고 하는 부끄러운 짓을 했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떠올린 불릿은 올리비아에게로 다가가 질문을 건넸다.
“괜찮소, 올리비아?”
경황이 없던 중에도 흙덩이를 그녀에게 맡겨 호위를 하게 했는데, 어째 흙덩이의 반응도 심상찮았다.
흙덩이가 그를 올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리다니, 언제나 무표정 아니면 미소, 그것밖에 보이질 않았는데 이젠 화도 내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와중에도 올리비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별만 바라보고 있어서 불릿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텁.
“올리비아, 어디 아픈 건….”
걱정이 된 불릿이 그녀의 몸을 돌리자, 놀랍게도 그녀는 울먹이고 있었다.
“훌쩍….”
“아, 아니 왜 울고 있는 것이오? 무슨 일이라도 있소?”
불릿의 물음에 올리비아가 서럽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대꾸하였다.
“훌쩍, 이럴 거면 날 왜 데려온 거야?”
“그게 무슨 말이오?”
“난, 파트너잖아. 동료잖아. 그런데 왜 난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건데?”
“…….”
또르륵-.
옥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던 올리비아에게 불릿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올리비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 흐윽. 나는 말이야. 네 정체를 알고서도 너로 대하려고 노력했어.”
“…올리비아…….”
“그런데 말이야, 흐흑! 네가 너무 멀게 느껴져. 훌쩍, 가깝게 다가가고 싶은데, 훌쩍!”
뭐라 말하면 좋을까. 올리비아에게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는 불릿.
“너도 외톨이인 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어. 그래도 난 좋았어.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온 거고, 네가 사실은 40먹은 아저씨란 것을 알고서도 너를 너로 대하려고 노력했다고!”
붉게 충혈된 눈과 코는 얼마나 울고 있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훌쩍! 이건 너의 집을 되찾기 위한 작전이잖아? 그런데 왜 나만 쏙 빼놓는 거야? 원래 이러려던 생각이었어?”
“올리비아, 그건….”
“듣기 싫어! 이 드레스, 드레스가 문제야?! 나보고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하라고 이걸 입힌 거냐고!”
올리비아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자 다급히 다가왔던 기사는 이내 멈칫하더니 슬그머니 뒤로 돌아서 뒤따라오는 동료를 막아섰다.
“이딴 거, 이딴 거 필요 없어!”
올리비아가 드레스를 찢어버리려 하자, 불릿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서 이를 말렸다.
“이거 놔!”
“올리비아!”
“왜!”
불릿은 거칠게 반항하는 그녀의 입을 자신의 것으로 틀어막아버렸다.
“으읍!!”
그녀의 달콤한 숨을 느끼며 정열적으로 입술을 탐하는 불릿.
그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젊어진 육체는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듯 더욱 깊이, 그러면서도 한층 부드럽게 올리비아의 머리를 감싸 안으면서 좀체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발버둥 치던 그녀도 이내 포기했는지 불릿의 리드에 따라 몸을 맡겼는데, 그들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한가지 놓치고 있었다.
- 뭐야? 불릿이 왜 올리비아를 먹어?
올리비아와 함께하고 있던 흙덩이가 그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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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