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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79화 (79/241)

00079  귀환, 정령사!  =========================================================================

불릿의 말에 올리비아가 벽난로 탓인지, 아니면 다른 요소로 인해서인지 약간 발그레해진 얼굴로 대꾸하였다.

“그럼 난 불릿의 아내역?”

“……‘직스 자작’의 첩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네만.”

“그건 기분 더러우니까 표면상으로만. 결국엔 그 역할을 하는 것도 불릿이잖아?”

“맞기야 하네만 남들에게 그런 장면을 보여줄 일은 없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게.”

올리비아는 부끄럼이 많은 처자다.

‘혼삿길을 막을 수야 없지.’

그렇게 생각한 불릿은 역할만 그렇게 맡기고 자신은 크레파토스와 함께 아직도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충성파를 찾아다닐 요량이었다.

“으흠! 그렇사와요, 직스 자작님?”

“…….”

“……….”

- ……

정적.

“뭐야, 다들 반응이 썰렁하네?”

“…아무것도 아니오. 그럼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도록 하지.”

“각하, 2층의 침실이 가장 쓸 만할 것이옵니다.”

“크레파토스, 본인은 이제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으니 괜찮다네.”

“아닙니다, 각하! 각하야말로 이 대지의 진정한 주인, 그 누가 뭐래도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하셔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거긴 올리비아가 사용하도록 하지.”

불릿의 발언에 크레파토스도, 올리비아도 의문을 드러내며 불릿에게 물었다.

“저기, 불릿. 너무 날 위해줄 필요는 없어. 내가 여자라서 그렇게 대해주는 거 같은데, 나 이래봬도 B급 용병이라고? 아저씨, 그쵸?”

“…예, 아가씨. 아가씨의 말씀대로 각하께서 너무 배려해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검사이니 말입니다.”

- 난 찬성. 혼자서 자라고 해.

흙덩이를 제외한 모두가 반대를 외쳤으나 불릿은 고개를 저으며(흙덩이 무시….) 반발하였다.

“거절한다. 올리비아가 2층의 침실을 이용하고, 크레파토스. 1층에도 침실은 있겠지?”

불릿의 말에 크레파토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하였다.

“예, 있습니다. 본디 이곳은 제가 중앙영지에 들를 때마다 잠깐씩 사용하는 곳으로, 그리 규모가 크지 않고, 종자기사나 마부용의 침실이 둘 있습니다. 그러나….”

뒷말은 굳이 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2층보다는 질이 떨어진다는 뜻.

그것은 불릿에게 있어 별로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어디에 큰 침대가 놓여있지?”

“종자기사들이 머무는 방이 꽤나 큼지막합니다. 간이침대까지 놓으면 3인이 지낼 수 있지요.”

“그럼 그곳으로 하지.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본인이 먼저 선수를 치겠네.”

“전혀 상관없습니다, 각하! 그저 소인은, 그래도 2층의 침실을 이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쯧, 자네들이 뭐라 한들 본인은 올리비아를 2층에서 재울 것이니 그리들 알게.”

불릿이 단호히 말하자 둘은 알았다는 표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토록 단호해질 때는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던 것이다.

- 후훗, 일부러 침대가 큰 방, 나 때문이지?

“……크흠.”

흙덩이를 장시간 소환해놓다 보니 흙덩이도 불릿의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했었다.

그 중 하나가 불릿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인데, 호위의 목적도 있었지만 그냥 보는 것 자체가 좋았기에 같은 침대에 올라서는 경우가 빈번했다.

불릿의 경우엔 매우 난감한, 올리비아에게도 말하기 꺼려지는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갈수록 사람처럼 곤란하게 구는군.’

- … 지금 사람처럼… 그 다음에 뭐라고 했어?

점점 정령력이 강력해지자 때때로 사념이 전해졌는데, 온전한 경지에 들어서지 못했기에 조절이 잘 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짓궂은 장난을 쳐오는 흙덩이에겐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입을 다물게 하곤 했다.

스윽스윽.

- 흐응, 말하기 싫으면 말구. 이것도 나쁘진 않지만…

뒷말을 집어삼키는 흙덩이에게 궁금증이 일었으나 요사이 인간세상에 물든 흙덩이가 얼마나 개구쟁이가 되어가는지 아는 불릿은 애써 이를 무시했다.

그날 밤은 그렇게 각자의 침실로 향하는 것을 끝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 * *

다음날이 밝자 크레파토스는 충성파를 모아오기 위해 별장을 나섰다.

“각하의 얼굴을 아는 자들이 수두룩하니 아직 나서지 마시길 바랍니다.”

