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64화 (64/241)

00064  마탑과 흙덩이  =========================================================================

불릿은 마탑에서 텔레포트를 시전하기 위한 마법진을 준비하는 사이 자신들의 신체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다.

흙덩이, 그리고 불릿은 깨달음이랄지 각성이랄지, 알 수 없는 현상을 겪었기에 몸에 이상은 없는지 알아놔야 했다.

물론 몸에 해가 되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알아봐서 나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 여기가 좋아.

흙덩이의 기술을 실험하려면 넓고 인적이 드문 공간이 필요했기에 불릿은 잠시 마탑의 영역에서 나왔다.

모처럼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는 곳이기도 했고, 마탑의 주시를 받지 않아도 되었기에 흙덩이는 들뜬 모습을 보였다.

“본인도 좋은 것 같군.”

불릿이라고 해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이 싫진 않았다.

마법사의 탑 지역의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불릿의 일행에 관심을 주었기에 부담이 되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들렀던 마을과 영지들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잘 산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그런 시선을 받으니 여관 밖으로 나서는 일도 거북했다.

“자, 이제 기술을 점검해 보세나.”

- 응. 뭐부터?

모처럼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으니 흙덩이도 미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던지 불릿의 손이 자연스레 머리로 올라갔다.

스윽스윽.

“흐흠. 뭐, 느긋하게 하세나. 오늘은 자네와의 시간이니 말일세.”

- 응. 응. 그럴게.

그렇게 불릿과 흙덩이는 나무그늘에 앉아 잠시간의 휴식을 취했다.

짹-

째짹-.

그래도 도시인근이라서 그런지 참새들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노니는 모습이 보였다.

- 불릿, 새가 날아가.

하늘과 숲을 오가며 노는 참새들을 보던 흙덩이가 등을 기댄 채로 앉아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직 흙덩이에겐 필요한 단어가 아니면 가르치지 않은 말이 많았기에 불릿은 이번 기회에 알려주려 했다.

“저것은 참새라고 하는 새일세.”

- 참새?

째째째째째째-

그 순간, 참새떼가 단체로 지저귀기 시작했는데, 듣기 좋던 소리는 어느새 소음으로 변질되었다.

- 시끄러워.

“으음…,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이지?”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난 불릿이 새떼가 몰려있는 곳으로 다가가도 참새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보통 이정도로 사람이 접근하면 도망가는 것이 날짐승인데, 웬일로 꼼짝하지 않았다.

“이상한 녀석들이로고.”

가까이 접근한 불릿이 참새떼가 둘러싼 바닥을 확인하려고 쫓아내보았다.

“훠이, 훠이-.”

째째짹!

째째째째째째짹-!

푸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크으, 정말 듣기 싫군.”

수십 마리의 참새가 한 번에 날아오르자 깃털과 함께 먼지바람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참새들의 떼창은 한적한 지역의 익숙해진 불릿의 귀를 아프게 만들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고생한 불릿이 팔을 저으며 그곳에 다가가자, 참새떼가 떠난 자리엔 여기저기 살점이 뜯긴 쥐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쥐?”

한쪽 무릎을 꿇은 불릿이 쥐의 시체를 바라보자 그의 옆에 다가온 흙덩이도 그것을 쳐다보았다.

- 고기야?

“어허, 고기가 아닐세. 쥐의 사체인 것이지.”

- 고기는 동물 죽은 거, 아냐?

“으음…, 그 표현은 그리 좋은 것 같진 않군.”

어쩐지 섬뜩하기도 했고, 꼭 금방이라도 먹을 것 같은 표현이었기에 불릿은 흙덩이의 말을 교정해주었다.

“고기라는 표현은 사람이 먹는 음식에만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네. 그 외에는 죽은 대상을 조롱하는 의도로 쓰이니 되도록 삼가시게.”

- …? 몰라. 불릿이 알아서해.

“……그러도록 하지.”

정령에게 복잡한 인간사를 강요하기에도 뭣한 것이었으니 불릿은 흙덩이가 성장하더라도 타인과의 대화는 자제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크흠, 역시 쥐새끼들의 최후는 이런 법이지.”

참새들에게 뜯어 먹힌 쥐의 시체를 보자니 잠시 잊고 있었던 흑마법사들에 대한 경각심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흑마법사, 그들이야말로 대륙에 혼란을 가져온 악의 축이며 현재 불릿이 외톨이가 되도록 만든 적(敵)이었다.

- 불릿? 화났어?

본래 흙덩이가 불릿의 감정을 느끼려면 아주 격해진 상태에서만 가능했는데, 지금은 단순히 흑마법사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떠올린 것뿐인데도 흙덩이가 알아차렸다.

불릿은 이것에 대해서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마력삽을 흡수하고 난 직후겠지.’

