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8 귀환, 정령사! =========================================================================
“엄마! 아빠!”
“꺅!”
벌떡!
이불을 젖히며 상체를 일으킨 불릿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식은땀을 흘렸다.
“허억, 허억….”
쿵쾅쿵쾅-.
미칠 듯이 뛰는 가슴을 붙잡은 불릿은 침을 한번 삼키고서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꿀꺽-.
“후우…, 자네는 왜 거기에 있는가?”
“그, 그것이…자, 잠시만요!”
후다닥!
하녀는 놀란 것도 잠시, 곧장 밖으로 달려가더니 곧이어 누군가를 데리고 들어왔다.
“깨어나셨습니까, 각하!”
“…각하? 장난도 심하군.”
불릿은 아직 작위를 물려받지 못했다. 아직 후계수업도 끝나지 않았거늘, 벌써부터 각하라고 부르는 소리는 부담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각하라고 부르는 라체나의 단장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단장의 얼굴은 진지 그 자체였으니, 얼마나 진중해보였는지 장난도 못 칠 정도였다.
“각하, 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무슨 소리지? 소자가 언제 현실을 외면이라도 했던가?”
불릿은 자신의 아버지, 애로우 폰 바포 백작을 존경했기에 그를 닮고자 말투도 고치고 행동거지도 바르게 하면서 살아왔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불릿의 표정에 단장은 조용히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꼬옥…
“…이건 무슨 의미인가?”
“각하, 이렇게나 손이 떨리시는데 어찌하여 진실에서 등을 돌리려 하시나이까.”
덜덜덜-
단장의 말대로 불릿의 손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는데, 평온한 표정과는 반대로 온몸의 생체기능은 그에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불릿은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안하는지 헛웃음 뱉으며 그에게 한소리를 했다.
“허허, 어이가 없군. 아버님은 자네가 이러는 것을 알고는 계신가? 지금 소자보고 작위를 찬탈하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말이지.”
“각하! 부디, 부디 저희를 외면하지 마시옵소서!”
불릿의 손을 잡아주던 단장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외치자 뒤에서 대기하던 하녀도 뒤따라 바닥에 엎드렸고, 밖에서도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각하! 저희를 보살피어 주시옵소서!”
“각하!”
이에 불릿은 잠시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무언가 속닥거리는 소리에 단장은 고개를 들었고, 그러한 와중에도 불릿은 계속해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단장이 손을 들자 어떻게 알아차린 것인지 삽시간에 안은 물론, 밖에 있던 자들도 조용해졌는데, 단장은 불릿에게 다시금 대화를 시도했다.
“방금 무어라고 하셨나이까?”
“……라고….”
“예?”
“그…라고….”
“송구스럽사오나, 다시 한 번만….”
그러자 불릿은 얼굴에서 손바닥을 떼며 버럭 소리를 쳤다.
“그만하라고, 씨바아아아아알!!!”
주르륵-.
불릿은 울고 있던 것인지 손바닥을 축축하게 적시고도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바싹 마른 입술과는 다르게 옷가지가 젖어들 정도로 눈물을 뚝뚝 흘려대었다.
“왜, 왜, 왜! 왜 잠시도 날 내버려두지 않는 거냐! 대체 왜!”
“각하, 부디 옥체를 보존하심이….”
“나도, 나도 안단 말이다! 그런 엄청난 재앙에서 어찌 살아남는단 말이냐!”
기력을 채 회복하기도 전에 메마른 입술로 버럭 호통을 치자 그곳이 쩍 갈라지며 피가 튀는 불릿.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라도 모른 척 해주면 안 돼? 오늘 하루만이라도, 하루만이라도 부모님의 향수를 떠올리면 안 되는 거냔 말이다아!!”
“각하…….”
“나보고 어쩌라고! 왜, 그분들이 살아있기라도 하셔?!”
“…송구스럽습니다, 각하.”
“그럼 왜 지랄을 떠냔 말이다!”
팍.
불릿은 일어서서 고개를 푹 숙인 단장에게 베개를 던졌는데, 전날 없는 체력을 쥐어짜내 백작 부부를 수색하느라 기력이 떨어진 것인지 너무도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안타까운 듯 자신을 바라보는 단장과 하녀를 충혈 된 눈으로 노려보던 불릿은 그들에게 소리쳤다.
“나가! 나가란 말이다!”
“각하, 부디….”
“나가라는 소리 못 들었어?! 지금 항명을 하겠단 것이냐!”
“……잠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각하. 여보게, 나가도록하지.”
