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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72화 (72/241)

00072  마(魔)의 꽃방울  =========================================================================

털푸덕……

목 없는 시체가 바닥에 쓰러지자 올리비아는 차마 보기 힘들었는지 경직된 상태로 목만 간신히 돌리고 있었다.

주먹은 꽉 쥔 채로 손등이 약간 하늘로 향한 상태였는데, 어깨가 목을 감쌀 정도로 솟구친 것이 어딘가로 숨고 싶다는 감정을 내보이는 모습이었다.

용병의 대부분은 몬스터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 말이 뭐냐 하면 사람을 죽이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올리비아의 실력은 분명 뛰어나다는 점에서 나무랄 데 없었으나 자신과 같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발전하기 힘들 것이다.

“흙덩이여, 돌벽을 해제하게.”

- 벌써?

흙덩이의 말에 불릿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반복했다.

“필요가 없어졌네. 해제해주시게.”

- 알았어.

그와 동시에 돌벽이 땅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르-

“와아아…아?”

“뭐지? 앞에 무슨 일이야?”

“…헉.”

병사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각자 다른 소리를 냈으며 기사들은 모두가 침음성을 흘리며 사태를 파악했다.

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불릿은 직스 자작의 목을 번쩍 들고서 고함을 외쳤다.

“바포 변경백의 군주인 불릿 폰 바포 백작 진(眞)의 이름으로 명한다! 직스 자작군은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각하께서 말하신다! 자작군의 군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재차 반복한다! 투항하라!”

불릿의 말에 크레파토스는 그의 말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반복해서 일러주었는데, 병사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5인의 기사가 불릿 일행의 앞으로 다가왔다.

척, 척-

척.

“크레파토스님. 진정…저 청년이 불릿 폰 바포 백작님이란 말이십니까?”

떨리는 음성의 기사가 불릿의 얼굴과 그 옆에서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직스 자작의 머리통을 번갈아보며 물어오자 크레파토스는 다시 호통을 쳤다.

“반복해서 알린다! 이 땅의 온당한 주인이신 불릿 폰 바포 백작각하께서 배신자 직스 자작을 처형하셨다! 모든 병사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망설이던 기색을 보이던 병사들을 뒤로한 채 불릿은 바닥에 직스 자작의 머리통을 내려놓고 마지막 남은 직스 자작의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뚜벅, 뚜벅.

탁.

불릿은 그들의 앞에 다가선 후 품에서 귀족의 인장, 펜던트를 꺼내더니 정령력을 불어넣어 인장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바포 가문의 인장이 드러나며 기사들이 눈을 부릅뜨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된 불릿.

그는 우렁차게 외쳤다.

“불릿 폰 바포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 시간부로 본인의 귀환을 알리는 바이며, 배신자 직스가 망친 영지를 수습하는 바이다!”

인장까지 확인한 기사들은 그제야 무기를 바닥에 떨구고서 무릎을 꿇었다.

“배, 백작각하, 만세! 만세!”

“백작각하 만세!”

“주군을 뵙습니다!”

기사들의 행동에 지휘관인 그들을 따라하는 병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탱그렁.

텅, 따당땅땅!

바닥에 수십여 자루의 무기와 장비가 떨어지자 어느새 병사들은 전염이라도 되듯 삽시간에 200명 전원이 무기를 내던지고 엎드리며 불릿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대영주님, 만세! 만세!”

“백작각하 만세! 만세! 만만세!!”

병사와 기사가 한데 어우러져 자신을 찬양하자 불릿은 그들의 목소리도 묻어버릴 정도로 더 크게 외쳤다.

“영지의 모두에게 알려라! 그대들의 주인이 돌아왔음을, 내가 돌아왔단 것을!”

* * *

본래 불릿은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직스 자작의 저택으로 향하면서 끊임없이 활활 타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당초 계획과는 달리 영지군 전부라 할 수 있는 200명의 병사와 5명의 기사에게 자신이 불릿 폰 바포 백작 본인임을 알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므로, 크레파토스의 도움을 통해 간신히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다.