이렇게 인적 드문 장소에 온 이유도 그것으로 인해 변한 차이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쉴 만큼 쉬었으니 불릿은 슬슬 흙덩이와 실험할 필요성을 느꼈다.

“흙덩이여, 저기 나무를 향해 주먹 쾅을 사용해보게.”

- 그럴까? 주먹 쾅.

떠엉!

드드득, 쿠웅-.

불릿의 명에 의해 날아간 흙덩이의 주먹이 나무를 강타하자 단번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파괴력이 증가한 것은 아니었으나 정교함이 한술 늘어나 정확한 타격지점을 강타했기에 벌어진 현상.

- 주먹 쾅, 쌍주먹 쾅, 지옥송곳!

떠엉!

쿠파앙!

푸슉!

불릿이 따로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흙덩이는 스스로 움직이며 기술을 연발했는데, 이는 흙덩이라는 존재가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일 정도로 발달했음을 의미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안다는 것은 누적된 경험의 산물이기도 했으나 그 외의 요소도 있음이 분명했다.

“대체 그 현상은 뭐였던 것이지…….”

손등으로 오른팔을 받치며 턱을 쓰다듬던 불릿은 요란하게 기술을 남발하는 흙덩이에게 중지를 요청했다.

“그만하면 됐네, 흙덩이여.”

- 벌써?

신이 난 흙덩이가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고서 되묻자 불릿이 손짓을 했다.

“흙덩이여, 자네의 지적능력이 발달된 것 같은데, 확인 좀 해보아도 되겠는가?”

- 뭘 할 건데?

이번엔 어디서 배운 것인지 수줍은 소녀처럼 뒷짐을 지고서 하늘하늘 다가오더니 불릿에게 밀착했다.

‘뭐지, 이것은?’

아마도 올리비아가 선보였던, 그 본인도 부끄러워하던 자세가 분명했다.

제발 이런 거는 따라서 안 하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불릿.

‘으으음…. 약간 귀여운 것 같기도…?’

그러나 이내 고개를 털며 강하게 부정한다.

‘이게 무슨 추태인가! 백작 체면이 말이 아니군.’

- 왜 그래?

머리를 옆으로 숙이며 갸웃하는 자세, 그러면서도 은근히 가슴을 강조하는 것도 파르탄 영지에서 올리비아가 영주의 의뢰를 수행하며 적을 유혹할 때 보인 것이다.

“으, 으음….”

불릿의 생각은 그만두게 해야겠다고 판단했으나 몸이 좀체 움직이질 않았다.

아니, 생각이 아닌 마음만 따지면 그냥 보고 있는 게 좋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불릿의 연륜이 몇인가? 창창한 스무 살의 모습과는 달리 40살의 장년층이 아니던가!

- 불릿은 이상하네-?

“무, 무엇이 그러한가, 흙덩이여?”

- 그냥, 아무것도?

한층 능숙해진 흙덩이와의 대화에 불릿은 식은땀이 흘렀다.

마력삽을 흡수하기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이후로 언어구사력이 유창해진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확실히 달라졌다.’

몸도 어딘가 몇 살 더 먹은 것처럼 자라있었고, 그에 따라 행동이나 말투도 조금씩 변해있었다.

다만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는 있어도 자세한 사항은 좀체 알아낼 수가 없었다.

각성이라기엔 뭔가 미흡하고, 불릿 본인은 달라진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 흐응, 걔한테는 잘도 말하더니 나한테는 반응이 이상한데?

‘뭐가 이리도 유창한 것인가!’

뜬금없이 사람과 흡사한 게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될 만큼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자 속으로 소리를 버럭 지른 불릿.

그러나 연속된 흙덩이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던 불릿도 담담해지자 이내 멈추는 흙덩이.

- 올리비아가 이러면 껌뻑 죽는다던데….

“그게 무슨 소린가?”

인간처럼 혼잣말도 하는 흙덩이, 그런데 내뱉은 혼잣말이 못내 신경 쓰이는 말이었다.

- ……

갑자기 묵묵부답이 된 흙덩이에게 대화를 시도했으나 그 이후로 대꾸가 없자 불릿도 난감함을 내보였다.

아직 확인할 것도 많은데, 어쩐지 변해버린 흙덩이의 태도로 인해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어느새 텔레포트 마법진이 준비가 되었다.

* * *

뚜벅, 뚜벅.

“…….”

“우리 예쁜이가…조금 큰 것 같다?”

- …흥.

여전히 흙덩이를 곁에 껴안고 다니던 올리비아에게 흙덩이는 새침하게 반응했다.

그래봤자 들리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콧소리를 내는 자세만큼은 비슷했으니 뜻은 전해졌을까?

둘이 노닥거리며 이동하는 와중에 불릿은 자신의 영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영주들이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을는지….’

이제 곧 자신이 다스리는 바포 변경백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태 이곳까지 지나오며 보아온 영지들은 하나같이 상태가 영 아니었다.