“본인은 젊어진 관계로 알아보는 이가 거의 없을 터인데?”

“각하, 지금의 각하를 보고서 원래의 각하를 떠올리긴 힘들 수 있으나 저처럼 각하의 핏줄로 오해할 수 있을 줄 압니다.”

이전의 불릿은 40대에 돌입했었으나 워낙 빛나는 외모를 지녔었기에 늙어도 곱게 늙었던지라 지금 이 상태로 거리에 나섰다간 금방 발각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너무 잘생기셔서 시선이 끌리오니 파티 당일까지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크흠.”

대놓고 잘생기다 극찬하자 철판을 깔아왔던 불릿으로서도 뭔가 얹힌 것처럼 불편했기에 괜시리 기침을 뱉었다.

그러나 이는 크레파토스만의 의견은 아니었는지, 올리비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맞아맞아. 나도 처음에 봤을 때는 용병이라길래 장난치는 얼뜨기인 줄 알았거든? 넌 너무 잘생겼어.”

‘칭찬인 것인가, 욕을 하는 것인가.’

이래저래 불릿은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자 올리비아가 크레파토스와 동행하려 했으나 이 또한 크레파토스의 만류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아가씨마저 나서면 각하는 누가 보필한단 말이십니까? 안 됩니다. 지금은 그저 곁을 지켜주십시오.”

“하지만, 나라도 가야 전력에 보탬이….”

“지금 저희는 ‘직스 자작’으로 위장하여 입성한 것이니 직스 자작의 곁에 여자가 없다는 것을 적들이 알게 된다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직스 자작은 마기에 물들어 향락에 빠져 살았었다. 그러니 여자 없이는 지내지 않는 날이 없었기에 갑자기 그가 여자를 멀리한다면 주시하고 있던 반대파 놈들이 눈치를 챌 수도 있었다.

“칫, 알았어요.”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나 불릿과 함께 있는다는 사실을 위안삼아 받아들이는 올리비아.

온종일 갇혀있어야 했기에 그녀의 기분을 크레파토스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 또한 거의 갇혀있다시피 은둔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각하께서 돌아오셔 정말 다행이지.’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었기에 크레파토스는 노구를 움직이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러면 각하, 저녁에 뵙겠습니다.”

“그래, 조심하도록.”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사라지는 크레파토스. 이제 저택에는 불릿과 올리비아, 단 둘만이 남게 되었다.

“우리 둘만 남았네…?”

올리비아가 약간 낮은 음성으로 묻자 이에 반항하듯 흙덩이가 불쑥 튀어나와 불릿의 곁을 사수했다.

- 둘은 무슨, 셋이겠지.

“…흙덩이도 있으니 셋이오.”

“쳇, 쳇!”

불만을 터트리는 올리비아였지만 뭐, 별 수 있겠는가? 불릿이 아끼는 것은 흙덩이였으니 말이다.

“정녕 각하란 말씀이십니까?”

크레파토스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불릿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떨리는 음성엔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이에 불릿은 응답해주며 동의의 뜻을 내보였다.

“육체는 이리 바뀌었으나 본인이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고 해야겠지.”

“…저희의 맹세를 기억하십니까?”

배가 불룩 튀어나온 사내는 건장한 체구의 크레파토스와는 다르게 살집이 두둑했는데, 누가 보아도 상인이란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그의 말에 불릿은 피식 웃으며 대꾸하는데….

“본인은 그 누구와도 맹세를 나누었던 적이 없다만.”

“각하가 맞으시군요.”

“베니스, 자네가 본인을 시험도 할 줄 알고,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보군.”

“송구합니다, 각하!”

불릿의 눈앞에서 용서를 비는 이 사내는 베니스라는 자로, 바포 변경백의 재무를 담당하는 재무대신이었다.

베니스는 자체적으로 상단도 갖춘 상태이기에 외부로 외출을 자주하였기에 이렇듯 어딘가를 찾아가더라도 큰 의심을 받지 않았다.

남작의 작위를 지니긴 했으나 상인으로서의 특징이 두드러진다고 봐야하겠다.

“크레파토스, 선택이 뛰어났군. 잘했네.”

“감사합니다, 각하!”

크레파토스의 선택은 탁월한 편이었는데, 이렇게 이동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다른 자들과 자연스럽게 접선할 수 있는 베니스 남작을 데려온 것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하, 소인 베니스, 아직도 바포가문에 충성을 바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백작각하께만 편을 들어드릴 수는 없사옵니다.”

베니스는 한 지방의 영주이기도하며 동시에 재무대신이었다.

