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61화 (61/241)

00061  마법사의 탑  =========================================================================

당돌한 그녀의 말에도 불릿은 당황한 기색 없이 대꾸하였다.

“올리비아에게 자격이 없다면 그 누가 있겠소? 어디 골라보시오.”

“정말? 정말이지? 호호호!”

입가를 가리며 미소 짓는 올리비아를 점원과 함께 흐뭇하게 바라보는 불릿.

‘내게 딸이 있었다면 저만한 나이였겠지.’

……점원과는 달리, 그의 진실 된 나이가 40살이라는 것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아무튼, 올리비아는 불릿의 말대로 점원을 데리고서 상점 곳곳을 쏘아 다니며 물건을 골랐는데, 설명해주는 점원의 진이 빠질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랐는지 그것을 들고서 불릿에게 다가왔는데, 그녀가 앞으로 내민 물건은 영롱한 색을 띄는 반지였다.

“난 이걸로 할게. 후훗.”

그녀의 말에 점원이 부가설명을 해주었다.

“이 반지로 말하자면 하루 2번 워터 마법을 발현할 수 있고, 사용한 시점을 기준으로 24시간이 지나면 재충전 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반지에 박힌 보석은 마정석을 가공해 만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격은 10골드입니다.”

“으음.”

남은 돈을 가늠하던 불릿은 돈이 모자람을 깨닫고 신음했다.

여관비까지 합치면 어떻게든 되겠으나, 물건 하나 사고 노숙을 하면 그 또한 말이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가 고심하자 점원이 불릿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어느 정도는 싸게 드릴 수 있습니다.”

“…7골드 밖에 없는데, 괜찮겠소?”

덩달아 목소리를 죽인 불릿의 대꾸에 점원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되고말고요. 마력삽도 사주셨는데 이 정도는 서비스입니다, 서비스.”

거래가 성사되자 돈을 건네받은 점원이 밝게 웃으며 불릿에게서 떨어졌다.

“둘이 뭔 얘기를 속닥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오.”

“그냥, 남자들만의 얘기였습니다.”

“대화에 성별을 따지는 게 어딨어? 거기 아저씨, 좀 맞아볼래요?”

올리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자 점원이 호들갑을 떨었따.

“자, 자. 그러지 마시고. 반지를 착용해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앗, 맞다.”

점원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만족스런 웃음을 띠는데, 불릿이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올리비아, 그 자리는….”

“응? 왜? 뭐가?”

“아니, 반지를 끼운 손가락의 위치가….”

반지가 들어간 위치, 그곳은 새끼손가락의 바로 옆, 약지였던 것이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곳엔 혼인을 했거나 또는 그런 약속을 한 사람, 아니면 연인이 있는 이들이 착용하는 자리였다.

말하자면 ‘나 임자 있어요’라는 뜻을 가진 위치.

“어디에 착용하건 그건 내 마음 아니야?”

“그러니까 어째서 그 자리에….”

둘이 티격태격하며 반지에 대해 논하고 있을 때, 한쪽 구석에서 삽을 껴안고 멀뚱히 서있던 흙덩이가 볼을 살짝 부풀리고 있었다.

- 불릿, 바보.

* * *

흙덩이의 삽을 들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여관을 잡아 짐을 내려놓고서야 마탑으로 향했다.

“신청서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내 제지를 당하고 신청서라는 것을 작성한 후 예약이 이루어지자 여관으로 되돌아왔다.

예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긴 했으나 마탑을 방문한 적은 없었기에 생겨난 불릿의 불찰.

“숙식값이 하루에 1실버라니, 조금 비싸군.”

원래 불릿은 1골드도 안 하는 잔돈에 연연하지 않았으나 용병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거기에 조금씩 물들고 있었다.

1실버면 제일 처음 머물렀던 여관에 비해 10배는 되지 않는가?

물론 그곳은 식사비를 따로 지불해야 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그곳과 이곳은 6.5배정도 차이가 났다.

“흙덩이한테는 50골드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이 뭐라는 거야?”

여관은 비싼 값을 했는데, 폭신한 이불로 이루어진 침대와 오리털인지 솜인지 모를 부드러운 베개.

거기에 얼굴을 묻고 누워있던 올리비아가 고개만 돌리고서 불릿에게 핀잔을 주었다.

“……올리비아. 언제나 말하지만 과년한 처자가 남성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그들은 언제나 방을 2개씩 잡았다. 그것은 비용이 배로 들거니와 안전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불릿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루어졌었다.