라 쓰랑이라는 요새도시가 그나마 성세를 이루고 있었지만, 영지 전체가 잘 사는 것은 아니었고 그곳만 도시라는 느낌을 주었다.

아무리 용병과 상인에 대한 정책으로 활성화가 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몬스터가 들끓고, 대륙 전역이 흑마법사와의 전쟁에 피해를 입었기에 상황이 좋을 순 없었다.

“이곳입니다, 볼레트님.”

“…….”

“볼레트님?”

“아, 실례했소. 바로 이곳이오?”

앞장서서 걷던 불릿은 안내를 받던 것도 잊을 정도로 고뇌하던 중이었기에 마법사의 말에 퍼뜩 정신 차렸다.

“…볼레트님, 땅의 정령에 대한 연구를 기한연장하시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오?”

마법사가 마법진이 설치된 방에 들어가지 않고 문앞에서 불릿을 붙잡고선 이전의 얘기를 이어나갔다.

또 이 얘기냐는 불릿의 표정에도 마법사는 간절한 어조로 거듭 부탁했다.

“이번엔, 이번엔 반드시 결과를 내겠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제발!”

“당신이 결과를 내건, 말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그, 그건…, 아! 말을 잘못했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어떠실런지요?!”

이전에도 돈이 모자라 곤란을 겪었던 불릿을 떠올렸던 것인지 마법사가 그의 팔을 붙잡고선 소리쳤다.

그러나 이 마법사가 알고는 있을까? 어차피 영지에 도착한다면 그깟 25골드, 불릿에게 있어선 푼돈 그 자체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여정의 끝이 코앞인데다가 부족했던 돈도 해결된 마당에 그깟 몇 푼을 아끼려고 소중한 흙덩이를 저런 불한당의 손에 내맡길 불릿이 아니었다!

“필요 없소. 한 번만 더 그런 소리를 꺼냈다간 당신에 대한 탄원서를 올리겠소.”

“읍!… 주의하겠습니다.”

마탑엔 마법사를 등급별로 나누었는데, 눈앞의 마법사는 실버급이었다.

실버급이면 나름 힘을 주는 계층이었으나 그 위로 골드, 플래티넘급이 있었다.

마탑에서 마법사를 등급별로 나눈 이유는 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제한하기 위해서인데, 무분별한 연구로 제정이 파탄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탄원을 받아 위의 등급에 올라서는 것에 지장을 받으면 연구비를 더 받을 수가 없으니 기겁하는 것이다.

끼이익…

마법사는 더 이상 군말 없이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된 방의 문을 열었는데, 어쩐지 경첩에 기름칠이 덜 된 소리가 났다.

“텔레포트는 여간해선 사용하지 않는 마법인지라….”

그것이 머쓱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은 부가설명을 잇는 마법사.

부유하기로 유명한 마탑에서는 이러한 점도 부끄러울 수 있었다.

불릿만 하더라도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이런 정비가 덜 된 곳을 손님에게 내보인다면 체면이 손상될 것이다.

“마법진 위에 서계시면 됩니다. 다만 주의하실 사항이 있는데, 빛이 사라질 때까지 절대,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거듭 주의를 주는 마법사에게 불릿과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흙덩이는 그를 본체도 하지 않고선 마법진에 올라섰다.

뚜벅, 뚜벅.

탁.

“올리비아, 정녕 괜찮겠소?”

이곳에서 머나먼 곳인 루드밀라 왕국까지 가는 것에 괜찮으냐는 물음.

그러나 올리비아는 아주 쿨하게 대답해주었다.

“이거 왜 이래? 우린 동료라고, 동료.”

“…고맙소. 정말로.”

모든 동료를 잃은 불릿에게 올리비아라는 존재는 다시금 결사대의 향수를 일으키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이곳까지의 여정에서 올리비아가 없었다면 위험했을 상황도 여럿 있었고,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의지한 구석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흔쾌히 허락했으니 내심 기쁜 마음이 든 불릿이었다.

이번엔 흙덩이를 바라보는 불릿.

“흙덩이여, 그곳에서도 잘 부탁하네.”

- 난 언제나 괜찮아. 불릿의 집으로 빨리 가자.

“…….”

말없이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불릿. 그러자 모든 준비가 끝났는지 마법사가 외쳤다.

“각자 몸이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지신 상태에서 꼼짝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불릿과 흙덩이도 살짝 떨어졌다. 흙덩이는 떨어지기 싫었는지 발도 떼지 않았지만 말이다.

“루드밀라 왕국의 직스 자작령! 텔레포트 발동!”

파아아아앗!

밝은 빛에 휩싸이던 불릿과 일행은 그렇게 마법사의 탑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선작은 거의 없는데 추천이 다닥다닥...

지금 이 시간에도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오니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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