상인으로서의 재능도 뛰어났기에 그의 영지는 언제나 풍족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귀족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 특징이 지금에 와서는 약점이 되었는데,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선 반역자들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거부할 수가 없던 것이다.

“내 어찌 자네의 사정을 모르겠나? 다만, 자네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기에 이렇듯 불러왔던 것일세.”

“부탁… 말씀이십니까?”

“명령을 내리기엔 과인의 부덕이 크기에 그럴 수가 없구려.”

“송구합니다, 각하.”

“송구합니다, 각하!”

불릿의 말에 베니스는 물론이고 크레파토스까지 고개를 숙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바포 변경백이 반으로 쪼개진 것은 자신의 모자람에서 생겨난 현상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유들유들했으면, 약간의 더러움을 참고서 일을 진행시켰으면, 하다못해 후계자라도 남겨뒀더라면 이렇게까지 악화일로를 걷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 남은 것은 어떻게 상황을 타개하냐는 것이었다.

“그만, 사과인사를 듣자고 부른 것이 아니니 고개를 들라.”

“예, 각하.”

스윽…

두 명이 고개를 들자 불릿은 베니스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는 본인이 돌아오길 바라는 자들에게 은밀히 소식을 전해주시게.”

“어떤 식으로 말씀이십니까?”

“흠, 베니스 자네는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직스 자작령이 엉망이란 것은 파악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직스 자작이 소인을 찾아올 이유가 없을진데, 방문했다는 소식에 소인도 조금 당황스럽더군요.”

크레파토스가 직스 자작의 이름으로 베니스를 찾아갔기에 작위가 한층 낮은 베니스가 몸소 만나러 갔었을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을 잘 이용한 크레파토스.

그러나 베니스의 당황은 거기서 끝날 수 없었다.

“배덕자 직스 자작은 이미 처형을 끝마쳤네.”

“허억?! 직스 자작을 죽이셨습니까!”

바포 변경백의 8명의 영주 중에서 단 둘뿐인 자작이 죽었다는 말에 기겁한 베니스 남작.

그도 그럴 것이, 불릿이 백작이라고는 하나 같은 귀족이자 위치도 낮지 않은 가신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던 노릇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불릿이라면 이러한 행보를 보일 수 없었기에 더욱더 놀랐을지도 몰랐다.

“감히 본인의 영토를 어지럽힌 죄, 충신 크레파토스를 살해하려던 죄, 그리고 반역자 게슐린 그랩 자작에게 자금을 지원해준 죄, 이 이상 더 필요한가?”

“아, 아닙니다, 각하. 소인 다만, 놀랐을 뿐이오라….”

“본인은 충분히 이해하니 그대는 본인의 부탁만 이행해주면 될 것이야.”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각하!”

“아, 그리고….”

불릿은 상체를 살짝 앞으로 세우며 더욱 진중한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의 꽃방울을 아는가?”

뜬금없는 말이었으나 불릿의 말은 언제나 허투루 흘려들을 만한 게 없었기에 그는 고민을 하면서 천천히 대꾸하였다.

“마의 꽃방울이야 워낙 유명하니 알기야 하지만, 어떤 명을 내리시려고 그러십니까?”

“명이 아니라 부탁이네만, 으음. 게슐린 그랩 자작이 언제부터 마의 꽃방울을 소유하고 있었는지 알아봐주시게.”

“……그가 마의 꽃방울을 소유하고 있었습니까?”

마의 꽃방울은 최상급 마정석을 가공해 만든 아티펙트. 그게 하나인지, 아니면 여러 개가 존재하는지 아무도 몰랐으나 그 특징만큼은 모두가 알 만큼 유명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바포 변경백의 주인인 바포가문에서도 소지하지 못한 물건을 가신에 불과한 그랩 자작이 소지하고 있었다는 소리에 이상함을 느끼는 베니스.

“그렇네. 단, 언제부터 소유했었고 마지막 소지한 날짜까지 알아야하네. 일에 신중을 기해야하기에 자네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를 못하는 과인을 용서하게.”

“아, 아닙니다, 각하! 무릇 군주시라면 일을 행함에 따라 비밀을 지켜야 함은 소인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불릿에게 비밀이 있듯, 베니스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어디의 물품이 더 싸고 비싼지 등.

아무리 서로를 믿고 의지하더라도 실수란 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지는 것이기에 서운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동료의 소중한 정보를 흘릴 수도 있었고, 무심코 한 말실수가 파멸을 불러오기도 하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내일도 같은 시간, 저녁 6시와 밤 12시 10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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