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0 마법사의 탑 =========================================================================
한 번의 전투를 끝으로 더 이상의 습격은 없었다. 과연 마법사의 탑, 마탑의 영역이라고 해야 할까?
현 대륙에서 이만큼이나 평화로운 곳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평화로운 것과 안전한 것은 다르다.
마법사의 탑 영역은 안전함과 평화가 공존했고, 아름다움까지 지니고 있었다.
- 아……
“뭐가 이리 호화스럽지?”
이미 장대하거나 웅장한 건축물에 익숙한 불릿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으나 이곳을 처음 방문한 올리비아와 흙덩이의 반응은 달랐다.
흙덩이는 난생 처음 보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에, 올리비아는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그 나름대로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었다.
“이곳은 전화(戰禍)를 피해갔나 보군.”
불릿 또한 영지를 다스리는 군주. 온 대륙이 흑마법사와의 전쟁으로 인해 시름을 앓고 있는 지금, 이러한 평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마탑의 주인들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했다.
- 불릿, 벽에서 기운나.
“흠. 과연.”
흙덩이가 마탑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경계선에 놓인 장벽을 가리키며 말하자 불릿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마탑의 영역을 둘러싼 장벽은 기형학적인 문양들이 멋스럽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마법진으로 도배를 해놓은 모양이다.
“뭘 그리 유심히 봐?”
자신만 쏙 빼놓고 벽을 흙덩이와 불릿이 벽을 둘러보자 올리비아가 뒷짐을 진 상태에서 상체를 숙이며 불릿을 위로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올리비아의 상의 사이로 얼핏 골짜기가 보이…
“커허험! 과년한 처자가 조심성 없게.”
“아앗?!”
불릿은 헛기침을 뱉으며 올리비아를 똑바로 세웠는데, 양쪽 팔뚝을 잡고서 강제로 세우자 올리비아가 놀랐다.
“뭐야, 왜 그래?”
“커흠, 아무것도 아니오.”
“흐으음?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오늘따라 이상하네, 정말.”
그래도 올리비아가 비켜서지 않자 불릿이 화제를 돌렸다.
“흠흠. 이 장벽을 보고 있던 이유는 과연 마법사의 고향이라 불리는 마탑답다고 여겨져서 그렇소.”
“확실히 성벽치곤 예쁘긴 한데, 제기능을 발휘하기나 할까?”
올리비아의 시선에 비친 장벽은 조형미가 갖추어지긴 했으나 특출난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불릿은 올리비아보다 나이가 2배는 더 많고, 고위귀족으로서 왕궁이나 거탑을 많이 보아왔기에 다른 곳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시엔 올리비아의 말대로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장벽이었소. 허나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보니 이렇게.”
불릿은 장벽에 다가가더니 손등으로 살짝 두드렸다.
콩, 콩.
“앗! 뭐지, 이건?”
손등으로 두들겨진 자리에서 미미한 마력의 흐름이 감지되자 올리비아가 깜짝 놀라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장벽을 살펴보다 손으로 만지작거렸는데, 불릿은 그런 그녀를 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알기론 인첸트학파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이오. 거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학파와 합세해 마법진으로 도배를 한 것 같소.”
“와, 그럼 이게 다 얼마짜리야?”
아무리 부유한 영지라 할지라도 마법진은 중요거점, 즉 영주가 거주하는 성이나 군사기지가 아닌 이상은 마법진을 설치할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그런 마법진을 이렇게 기다란 장벽에 설치했다니 놀랄 수밖에.
“마탑의 영역은 독립적인 영지로 인정받기 때문에 세금도 내지 않으니 가능한 것이오.”
마법사의 탑이 존재하는 이곳은 예로부터 중립지역으로 유명했다.
이곳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자는 바로 쫓겨나며, 마탑에서 나오는 물품의 구매나 지원을 일절 받지 못했다.
마탑의 물품이나 출신의 마법사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세상 사람들은 잘 알기에 웬만하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 나라의 왕이라 하더라도 다르지 않은 공통사항.
“남들이 고생할 때 얘네는 속편하게 산다는 소리구나….”
뭔가 불만스러웠는지 더 이상 감탄사를 내뱉지 않는 올리비아를 보며 불릿은 장벽을 지나쳤다.
‘확실히 평민들도 잘 사는 편이다.’
곳곳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에 안색이 어두운 이가 없었고, 평민으로 보였으나 하나같이 복장이 깔끔하고 세련돼 보였다.
파르탄 영지에서 어린 영주, 콜드 파르탄의 보답으로 받은 좋은 옷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촌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몰랐다.
멈칫.
“……와.”
“……이쁘다.”