“풋!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야?”

- 때려도 돼?

올리비아의 장난에 흙덩이는 불릿을 올려다보며 말했는데, 어쩐지 상점에서부터 심기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의념을 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불릿이 흙덩이의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넘긴 후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지 말게나. 동료가 싸운다면 본인은 슬프다네.’

결사대의 모든 인원이 죽어버린 지금, 불릿에게 있어 이들에게 불화가 생긴다는 것은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친하게 지내길 바랐던 것인데, 흙덩이는 그런 불릿의 행동에 흠칫했다.

- 나 있어. 불릿 안 슬퍼.

고개를 홱 돌린 흙덩이가 거의 코앞까지 마주닿은 불릿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서 말하자 올리비아가 소리쳤다.

“야! 너네 지금 뭐하는 거야!”

“……? 올리비아야말로 왜 그러시오?”

둘의 행태에 올리비아가 벌떡 일어서서 쿵쾅쿵쾅 다가오더니 흙덩이를 낚아챘다.

탁!

“흥, 어딜 감히. 넌 나랑 있어!”

잠시 바동거리던 흙덩이는 불릿의 말을 떠올리고선 그대로 축 늘어져버렸다.

- 불릿, 나 안 싸워. 슬퍼하지 마.

남이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흙덩이가 올리비아의 돌발행동에도 꾹 참는 모습에 불릿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 불릿, 나 안 싸울 테니까, 그거 주면 안 돼?

이 와중에 무언가를 달라는 흙덩이에게 불릿이 고개를 젓는다.

“흙덩이여, 마력삽을 이런 내부에서 들고 다니면 안 되네.”

주변엔 온통 목조가구와 부드러운 천으로 둘러싸였는데, 이런 공간에서 힘을 올려주고 매우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삽을 들고 다니다간 무언가 파손될 것이다.

특히 저렇게 올리비아와 한데 뭉쳐 이불을 뒹굴 거리는 와중에 삽을 들고 있다면?

올리비아가 다치거나 침대보가 찢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건 귀족으로서의 체면 이전에 기본적인 예절이었다. 집안에서 삽을 들고 다니다니, 그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 …치.

“도굴꾼도 아니고 뭔 놈의 삽이야? 넌 나랑 있어!”

올리비아는 침대에 앉은 채 흙덩이의 머리를 부산스럽게 쓰다듬었다.

- ……하지 마. 불릿만 하는 거야.

불릿이 알려준 대로라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친밀해지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것을 올리비아가 하니 싫은가보다.

똑똑똑.

“볼레트 씨, 마탑에서 나왔습니다.”

“올리비아, 흙덩이를 부탁하오. 내가 나가보도록 하지.”

계속해서 삽을 달라는 흙덩이를 달래는 것에 약간 지친 불릿이 올리비아에게 맡기며 문을 열었다.

달칵.

“볼레트 씨 되십니까?”

“그렇소만.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고 허락이 떨어졌기에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 * *

“깔끔하고 잘 꾸며져 있네.”

불릿 일행은 처음 가본 마탑이 신기한지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과연 마법의 선구자답게 마탑은 최신식으로 이루어져 각종 편의성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이 마탑의 내부로 들어서자 갑자기 어디선가 폭음이 들린다.

펑!

- …케헥, 케헥! 빌어먹을!

“뭐지?”

올리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을 품을 때 불릿이 대답해주었다.

“아마 실험을 하는 도중이었을 거요. 들리는 소리로만 판단하자면 실패한 것 같지만.”

성공했다면 기침소리와 함께 욕지거리가 튀어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지를 떠올렸는데, 마법사가 얼마나 돈을 잡아먹는 귀신인지 불릿은 잘 알았다.

‘저렇게 한번 실패할 때마다 돈을 왕창 깨먹곤 했었지.’

마법사는 돈을 잘 번다. 올리비아가 착용한 반지만  하더라도, 하급 마법인 워터를 24시간에 2번씩 밖에 사용하지 못함에도 10골드나 하지 않는가?

4인기준 평민가정이 한 달에 5에서 8실버를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비쌌다.

허나 그렇게 버는 돈도 저런 식으로 실험이 실패할 때마다 까먹으니 그야말로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붓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마탑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으로 불릴 아이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안내를 맡은 로비라고 합니다!”

“로비라고 하는구나?”

“반갑소. 볼레트라고 하오.”

아이는 총기가 가득해보였는데, 어쩐지 밝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불릿 일행을 보는 시선이 이상했다.

