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62화 (62/241)

00062  마탑과 흙덩이  =========================================================================

불릿의 물음에 로비는 당황함 대신에 놀라움을 보였다.

“텔레포트요? 하지만 텔레포트는….”

텔레포트는 단번에 공간을 뛰어넘는 이동마법. 누구나 이용하고 싶어 하지만 마탑 내부에서도 사용하기 매우 까다로운 절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물며 불릿은 외부인, 일반적인 경우라면 불가능할 터였다.

그러나…….

“대가는 이것으로 지불하겠소.”

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하나의 펜던트였는데, 바로 파르탄 영지에서 의뢰를 수행하고 받아낸 것이었다.

차륵-.

펜던트를 받아낸 로비는 그것을 이리저리 둘러보고선 불릿을 쳐다보았다.

“이건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저는 이게 무엇인지 잘 몰라서 윗선에 여쭤봐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영재라 할지라도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 로비는 이제야 견습인 마법사, 안내역을 맡았다하여 모든 것을 알리라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로비는 불릿에게 양해를 구하고선 통로의 한쪽 구석으로 이동하더니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우웅-

짧은 마나의 파동이 지나간 후 로비는 홀로 속닥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10분정도 그런 행동을 보이던 로비는 다시 일행에게 돌아와 내려받은 사항을 알려주었다.

“상부에서는 펜던트를 대가로 지불이 가능하다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텔레포트의 허가에 한정되었으며 요금은 별도로 지불, 마법물품의 분석 또한 추가 금액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요금에 관한 내용이었다.

“텔레포트의 경우 바포 변경백 내의 중앙령과 인접한 직스 자작령까지 20골드, 물품분석에 관해선 5골드로 책정되었습니다.”

“으음, 돈이 조금 모자란데….”

그가 현재 소지하고 있는 돈은 17골드였으니 텔레포트를 이용할 수 없었다.

불릿이 고심하는 이때, 올리비아가 나서서 대뜸 화를 냈다.

“뭐? 겨우 마법사용에 대한 허가로 이걸 날려먹는다고? 우리랑 지금 장난하잔 거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상부에서 지시가….”

결국 펜던트 때문에 허락은 해주겠지만 돈은 내야한다는 뜻이었다.

자신들이 고생해서 얻은 펜던트가 겨우 허락 따위를 얻는데 소비되고, 그것도 모자라 돈까지 내야했으니 올리비아로서는 화가 날만도 했다.

“그,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잠시만요!”

올리비아가 불같이 화를 내자 로비는 주춤주춤 물러서다 다시 구석으로 돌아가 마법을 시전했다.

중얼중얼, 굽실거리며 무언가 사정조로 얘기하던 로비는 이전보다 긴 30분의 시간을 소요하고 나서야 그들에게 돌아왔다.

“휴유, 간신히 허락을 얻어냈어요.”

로비는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으며 대꾸했는데, 그 모양새가 어쩐지 조금 당당해 보이는 듯 했다.

올리비아는 삐딱하게 선 자세로 팔짱을 끼고서 입을 떼었다.

“그래서, 뭔데?”

“엣헴. 제가 열심히 부탁해서 받아낸 사항은, 저희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면 할인이 가능하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좀 들어볼 수 있겠소?”

용병길드를 통해 의뢰를 수행하면 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었지만 여기서 더 지체하기도 꺼려지는 상황.

한시라도 급히 영지로 돌아가고픈 불릿으로선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한차례 목을 가다듬던 로비는 어느새 되찾았는지 자신감 있게 말을 내뱉었다.

“예! 저희가 볼레트님에게 부탁할 내용은 볼레트 님의 계약자, 땅의 하급 정령을 조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흙덩이를?”

멈칫, 불릿은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무슨 부탁을 하려하나 했더니 설마 흙덩이를 가지고 그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왜 이런 부탁, 역의뢰를 걸어왔는지 정령사로서의 관점으로 보면 알만도 했다.

‘흙덩이는 일종의 특이개체, 다른 정령들과는 다른 모습과 반응, 그리고 하급 정령답지 않은 강함까지 가지고 있지.’

거기에 더불어 현재 대륙엔 원인을 알 수 없는 마법사와 정령사의 수준하락이 도래하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흙덩이는 눈여겨볼 만했다.

“며칠 말미를 주시겠소? 이곳에서 즉답을 하기엔 곤란한 내용 같소.”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시점이고, 흙덩이는 불릿에게 소중한 존재.