“옥체를 보존하세요, 대영주님….”
“나가아아!!”
불릿이 이불이고 시트도 있는 대로 던져대자 그들은 마지못해 방을 나섰는데, 그제야 불릿은 홀로 남을 수 있었다.
“헉, 허억.”
홀로 남겨진 방. 그곳엔 울고 있는 청년이 존재할 뿐이었다.
“흐흑, 어머니, 아버지….”
그렇게 갈 분들이 아니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며 자신이 성장하는 모습도 보셔야 했고, 결혼도 축복해주시며 손주도 안겨드리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황혼을 맞으며 인생을 돌아보셔야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뭐란 말인가? 자신은 그분들의 희생으로 살아남고, 가신들도 그분들이 구해주었을 뿐이다.
영지도 그분들이 물려준 것이고, 결국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짙은 자괴감과 외로움이 몰려들자 불릿의 몸에서 정령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크흐흑, 어머니…아버지….”
우우웅-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불릿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령력이 요동쳤는데, 그럼에도 불릿은 지금의 슬픔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렇게 흘러나오던 정령력은 희미한 그림을 그려내었는데, 그것은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마법진처럼 보였다.
불릿이 흐느끼는 와중에도 정령력은 끊임없이 요동쳤고, 이윽고 이 현상은 결실을 맺고야 말았다.
파아앗…
공중에서 물방울이 모이고, 불릿의 눈물방울 또한 그곳으로 쏠려 들어가더니 이내 그것은 하나의 형체를 이루어내었다.
- 그대가 나를 불러내었는가…?
끊임없이 요동치는 물의 결정체, 그러나 그것은 어떤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데 전날 해일에 휩쓸린 불릿의 어머니, 스틱스의 모습과 흡사했다.
“어, 어머니…?!”
공중에 두둥실 떠있는 정령의 모습에 불릿은 무릎으로 기어가더니 손으로 정령을 매만지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었다.
“오, 오오오…, 엄, 엄마. 살아있었구나…!”
- …? 그대, 나를 불러낸 자가 맞는 것인가?
불릿의 이상한 반응에 정령이 다시금 물었으나 불릿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으흐흑….”
- ……이번 계약자는 정상이 아닌듯하구나.
그 말에 불릿은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니다!’
후다닥 뒤로 물러나니 정령의 모습은 그의 어머니, 스틱스가 젊었을 적의 모습과 흡사했으나 저렇듯 차가운 표정은 그의 어머니에게선 볼 수 없었다.
매우 실망한 기색을 보이는 불릿이었으나 이내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정령에게 말했다.
“너는 누구인가?”
- …알지도 못하면서 운 좋게 소환해낸 것인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 …인간들이 말하길, 나와 같은 존재를 보곤 물의 중급 정령 엘레노아라고 하더군.
“엘레노아….”
역시 어머니는 아니었다. 어째서 지금 이 순간 물의 중급 정령이 튀어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여태까지 정령과 계약하지 못한 불릿에게 있어 이건 기회였다.
부모가 남겨준 소중한 유산, 바포 변경백을 지킬 수 있는 힘 말이다.
“계약을 맺도록 하지.”
- 그대는 아까 그 울보가 맞는 것인가?
“…계약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이 모습도 그대를 낳은 인간여성의 모습인가 보군.
그러나 이내 얼굴을 찡그리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불릿을 혐오스런 표정으로 보았다.
- 이번 계약자는 취향이 고약하군. 이런 모습을 떠올리기나 하고.
“계약, 안 할 것인가?”
- 하겠다. 그러나 계약에 의한 기술만 시전 할 뿐, 그 이상은 바라지 말도록.
“상관없다. 나 불릿 폰 바포 ‘백작’ 진(眞)은 그대와 계약을 원하는 바이다.”
- 계약에 의해 그대가 죽기 전까지…, 볼일이 없으면 돌아가도록 하지.
계약을 했음에도 불릿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돌아가려는 엘레노아를 불릿이 말렸다.
“아니, 남아있도록. 좀 더 감상하고 싶군.”
- ……더럽군. 마음대로 하도록.
정령은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보았으나 불릿은 정령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쳐내었다.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 네놈이 날 혐오하든 말든 상관없다. 어머니를 추억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야….’
어머니의 젊을 적을 회상할 수 있다면 정령에게 어떤 푸대접을 받더라도 참아낼 의향이 있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하필 물의 정령이었다는 것이다.
물은 그의 부모를 모조리 휩쓸어갔다. 그런데 대뜸 물의 정령이 나타나 계약타령을 하더니 그분들의 자식인 불릿을 혐오한다?