“어때요? 마탑은 정말 대단하죠?”

“어, 어. 그런 것 같다.”

어쩐지 박력 넘치는 로비의 발언에 살짝 눌린 올리비아.

로비는 의기양양해져 더욱 목소리가 커졌다.

“제가 비록 견습생이지만 자랑스런 마탑의 일원이 되어 실력을 갈고 닦고 있답니다! 천박하게 몸을 굴리지 않는단 말이죠!”

- 불릿, 쟤 바보야?

그때까지 불릿의 손을 잡고서 주변을 구경하던 흙덩이가 인상을 쓰는지 콧등에 살짝 주름이 갔다.

어쩐지 용병을 무시하는 투로 조잘거리던 로비는 흙덩이에게도 시선이 가더니 움찔, 말을 멈추었다.

“어, 저, 저기. 혹시 그 아이는…, 땅의 정령? 인가요?”

“용케 알아보았군. 맞소.”

“으윽….”

로비는 땅의 하급 정령인 흙덩이를 보자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콧대가 흙덩이를 보자 꺾인 걸로 보였다.

“정령사…셨군요. 그것도 아주 강한….”

‘현재 마법사와 정령사들의 수준이 한층 낮아졌다고 했던가?’

로비가 보이는 반응에 불릿은 예전에 들었던 내용을 상기했다.

현재 대륙은 원인모를 이유로 정령사와 마법사들의 수준이 낮아졌다고 하는데, 하급 정령을 다루는 불릿의 본 실력이 중급 정령사라 여겨지니 주눅들만도 했다.

중급 정령사면 어딜 가서라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들떴었군요.”

“괜찮소. 다만, 나의 동료들에게 무례하게만 하지 마시오.”

“죄송합니다.”

불릿의 말에 로비가 올리비아와 흙덩이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에 올리비아가 팔짱을 끼고서 로비를 노려봤다.

“야, 로비라고 했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게 아냐. 그게 제일 못된 짓이라고.”

- 바보?

올리비아와 흙덩이의 말에 로비가 잔뜩 주눅이 들어 더더욱 고개를 들지 못했다.

흙덩이의 말은 들리지도 않겠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질책하는 것으로 변하자 잠자코 있던 불릿이 나섰다.

“그쯤하고, 로비. 안내를 시작해주겠소?”

“아, 네! 열심히 안내하겠습니다!”

“…그냥 평범히 하면 되오.”

아까와는 다른 열기를 보이며 눈을 불태우는 로비가 부담스러웠는지 불릿이 요구도를 낮췄으나, 로비는 그 말을 듣고 더더욱 크게 소리쳤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불릿 일행은 친절해진 로비의 안내를 받으며 마탑을 구경했는데,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불릿이 건성으로 답하며 로비를 대했고, 나머지 인원들은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선 텔레포트가 가능한지부터 물어보고, 그 다음에 흙덩이가 구입한 마력삽에 대해서도 의뢰해 봐야겠군.’

텔레포트가 장거리 이동마법이긴 했으나 과연 자신의 영지까지 거리가 닿을지 알아봐야했다.

괜히 어중간한 거리로 텔레포트가 된다면 위험은 위험대로 부담하고 괜히 부탁할 수 있는 펜던트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텔레포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부인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불릿에게 있어 콜드 파르탄에게 받은 펜던트가 값지고 소중한 이유였다.

‘이번에는 지나치게 집착하는 면이 있다.’

흙덩이가 무작정 마력에 홀리는 것은 아니다. 저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딱히 마정석을 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짙은 마기를 흘리는 중급 마정석에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헌데 지금 와서 이상한 괴작인 마력삽에 관심을 가진다니?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도 같아 이번 기회에 알아보려는 것이다.

생각을 마친 불릿이 올리비아와 흙덩이에게 설명하는 로비에게 말을 걸었다.

“로비, 의뢰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예? 으, 의뢰요?”

로비가 맡은 임무는 마탑의 안내. 뜬금없이 강한 정령사라 여겨지는 불릿의 요청에 이 어린 소년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을 원하시는데요?”

하지만 기재들만 모인 마법사들의 탑답게 금방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불릿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용건을 로비에게 털어놓았다.

“루드밀라 왕국의 바포 변경백까지 텔레포트가 가능한지, 그리고 한가지 마법물품에 대한 감정을 받고 싶소.”

============================ 작품 후기 ============================

아까 12시에 올리고서 사실 조금 잤습니다.

오늘 밤 12시에도 이어서 올라옵니다.

여러분도 저녁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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