그들이 마탑의 영역으로 들어서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뭔가 감탄사를 터뜨리며 중얼거리는데, 너무 먼 거리라 자세히 알아들을 순 없었다.
갑자기 시선이 집중되자 인상을 찌푸린 불릿이 올리비아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앗.”
또 다시 신체접촉이 발생하자 올리비아는 남은 손으로 입을 가렸고, 주변에서 그들을 보던 남성들이 작은 탄식을 터뜨렸다.
“역시, 임자가 있었네.”
“쳇. 그래도 잘생긴 놈이라 봐줬다.”
아마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저런 미녀와 사귀었으면 질투심에 활활 타올랐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불릿의 빛나는 외모와 기품 있는 동작이 그들에게 불만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주었다.
“꺄, 귀엽다!”
“저 꼬마는 뭐지? 피부가 좀 누렇네?”
“알 게 뭐야. 보기 좋구만.”
종종걸음으로 불릿을 따라가는 흙덩이를 보며 여자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간간히 올리비아가 아닌 흙덩이에게로 시선을 던지는 남성들도 있었다.
“하악, 하악!”
- ……?
생각보다 많은 인파, 그것도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잔뜩 긴장한 흙덩이는 자신을 보며 거칠게 호흡하는 사람들이 몇 보이자 기분이 나빠졌다.
그렇다고 공격할 수도 없는 일, 흙덩이는 불릿에게 다가가 남은 손을 잡았다.
덥썩.
“음?”
- 쟤네 기분 나빠.
흙덩이가 스스로 다가와 손을 잡자 불릿은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멀어져가는 인파속에 거친 호흡으로 흙덩이가 있는 아래를 향해 뚫어져라 시선을 던지는 놈들이 보였다.
“…신경 쓰지 말게.”
‘소아성애자인가?’
간혹 변태적인 욕구를 지닌 이들이 있었다. 의외로 귀족들은 여러 종류의 변태가 많았기에 불릿은 금세 눈치를 챘다.
어차피 흙덩이는 정령인지라 범죄의 그늘에 노출되지 않으나 불릿은 자신도 모르게 흙덩이의 손을 움켜쥐고 걷는 속도를 늦췄다.
그러자 통통 튀듯 이동하던 흙덩이도 신체에 맞는 보폭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데빌로안이나 파르탄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시선이 모이는지 모르겠군.’
어째서 자신들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지 알 리 없는 불릿은 마탑의 영역으로 이동하며 생각했던 곳으로 이동했다.
딸랑-.
맑은 종소리, 그러나 현관문에 종 같은 건 없었다. 알람마법을 단순히 영업용으로 설치해놓은 점에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지만, 이미 예전에 방문했던 기억이 있기에 불릿은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다르지 않을까?
“뭐지? 방금 마나의 흐름이….”
“어서 오세요. 그 이유는 문에다가 알람마법진을 설치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카운터에 서있던 종업원이 인사하며 설명해주자 올리비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마법진을 고작 이런 용도로?”
마법을 물체에 씌우는 행위는 매우 힘들다. 효과가 지속되어야하며 효력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재료의 값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올리비아의 반응에 점원이 싱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괜히 마법사의 고향이 아니지요.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요?”
“쓸 만한 게 있는지 추천받을 수 있소?”
“예, 그러면 이 물품은….”
불릿과 올리비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점원과 대화하는 사이, 흙덩이는 홀로 상점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 ……
마법물품을 처음 본 것이 신기했는지 이제는 인간다운 표정도 살짝 보여주는 흙덩이.
신기하다는 기색을 내보이며 물품을 콕콕 찔러보며 살피던 흙덩이는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이 멈춰섰다.
- …거……
뭐라 중얼거리는 흙덩이. 너무도 작은 나머지 점원과의 대화에 빠져든 올리비아와 불릿에게까지 닿지는 않았다.
- 이거…
다시금 중얼거리는 흙덩이의 말에 순간 불릿은 멈칫했다.
‘이거?’
강렬한 바람이 전해진 것인지, 흙덩이가 불릿에게 말한 것이 아님에도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의념.
불릿이 얘기를 하다말고 뒤를 돌아보자 그의 시선엔 어떤 물건을 들고서 가만히 서있는 흙덩이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불릿이 흙덩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흙덩이여, 본인을 불렀는가?”
그러자 물건이 뚫어져라 쳐다보던 흙덩이도 고개를 돌려 불릿을 보았는데, 어쩐지 새끼 강아지를 보는 듯 애처로워 보였다.
- 이거, 나 줘.
