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65화 (65/241)

00065  직스 자작령  =========================================================================

밝은 빛에 휩싸인 공터, 그곳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원활한 텔레포트의 진행을 위해 주변의 물건들을 치워둔 상태였다.

슈우웅-

이윽고 빛이 사그라들자 크고 작은 인영 셋이 나타났다.

“우웁, 자, 잠시만…, 웁!”

“으음….”

- …?…?

텔레포트의 후유증이랄 수 있는 어지럼증에 올리비아가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고, 불릿 또한 속이 좋지는 않은지 짙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흙덩이는 정령인지라 멀미는 없었으나 세상이 핑핑 도는 게 신기했는지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선 비틀거렸다.

‘이래서 장거리 이동마법은 기피했던 것이지.’

공간이동 마법은 편리하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멀미란 것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이렇듯 갑작스레 장소와 배경, 기후가 바뀌면 사람은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몸이 오작동을 일으켰다.

구토, 메스꺼움, 어지럼증, 멀미 등등.

의외로 흔들림이 심한 마차를 탔을 때엔 멀미를 하는 이가 없었는데, 자주 이용하는 것엔 사람은 내성이 생기는 법이었다.

대체 누가 텔레포트 마법을 익숙해질 때까지 이용하겠는가?

그러니 텔레포트 마법 = 멀미나는 마법이라는 이상한 상식이 생겨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우…, 테, 텔레포트가 이런 거였어?”

“……일단 속부터 다스리시오.”

“알았…, 웁!”

다시금 속에서 올라오는지 헛구역질을 하며 쪼그려 앉는 올리비아의 등을 두드려주는 불릿.

마치 과음한 사람의 모습과도 같았기에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 불릿, 여기 막 돌아…

아직까지도 흙덩이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좀체 균형을 못 잡는 모습이었다.

“후우우.”

간신히 속을 다스린 불릿은 머리를 부여잡고선 흙덩이에게 다가가 몸통을 잡아주었다.

꼬옥-

“이제 좀 괜찮으신가?”

- 이상한 마법이네.

그러면서 흙덩이가 하는 말.

- 안 쓰다듬어줄 거야?

“딱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불릿은 흙덩이의 몸통에서 손을 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휘이잉-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썰렁하다는 것은 이렇다라고 몸소 알려주는 듯한 거리.

이전에 보았던 파르탄 영지만큼이나 직스 자작령은 황폐했다.

“우웁, 아직도 메스껍네…, 뭐야, 여긴? 전쟁이라도 났어?”

“…정도가 심한 것 같소.”

그들이 보는 광경은 전쟁의 여파에 의해서인지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곳들이 속속 보였다.

잡초도 곳곳에 보였고, 치우지 않은 쓰레기도 한쪽 구석에 뭉쳐있었다.

“좀 더 확인해봐야겠소.”

일행은 불릿의 말에 따라 직스 자작령을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가관이었다.

여기저기 깨어진 블록에 사람도 거의 안 보였고, 유령도시도 아닐 텐데 곳곳이 문을 걸어 잠근 상태였다.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하려면 쌍방에서 동의하에 도착지점의 지부에서 좌표를 알려주면 출발지점에선 그것을 토대로 마법진을 구축했다.

대부분 도착지점의 마법진은 미리 만들어놓은 마법진을 관리하는 자가 존재했는데, 마탑지부가 존재한다는 것은 망한 영지는 아니란 소리였다.

헌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에 근접한 모습이었으니, 올리비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곱지 않았다.

“파르탄 영지랑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깃발이….”

모두가 볼 수 있는 높은 곳에는 변경백에 속했다는 의미의 백작기와 자작기가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나마 손질된 자작기에 비해 백작기는 여기저기 찢어진 것이 상태가 좋지 못했다.

영주가 깃발을 저런 상태로 관리하면 대영주는 그를 반역으로 여겨 없애버릴 수도 있는 구실을 획득할 수 있는데, 무슨 생각에서 저렇게 방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배신인 것인가.’

불릿이 그토록 우려하던 배신자가 나타난 것일까? 그의 안색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일단 정보부터 습득하는 게 좋겠소.”

“여기가 정말 너희 고향이 맞아? 완전 개판…, 아차. 미안.”

“…아니오. 내가 봐도 심각하니. 이곳은 내 고향중 하나라고 보면 되오.”

“고향중 하나? 그게 무슨 말이야?”

“나중에 알려주겠소.”

무슨 고향이 여러 개도 아니고 불릿의 말은 이상한 감이 있었다.