이전에 계약했던 물의 정령들과는 다르게 애정을 쏟고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흙덩이가 실험체가 되는 것은 한시가 급한 불릿이라도 꺼려진다.

로비도 그의 심정을 알 것 같은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위에서도 그럴 거라 예상해 3일의 시간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숙식하는 곳으로 찾아갈 것이니 기한동안 여부를 결정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 * *

여관으로 돌아온 불릿은 그동안 내내 소환했던 흙덩이를 잠시 되돌려 보냈다.

올리비아에게 맡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엔 격해질 수도 있는 자신의 감정이 전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돌아가기 싫어하는 흙덩이를 간신히 달래고서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떡할 것인가….”

깊은 고민에 빠진 불릿. 벌써 기한인 3일째가 되었으나 그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자신이 흙덩이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왔는가? 그런 흙덩이를 잘 알지도 못하는 놈들에게 넘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탁상에 팔을 걸친 채 겹쳐진 손등의 위에 턱을 괴고 있던 불릿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 상태로 있었다.

‘하지만 텔레포트는 반드시 이용해야한다. 물품에 대한 조사도 빠트릴 수 없고.’

텔레포트야 지금 이 상황에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수단이었다.

아직도 나라를 몇 개나 넘어서야 루드밀라 왕국에 도착할지 모르는데 기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마법물품, 흙덩이가 집착하던 마력삽에 관해서도 그렇다. 대체 이유가 뭐길래 계속해서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마법사의 탑 영역에 오겠느냔 말이다.

‘마정석을 팔 수도 없는 일이지.’

지금 불릿이 소유한 마정석은 하급과 중급. 당장 하급만 되더라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돈이 있어도 물량이 없으니 일반적인 상점에선 보는 것도 드물었다.

최하급은 넘쳐나는데 하급 이상의 마정석은 보는 것조차 힘든 괴현상, 그러나 생각해보면 마정석이 몬스터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중급 이상의 몬스터들부터 하급 마정석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노리고 사냥하기엔 너무도 위험했다.

그렇다고 잘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며, 놈들이 서식하는 지역까지 이동하는 시간보다 하급 몬스터를 잡는 것이 수지가 맞았기에 언제나 공급은 부족했다.

이런 귀환 마정석을 겨우 돈이 부족하다하여 팔아넘기는 짓은 어리석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하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장시간에 걸쳐 불릿이 터뜨린 한숨. 그것은 결국 마법사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흙덩이를 내맡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돈 때문에 흙덩이를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이 못내 찝찝했지만 현 상황에선 이것이 최선이리라.

그는 결심을 굳히고선 다른 생각과 함께 마탑에서 찾아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소식을 전하러 온 마법사를 따라 마탑으로 향한 불릿은 고급스런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와 흙덩이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섰던 마법사는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오고선 탁자에 올려놓고서야 불릿에게 말을 걸었다.

“조건을 다신다고 하셨습니까?”

이번에 마탑에서 찾아온 이는 그곳에서도 권력이 있는 이인지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렇소. 흙덩이에게 해가 가지 않는 한에서 조사를 한다는 맹세를 말이오.”

“…맹세, 말입니까?”

“만물의 근원인 마나에 대고서.”

“크으윽…….”

마법사는 있는 대로 안색을 찡그렸는데,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의 맹세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언약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불릿이 내민 조건에 인상을 찌푸렸는데, 이를 통해 불릿도 그들이 뭘 하려고 했는지 대략 짐작이 갔다.

‘내 네놈들 같은 잡것들의 행태는 질리도록 보아왔느니라.’

불릿은 마법사, 특히 그 중에서도 마탑출신의 마법사들의 광기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아내려는 그들의 조사와 연구, 분석은 미쳤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광기 섞인 집착을 보였다.

감히 자신의 소중한 흙덩이에게 개수작을 부리려 했으니 점잖은 불릿이 마탑을 비꼴 만도 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뒤탈이 없을 정도로 연구할 것을 마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알겠소.”

불릿이 물러설 기세가 아니자 마법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맹세했다.

만약 마나의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마법사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서클이 흩어지기 때문에 이보다 더 확실한 약속은 없을 것이다.

“마력삽에 대한 의뢰도 동행해야 하오.”