집사는 그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정상참작을 해주었는데, 직스 자작이 개망나니였던 탓인지, 그도 아니면 불릿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깍듯에 깍듯, 더 깍듯하다간 뼈를 깎아버릴 정도로 깍듯하게 굴었다.

…….

어흠. 아무튼 간에, 크레파토스가 영지에 쏟은 정성이 있어서인지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저택에 있던 몇 안 되는 하인하녀와 집사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불릿은 영지의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기사들과 집사, 그리고 자신의 일행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각하, 어찌하여 이리도 젊어지셨습니까?”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습니다, 백작각하.”

저택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다섯의 기사들은 호들갑을 떨었고, 이미 알고 있던 수습기사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는 나이가 상당한 인물이었지만 불릿의 예전 모습은 알지 못하였기에 그 또한 놀라워하고 있었다.

“모두 그만! 언제까지 각하를 곤란하게 만들 것인가!”

영지를 수복하자 불릿은 제일 먼저 크레파토스를 측근으로 앉혔는데, 현재 직스 자작령에서 크레파토스만큼 영향령 있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크레파토스가 소리치자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 수습기사들까지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구한다.

“죄송합니다, 각하!”

“용서해주십시오, 각하!”

“그만들 됐네. 본인이 젊어진 점은, 아직까지 알 수는 없으나 찾고 있으니 언젠간 알게 되겠지. 그것보다….”

불릿은 널따란 의자에 앉은 채로 그들을 훑어보았는데, 직스 자작이 앉았으리라 짐작되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지는 듯했다.

“당장 급한 것은 직스 자작령의 경제상태일세. 후읍.”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는지 불릿은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는데, 이 단순한 동작에서도 기품이 흘렀다.

불릿이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올리비아는 걱정스러워하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있었는데, 입술을 오물거리는 것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음에도 꾹 참는 모습이었다.

“각하, 피곤하신 듯하온데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하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노인의 고충은 노인이 안다고, 크레파토스는 비록 겉모습은 젊어졌으나 불릿의 본래 나이를 떠올리며 휴식을 권장했다.

확실히 어제와 오늘은 사태를 수습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에 거의 자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기사들은 건장한 육체를 지녔으며 마나 또한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자들이었고, 올리비아 또한 그쪽 계열이었기에 별다른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옆에서 서있는 집사야 뭐, 자신이 한 짓이 있으니 정상참작이라 한들 조금 피곤해도 할 말은 없으리라.

자신을 보는 기사들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불릿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본인의 백성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내 어찌 쉴 수 있겠는가? 허나 크레파토스, 자네가 그리 말하니 이번 회의만 마치면 조금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감사합니다, 각하!”

“본인이 쉬겠다는데 고맙다니, 별 말을 다 하는군. 어쨌든 간에, 일단 자금부터 마련해야 할 터인데. 집사, 직스 자작의 자산규모가 어찌 되는가?”

드디어 자신이 나설 때가 되자 집사는 성큼 한발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 대영주님. 그간 직스 자작님…, 자작은 주민들의 고혈을 짜내어 사치품을 사들였고, 그조차 모자랐는지 군대를 거듭 축소시키며 향락을 유지해왔습니다.”

집사의 말에 불릿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고얀놈인지고. 그래, 계속해서 말해보도록.”

“그래서 남은 자금은 490골드하고도 5실버가 있으며 미술품과 고리대금의 이자서류를 처리한다면 5천 골드를 추가로 마련하실 수 있겠습니다.”

“고리대금?”

대번에 인상이 팍 찌푸려지는 단어. 그것은 옛날, 지금은 죽은 직스 자작이 어릴 적부터 문제시되던 행위였다.

고리대는 일단 시작하는 순간 영지가 삽시간에 피폐해지는 악의 축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 몹쓸 짓을 해왔던 것인가?”

“맞습니다, 대영주님. 그래서 그를 피해 영지에서 도망친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어쩐지 영지가 망해간다고 한들 사람이 너무 없다고 생각되었더니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불릿은 자신이 맨 처음 마주했던 화전마을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정상적인 금융이 아닌 것은 모조리 폐기하도록. 미술품의 시세와 처리는 어떻게 되지?”