사람이 몇 번씩 태어나는 것도 아닐 진데 고향이 여러 개일 수는 없지 않은가?

올리비아가 의문을 품어도 불릿은 딱딱히 굳은 얼굴로 문을 연 상점과 주점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 * *

“십부장님, 텔레포트 마법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드디어 온 것인가?”

병사의 보고에 기사가 대답했다.

“예, 방금 마탑에서 보고를 마치고 돌아갔으니 확실합니다.”

마탑은 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았다. 그저 도움이 필요하면 일정한 대가를 받고 협조할 뿐.

마탑이 지부를 설치한 것도 상인의 태도로 임한 것이지 그 나라에 속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기에 이러한 보고도 병사를 통해서 알리는 것이다.

“끙, 그럼 가야겠지.”

“정말 잡아들이실 겁니까? 상대는 정령사입니다만.”

병사도 알 만큼 정령사는 강력하고, 희귀했다. 대부분 뒤에 연줄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함부로 대하면 어떤 경을 치게 될지 몰랐다.

병사의 말에 기사는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내가 하지, 네가 하냐?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낸들 어쩌라고.”

기사 또한 명령에 불만이 있는지 한숨을 푹푹 쉬는 것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이놈의 영지, 뜨던가 해야지 원.”

“쉿, 누가 듣겠습니다.”

기사의 말에 병사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사방을 살폈는데, 기사는 그런 병사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

“멍청이가, 누가 신경 쓴다고 그러냐? 영주도 신경을 안 쓰는데 그 밑에 대체 누가? 막말로, 나도 신경 안 쓰는데 네가 쓰리?”

“끄응, 하지만 십부장님. 정령사는 정말로 위험합니다.”

정보에 어두웠던 불릿과는 달리 이들은 그래도 아는 것이 있다고, 사람을 통해 전해들은 것이 있기에 대륙정세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아, 몰라! 정 뭐하면 공무집행방해로 데려가야지! 나 혼자 갈 거니까 넌 청소나 해둬라.”

십부장이라 불린 기사가 병사의 말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걸어나가자 뒤에서 병사가 중얼거렸다.

“진짜 위험한데, 에휴.”

병사가 한숨을 내쉰 이유는 십부장 밑에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과 이 넓은 막사를 홀로 치워야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 것이다.

* * *

그 시각, 불릿은 썰렁한 주점 내부에서 주인의 푸념을 듣고 있었다.

“말도 마시오,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되다간 나 말고도 모조리 망하고 말 것이오.”

“그렇게 상황이 안 좋소?”

“상황? 이보시오, 눈이 있으면 주변을 좀 둘러보고서 말을 하시오. 내가 꼭 말로 설명해야겠수?”

주인의 말대로 이러한 점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원인은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럼 이렇게 된 이유라도….”

쾅!

그때, 주점의 문이 부서질 듯 소리를 내며 열렸는데, 황폐한 영지와는 다르게 꽤 그럴듯하게 차려입은 기사가 불릿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텔레포트로 나타난 사람이오?”

“그렇소만…, 무슨 일로 그러오?”

기사의 물음에 불릿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으나 기사는 마침 잘 걸렸다는 얼굴로 불릿을 잡아가려했다.

“당신을 불법 텔레포트 이용으로 체포하겠소.”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린 마법사의 탑에서 온 것이란 말이오!”

“무슨 일이야?”

주점이 소란스러워지자 밖에서 따로 행동하던 올리비아가 들어왔는데, 그녀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발견한 기사가 칼을 뽑았다.

스르릉-

“만약 반항하겠다면 목숨을 끊어버리겠다! 얌전히 오라를 받아라!”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우린 신고를 하고 왔다고!”

올리비아가 거칠게 말했으나 불릿 일행이 잘못한 점은 없었다.

애초에 텔레포트 마법이란 게 쌍방에서 미리 합의를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지금 기사의 말은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사는 막무가내로 불릿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

“일단 너부터 포박하마!”

쉬익!

기사는 불릿을 넘어뜨릴 생각인지 발차기를 해왔는데, 그것을 가만히 볼 올리비아가 아니었다.

퍽-!

“어딜 감히!”

올리비아는 똑같이 발을 걸어 기사의 발차기를 막아냈는데, 이에 성난 기사가 칼을 휘둘렀다.

“이년이 진짜! 그 건방진 다리를 잘라주마!”

패애액!