“마법물품에 관해서는 이 자리에서 감정하기 위해 제가 온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쩐지 단순심부름을 위해 온 전령이 아니다 싶었더니 이런 내막이 숨어있었다.

마법사는 멀찌감치 이불에 숨어 자신을 쳐다보는 흙덩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탁자위에 놓인 마력삽을 훑어보았다.

“그럼, 잠시 기다려주시길….”

우우웅-

“재료분석, 마법확인, 마력측정….”

미리 말했던 것도 있고, 이런 일에는 인첸트학파가 전문이라 그런지 마법사 또한 그곳 출신인 듯했다.

“으음….”

슥, 스스슥-.

마법사는 마력삽을 가지고 분석을 하면서도 종이에 무언가를 계속해서 적어내려 갔는데,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물품감정은 1시간이 지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이건 저 밑의 도구점에서 판매하는 마력삽이었군. 어쩐지….”

“무슨 문제라도 있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사가 중얼거리자 불릿이 물었고, 그제야 퍼뜩 정신 차린 마법사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 이 마력삽은 저희 쪽에서도 알 만한 이는 아는 물품입니다. 워낙 특이한 물품이라서 말입니다.”

“그렇소이까….”

“예. 이런 좋은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이딴 물건을 만들 수 있냐 질탄 받았던 괴짜의 작품이라서 말이지요.”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돈지랄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불릿은 그런 속사정 따위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체 어떻다는 말이오?”

“자세한 건 이것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마법사는 자신이 작성했던 종이를 건네주었는데, 그것은 알기 쉽게 내용을 간추린 일종의 보고서였다.

글을 훑어 내려가던 불릿은 한 구절에서 멈춰 섰다.

“땅의 마나가 많다?”

“보통 마법사가 도구를 만들면 그것엔 제작자의 마나가 깃들게 됩니다.”

불릿의 혼잣말에 마법사가 부가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원소를 선택하는데, 이 마력삽을 제작한 마법사는 흙의 원소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도구도 삽을 만든 것이오?”

“괜히 괴짜가 아니지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마법사를 두고 불릿은 마력삽으로 눈길을 돌렸다.

‘흙덩이가 집착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인가?’

- 불릿, 나 그거 먹을래.

흠칫.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불릿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불속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흙덩이를 바라보았다.

- 나줘. 먹을래.

‘텔레파시?’

어찌나 강렬한 사념이었는지 평소 성공률이 저조하던 텔레파시가 연속해서 불릿에게 전해졌다.

흙덩이가 이토록 간절히 바라는 마력삽을 불릿도 주고 싶었지만 아직 마법사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럼, 정령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알겠소. 흙덩이여, 이리로.”

흙덩이는 어쩐지 겁먹은 기색이었으나 이내 이불을 벗어던지고 불릿에게 다가왔다.

“약속대로 하시오. 만일 흙덩이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면….”

“걱정하지 마시길. 저도 제 마나는 소중하니까요.”

단칼에 불릿의 걱정을 끊어낸 마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흙덩이의 몸 이곳저곳을 조사했다.

때로는 찔러보고, 때로는 인첸트학파 특유의 마법으로 조사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조사를 받자 흙덩이가 울상을 지었다.

- 불릿……

애달픈 눈빛으로 불릿을 애타게 부르는 흙덩이에게 그는 뭉클한 감정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도 별 수 없었다.

“괜찮네, 괜찮아. 잠시만 참아주시게. 부탁하네.”

- 응……알았어……

불릿의 부탁에 흙덩이는 싫은 것도 꿋꿋하게 참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서야 마법사는 흙덩이를 놔주었는데,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으으음.”

“무슨 문제라도 있소?”

“아뇨, 그냥 특별한 점을 알아낸 게 없어서…, 에휴.”

마법사는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흙덩이를 바라보았고, 흙덩이는 마법사의 손에 주물러지던 감각이 소름끼쳤던지 불릿의 뒤에 숨어 적개심을 보였다.

- 변태.

‘…이런 말은 또 언제 배운 것인가?’

마법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표정을 지우고서 불릿에게 말을 건넸다.

“조사와 물품감정은 모두 마쳤습니다. 직스 자작령의 텔레포트엔 신호연동이라거나 절차, 준비과정이 필요하니 며칠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 작품 후기 ============================

화요일은 진짜로 2연재입니다.

저녁 6시와 12시, 잘 부탁드리고 오늘도 선작과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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