‘좋아할 수 없는 존재로군.’
그렇다면 철저히 이용할 뿐이었다. 그렇게 불릿은 부모를 잃었고, 물의 중급 정령사가 될 수 있었다.
* * *
덜커덩….
달칵.
“영주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잠시만 기다리도록.”
“옙. 알겠습니다.”
마부석 바로 뒤에 달린 작은 창문을 통해 마부가 보고하자 크레파토스가 응답했고, 크레파토스는 눈을 감고 있던 불릿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직스 자작님, 도착했습니다.”
“알고 있네.”
“아… 깨어있으셨군요.”
회상에서 깨어난 불릿은 천천히 눈을 뜨며 주변을 바라보았는데, 주변은 벌써 어둑했고 축제는 한창이었는지 저 멀리서 시끌벅적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지키겠다. 부모님의 유산인 영지를, 영지민을, 그리고 나 자신을.’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던 다짐을 떠올리던 불릿은 일행과 함께 크레파토스의 안내를 받아 저택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끼이익…
저택은 청소만 했는지 먼지는 보이지 않았으나 경첩의 기름칠도 덜 된 상태고, 어딘가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있어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단 것을 확연히 알려주었다.
그들은 거실에 모여 각자 소파에 앉아 여행으로 피로해진 몸을 풀며 대화를 시작했다.
“아우웅-, 몸이 다 뻐근하네.”
“올리비아, 휴식은 나중에 취하도록 해야겠네. 일단 계획부터 나눠보도록 하지.”
“알았어.”
“예, 각하.”
- 나도 신경써줘…
“……크흠.”
스윽, 스윽.
남들에게 흙덩이의 말을 전해줄 수는 없으니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
요새 들어서는 단순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는 불만이 있는 듯했지만….
‘여기서 무얼 더 해달라는 것인가?’
애초에 이 머리쓰다듬기도 친밀을 위한 의식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시초였다.
그런데 이걸로도 부족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불릿은 알 수 없었다.
“……음.”
모두가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데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었다.
흙덩이에게서 시선을 돌린 불릿은 마치 악의 보스가 고양이를 쓰다듬듯 흙덩이의 머리를 그리했는데, 썩 잘 어울리는 것이 은밀한 일을 진행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가 이곳, 중앙영지에 입성함으로 인해서 적들의 시야에도 포착됐으리라 짐작된다.”
‘적’. 그것은 반대파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더 이상 자신의 수하가 아님을 드러내는 불릿의 표현이었다.
적을 만나면 어찌하겠는가? 사로잡건, 죽이건, 결국 끝은 둘 중 하나가 몰락하는 것으로 종결짓게 돼있다.
그렇다면 몰락하는 것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정당성도 없는 가증스런 반역자들을 몰아내려면 우선 본인이 살아있음을 알려야 하는데, 이쪽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으니, 크레파토스.”
“예, 각하!”
“자네가 수고를 해주어야겠네. 괜찮겠는가?”
“믿고 맡겨주십시오, 각하!”
늙은 노장, 크레파토스의 충심을 확인한 불릿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좋군. 다음으론 올리비아, 자네는 본인의 곁을 떠나지 말도록.”
“알았어!”
“…….”
“……?”
“………?”
“………뭐야. 그게 끝이야?”
말이 이어질 줄 알고 기다렸던 올리비아는 불릿이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계속해서 기다리다가 참지를 못하고 자신이 먼저 말하고 말았다.
불릿은 올리비아의 반응이 뭔가 이상해서 기다렸던 것인데, 저렇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기에 다시금 설명해줄 필요성을 느꼈다.
“올리비아, 직스 자작은 대중에 알려지기론 탐욕스럽고 능력이 부족하고, 그러면서도 향락을 좇는 이로 알려져 있네. 이게 무얼 뜻하겠는가?”
“개변태 멍청이?”
신랄한 올리비아의 표현에 불릿이 헛기침을 뱉으며 주의를 주었다.
“커흠, 틀린 말은 아니네만 자네는 기본소양을 가다듬을 필요성이 있네. 거, 예법도 아는 처녀가 그렇게 말하면 못쓰지. 알겠나?”
“뭐라는 건지….”
“말하자면 자네는 내 곁에만 있으면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 ‘직스 자작’이 평소와 다를 게 없음을 알리는 것이네.”
============================ 작품 후기 ============================
글을 쓰다가 깜빡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8분지각 ㅜㅜ
밤 12시 10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