공기를 가르며 기사의 검이 올리비아의 다리를 자르려하자 올리비아는 번개처럼 뽑아든 검으로 그것을 막아냈다.

챙-

“너 좀 뒤지게 맞아야겠구나?”

그러면서 시작된 올리비아의 반격.

그녀는 사정없이 기사를 몰아치더니 금세 기사를 무릎꿇렸다.

탱, 챙-, 챙…

기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검은 그녀가 발로 차내자 구석에 처박혀 먼지구덩이에 뒹굴었다.

기사는 굴욕적인 자세에 인상을 찌푸렸으나 자신의 목에 바싹 붙은 검날에 침도 삼키기 힘들었다.

꿀꺽.

“크으….”

“그만, 올리비아. 그 정도면 됐소.”

불릿의 말에 올리비아는 살짝 검을 옆으로 치웠는데, 불릿의 말만 있다면 금방이라도 기사의 목을 베어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기사가 불릿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러면 서로에게 좋지 않소.”

“그걸 판단하는 것은 내가 할 문제고, 어째서 시답지도 않은 억지를 부린 것이오?”

“그건….”

기사는 사정을 얘기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본론을 털어놓았다.

“윗선에서 명령이 내려왔소. 당신을 제압한 후 데려오라고.”

“어째서 그런 명령이 내려온 것이오?”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소? 젠장.”

기사는 투덜거리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는데, 이에 불릿은 의문을 품었다.

“부끄럽지도 않소?”

“이런 상황에서 나만의 기사도를 따르다 목이라도 잘리면, 책임질 것이오?”

“……흠.”

사정이 있는 듯했지만 현재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불릿은 재차 입을 열어 기사에게 물었다.

“안내해보시오. 내 직접 담판을 지어야겠군.”

“안돼, 볼레트! 너 미쳤어? 거기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이런 영지에서 우릴 위협할 인물이 존재하겠소?”

물론 불릿이 기사를 따라가려는 이유가 그런 연유 때문은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야겠어.’

그는 자신의 영지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알고 싶었고, 기사가 윗선이라 부르는 곳에 가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따라가려는 것이다.

“올리비아, 풀어주시오.”

“……쳇! 아악, 짜증나!”

그녀는 히스테릭을 부리면서도 불릿의 말에 따랐는데, 그녀가 불릿에게 호감을 품고 있지 않았다면 단방에 기사를 죽이고 다른 나라로 떴을지도 몰랐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자 기사는 목을 문지르며 불릿에게 말했다.

“후우, 일단 고맙긴 한데, 안대로 눈을 가려야하오.”

“뭐라고? 이게 살려주니까 정신을 못 차리고…!”

“그만! 올리비아, 됐소. 내가 처리할 테니 그대는 쉬고 계시오.”

“후우, 너 이따가 보자.”

철컥-.

올리비아가 간신히 화를 억누르며 검을 칼집에 꽂아 넣자 기사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고, 불릿은 그런 그에게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는 정령사라서 가려봤자 소용없소. 설마 정령의 눈까지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불릿의 말에 기사는 언제부터 있던 것인지 자신의 뒤에 물끄러미 서있던 흙덩이를 발견하게 됐는데, 순간 소름이 돋았다.

겉보기엔 미소녀였으나 경지에 오른 기사의 눈엔 흙덩이가 평범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노랗군.”

피부색이 다른 이들과 확연히 차이나기도 했지만.

“후우, 알겠소. 어차피 나에게 권한은 없는 것 같구려.”

지금 이 상황에서 기사가 자신의 권한을 내세워 둘, 아니 셋을 압박하려 한다면 단방에 목이 잘려서 바닥에 나뒹굴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개판이 된 영지에서 고작 기사 하나를 위해 정령사가 포함된 범죄자를 추적할 것 같진 않았기에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푸우우…, 따라오시오, 안내하겠소.”

“허튼 수작부리면 뒤질 줄 알아라?”

불릿에게 나긋나긋 굴었던 올리비아가 어느새 용병 올리비아로 변신하며 험악하게 굴자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보시오, 저 여자 좀 어떻게 해보는 게 어떻소? 살떨려서 걸을 수가 없겠소.”

“…….”

기사의 엄살에도 불릿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이에 기사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 참나. 그 남자에 그 여자로구만. 둘이 아주 잘 어울린다, 잘 어울려!”

이것은 비꼬는 말이었으나 여기서 화를 냈어야 할 올리비아가 잠잠히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밤 12시에 이어서 뵙겠습니다.

...10분가량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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