“미술품은 사들일 때는 비싸나 판매할 때는 마땅한 거래처가 없을 시엔 가치가 대폭 삭감됩니다. 그리고 현 직스 자작령의 경우, 상인들도 거래를 끊은 지 오래라 처리하기 곤란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판다고 한다면?”

불릿의 물음에 집사는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아마, 600골드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대영주님.”

“……차이가 심하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나마도 팔 수 있을 때의 이야기로, 현재 남은 자금은 490골드 5실버와 보석류가 전부입니다.”

“마정석은 없는가?”

마정석만큼 쉬이 판매하면서 손해 보지 않는 물품도 없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집사는 고개를 푹 숙이며 부정적인 말을 건넸다.

“아쉽지만 사치품을 제외하곤 모조리 팔아치웠기에 남은 마정석은 없습니다.”

“으음…, 직스 자작의 머리를 해부해보고 싶군.”

대체 그토록 융성하던 영지를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망가트려 놓을 수 있었을까?

그냥 허수아비를 앉혀놔도 이것보단 상황이 나았으리라.

“자작의 귀중품은 얼마쯤 나가는가?”

귀족이라면 장신구 몇 개쯤은 당연히 가지고 있다. 남성이라고 해서 귀금속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여성용보다 더 화려하고 비싼 것도 많았다.

이는 남성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장신구를 돋보이게 만들어야 해서 생겨난 현상, 그래서 수수해 보이는 반지가 사실은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싸다던지, 그냥 줄을 꼬아놓은 것 같은 팔찌가 기사의 몸값만 한다던가, 그렇다는 이야기.

“2만 5천 골드입니다.”

“……잘못 말했나보군. 얼마라고 했지?”

“2만 5천 골드, 즉구가로 구매했기에 다소의 오차범위는 있으나 최소 2만 골드는 받을 수 있는 물건입니다.”

“…혹시 그 자작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어요? 메리 앙투아네트라던가….”

미칠 듯한 액수에 모두가 놀라는 사이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던 올리비아가 드디어 입을 떼었다.

올리비아가 한 말은 메리 앙투아네트라는 매우 사치스러운 군주의 아내를 일컫는데, 그녀 때문에 영지가 파산해 일족 모두가 처형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기에 유명한 인물 중 하나였다.

직스 자작도 목을 베여 죽었고, 자신의 사치가 큰 이유를 차지했으니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이에 집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여성은 아니지만 사치스럽긴 했습니다. 대영주님, 그가 구매한 물품은 마(魔)의 꽃방울입니다.”

“뭐라고! 지금 마의 꽃방울이라고 했나?!”

벌떡!

졸린 기색이 그득하던 불릿이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음에도 기사들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아니, 놀라긴 했으나 그들은 불릿의 행동이 아닌 귀중품의 가격에서 놀란 것이리라.

불릿이 놀란 이유, 그것은 마(魔)의 꽃방울이 단순히 비싸기만 한 보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의 꽃방울이라니….”

연신 중얼거리면서도 그가 언급하는 보석, 마의 꽃방울은 무려 최상급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아티펙트였다.

소지하고만 있어도 마나를 다루는 자에게 도움을 주고, 일단 마정석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기에 흡수만 할 수 있다면 벽을 깨부수는 것은 우스울 지경이었다.

다만, 최상급의 농밀한 마기가 담겨진 마정석을 함부로 흡수했다간 죽음을 부르기에 그걸 시도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역사 속에서도 마의 꽃방울을 흡수하려다 오히려 마기에 잠식돼 주변을 폐허로 만들고 죽은 이들이 허다했고, 이것을 탐하려다 전쟁이 일어난 경우도 많았다.

그만큼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마의 꽃방울이었는데, 무능력의 표본인 직스 자작이 어찌하여 그걸 얻어낸 것인지 모두가 궁금해 했다.

“대영주님, 그리고 가신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믿기에 이 얘기를 꺼내는 것입니다. 솔직히 마의 꽃방울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허, 마의 꽃방울이 중요하지 않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 해야 할지….”

5인의 기사 중에 하나가 중얼거리자 다른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저녁 6시와 밤 12시 10분에 이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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