마치 소중한 물품이라도 되는 양 품안에 꼬옥 껴안자 불릿은 어떤 장면이 머리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잠시 머릿속을 뒤져보니 그것이 언제인지를 떠올린 불릿.
“혹시 마정석처럼 흡수를…?”
끄덕.
그의 말에 흙덩이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자 불릿은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물품을 사주면 다른 걸 사지 못하는데…, 윽. 어쩔 수 없군.’
애타게 자신을 쳐다보며 물건을 품안에 꼭 껴안은 흙덩이를 보자니 안 사줄 수가 없었다.
누가 뭐래도 흙덩이는 자신의 소중한 동료이며 바라는 것도 적은, 알찬 일꾼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요소도 있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간에 불릿은 약간 불안해하는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비싸?
이제는 인간세상에 조금은 익숙해진 흙덩이. 흙덩이도 물건이란 것을 가지려면 돈이라 불리는 동그란 금속을 줘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돈을 벌려면 언제나처럼 불릿이 고생해야함을 알기에 갖고 싶다 말하면서도 불안해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이제 자네의 것이라네. 다만, 흡수는 나중에 돌아가서. 알겠는가?”
- 응!
평소와 달리 약간 들뜬 목소리에 불릿도 기분이 좋아져 약간 표정이 풀어졌다.
그는 어느새 흙덩이와 눈높이를 맞췄던 몸을 일으키고서 점원에게 다가갔다.
“숙녀분께서 저런 걸 원하십니까?”
약간 피부가 누런 걸 제외하면 흙덩이는 영락없이 인간소녀 그 자체.
그런 미소녀가 마법물품, 그것도 약간 골동품 축에 드는 마력삽을 품에 안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마력삽은 노동자들을 위해 개발된 마법물품인데, 광물과 부딪혀도 흠집도 나지 않는 강도와 끊임없이 힘을 부여해주는 슬로우 힐과 낮은 수준의 근력증강 마법이 부여됐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노동자들이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비쌌다’라는 것이다.
“얼마나 하오?”
그래도 삽이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겠냐는 불릿의 어조에 점원이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한숨을 쉬며 말을 토해냈다.
“휴우, 저 마력삽은 50골드입니다.”
“……방금 뭐라고 했소?”
“이 아저씨가 미쳤나?”
자신이 잘못 들었나 여긴 것인지 다시 되묻는 불릿과 혼잣말로 욕설을 퍼붓는 올리비아.
점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여기를 방문해주시는 분들마다 그러시더군요, 겨우 삽인데 뭐가 그리 비싸냐고. 하지만 거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인 즉,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마법 중 하나인 ‘치유’계열의 슬로우 힐과 검사들이 선호하는 ‘보조’계열 근력증강이 부여됐기 때문이란다.
이걸 개발한 마법사가 약간 정신이 이상한 게, 제작비는 생각도 않고서 영구적으로 마법을 부여했기에 거기에 들어간 재료비만 하더라도 이미 판매금액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뭔가 돈지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허, 올리비아. 당신의 입엔 고운 말만 사용하시오.”
“알았다, 알았어. 내 입에는 고운말, 바른말만. 됐지?”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불릿은 한숨을 쉬면서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구입하겠소.”
이번에도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포기하리라 짐작했던 점원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금 질문했다.
“정말 구입할 생각이십니까?”
“본인은…, 아니. 나는 말을 번복하지 않소. 여기, 50골드.”
쩔그렁-.
그러면서 금화 몇 개를 빼더니 주머니채로 점원에게 건네주었다.
점원은 그 자리에서 금화를 세어보더니, 불릿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허, 이렇게 우리 상점의 역사와 함께한 물건이 또 하나 사라지는군요.”
얼마나 오랫동안 안 팔렸기에 역사를 함께했다는 것인지 구입한 불릿은 물론이거니와 옆에서 지켜보던 올리비아도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볼레트는 정말 흙덩이를 너무 아낀단 말이지.”
“흙덩이는 그 정도의 자격이 있소.”
올리비아의 말을 단호히 일축한 불릿에게 그녀가 씨익 웃었다.
“그럼, 나도 사줘! 나도 그 정도 자격은 되지?”
============================ 작품 후기 ============================
요즘 계속 글만 생각하니 날짜를 헷갈렸네요.
보통 평일엔 2연재, 주말엔 3연재를 하려고 했습니다.
오늘이 일요일인줄 알았더니 월요일이네요..
덕분에 3연재를 약속한 나머지 잠도 못자고 밤새도록 글만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날 예고했던 것처럼 6시, 12시에 이어서 올라올 것이니 추천과 선작, 잘 부탁드립니다.
아마 오늘은 잠 못드는 날이 될 듯하네요...